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2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뭐지?”
영혼의 울림! 그 것은 결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창현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직 영력이 그 울림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창현님?”
“아! 아니야. 넌 며 칠 동안은 집에 있어. 내가 따로 연락 할 테니까.”
지현은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창현이 피식 웃으며 지현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첫 번째는 혜택이 많으니 행운인 줄 알아.”
“피이, 그 말은 벌써 몇 번이나 하셨다구요.”
창현의 나이 21살! 지현은 벌써 20대 후반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높이는 것을 전혀 어색해 하지 않고 있었다. 창현이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그리고 자신을 ‘사용한다’ 라는 표현이 적합 할 정도로 대하는 것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그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족했고, 그런 그가 자신을 첫 번째라고 표현하는 것도 몸을 떨리게 했다.
작은 눈빛 하나에 뜨거워지는 자신이 음탕한 여자 같았지만,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어린 주인이 이제 막 여체의 신비를 깨닫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창현님이임….”
콧소리를 내 보았지만 지현은 다시금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구분이 되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없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용한다는 말만 할 뿐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있다는 것을 지현은 느끼고 있었다.
손길을 통해서.
“만약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이걸 몸에 지니고 있어라.”
“…부적이네요?”
“그래. 일시적인 효과이기는 하지만…그 녀석들이 생각보다 뜸을 들이면 네가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수 있는 노릇은 아니니까.”
“네, 알겠어요.”
지현이 고개를 끄덕였고, 집 근처에 부적을 전부 심은 창현은 이제 지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며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물론 오소리도 창현의 옆을 따르고 있었다.
“전화 드릴게요.”
“그래.”
못내 아쉬운 듯 절절한 눈빛을 보내는 지현을 보면서 창현은 다시금 미소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참 재밌는 세상이었다.
지루함, 따분함, 허무함 이외에 감정을 느껴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니까.
“주인은…절대자였나?”
그런 기분을 오소리 역시 느낀 것인지 나지막하게 물었다. 창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자신을 파괴자라고도 불렀고, 절대자라고도 불렀고 또는 살아 있는 신선이라고도 불렀다.
모두 강인한 무공 덕분이었고, 그들은 느끼지 못했던 영력을 다루는 능력자였기 때문이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
“귀력을 다뤘기 때문이었나?”
창현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자연의 기운이 풍만 했던 그 시절이고, 도를 닦는 사람들 역시 훨씬 많았지만 그래도 영력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검선 정도가 아마 조금은 깨우쳤었지?”
문득 떠오르는 무당 말코 도사의 얼굴에 창현이 더욱 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말년에 제법 자신을 재밌게 해주었던 도사였다. 끝내 등선하는 것에 실패를 했지만 그래도 인간 중 자신을 제외 하고는 그 세계에 가장 가까이 있었다.
몇 번의 비무와 몇 번의 가르침…이미 백수를 넘긴 노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는 겸손했고, 또 사파라 불리는 자신의 가르침을 경청했다.
감사를 표하기도 했고.
“친분을 나눴다는 뜻이었나?”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창현의 혼잣말…추억을 되새기는 그를 오소리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질문에는 주인이 알아서 답을 해 줄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은 곧 되돌아왔다.
“지금은 아예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무공이라는 것을 익혔고 경지에 다달랐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한계를 초월 하게 되었지. 그 때가 끝인 줄 알았지만 한계를 초월 하고 나니 영력에 대한 감이 살짝 잡히더군.”
“….”
“그 이후에 그 것을 어느 정도 수련을 하고 나니 자연의 섭리가 눈에 보이고 인간사에 초연 해 졌지. 본래 인간사에는 크게 희노애락을 느끼지 못했지만 어쨌든 나 역시 인간이었으니까.”
“무공은 알고 있다. 주인.”
