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창현은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 본 적도 없었다.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따뜻했던 아버지를 사랑했고, 아버지가 해주는 말들을 실천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겼던, 처음으로 생긴 어머니의 첫 번째 당부를 꼭 지키고 싶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머리도 좋은 수희였고, 부모님의 결혼 발표 이후 급속도로 차가워졌지만 그 전에는 늘 오빠, 오빠 하며 따랐던 아이였다.
그런 수희를 위해서 희생을 한다고 생각 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의 당부를 지키고, 이제는 유일한 가족인 그녀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다.
“…사…사,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우습게도 자신의 몸에 노도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흙들을 느끼며 창현이 한 생각은 수희가 걱정이라도 할까, 도리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걱정 할 텐데, 물론 차가워진 이후로 말조차 제대로 건네지 않는 그녀였지만, 분명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이대로 이렇게 죽어 버린다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수희를 누가 지켜준다는 말인가? 창현은 애원했다. 목소리를 듣고 경수라는 것을 대번에 느꼈고, 그가 자신을 왜 죽이려고 하는 것까지도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하긴 짐작을 못하는 것이 바보였지만.
“살…려주세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닐게요.”
제법 또렷한 목소리에 경수가 호오,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그렇지만 이내 낄낄 거리며 웃었다. 점점 흙이 덮이면 덮일수록 마치 늪에 빠진 사람 같이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너무나 즐겁다. 소문대로 경수는 완전히 정신 이상자나 다름없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낄낄 거리는 웃음을 지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일종의 쾌감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야, 일단 담배 하나 피우고 해. 나도 도와 줄 테니까.”
“네, 형님.”
경수의 말에 덩치들이 삽을 앞에다 꽂아 놓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진득한 연기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는 창현의 몸부림은 무척이나 힘이 없어 보였다. 무릎까지 찬 흙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연신 넘어지고, 다시 힘겹게 일어나고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거의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맞았으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지현을 업고 가게로 갈 정도로 체력은 좋았지만, 원체 허약한 탓도 있었다. 뼈마디도 여자처럼 무척이나 얇아서 그토록 심한 폭력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타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창현은 애원을 멈추지 않았다.
“제발 살려주세요.”
부어터진 입술에서도 또렷한 발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창현이 삶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죽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지만 창현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욕구보다 자신이 없어지면 혼자 남을 수희에 대한 걱정에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답답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에 안위의 대한 걱정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우습게도 신혼여행을 마치고 혼인신고를 할 예정이었던 부모님 때문에 법적으로조차 여동생이 아닌 수희 때문에 삶의 대한 욕구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애처롭기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후우! 창현아 담배 하나 피울래?”
타악-!
경수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물고 있던 담배를 창현에게 물려 주었다. 곧 창현이 컥컥, 소리와 함께 담배를 뱉어내고 있었다. 창현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워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온 몸이 상처투성인 상황에서 피를 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더욱 매캐한 담배 연기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한 번 경수가 낄낄, 웃음을 흘렸다. 여기저기 부어서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창현을 보면서 이내 혀를 찼다.
“그래도 내가 알기로는 너 제법 잘생겼다고 알고 있었는데.”
“형님, 애기들 말 들어보면 그 자식이 눈망울이 커서 순진해 보인다고 하더군요.”
쭉 찢어진 경수의 눈과는 다르게 창현의 눈망울은 확실히 컸다. 큰 것만이 아니라 부어터지고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와중에도 삶의 대한 욕구가 드러나서일까? 괜스레 평소보다 더욱 순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퉤-!
“…형님 제발 살려주세요.”
눈에서 이물질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어차피 피 인지, 경수가 뱉은 침인지 창현은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릿하게 웃고 있던 경수가 다시 담배를 새로 꺼내 물었다. 후우, 하고 창현의 얼굴에 연기를 뿜은 이후에 자신의 찢어진 눈보다 훨씬 큰 눈동자를 향해 비볐다.
치익-!
“크어어억!”
다른 곳이 아무리 아파도 담뱃불을 눈에 지지는 것은 역시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낄낄 거리며 만족스러운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경수가 덩치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곧 덩치 두 명이 경수의 손을 잡고 구덩이에서 올라오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저 새끼는 참 병신 같아.”
“착한 것을 넘어서 멍청하다고 하더군요.”
“하긴 뭐…그러면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등신이라 신고도 못했군.”
“겁먹었겠죠.”
경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작은 눈이 더욱 찢어졌다.
퍼억-!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덩치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방금 창현의 눈에 담배를 지져 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경수는 원래 지독한 골초였으니 습관적으로 담배를 문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새로 담배를 꺼내 물자 뒤통수를 맞은 덩치가 재빨리 불을 붙여 주었고, 경수가 연기와 함께 목소리를 쏟아냈다.
“묻어. 이제.”
다른 덩치들도 고개를 숙였고, 다시 삽을 들었다. 이제는 허우적거릴 힘조차 없어 보이는 창현은 손만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있었다.
‘수희야….’
이대로 죽으면 혼자 남을 그녀가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부모님의 마지막 당부를 끝내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창현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딱 1년만, 수희가 20살이 되는 내년까지만 그녀를 지켜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20살이 되면 수희를 대학에 보내고 자신은 집을 나갈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불편해 하는 것이 사실이니 성인이 되면 좀 더 일을 많이 해서 다른 집을 구해 볼 작정이었다. 물론 졸업을 할 때까지는 수희의 등록금도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마련하려고 했다.
