< -- 23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경수와 덩치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소리가 주변을 지키고 있고, 또 만일에 대비해서 부적까지 심어 두었으니까 아예 걱정을 접어도 되었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 보면서 창현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배교 시절 창현은 절대자였고, 그 어떤 때보다 배교는 성세를 이루었다. 정파와 천마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껏 중원을 누볐고, 중원의 역사 최초로 배교의 교단들이 중원 곳곳에 들어섰다.
모두 창현의 존재 때문이었다. 일당백이라고 해도 부족 할 정도로 절대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그였기에 정파인들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굴욕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끔 창현의 이름값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취하는 무리들도 많았지만 창현은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쓰지 않았다.
딱히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양을 바라보는 것조차 즐겁다니. 역시 이 곳은 새로워.”
동네 자체가 주는 느낌은 상당히 암울했지만, 창현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았고 상가의 불빛들은 유흥가임을 알리는 글씨만 가득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벌써부터 보이는 것을 보면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굉장히 비싼 돈을 내고 마시는 술집들이 즐비한 곳도 아니었다. 창현이 일했던 룸이 있는 거리까지는 나가야 그나마 조금 더 활발한 밤문화를 즐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하루 빨리 이사를 갈 생각을 하고 있었군.”
동네의 대한 느낌을 떠올리자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부모님이라는 사람들은 지금 산 집을 겨우 마련하기는 했지만, 성실한 사람들이었고 언젠가는 좀 더 괜찮은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전에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지만, 그들이 희망을 놓치지 않았고 또 그 이유가 자신과 수희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돈이라는 것도 차차 벌어야 하겠네.”
단 한 번도 경제적인 활동을 해 본적이 없는 창현은 큭큭, 웃음을 흘려 대었다. 정말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되는 삶이 너무나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울리던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저기인가?”
상가들이 늘어서 있고, 퇴폐업소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광고하고 있는 간판들도 보였다. 고등학교 교문 앞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널브러져 있는 전단지는 여자들의 살결이 가득한 프린트물이었다.
“키스방? 오피? 뭐지 이런 건?”
여체에 대한 즐거움을 깨닫고 있는 중이었기에 관심이 갔지만 창현의 기억 속에도 그런 단어들에 대한 정의는 없었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전단지 한 장을 줍고 있는 창현의 모습에 이제 막 하교를 하는 학생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퇴폐업소 전단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리 썩 보기 장면은 아니었으니까 당연했다.
아랑곳 하지 않고 연신 기억을 더듬어 보는 창현이었지만 역시 모르겠다는 생각에 신경질적으로 구기고는 교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간…자율 학습이라는 것을 하는 학교인데.”
우르르 몰려 나오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창현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기억에 의하면 이 곳은 분명 학문을 가르치는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곳이고,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이름 하에 밤 늦게까지 학생들을 보내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교문을 향해 나오고 있는 학생들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수희 역시 있을 것이라 생각 했지만 그녀는 눈에 띄지 않았다. 워낙 눈에 띄는 외모이기에 금방 찾을 수 있어야 했지만 아마 학교에 남아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닌데….”
최근 수희가 이상했다는 것이 기억 속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답답함을 굳이 오래 참을 필요는 없었다.
“너!”
창현이 지나가는 남학생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꼴통 학교라는 소문을 증명하는 것처럼 남학생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넌?”
순식간에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허!”
창현은 혀를 찼다. 본래 하대라는 것에 익숙지 않은 탓도 있었고, 자신이 길가는 학생을 붙잡았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미안함도 느끼지 않는 탓도 있었다.
늘 사람 위에 군림했고, 지금과는 다르게 신분체계가 확실한 시절에 살았으니 익숙치 않은 탓도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창현은 불량 학생이 다짜고짜 말을 놓는 것을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었다.
원인 제공이 누구인지는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꼬마야 어른이 부르면 네, 하고 대답 하는 거란다.”
예전이었다면 일단 한 방 먹이고 시작했겠지만 창현은 스스로가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새로운 삶을 사는 영향인 것 같았다. 허, 하고 혀를 차는 것은 창현만이 아니었다.
