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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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는 이미 새벽이란 걸 확인한 후였다. 교장실에 갔다 온 후에 바로 잠들었나. 나는 짹짹거리기보단 꽥꽥거리는 부엉이들의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자리에서는 크레이브와 고일이 시끄럽게 드르렁대며 자고 있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볼드모트…"
"악! 그 이름…!"
크레이브가 그렇게 소리치다가 다시 코를 곤다. 참 잠꼬대도 다이나믹하게 하는구나. 나는 크레이브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냥 침대 속에 몸을 묻었다.
'볼드모트는 내 피를 가져갔다고 했고, 뼈는-'
"아씨오, 뼈."
주머니에서 뼈들이 자르륵 흩어져 나온다. 악취와 썩는 냄새로 가득할 게 뻔했지만, 다행히도 뼈는 청소 마법을 거친 후였다. 나는 광택이 날 정도로 깨끗한 뼈를 바라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없어지면 모를까, 버젓이 있는데도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설마 또 페티그루인가? 페티그루 때문에 꼬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혹시 모를 가능성을 대비해 합체 마법을 썼다.
"잉코르포라티오."
뼈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끝맺을 쯤에는, 그건 완전한 해골의 모양을 갖추었다. 약간 호그와트에서 자주 보던 해골 용병 같기도 했다. 나는 덜렁덜렁 움직이는 해골을 지팡이로 고정하고, 없어진 부위를 찾기 위해 대강 흝어보았다.
"발 부분인가?"
해골의 왼쪽 다리는 무릎만이 덜렁거렸다. 왜 이제야 찾았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럼 또 피터 페티그루라는 건가. 아니, 애초에 왼쪽 다리만으로 몸을 재구성할 수 있는 거야?
"콘섹타티오."
추적 마법을 써도 뼈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볼드모트가 조치를 취해 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짜증 나는 마음 반, 불안한 마음 반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휴게실로 향했다. 해골이 자르륵 거리며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에 조금 더 생각이 깊어졌다. 볼드모트는 뼈(왼쪽 발 뼈뿐이지만)를 가졌고, 그걸로 부활까지 했다. 피는 내 피를 쓴 걸지도 모른다. …내 피?
"…보호 마법은?"
릴리의 고대 마법이 깨진다는 소리인가? 그럼 해리는, 호크룩스이니 죽을 지도 모른다. 덤블도어라면 안타까워하면서도 해리를 죽음으로 몰아넣겠지. 그런이니까 말이다. 대를 위해 소를 쉬울 정도로 져 버리는. 누군가가 돌로 내 머리를 한 대 친 느낌이다. 얻어맞은 듯 얼얼한 기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휴게실 의자에 앉아서, 뭔지도 모를 생각을 계속했다.
해리는, 해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해리가 살 방법은 없나? 해리가 죽지 않고 호크룩스를 파괴할 방법은-
"…어디 아픈가?"
"……?"
투명한 은백색으로 된 바론이 나를 본다. 나는 그제서야 여기가 휴게실이라는 걸 자각했다. 난 해골을 주머니 속에 넣고, 뭔가 걱정하는 듯한 바론을 보았다. 무슨 일이지.
바론이 말을 건 적은 거의 처음이어서, 조금은 생소한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거의 얼굴을 볼까 말까 하는 대면대면한 사이인데 말이다. 나는 눈을 조금 굴리다가 입을 열고 적당한 말을 꺼냈다.
"아, 바론, 감사해요. 바론 덕분에 피브스를 쫓아낼 수 있었어요."
"…뭐, 슬리데린 애들은 다 그렇게 말하니까. 별것도 아니지."
바론은 내 옆에 앉는 듯한 자세로 둥둥 떠 있었다. 조금은 어색한 기분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데, 그가 걱정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무슨 일 있나? 안색이 안 좋군."
"괜찮아요."
"힘들 때는 털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맙지만, 정말로 괜찮아요."