“하긴 요괴들과 잡귀들은 훨씬 오랫동안 사니까. 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것이라고 옥황보다 상위의 존재들은 너희들을 그렇게 규정했고, 인간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지 못했지. 대신 혼탁한 영력으로 강함을 가지게 되었고 종국에는 진화를 노리게 되었다는 것이 너희들의 역사라면 역사지.”
“나보다 더 자세히 아는군.”
“제법 친한 요괴가 있었거든.”
만약 지금의 감정을 그대로 그 시절로 돌아가면 어떨까? 창현은 궁금증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육체에 깃들었기에 이렇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본래의 강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이런 감정조차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한 낮의 따사로운 태양이 뜨거울 법 했지만 오소리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창현 역시 지친 기색 없이 한가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이 오소리를 보고 꽤 놀라기는 했지만 한 번 덩치가 커지면서 생김새 자체가 개와 많이 비슷해졌다.
날카로운 발톱은 그대로였지만 툭 튀어 나온 주둥이는 많이 줄어들었고, 송곳니 역시 지금은 입 안으로 숨기고 있었으니까.
조금 큰 애완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요괴들이나 잡귀들이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내공을 운용한다면 그 역시 균형을 깨는 일이니까. 일단 그릇 자체가 인간들과는 다르고 수명도 기니 당연하지. 생각 해 보면 참 기가막히게 법칙을 정해 놓았어.”
“…그렇군.”
“용이 되었다는 이무기는 나 역시 만나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인간과 같이 수련했다고 했어. 미물 주제에 섭리를 깨달은 것이지.”
“섭리를 먼저 깨달아?”
“글쎄…전설이라 생각했는데 나 역시 그 시절 자연을 느끼게 되니 그 것이 전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미물이….”
스스로의 존재를 미물이라 격하 시키는 오소리였지만 그의 표정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가득했다.
영력의 존재 자체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인데 승천을 하기전에 먼저 섭리를 꿰뚫어 볼 정도로 수련을 쌓다니? 분명 믿을 수 없는 일임에는 분명했다.
“뭐 그게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지. 선계에 갔다면 알 수 있었겠지만 오욕칠정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나는 늘 그 것이 궁금했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인간으로 남은 것이고.”
“…만약 지금 다시 등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거지 주인은?”
“아아…등선을 하려면 적어도 백년은 걸릴 것 같은 현재이지만 동화가 완벽하게 이뤄지고 내 기억을 가다듬고, 좀 더 자연의 기가 충만한 곳을 찾는다면 일정 이상의 경지를 이루는 것은 순식간이겠지. 그래도 등선을 할 생각은 없어. 이제야 여체의 신비를 조금씩 느끼고 있는데 그 즐거운 것을 포기할 리 없잖아?”
“주인은 생각보다 무척 인간적이군.”
누구나 꿈꾸는 등선을 고작 성욕 때문에 하지 않겠다는 그 말에 오소리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초탈한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창현을 보면서 그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굉장한 주인을 만난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 왔군.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지박잡귀가 없어. 아버지라는 사람의 의념이 완전히 감싸고 있거든. 하지만 이 주위는 아니니 만들어 놓은 부적을 심자.”
오소리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창현이 내미는 부적을 긴 혀로 삼켰다. 아스팔트 위에도 붙여 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에 오소리의 능력으로 지하통로에 영력으로 막을 씌우고 부적을 붙이는 것이다.
그 정도로 충분히 효과를 발휘 할 수 있었다.
오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본 창현은 다시금 가슴을 만져 보았다.
“무엇인가 울리고 있어. 하지만 뭐지?”
창현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영혼의 울림은 그 역시 딱 한 번 밖에 느끼지 못했다. 손속을 나누며 지루한 일상을 가끔은 즐겁게 해주었던 검선이 죽을 때 딱 한 번이었다.
그러기에 지금은 뛰고 있는 가슴이 확실히 영혼의 울림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는데….”