다정하게 말을 하는 창현의 모습에 혀를 차고 히죽 웃어 버린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창현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아저씨, 대낮부터 술 쳐 먹고 취했어?”
큭큭,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창현이야 잘 모르지만 창현이 붙잡은 학생은 1학년 중에서도 제법 친다고 소문이 나 있는 불량 학생이었다. 민식보다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래도 그 학년을 주름잡고 있는 소위 잘 나간다고 자부하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 2, 3학년을 제외하고, 설사 선배들이라 할지라도 그를 무시하는 선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민식과 친하기도 했고, 그의 실력도 실력이었으니까.
물론 창현에게 그런 것은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 짜증나는데 잘됐다. 아저씨 잠깐 따라와 봐!”
“휘휘! 여기서 조져 봐!”
같이 다니는 무리들은 교문에서 투덕거리고 있는 종환과 창현을 향해 휘파람을 불어대고 있었다. 반이 달랐기에 교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럴까?”
여학생들조차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종환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는 다시 한 번 히죽 웃었다. 민식에게 민지네 호프로 오라는 문자를 받았지만 조금은 늦어도 상관 없었다.
사정을 말 한다면 충분히 이해를 해 줄 것이고 그동안 민식과 민정 때문에 건드리지 못했던 수희를 건드릴 수 있다는 소식에 자신의 순서는 어차피 뒤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저절로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갔다. 눈앞에 창현이 있지만 수희의 그 풍만한 자태가 머릿속을 스쳤고, 그 것은 17살의 어린 남학생에게는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다. 늘 바라만 보고 말 한 마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던 민식과 민정 때문에 애가 더욱 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쫘악-!
“커억!”
“!!!”
“아, 빌어먹을 이 미친 시대는 사람 새끼들이 싸가지가 없는 것이 당연하게 퍼져 있는 건가?”
싸대기 단 한 방!
창현의 손에 싸대기 한 방을 기습적으로 얻어맞은 종환은 입술이 터진 채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주먹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소리만 큰 것에 불과한 뺨 한 대 맞았을 뿐이라고 보기에는 종환은 몸까지 떨고 있었다.
뺨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고통은 점점 머리까지 퍼지고 있었다. 다리가 저절로 풀리면서 주저 앉을 수밖에 없었고,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단 한순간에 벌어진 일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일어나 꼬맹아.”
아무리 창현이 힘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수많은 무공을 그대로 전부 기억하고 있었고, 당연히 수많은 실전 경험 역시 가지고 있었다. 많은 인원이 달려들면 조금 힘들겠지만 영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강했다.
뺨을 때리면서 관자놀이를 스치듯 때렸기에 순간적으로 종환이 힘을 잃은 것이었다. 그 본인조차 모를 정도로 미세한 타격이었지만 창현은 급소라 불리는 부위를 정확하게 타격 한 것이다.
인간의 몸은 알려진 급소말고도 많은 급소가 있었다. 그 것은 때론 시간 마다 달라지기도 했고 계절마다 달라지기도 했다. 또는 날씨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인간의 몸은 신비롭고 위대했다.
그리고 그 신비롭고 위대한 인간의 몸을 창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개념을 만든 것 역시 창현이었으니까.
창현이 가볍게 발을 들어 종환의 복부를 향해 뻗는 듯 내질렀다.
퍼억-!
“쿠에에엑!”
“복날에 개새끼처럼 맞아야 사람 새끼도 정신을 차리지.”
점심을 그대로 토하는 종환에 모습에 함께 다니는 무리들은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 미친 새끼가 너 뭐야?”
“이리와.”
창현이 기세를 피워 올렸다. 수희에게도 써 먹었지만 그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세였다. 인간 본연의 의지라 표현 할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는 창현이었기에 수 많은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기세가 아니였건만 모두 주춤 대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터벅터벅-!
“다시 지껄여 봐 꼬마.”
“….”
삐적 마르기는 했지만 180CM가 넘는 창현이다. 남학생은 기세가 자신에게 쏟아지자 아예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털썩-!
차가운 눈빛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약한 학생들을 보면서 창현이 조소를 피워 올렸다.
