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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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키는 난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못이 박힌 듯 제자리에서 고정해 있으면서 바르테미우스 크라우치만을 보고 있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건가. 내가 아니었다면 윙키는 지금쯤 호그와트 집요정 사이에서 있을 거였다. 나 때문에 볼드모트의 수발을 들고, 고문을 받으면서, 명령을 지키면서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주, 주인님! 바티 주인님!"
"아직 저주에 걸려있는 상태라서, 그렇게 흔들어도 안 깨어납니다."
"……!"
윙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바라본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듯, 윙키는 눈을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반응이 왜 이런거냐. 나는 혀를 한 번 차고 말을 이었다.
"제가 크라우치 씨를 구해드렸습니다. 크라우치 씨가 제가 대신 크라우치의 역할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셨고요."
"네, 네…"
윙키는 땅에 떨어질 듯 어깨를 숙이며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나는 지팡이를 휘둘러 진정 마법을 윙키에게 걸어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크라우치 씨를 돌봐드릴 수 있겠습니까? 깨어나면 저를 부르고요. 그리고, 크라우치 씨의 아들이 누군지 알려드릴 수 있습니까? 그자와 있었을 때 일어난 일도… 싫다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윙키는 '그자'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진정 마법을 걸었는데도 저런 반응이다. 나는 입술 안 쪽을 조금 깨물면서 윙키를 바라보았다.
윙키는 눈을 어느 한 곳에 정착해야 할지 모르는 듯, 데굴데굴 굴리다가, 입을 달싹이기만을 반복했다. 나는 그런 윙키를 계속 보고 있었고 말이다. 마침내 윙키는 입을 열어 한 자 한 자를 조심스레 내뱉었다.
"바티 주인님은 윙키가 돌볼 수 있어요. 하지만 윙키는… 말하면 안돼요. 윙키는 벌을, 받아요."
윙키가 새파란 얼굴로 당연한 것처럼 말을 내뱉는다. 사시나무처럼 경련을 일으키는 몸은 내가 보더라도 상태가 나쁜 것 같았다. 나는 찌푸려지려는 눈살을 간신히 피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그자나 바르테미우스 크라우치 2세가 불러도 가지 않을 수 있습니까?"
"…윙키는-"
"전 바르테미우스 크라우치의 대리인입니다. 지금은 당신의 주인이기도 하죠."
"……."
윙키가 드르렁 거리는 크라우치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가 곧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도 가고 싶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나는 윙키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입을 열어서 부엌의 다른 집요정을 불렀다.
"헤이즌."
"네! 부르셨어요, 도련님?"
"윙키가 있는 동안 말동무 좀 해줄 수 있을까? 먹을 것도 가져다 주고."
"집요정을 위해서요?"
헤이즌의 눈에 의문이 들어찼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헤이즌이 울먹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꽤 감정이 북받친 듯한 목소리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집요정은 다른 종족이라서 그런지, 표정을 읽기가 더 어렵다.
"당연하죠! 최고의 요리를 만들게요!"
"고마워."
헤이즌이 절을 하려다가 멈칫하고는 내 눈치를 조금 보았다. 예전에 하지 말라고 했던 게 생각나서 저러나. 헤이즌은 움찔거리다가, 고개를 살짝 까딱거리고 뿅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걸로 걱정은 조금 덜은건가. 나처럼 인간인 다른 종족보다는 같은 종족인 집요정과 있는 게 더 편하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헤이즌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헤이즌은 깊게 생각할 줄 아는 아이니까 말이다. 나는 아직도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을 꼼질거리고 있는 윙키를 보며, 말을 이었다.
"답답하겠지만, 여기에 있는 게 안전할겁니다. 원하지 않는다면 나가도 좋고요."
"위, 윙키는 여기에 있을게요! 그리고 존댓말 쓰지 마세요."