바론은 꽤 고민하는 듯한 기색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투명한 은백색 눈이지만, 꽤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론은 한참을 입을 달싹이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가끔 모든 걸 되돌리고 싶을 때가 있어. 너도 그러고 싶겠지만…"
바론은 뭔가 다 아는 것 같은 어조였다. 그는 입술을 꾹 깨물다가 나를 잡고 싶은 듯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내 손을 통과할 뿐이다. 난 조금 서늘한 기운에 몸을 움츠렸다. 원래 유령은 이렇게 차가운 건가?
"넌 지금까지 잘 해왔다. 슬리데린 기숙사의 유령으로써, 너는 누구보다 슬리데린 같았어. 내가 보장하지."
"…제가 슬리데린 같았다고요?"
맨날 슬리데린이 아닌 것 같다는 소리만 들었는데. 꽤 묘한 기분이었다. 뭔가 가슴 한 켠이 간질간질 거렸다. 분명한 건, 불쾌한 감정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나는 바론의 말을 잠시 곱씹었다가, 올라오는 깨달음에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묘한 충격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뭘 해야 할지 알려주는 것처럼.
"…바론, 고마워요."
"……? 뭐를?"
"뭘 해야 할지, 알겠거든요."
해리를 살릴 방법이 있다. 호크룩스를 파괴할 방법이 있었다. 아무도 죽지 않을 방법이.
* * *
Side, Rita Skeeter
리타는 어릴 적부터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조리 있게 쓸 줄 알았으나, 재능은 부족했다.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써도, 다른 아이는 똑같은 내용을 몇 배는 재밌게 썼다. 그녀의 노력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은 기분은, 의외로 비참했다.
"음… 스키터 양에게는 미안하지만, 리사 양이 더 잘 쓴 것 같네. 이걸로 신문 내도 될까?"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맡았던 신문사는 다른 재능 있는 기자를 원했고, 그녀보다 재능 있는 기자는 천지에 널렸다. 리타는 좌절하고 절망했으나, 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마저 잃어버리면, 빈 껍데기가 되어버릴 것 같기 때문에.
리타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인정한다. 그녀 자신도,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글 솜씨에 질려버렸으니까 말이다.
"너 리타랑 친하게 지내지 않았어?"
"리타? 으음… 걔는 좀…"
"왜?"
"그냥 불쌍하니까 놀아주는 거지. 신문기자가 됐는데 신문도 못 쓰고, 그냥 편집만 하잖아. 그런 주제에 자긍심은 있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꿈을 쫓아왔는데 나아진 건 없는 생활. 고개를 들면 보이는 냉혹한 현실.
아니야, 이건 내가 바란 게 아니야. 그녀가 바란 건, 찬란한 생활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기사를 읽고 열광하는 거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세상을 조금 더 잘 바라보는 거였다.
"그냥 주는 대로 쓰면 되는데, 굳이 진실을 말하겠다고 덤비고. 그러니까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지."
"하긴, 나보다 직급이 높았던 게 좀 전 같은데, 지금은 내가 더 높으니까."
그녀가 바란 건, 자신의 신문을 거짓으로 쓰는 게 아니었다. 편집을 하느라 바빠서 눈병이 나고, 다른 잡일까지 떠맡는 게 아니었다.
"솔직히,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입사한 건지도 궁금하다니까?"
리타는 뿌옇게 흐려진 앞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했다. 뿌연 무언가는 방울이 되어 무릎으로 떨어졌다. 날카로운 무언가도 여린 살을 파고들면서 그 자리에 반달 자국이 생긴다.
"나라면 얼굴 들기 쪽팔려서라도 못 다닐 텐데."
안에서 무언가가 조각조각 나서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리타는 소리도 못 내며 숨죽여 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화장실에서 어떻게 그리 목소리가 잘 울리는지. 리타는 그날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솔직히 여기 말고 받아줄 데도 없을걸?"