“혹시 김수희라고 아나? 내 동생인데?”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던 종환의 몸이 부르르 떨렸고, 창현은 그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등 뒤에도 눈이 달려 있는 것 같았다.
“수군대지 말고 전부 꺼지지? 완전 막장 동네이군. 이런 광경이 익숙하다니.”
창현의 차가운 말에 아이들이 제각기 흩어지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가지 더 알 수 있었다. 별로 좋지 않게 소문이 났었지만 결국은 그 소문이 헛소문이고 오히려 바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수희의 오빠가 사실은 예전 소문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몇 몇 학생들은 오늘 민식과 민정이 수희를 끌고 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고, 행여나 그 사실을 방관 했다는 사실을 들키면 1학년을 주름 잡고 있는 종환 무리를 단 두 방에 제압한 창현에게 맞기라도 할 까봐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겁을 집어 먹고 있는 종환의 친구들을 보면서 창현은 혀를 찼다. 하지만 곧 몸을 돌리고 아스팔트 바닥에 점심을 한가득 쏟아내어 더러워진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종환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를 이었다.
“너는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군? 그리고…기운을 느껴보니 상당히 좋지 않은 것에 엮였네.”
“….”
“사실대로 말하고 수희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면 너는 특별히 많이 때리지는 않겠다.”
안 때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창현은 여전히 싸가지 없는 인간들은 복날의 개처럼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작 그 옛날 싸가지 없기로 온 중원을 울렸던 자신의 명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 그게 민식이 선배랑 민정이 선배가….”
“아아, 자초지종 따위는 설명하지 말고 안내나 해. 지금 내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아. 울림이 점점 심해지고 있거든.”
창현의 말에 종환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켰다. 토사물로 더러워진 교복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단 두 방을 맞았을 뿐이었지만 온 몸이 비틀리는 고통은 다시금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쏘아져 나오는 눈빛은 마치 살을 베는 것 같았고, 잘 치고 깡다구 좋다고 소문이 난 자신은 그에게 달려들어 보았자 또다시 그런 고통만 당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은 곧 두려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건드리면 사망이다!’
아주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종환만이 아니라 종환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아직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종환처럼 몇 대 얻어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개기다가 똑같은 꼴을 당할 뻔 했다.
아직도 창현이 훑어보던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저기…저희는….”
“꺼져. 안내를 할 놈은 한 명이면 충분하니까.”
삐쩍 마르고, 눈도 커서 오히려 순해 보이고…바보라는 소문이 돌았던 창현의 모습이 마치 야차와 같이 느껴졌고, 꺼지라는 한 마디는 그 야차에게 벗어나는 천국의 속삭임이라는 듯 종환의 친구들은 종환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재빨리 교문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뭐지?”
퇴근을 위해 교문으로 향했던 수희의 담임 경미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이들이 모여 웅성 거리던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곤 좀 더 있다 나갈 생각이었다. 또 싸움을 하나보다, 라는 짐작이 들었고 굳이 그 것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지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 호기심에 와 봤건만 이미 창현과 종환만이 남은 뒤였다.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기억을 하지 못하던 경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창현의 목소리가 먼저 종환의 귓가를 때렸다.
“가자. 이 울림은 정말 거슬리거든.”
자신에게 하는 말도 아니건만 경미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당사자인 종환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거슬린다는 그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어쩌면 민식과 민정이 오늘 무사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술을 한 잔 씩 하고 일을 치르는 그들이기에 아직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지만 어쨌든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창현은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새 종환은 주위에서 소문 난 민식이 창현에게 당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수희는 무사하겠지?”
떠나가는 종환과 창현의 뒷모습을 보면서 경미는 몸을 움찔 떨었다. 수희는 당연히 누군지 알고 있었다.
가뜩이나 어린 것이 너무 빛이나 치기 어린 질투에 자신이 늘 그녀에게 다른 아이들보다 많은 지적을 한다는 것도 떠올랐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고, 자신이 나간 뒤에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받았던 것도 떠올랐다.
경미는 자신도 모르게 창현과 종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장백산 지명 지적 해 주신 분 감사합니다.
수정 했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