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 현대 재림기-20화 (20/170)

< -- 20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김수희 집중 안 할래?!”

안경을 치켜 올리는 여자의 말에 교실에 웃음의 물결이 흘렀다. 얼굴이 붉게 물드는 수희의 모습에 남자 아이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홍조 좀 피우는 것 가지고 넋 놓는 새끼들은 뭐야?! 얼굴 뜯어 먹고 사는 세상인 줄 알아?”

짜증스럽게 내뱉는 여자의 말에 어느 남학생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얼굴 뜯어 먹고 사는 건 아닌데 졸라 예쁜 건 사실이니까요.”

“좀 멍청하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덧붙임에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꺄르르, 웃음이 다시 이어졌다. 입술을 질끈 깨무는 수희였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은 여자가 어쩔 수 없는 녀석들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생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먼저 나서서 수희를 웃음 거리로 만들었지만, 그녀에게 그런 의식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자신은 훈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부 조용히 해.”

여자는 날카로운 말과 함께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수희에게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정해진 시간을 채우기 위해 칠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짜증나….”

나지막하게 중얼 거리는 수희를 보면서 여자 아이들은 여전히 깔깔 대고 있었고, 남자 아이들은 침을 삼키거나 또는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것이 꽤 질투가 많이 나는 모양이었다.

다른 여자 아이들이나, 칠판에 신경질 적으로 분필을 놀리고 있는 선생에게는. 고등학생답지 않게 풍만한 몸매였지만 그에 반해 가녀리게 느껴지는 긴 팔다리, 더불어 창피함에 빨갛게 물든 볼을 가지고 있는 얼굴은 무척이나 예뻤다.

그 또래 남자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띵동-띵동-!

종이 울리자 선생은 인사도 받지 않고 바로 교실을 나갔다. 정해진 시간을 채웠으니 꼴통들로 가득 차 있는 교실을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야, 김수희!”

양 갈래로 머리를 묶고 있는 소녀는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수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잔뜩 줄인 교복은 터질 것처럼 답답해 보였다.

아쉽게도 가만히 있어도 터질 것 같은 수희의 가슴과는 좀 많이 대조가 되었지만.

“….”

“김수희!”

“…지겨워.”

중얼 거리고 있는 수희의 목소리를 들은 듯 소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변에서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은 오늘은 또 소녀가 수희를 어떤 식으로 괴롭힐지 무척이나 궁금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탁탁-!

대충 가방을 싸고 몸을 일으키는 수희의 어깨를 소녀가 짓눌렀다.

“이런, 이런 얼굴 뜯어 먹고 살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수업은 들어야지 수희야.”

자칫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치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해 할 수 있었지만 소녀의 얼굴에 걸린 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꺼져.”

“헐!”

소녀는 기가 차다는 듯 이마에 손을 짚었다. 하지만 수희는 어깨를 누르고 있는 소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교실 뒷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때 지켜보고 있었던 남학생이 수희의 발걸음을 가로 막으며 히죽 웃었다.

“수업 끝나고 오늘 같이 놀기로 했잖아.”

“….”

수희가 다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잊고 있었다.

“아, 맞다 수희야 우리 약속 있었잖아?!”

소녀도 수희의 뒷통수에 대고 다시 비웃음을 흘렸다. 남학생의 차가운 미소에 수희는 결국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겨워….’

결국 점심시간에 학교를 나가려던 것은 포기하고 수희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말이 좋아 인문계인 학교이지 꼴통들 천국이었다. 정학을 밥 먹는 듯이 먹는 아이들도 있었고, 교무실은 부모님들의 방문으로 끊이지 않았다.

물론 학교 폭력 때문이었다.

같은 학교 부모님들만 오냐고? 당연히 이웃 학교 학생들의 부모님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상황이 이렇자 선생들 역시 대부분 시간만 채우자는 생각으로 가득했고, 수희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주변에서 꼴통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리고…툭툭 수희의 어깨를 치는 아이들은 역시 그런 꼴통으로 소문을 나게 하는데 아주 크게 한 몫 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끝났어 가자.”

종례라는 것이 있지만, 고3이라는 타이틀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태연히 가방을 싸는 아이들이나, 그런 아이들에게 전달 사항조차 없다는 것처럼 교실에 들어오지 않는 선생님이나 이 학교의 하루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 지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

수희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아까 남학생의 신경을 조금 거슬린 것이 마음에 걸렸다. 창현에게는 지독하게 차가웠던 수희였지만 밖에서는 그런 심성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야, 담배 있어?”

“응!”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소녀가 귀엽게 혀를 내밀며 대답했다. 주변 학생들이 우욱, 하며 과도하게 역겹다는 시늉을 하자 소녀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야, 수희는 가만히 있어도 귀여워 죽겟고, 나는 아니야?”

“일단 너는 빈유야.”

“이 미친 새끼가?”

“수희는 거유고. 그 것부터 크라스의 차이가 있지.”