아, 그것 때문에 아까부터 불편한 표정이었나. 다른 부엌의 집요정들도 처음에 존댓말 했을 때 불편해하긴 했다. 결국에는 말을 놓았지만. 나는 꽤 격했던 반응(접시를 떨어뜨린 헤이즌, 입을 떡 벌리던 도른, 내 눈을 계속 바라보던 에든 등등)을 상기하며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
"불편하다면 그렇게 할게.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윙키는 바티 주인님을 돌보는 게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해."
윙키의 눈이 커지면서 눈물이 방울방울 차오른다. 단순한 호의만으로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집요정을 보면 참 기분이 묘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난 이만 가볼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부르고."
"디, 디키 주인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언제부터 내가 주인이 된거지. 나는 윙키의 이상한 사고방식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다가 그냥 포기하고는 필요의 방을 나갔다. 뒤쪽의 훌쩍이는 소리에 괜히 기분이 더 나빠졌다.
'일단 크라우치 2세를 잡아야하나…'
다른 건 다 제치고서라도 학교의 침입자를 잡아야한다. 지금 상태에서 움직이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누가 어디서 감시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 * *
Side, Daphne Greengrass
"…드레이코가 알면 안 돼."
꽤 조용한 슬리데린 기숙사에서, 다프네가 먼저 입을 뗐다. 그녀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는데 누가 보면 유령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시어도르가 다프네에게 진정 물약을 건네며 답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거든? 진정 물약이나 먹어."
"…고마워, 시디."
팬시가 시어도르와 다프네를 묘하게 쳐다보았다. 아마 연애질은 나가서 하라는 뜻이겠지. 계속 모르는 척 했으니까 자신의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을 거다. 이러든 저러든, 자신은 시어도르와 결혼하겠지만 말이다. 시어도르 노트는 다프네 그린그래스의 약혼자 였으니까. 뭐,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다프네는 생긋 미소 지으며 팬시가 원하는대로 주제를 돌렸다.
"드레이코가 예언자 일보를 보나?"
"안 봐. 저번에 봤는데, 예언자 일보는 안 봤어."
"그럼 입단속만 잘하면 될 것 같네."
"래번클로 기숙사는 클로나 아스가 잘 해줄거야."
"클로는 못 미더운데…"
"아스는 믿을만 하잖아?"
"난 솔직히, 아스토리아가 왜 슬리데린이 아닌지 모르겠어. 래번클로 감이 아니라니까?"
다프네는 시어도르의 말을 대충 넘기며 팬시를 바라보았다. 팬시는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후플푸프는?"
"그것보다는 그리핀도르가 문제야."
다른 이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지만, 다프네는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들으라고 하는 말이기도 했다. 드레이코에게 새어나가는 일이 있으면 안된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후플푸프들은 착해서-"
"그것보다는 멍청한거지."
"-시디, 말 좀 예쁘게 해. 아무튼, 그래서 별 걱정이 없지만, 그리핀도르는 아니잖아?"
"슬리데린을 싫어하는 애들도 많고."
"혹시 그리핀도르 지인 있는 사람 있어?"
다프네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색한 정적만이 주위를 채웠다. 다프네는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팬시, 포터네하고 안 친해?"
"얼굴만 아는 사이야."
"시어도르? 아니, 너는 친한 애가 없지. 미안해."
"야!"
다프네는 시어도르의 짜증을 무시하면서 생각을 거듭했다. 하지만 생각을 할 수록 짜증밖에 더 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픈 애를… 그것도 특종이라고 신문을 써? 다프네가 싱글싱글 웃는 것과 동시에 다른 이들은 다프네와 멀찍이 떨어졌다.
"신문사는 신문 안 내리고 뭐한데?"
"안 그래도 루시우스 말포이의 주도 하에, 그 기사 내려가고 정정기사 나오고 있어."
"친애하는 리타께서는?"
"…다프네, 진정 물약 안 먹었어?"
"아."
다프네는 그제서야 손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쥐고 있었던 진정 물약을 발견했다. 다프네는 거의 들이키는 것처럼 진정 물약을 빠르게 마셨다.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나? 다프네는 꽤 차분해진 것 같은 머리를 굴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다른 이들이 다프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기자는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이제 기자인생 끝난 거지."
