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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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진지한 녹색 눈과 마주쳤다. 깜짝이야. 해리 포터가 닌자라는 소리는 들은 적 없는데.
"드레이코, 너 괜찮아?"
"…? 뭐가?"
"어? 음, 아니야."
해리는 꽤 당황한 듯 눈을 도르륵 굴리다가 어쩔 줄을 모르며 입술을 달싹였다. 도대체 왜 저러는거지.
"아, 설마-"
"……."
"-다음 시간이 마법약 시간이라서 그래? 이번에는 갈 거니까 걱정하지마."
해리가 경직된 얼굴을 풀고는 조금 한숨을 내쉰다. 누가봐도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아닌가. 나는 해리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다가 물어볼 질문이 있었다는 걸 상기해냈다. 나는 해리를 데리고 마법약 교실로 향하며 줄곧 생각하고 있었던 질문을 쏟아부었다.
"그것보다 볼드모트가 어떻게 부활했는지 알려줄 수 있어? 네가 꿈 꿨다고 했잖아."
"어? 응. 안 그래도 어제 덤블도어 교수님께 말씀드렸어. 근데 내가 들은 건…"
"……?"
"그게… 꿈을 꿀 때는 엄청 정확한 기분이었는데, 막상 일어나보니까 기억이 안나서.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리는 기분?"
"기억나는 것만 말해줘도 돼."
해리의 눈동자가 의문서린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듯 천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한참 동안 해리는 말이 없었다. 해리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창백해졌다가 경직되었다가 눈을 도르륵 굴렸다가를 반복했다. 얼굴이 이렇게까지 다양해질 수 있는건가. 나는 조금 신기한 기분으로 해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볼드모트는- 음, 미안. 그자는 꽤 많은 부하들과 함께 있었어. 세세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스네이프가 갔다 왔다고 했으니까 그건 스네이프가 더 잘 알겠지."
"스네이프 교수님이야."
"알았어. 아무튼, 그자는 부하들에게 말했어."
"말한 내용을 기억해?"
해리가 더 생각하는 듯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조금 내쉬었다. 기억 안 난다는건가. 내가 고개를 조금 끄덕이자, 해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부하들에게… 음… 기억은 안나지만, 뭐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들은 흩어졌지."
"그자의 생김새는?"
"거기까지는 잘…"
생각나는 게 뭐냐. 튀어나오려는 발언을 삼키고 다른 질문을 말했다. 해리는 꽤 성실하게 답해주었고 말이다. 누가 보면 선생님과 학생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나는 빠르게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꽤 중요한 건데, 널 도와준 이들이 있어? 네가 우승하려고 도와준 이들. 아가미 풀은 도비가 준 거야?"
"음… 아가미 풀은 네빌의 책에 있었어. 도와주려는 이는 많지. 시리우스, 무디 교수님, 리무스 등등등. 아, 도비는 요즘 안 보이던데? 되게 혼란스러운 것 같더라."
"왜?"
해리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설마 그것도 모르냐는 듯 말이다. 나는 최근의 기억들을 상기하다가, 곧 다른 이들이 되도않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도 어떻게든 풀어야 하는데. 나는 한숨을 버릇처럼 내쉬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도비 좀 잘 챙겨줘."
"따지고 보면 네가 챙겨줘야 하거든?"
"난 이제 걔 주인 아니야."
"그말을 걔가 들었어야 하는건데…"
해리와 말싸움 아닌 말싸움을 벌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해리는 말을 하면서도 함정계단을 쏙쏙 빼며 걷고 있었다. 과연 제임스 포터의 아들인가. 둘 다 병행하기는 꽤 힘든데.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던졌다.
"말포이 가에서 해방되니까 좋은 거 아냐? 네가 해방시켜 준 거잖아."
"어… 음…"
해리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으며 여기저기를 배회한다. 아, 나도 '드레이코 말포이'였나.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왠지 당황한 해리를 다독였다.
"별로 화 내는 건 아니야. 그냥 사실을 말한거지. 말포이 가에서 도비는, 그렇게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거든."
"왜?"
"2학년 때까지 가혹하게 굴어야 했어. 도비가 그 저택을 되도록 빨리 벗어날 수 있게."
"2학년이 되면,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았어?"
"그냥 추측이지."
"그럼, 넌…"
"……?"
해리가 입술을 우물우물 거린다. 내가 말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리자 나를 살짝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미움받는 게 힘들지도 않아?"
"……."
…이건 또 예상 외의 질문이다. 나는 해리 포터를 묘하게 쳐다보았다. 볼드모트의 일곱 번째 호크룩스. 내 '생각'만 통한다면 해리는 죽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실패하는 즉시 해리는 죽는다. 해리의 초록색 눈동자가 답을 구하듯 나를 마주보았다.
"넌, 안 힘들어?"
"응?"
"아무 것도 안했는데 사람들이 영웅인 마냥 떠받들어 주잖아. 아무것도 안했는데 모르는 이들은 널 알고 있고, 아무것도 안했는데 누군가는 호의를 가지고 누군가는 적의를 표하지. 아무것도 안했는데 너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말이야."
"음…"
별로 생각 안 해본거냐. 이제야 생각하는 듯 고민하는 해리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해리는 다시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초록색 눈동자를 둥글게 휘며 나를 마주 보았다.