머리가 원체 좋은 아이이니 지금은 방황을 하지만 대학을 가서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한다면 장학금을 받는 것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지금이 그 때였으면 어쩌면 이렇게 삶의 대한 욕구가 강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푸욱-! 푸욱-!
연신 삽질을 하면서 땀을 흘리는 덩치들은 흙이 창현의 몸을 반 쯤 가리자 다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빨리 해. 이제 재미없으니까.”
서두르라는 경수의 말에 덩치들의 손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창현의 몸이 흙으로 덮이는 시간도 빨라지고 있었다.
“아, 안 돼! 아, 안 돼!”
정말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온 몸을 덮치자 창현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가슴팍까지 쌓인 흙의 무게는 두들겨 맞은 몸으로 이겨낼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구덩이 가장자리의 흙을 움켜쥐며 창현은 계속 살려달라는 말을 외치고 있었다.
“아우 지겨워.”
처음에는 발악하는 것도 꽤 재미가 있었지만 경수는 이젠 무척이나 지겨운 것 같았다.
“마무리하고 내려 와라. 차에 가 있는다.”
“네 형님.”
“갈치 네가 확실히 마무리 해.”
“네.”
뒤통수를 맞았던 덩치가 다시 허리를 숙였다. 아마 덩치들 중 그가 가장 윗사람인 것 같았다. 생매장, 암매장은 언제나 묻는 것보다 그 뒤처리가 깔끔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야 오랫동안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시신이 흙 속에서 썩어 문드러질 수 있으니까.
썩어 문드러진 이후에 찾아 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신원 확인은 신원 확인대로 어려웠고, 살해 동기나, 범인을 찾는 것은 더욱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애초에 경수는 창현이 이곳에 묻히고 발견 될 가능성과 설혹 발견이 된다 하더라도 자신과 연관이 지어질 가능성을 0%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간만에 손맛보고 생매장이라니 낄낄.”
담배를 툭, 하고 던져 버리며 산길을 내려가는 경수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확실히 또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취급하고 있는 경수였다.
경수가 그러거나 말거나 덩치들은 흙을 빠르게 덮고 있었다.
“컥컥!”
이제는 목까지 덮였기에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창현은 더 이상 눈도 잘 떠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부어 있는 눈으로 어렵사리 앞이 보이기는 했지만 이제는 숨이 막히면서 눈꺼풀조차 들어 올린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피처럼 붉은 것이 번쩍이고 있었다.
“….”
“야 빨리 하자 더워 죽겠다.”
“네, 형님.”
경수가 가자 갈치가 왕이었고, 그늘진 나무에 기대어 명령을 내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완전히 졸개들이나 다름없는 부하들은 불평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이 지겨운 노동을 빨리 끝내려 삽질만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창현의 목숨은 그저 귀찮은 삽질에 불과 했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삶의 대한 욕구가 이상하리만치 강해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본능적으로 움켜쥐고 있는 손 사이에서 흙이 아니라 다른 것이 만져지고 있었다. 그 것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창현은 그 것을 확실히 보고 있지만 덩치들이나 갈치는 전혀 그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보았다면 신기해했을 것이 당연한 만큼 피처럼 붉은 빛이 창현의 움켜진 손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음바라….’
기괴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덩치들이 아니라 창현에게만 들리고 있었다.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지 창현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더욱더 꽉 힘을 주고 있었다.
눈꺼풀조차 들어 올릴 힘이 없던 창현이었지만 오히려 손에는 힘이 들어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살고 싶어!’
다시 한 번 강한 목소리가 창현의 귓가를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창현에 의식은 알 수 없는 늪으로 끊임없이 빠지고 있었다.
“형님 다 묻었습니다.”
“그래? 그럼 정리 하자.”
갈치 역시 구덩이가 전부 메워진 것을 보고 한 몫 건들 생각이었는지 삽을 들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커억!”
“!!!”
“!!!”
“!!!”
네 명의 남자가 동시에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구덩이에서 창현의 손이 번쩍 나오고 있었다.
“크크크크!”
손만이 아니었다. 마치 승천을 하는 이무기처럼…뭐 물은 아니었지만, 흙 속에서 창현이 일직선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기괴한 웃음소리가 다시 한 번 퍼졌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네 명의 덩치는 저절로 몸이 떨려옴을 느끼고 있었다. 창현의 몸에 핏빛처럼 붉은 테가 그의 몸을 감싸는 듯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서 쏟아 나오고 있는 혈광…그래, 붉은 빛이라 표현 할 수밖에 없는 그 날카로움에 온 몸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창현의 입이 열렸다.
“배은망덕한 늙은이들. 마지막 주술이 있을 줄은 몰랐겠지? 혈마 강세찬을 너무 우습게 봤어. 겨우 수만의 교도로 날 죽이려 했다니!”
“….”
“….”
“….”
“….”
창현이 서서히 땅으로 내려…아니 떨어졌다.
퍼억-!
“큭! 이런 빌어먹을 걸려도 더럽게 허약한 육체가 걸렸군. 근데….”
창현은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것과는 다르게…그리고 핏빛처럼 붉은 것을 제외하고는 무척이나 멍청해 보이는 눈빛으로 네 명의 덩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