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
남자는 말이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연신 피를 쏟아내고 있는 또 다른 남자는 결국 털썩, 하고 쓰러졌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창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창현?”
“…아아.”
창현이 결국 한 자락의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경수의 얼굴이 이제야 일그러졌다. 별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새벽의 일을 창현이 우연히 보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경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이미 정신을 잃은 칼을 맞은 남자에게 마무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푸욱-!
섬뜩한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창현의 귓가를 때렸다. 기절 했음에도 칼을 맞은 남자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경수가 남자의 복부에서 꽂힌 칼을 잡고 있는 손목을 비틀었다.
창현이야 잘 몰랐지만 확인 사실이었다. 찌른다고 해서 다 죽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크윽, 하는 신음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엄청난 고통에 기절을 했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천천히 칼을 뺀 경수가 셔츠를 벗고는 15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칼날을 둘둘 감고 있었다.
“강창현.”
다시 한 번 창현을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아, 네!”
창현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새벽의 차가운 땅바닥도 순간 멍해져 버린 창현의 정신을 되돌아오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창현은 그저 보통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밤일을 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기는 했지만 눈앞에서 살인을 목격 하는 것은 당연히 처음이었다. 축 늘어져 있는 남자의 몸에서 흘러 나온 피들이 바닥을 적시는 것을 보는 창현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터벅터벅-!
“강창현.”
경수가 창현의 앞까지 다가왔다. 피가 묻은 손을 칼날에 감아 놓은 와이셔츠에 대충 닦은 뒤, 창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경수는 이내 씨익 미소를 흘렸다. 사람을 죽이고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의미했다.
“비밀?”
“…아, 네! 네!”
와이셔츠가 감긴 칼을 장난스럽게 창현의 볼에 툭툭 두드렸다. 그 것이 창현의 공포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경수는 흔히 말하는 깡패 중 한 명이었고, 제법 잘 나가는 깡패였다.
일을 하면서 그가 가게를 찾아 올 때도 있었다. 그 때는 오히려 다른 진상 손님들보다 훨씬 얌전하게 놀았지만 그렇다고 공포심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경수가 핸드폰을 들었다.
“가봐.”
“네, 네!”
여전히 정신이 없는 창현은 경수의 말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창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경수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창현은 그저 자신이 본 것이 꿈이라 치부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응, 나야. 와서 정리 좀 해라. 그리고…재수 없게 본 새끼가 한 명 있네?”
경수의 미소가 더욱 차가워지고 있었다.
으슥한 골목길…인적이 드문 곳에서 도망치고 있는 놈을 붙잡은 것은 행운이었다. 가뜩이나 골치를 썩히던 놈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아주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어디 가서 무슨 말을 나불거리면 아주 골치가 아픈 녀석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녀석을 처리하자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 창현은 놈과는 다르게 일반이었고, 그가 변사체로 발견이라도 되어 버리면 녀석과는 다르게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대충 끊은 경수가 중얼 거렸다.
“시체만 안 발견되면 그만이니까 쿡쿡!”
****
창현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오늘 일찍 가서 수희의 아침밥을 평소보다 좀 더 거하게 차려 줄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어떠한 경우에도 수희가 우선이었던 창현이었다.
그만큼 경수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본 것은 창현에게 무척이나 큰 충격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당연히 그랬다. 창현은 보통 사람이었고, 살인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함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의 상태는 평온 할 수 없는 것이 당연 했으니까.
“신고를…해야 하나?”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창현은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아까는 너무 당황해서 신고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경수는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 것을 목격했다.
죽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족들은 또 얼마나 억울할까. 자신보다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순진하게 보이는 큰 눈망울이 어지럽게 굴러가고 있었다.
“신고…신고!”
결국은 신고하기로 결정했다. 핸드폰을 들어 112를 누르는 손이 멈췄다. ‘비밀?’, 웃으며 말을 했던 경수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다시 한 번 그 광경을 목격 했을 때처럼 몸이 부르르 떨렸다. 웃으며 말을 했건만 너무나도 차가워서 섬뜩했었다.
그리고 그가 말 하는 비밀이라는 것은 당연히 신고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었다. 온갖 불법을 다 저지르는 것이 밤일이었고, 그 속에서 돈을 벌어가는 것이 창현이었다. 괜스레 경수와 잘 못 얽혀 버리면 당장 밥줄이 끊길 수도 있었다. 많은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경수가 관리하고 있는 가게 중 하나인 룸살롱에서 일 하는 것이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것을 다 합치는 것보다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어떡해야…하지.”