"아즈카반은 안 갔대?"
"음, 다프네? 일단 내가 그리핀도르 애들한테 말해볼게."
팬시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쾅, 하며 열렸다. 다프네는 슬리데린 기숙사의 문에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도 그럴게, 슬리데린들은 항상 문을 조심조심 닫고 다녔기 때문이다. 문을 박차고 나온 이들은, 빨간색과 황금색의 넥타이를 맨, 꽤 낯설지 않은 이들이었다.
"짜잔!"
"쌍둥이 등장!"
시어도르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팬시는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건지 궁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이들도 타 기숙사생이 여기에 들어온 걸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고고한 척 하면서도 서로 수근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마 드레이코를 통해 안 거겠지. 다프네는 대충 짐작하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왜 온거야?"
"음, 조지?"
"왜 부른건가, 프레드?"
"자네의 귀에는 입단속하라고 했던 게 안 들렸는가?"
"나도 충분히 들렸네만."
"자네는 그걸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오, 그리핀도르를 꽉 잡고 있는 게 우리 쌍둥이들이지!"
요약하자면 도와준다는 말이었다. 때 아닌 그리핀도르 쌍둥이의 등장에 슬리데린들은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어떤 이들은 크리스마스 때의 패드풋 사건을 기준으로 악의서린 말을 수근댔고, 어떤 이들은 호기심을 담고 쌍둥이를 쳐다보았다. 다프네는 당황하는 기색없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제 들었는데?"
"프레드, 언제 들었는가?"
"아마 연회장에서 들었을걸세!"
"그럼 다시 부탁 하나만 할게."
슬리데린이 그리핀도르에게 부탁하는 건 이번이 최초가 아닐까? 다프네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말을 계속했다. 주위의 경악 어린 시선이 느껴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면서.
"소문을, 막아줄 수 있어?"
"우리가 누군가!"
"프레드와 조지잖아."
"오, 아니지. Weasley's Wizard Wheezes(위즐리의 마법 발명품)의 오너야!"
"그러니까-"
시어도르가 쌍둥이의 생각을 파악한 듯, 갈레온 꾸러미를 쌍둥이의 얼굴을 향해 힘껏 던졌다. 물론 조지는 잡았지만. 성격 나빠, 시디. 다프네가 조용하게 시어도르를 꾸짖었다.
"주문 받았습니다!"
"속히 실행하도록 하죠."
쌍둥이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문을 쾅, 닫고 나갔다. 팬시가 그들을 노려보며(패드풋의 일이 기억에 남았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돈만 가지고 절대 안할 것 같은데."
"동족의 배신자 아니야?"
누군가 했더니 블레이즈 자비니인가. 자비니는 조금 못마땅하지만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시어도르나 팬시가 아닌 슬리데린들과 이야기 하는 건 꽤 오랜만이어서, 다프네는 잠시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난 동족의 배신자든, 뭐든 상관 없어. 드레이코에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게."
다프네는 그렇게 말하며 휴게실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나 보다. 곧이어 다른 목소리가 휴게실을 울렸다. 시어도르도 팬시도 아닌 다른 아이의 목소리가.
"후플푸프에 아는 애가 있어."
"……."
"나도 그애한테 말해볼게."
"…나도 도와줄 수 있어!"
"교수님들한테는 내가 건의할게."
"부모님들께 연락해서, 그 기자를 좀 더 집중적으로 몰아붙일게. 내 가문은 정보관련 가문이거든."
다프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슬리데린들을 바라보았다. 은색과 초록색의 넥타이. 분명히 슬리데린이 맞았다. 시어도르도 예상 밖의 일이었는지 조금 놀란 것 같았고, 팬시는 눈을 더 이상 뜰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뜨고 있었다.
다프네는 어느새 계획을 세우는 아기 뱀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바보같은 표정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어쩐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