그녀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리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붉은 손톱자국. 마치 비웃는 듯한 반달 모양이었다. 그녀가 살아온 삶은, 그렇게 부정당했다.
리타는 그때부터 잔인해졌다. 쓴 기사로 인해, 그 사람이 무너져 내려가는, 진실이든 아니든 사람들이 열광할만한, 리타는 그런 기사를 썼다.
그녀가 혐오해 마지않던 일을 그녀 자신의 손으로 써 내려갔다.
"스키터 양, 대단하군! 아주 훌륭해. 자네 덕분에 신문이 이렇게나 잘 팔렸어."
"감사합니다."
더 잘 쓰기 위해서 녹색 깃펜을 만들고, 더 잘 쓰기 위해서 애니마구스를 연마했다. 더 잘 쓰기 위해서 큰 신문사로 옮겼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아니야,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걸 원한다. 더, 더…
리타는 많은 사람들의 악행을 써 내려갔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리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기자가 되고 싶었고, 꿈을 이뤘다. 모두가 부러울 정도로 찬란한 생활을 했고, 사람들은 그녀를 뒤에서 욕할지언정 앞에서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건가! 자네 때문에 지금 신문사가 비상이야! 순수 혈통을, 말포이를 건드리다니."
"하지만, 당신도 좋다고-"
"그건 옛날 일이고!"
사람들은 자극적인 일에 열광한다. 리타가 예전에 쓴 글은, 호그와트에서 들은 디펫 교수의 훈화만큼이나 고리타분했다. 그녀는 그런 시절을 혐오했다.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자 한 시절을.
리타는 계속해서 혼나면서도 다른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알았다. 독자들은 그녀를 옹호해 줄 거였고, 아무리 말포이더라도 독자들의 보호를 뚫기는 쉽지 않을 거다.
말포이가 예언자 일보로 찾아온 건, 그날 저녁이었다.
"감히, 이딴 기사를 쓰다니. 리타 스키터라고 했나?"
"죄송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사실을 원하니까요. 전 언제나 사실만을 추구하고요."
"사실?"
말포이가 재밌다는 듯 비웃었다. 리타는 그걸 생소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맹랑한 꼬마들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그녀의 앞에서 뭐라 하지 않았으니까.
"스키터, 네가 어떤 짓을 했는지 똑똑히 봐라. 감히 말포이를 건드린 죄를, 똑똑히 치르게 해줄 테니까."
"…참 기대되네요."
리타는 일부러 입술을 끌어올렸다. 조금 더 세 보이게, 남들이 그녀를 무시하지 못하게. 남들이 그녀를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게.
"정말 기대되는군요, 말포이 씨. 그런 의미에서 말포이 씨에게 인터뷰를 해도 될까요? 그런 기사를 볼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어떤 생각을 했죠? 어떤-"
"리타 스키터가 쓰레기 같은 기자라는 것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말포이가 비웃는 기색으로 말을 마쳤다. 리타는 조금 불안감이 들었으나, 이내 콧방귀를 흥, 하고 뀌며 제 붉은 손톱을 정리했다. 몇천 명이 넘는 독자들을 루시우스 말포이가 이길 재간이 있을까. 복수하겠다고 찾아온 이들의 말로는 항상 그녀의 승리였다.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넘겼다.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기삿거리 하나를 썼고, 그녀의 커리어에 붙을 하나를 썼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리타 스키터, 추악한 그녀의 현실.」
「그녀는 과연 기자일까? 스키터의 기사가 낳은 피해자들.」
「과연 그녀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리타는 손을 꾹 쥐었다. 여린 살에 손톱이 파고들 만큼 세게. 두려움으로 인해 심장이 터질 듯 아팠고, 숨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기자가 아니라고…?"
멍하니 자신의 몰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분노만큼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손에는 낯설지만 그때처럼, 비웃는 듯한 붉은 반달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인생은, 한 번 더 부정당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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