한 남학생의 말에 둘 모두 얼굴이 붉어졌다. 수희는 짜증스럽다는 듯 가슴을 가리고 있었지만 소녀는 오히려 가슴을 내밀며 소리쳤다.

“새끼들아 잘 만져 주지도 않으니까 그렇지.”

은연중에 수희는 너희들이 많이 만져줘서 가슴이 큰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교실에 아이들은 전부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역시 누구한테 몸을 줘서 학교 편하게 다니고 있다는 둥의 목소리가 수희의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그만해.”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수희가 민식이한테 따먹히는 거 봤어?”

소녀의 짓궂은 말에 아이들은 무서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쿡쿡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희의 걸음을 막았던 민식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희야 내가 주는 거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지? 그거 약국에서 비싸게 파는 거야.”

“…크크ㅤㅋㅡㅋ!”

남자 아이들이 계속 해서 웃음을 흘렸고, 여자 아이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얼굴만 예쁘고 몸매만 좋으면 뭐 해 여기는 벌써 너덜너덜인데.”

“…개소리…하지마!!”

소녀의 비웃음에 수희가 발끈 했지만 그녀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곧 민식이 수희의 팔목을 붙잡았고, 교실 밖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늘 민식과 함께 다니는 무리 역시 교실에서 짐을 싸고 있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걸레라니까?”

“아까 7교시 때 민정이가 말 해 준건데 쟤 임신도 두 번이나 하고 지 오빠랑도 붙어 먹었데!”

“어머? 오빠랑?”

“그래, 그 병신 같이 웃고 다니는 새끼 있잖아. 동네방네 뛰어 다니는 놈.”

창현은 여기저기서 많은 일을 했다. 그리고 이 곳은 그리 크지 않은 동네였고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어른들에게야 성실하고 착한 청년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은 어린 그들에게 창현은 그저 바보 같이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늘 웃고만 다니는 멍청이.

“야!!”

“닥치고 따라와 김수희 짜증나게 하지 말고.”

“….”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수희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걸레라고 소문이 나던 말던 상관이 없었다. 이 미친 학교는 정이 떨어진지 오래였으니까.

하지만 창현과 그런 소문이 나는 것은…아니, 창현이 그렇게 무시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반항을 하고 바로 잡기에는 수희의 손목을 잡고 있는 민식의 팔에 힘이 잔뜩 들어 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여기저기서 인사를 해 오는 학생들을 보면서 민식이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수희를 잡고 있던 손은 그녀의 손으로 향했고, 다정하게 손을 엉켰다.

“…제대로 안 잡아?”

후배들 앞이라 그런지 민식은 그리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수희가 다시 입술을 깨물며 살짝 손을 오므렸다.

‘아직 오빠랑도 제대로 안 잡아 본 손인데…’

떠오르는 창현의 얼굴에 수희가 눈물을 다시금 억눌렀다. 늘 반복되는 생활.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소문과는 다르게 민식이 자신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밤일을 하고 있는 창현이 무엇인가 인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창현은 그저 일만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킬 날도 멀지 않았다.

“너네 오빠 아직도 그 룸에서 일 하지?”

“…그래.”

“너도 거기서 몸 팔아?”

까르르, 소녀 웃는 소녀의 물음에 수희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너희 오빠도 제법 얼굴은 반반하게 생기지 않았나?”

“병신 같이 맨날 웃고 다니는 데 뭘.”

다른 남학생의 말에 소녀, 아니 민정이 교문을 나서며 과장스럽게 양 손을 폈다.

“야 너 그러다 그 오빠 아는 형님들한테 발리면 어떡 해?”

“…그 병신이 아는 놈들이 있을까? 거기가 그 거리 실세가 관리를 한다고는 하지만….”

19살.

주변에서 좀 친다고 소문이 난 민식에게는 가끔 창현이 일을 하고 있는 거리의 조폭들이 살갑게 인사를 하고는 했다. 일종의 보여주기 식이었다.

어차피 답도 없는 인생 우리 밑으로 들어오라고. 그렇게 단물을 보여주고 막상 정말로 몸을 담게 되면 그 때부터는 혹독한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런 것까지 아직 19살에 불과한 민식과 그의 친구들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민식의 패거리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민정은 조금은 다른 의미로 그 사람들과 어울리려 했지만 그들은 조금 더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민정 같은 여학생들은 널리고 널렸지만 요즘에는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기간이었다.

“너희 오빠 아다는 아니겠지? 나 오늘 너네 집에서 자도 되지 수희야?”

“우웩 토 나올 것 같아. 그 병신한테 대주게?”

“닥쳐 토끼 새끼야. 혹시 알아? 진짜로 그 쪽에 인맥 많을 수도 있잖아.”

“…우리 오빠 그냥 일만 해.”

수희의 반박에 아이들이 낄낄 댔다.

“나도 오늘 너네 집에서 자도 되지?”

민식은 어렴 풋이 알고 있었다. 수희의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것은 그동안 수희에게 쳐져 있던 방어막이 전혀 소용 없다는 것을 뜻했다.

“….”

차가운 민식의 미소에 수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