그 곳에서 짤리고 다른 가게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경수는 조폭이었고, 당연히 관리 하는 가게가 그 곳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와 틀어져 버린다면 분명 그냥 끝이 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설사 자신이 목격자로 경수의 살인이 드러나고 잡혀 간다 하더라도 경수의 수 많은 동생들은 어떡할 것인가? 그들도 당연히 조폭이었고, 그들에게서 처절한 보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창현은 결국 핸드폰을 든 손을 늘어 뜨리고 있었다.
“수희 대학도 보내야지. 그냥…그냥 조용히 있자.”
죽은 사람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애써 그 역시 경수와 같이 나쁜 일을 하는 조폭일 것이라 위안했지만 창현은 스스로가 그를 외면했다는 사실에 꼭 경수와 공범인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 늦었다!”
이제야 수희가 일어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창현이 뛰기 시작했다. 살인을 목격한 것도 목격한 것이고, 죽은 사람이 불쌍한 것도, 그 사람에게 미안한 것도 미안한 것이지만 수희의 아침은 더욱 중요했다.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창현이었지만 수희는 단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부탁을 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터벅-!터벅-!터벅-!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는 창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리릭-!
현관 비밀 번호가 풀리고, 창현이 열쇠를 꽂아 넣고 있었다. 밤에 늘 혼자 있어야 하는 수희가 걱정이 되어 일부러 이중 잠금 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창현은 그런 사실조차 수희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덜컥-!
문이 열리자 불이 켜진 거실이 보였다. 네 식구가 살기에 적당한 아파트였다. 아주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소형 아파트 두 채를 팔아 마련한 아파트였기에 두 명이 살기에는 오히려 넓다고 할 수 있었다.
갑자기 밀려들어오는 부모님 생각에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던 창현이 서둘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욕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수희가 씻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빨리 준비하고 이따 저녁에 맛있는 거 해줘야겠다.”
수희의 아침을 차려주고 나면 신문 알바와 우유 알바도 남았기에 창현은 서둘러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거의 다 차릴 때 쯤 씻은 후 인사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던 수희가 나오며 매몰차게 말했다.
“…안 먹어. 몇 번을 말 해? 아침 안 먹는다고.”
“그래도 학교 가서 공부 하려면 든든히 먹고 가야지.”
창현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흐르고 있었다. 늘 이렇게 아침을 차려주지만 단 한 번도 수희는 먹은 적이 없었다. 한창 예민할 나이에 나무라기보다는 애원을 하는 편이었다. 애초에 창현의 성격이 누구를 나무랄 수 있는 성격도 아니기도 했다.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 창현을 보면서 수희는 잔뜩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냉랭하게 몸을 돌리고는 현관으로 향했다.
“저녁에 오빠가 맛있는 거 해 줄게!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누가 오빤데!!!”
“…그게….”
“넌 내 오빠 아냐. 알았어? 한 번만 더 오빠라 해 봐.”
쾅-!
말과 함께 현관문이 거칠게 닫혔다. 창현의 입에서 거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우우우!”
잠시 현관문을 바라보던 창현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차려 놓은 식탁을 서둘러 정리했다. 오늘 가게가 일찍 끝나기는 했지만 아직 배달 일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작 창현은 자신이 차린 밥 상을 한 술도 뜨지 못하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자!”
가게에서 일을 할 때에는 싸구려 구두를 신었지만 배달 일을 할 때에는 당연히 운동화를 신었다. 수희에게는 늘 좋은 것을 사주는 창현이었지만, 자기 스스로에게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배달이 끝나고 집에 오는 거리가 동네이기는 했지만 꽤 되어도 마을버스조차 타고 다니지 않을 정도였다.
잠시 집에 들어왔다 나가는 것인데, 해는 어느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한층 밝아진 밖을 보면서 창현은 걸음을 서둘렀다. 신문을 받는 곳은 바로 집 근처였기에 다행히 늦지 않을 수 있었다.
새벽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창현은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퍼억-!
“아앗!”
누군가와 부딪힌 창현 역시 아, 라는 얕은 비명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땅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얼굴은 익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