"조금 힘들기는 해.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 적 있었고,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떠들 때 짜증날 때도 있었어. 그래도,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판단하든 난 나니까. 그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어."
"…풉."
"아, 네가 말하라고 해서 말한 거잖아! 웃지 마!"
해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아니, 비웃으려는 건 아니었다. 진지하게 '난 나니까.' 같은 소리를 할 줄 몰랐던 것 뿐이지. 해리가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울상을 짓다가 다시 나를 마주보았다.
"그래서, 너는? 안 힘들어?"
"…미안하긴 하지."
"…? 누구한테?"
"드레이코 말포이한테."
"……?"
"마법약 교실 도착했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해리를 내버려두고 교실의 문을 열었다. 해리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다급하게 소리질렀다.
"잠깐만! 내 생각에는 지금 안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
"……."
열 쌍도 넘는 눈동자들이 제각기 다른 빛을 담고 나에게 쏠린다. 뭐지. 해리에게 눈을 돌리자 해리는 슬쩍 내 시선을 피했다. 도대체 뭐냐고.
마법약 교실의 구석에서 다프네와 시어도르, 팬시를 발견했다. 다프네가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드레이코, 뭐해? 얼른 앉아."
"너 늦었다."
"아, 시간 정했어. 5월 31일, 오후 1시에 변신술 교실에서 만나자."
해리가 그말을 끝으로 눈인사를 하며 멀어진다. 해리 쪽을 바라보니, 딘 토마스와 시무스 피니칸 등등이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프네와 시어도르, 팬시에게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시선이 쏠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 스네이프 교수님 오셨는데?"
다프네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네이프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뛰어왔다. 어떻게 안거지. 내가 이상하다는 듯 다프네를 바라보자, 다프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발소리가 어지간히도 급했어야지."
"…수업을 시작하겠다."
스네이프가 내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한다. 그는 숨을 고르게 내쉬려고 노력하며 나한테서 시선을 돌렸다. 아니, 교수나 학생이나. 왜 자꾸 이쪽을 보냐고.
"…너희도 알다시피 1년만 뒤면 O.W.L시험이다. 수업을 조금 더 잘 진행하기 위해서, 몇 년일지 모르지만, 함께 할 짝을 지정하도록 하겠다. 이 짝은 다른 수업시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
원작에서는 이런 거 없지 않았나. 아무리 상기해보려고 해도 원작에서는 없다는 사실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주변에 있던 애들이 수근거리는 걸 무시하며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가 크라우치 2세인가? 주목받는 걸 무릅쓰고 손을 들자, 스네이프가 내 쪽에 시선을 주었다.
"뭐지, 말포이?"
"우리 학년만 이걸 하나요? 누가 낸 생각이죠?"
"…그래, O.W.L.를 볼 4학년만 이걸 하지. 덤블도어 교수님의 생각이다."
"드레이코, 나랑 할거지?"
"난 시디랑 할게."
"저 녀석이 잘하니까 그런거잖아."
셋의 소근거림을 대충 흘려들으며 머리를 다시 굴렸다. 덤블도어가 이걸 제안했다고? 덤블도어가 크라우치 2세일리는 없을텐데? 무슨 이유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고저없는 목소리로 짝을 정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짝은 이미 정해져 있다. 너희들의 성적을 친히 검토해서 낸 짝이지. 나는 너희들이 멍청이처럼 싸우다가 마법약 성적을 망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와우, 정말 환상적이군."
다프네가 나쁜 말을 금지할 수록, 시어도르의 비꼬기 실력은 점점 더 늘고 있었다. 어째서지. 나는 시어도르를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뭔가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서 안 돌아가는 느낌이다.
"지금 부를테니 짝을 찾아서 앉거라.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을 섞었다."
"오, 멀린, 진짜 그리핀도르랑 앉으라는 거야?"
"그 뇌가 없는 애들이랑?"
"시어도르."
"…지능이 떨어지는 애들, 아, 알았어. 조금 모자란 애들, 됐냐?"
셋 다 동의어 아니냐. 다프네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어째서 끄덕이는 거냐고. 팬시가 뚱한 표정으로 투덜대었지만, 스네이프는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시어도르 노트."
"……."
시어도르가 뭐 씹은 표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본능적인 거부감 같았다. 하긴, 순혈주의를 그렇게 못이 박히도록 배웠는데 거부감이 없는 게 이상했다. 팬시가 꼴 좋다는 듯 비웃었다.
"로널드 위즐리, 팬시 파킨슨."
팬시의 얼굴이 급속도로 딱딱해진다. 아마 마법약 시간에 마법약을 돌로 만드는 걸 목격해서 일거다. 미안하지만, 나도 로널드가 O.W.L.를 통과한 게 믿겨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네빌 롱바텀, 다프네 그린그래스."
다프네는 어딜 배정 받아도 상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롱바텀을 향해 싱긋 미소짓더니(시어도르가 인상을 찡그렸고, 롱바텀의 표정이 급속도로 밝아졌다) 사뿐사뿐 그쪽으로 걸어갔다.
스네이프는 말을 멈추었다가, 꽤 마음에 안드는 기색으로 입을 다시 열었다.
"해리 포터, 드레이코 말포이."
뭔가 나 때문에 '짝'같은 걸 정한 것 같은데. 자아도취가 아니라, 덤블도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대체 무슨 속셈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