점점 떨림이 심했졌기에 창현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처음 느꼈을 때는 눈살을 찌푸리며 쓴웃음을 머금었던 그 따뜻한 포근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띠리릭-!
문을 열자 역시 따뜻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은 이후에 소파로 다가가 엉덩이를 붙였다.
이마에 손을 짚고는 잠시 어지러움증을 느낀 것은 아닐까? 추측 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울림은 끝이나지 않고 있었다.
그 때 문 밖으로 오소리가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아, 날지는 못하지?”
“…난 조류가 아니다 주인.”
“그럼 발 좀 씻어라. 청소는 수희가 해야…”
창현이 번뜩 몸을 일으켰다. 강하게 가슴을 때리는 울림이 수희라는 단어에 공명하고 있었다.
의식 깊숙이 있었던 녀석의 영혼이 강하게 떨고 있었다.
“오욕칠정에 감정이 없어. 이건…그렇군. 이 집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야.”
본래 창현이 가지고 있었던 수희에 대한 마음은 따뜻함과 책임감이었다. 성씨도 다르고 법적으로도 완전히 남이지만 그에게 수희는 단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이 수희였다.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 그녀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독히도 착하고 여린 사람이었으니까.
“재밌어. 쿡쿡. 이제는 본래의 너가 아니라 나이지.”
그와 자신은 하나가 되었고, 점점 완벽하게 하나가 되고 있었다. 자신이 이 몸으로 그 옛날 자신의 능력을 쓰고,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하나하나 이뤄가는 것처럼 본래의 몸 주인이 역시 원하던 것을 해야 하는 것까지도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 공명에 반응을 해야했다.
“어차피 학교로 가려고 했었고.”
오소리가 투덜 거리며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제법 윤기가 흐르던 털은 하수구에 한 번 다녀와서 그런지 조금 더러워져있던 상태였지만 다시 씻으니 말끔해졌다.
“부적은?”
“전부 묻어 두었다.”
“뭐 나쁘지 않아. 그럼 어디 가서 놀고 있던지, 아니면 쉬고 있던지 해라.”
“…주인 괜찮나?”
아무래도 오소리는 창현이 파락호라고 언급했던 질 나쁜 무리의 인간들과 푸닥거리라도 할 것이라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물리적인 강함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사용하는 사술은 제물이 필요하거나, 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 했고 인간이 영력을 깨우치지 못하는 인간을 상대로 영력을 사용하는 것 역시 업을 쌓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육체적 강함이 필요했다.
“아아, 괜찮아. 네가 물었잖아 난 절대자였냐고.”
“…그렇다.”
“그 시절 수많은 별호가 있었어. 조무래기 몇 명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알았다. 연락은 어떻게….”
“영력의 공명이 일어나면 알아서 찾아 오게 될 거다.”
역시 기이한 능력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오소리가 집을 나섰다.
땀을 생각보다 많이 흘렸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자 공명이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창현은 피식 웃으며 집을 나섰다.
“그럼 가 볼까? 김수희에게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렇게 난동이지?”
나쁘지 않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에 의념의 따뜻함과 수희를 생각하며 느껴지는 책임감은 그에게 생소했다.
“좋아. 이제야 좀 인간 같군.”
끝내 인간으로 남고 싶었던 그 시절의 소망을 꼭 지금 이룬 것 같았다. 창현은 수희의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이 글은 후기가 처음인가요?
출판 하고, 올플 쓰면서 차기작 구상을 사실 따로 해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것을 쓰면 지친 상태에서 더 지치고 의욕은 더 안 생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조금은 편안한 것을 택했고, 사실 쓰면서 그리 힘이 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간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독자분들도 편안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추신
설정을 바꾸고 싶으시면 직접 쓰셔야죠......
추신2
예전에는 일일이 대항했지만 이제 노블에서 어느 덧 1년도 넘었고
완결도 4번이나 내보았고 내린 결론은..
그냥 조용히 삭제하고 불량등록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