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회
694
"바퀴벌레 맛 과자."
이 맘 때 쯤의 암호는 이거였던 것 같은데. 나는 단호하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이무기 석상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레몬 샤베트, 산성 캔디, 슈크림, 체리 파이, 딸기 주스…"
뒤에서 카르카로프가 왜 암호가 그 따위냐는 눈빛을 보낸다. 아니, 내가 정한 거 아니라고. 나는 왠지 모를 억울함을 느끼며 다른 단어들을 나열했다.
"가래 맛 사탕, 밀크 초콜릿, 두꺼비 초콜릿, 온갖 맛이 나는 사탕, 체리 껌, 수박 아이스크림, 사과 주스, 콧물 캔디."
"…암호를 모르니, 말포이 군?"
"열렸네요."
카르카로프가 말하는 동시에 이무기 석상이 열리고 계단이 나타났다. 나는 약간 찔리는 양심을 무시하고 카르카로프와 계단에 섰다. 나선형 계단이 올라가면서 꽤 낡아 보이는 문이 보였다. 카르카로프는 암호를 알면서 왜 모르는 척 했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차마 정말 모른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보다 정말 암호가 콧물 캔디인거냐.
똑똑.
"들어오렴."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활짝 열었다. 솔직히 덤블도어의 목소리만 울려퍼졌으니까, 불사조 기사단이 있는 건 알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날 바라보는 몇 십 명의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다는 소리다. 사실 볼드모트가 부활한 걸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모이는 거냐고. 왜 난 항상 타이밍을 못 잡는거지.
분홍색 머리의 활기차 보이는 여자가 눈썹을 조금 찡그리며 풍선껌을 불었다. 님파도라 통스인가. 앨러스터 무디, 헤스티아 존스… 주위를 둘러보니 작중에서 묘사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이들을 둘러볼 때까지 아무도 말을 먼저 내뱉지 않았고,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 속에서 통스가 풍선껌을 터뜨리며 말했다.
"누구…?"
"덤블도어 교수님? 왜 학생이?"
"드레이코, 무슨 일로…?"
"말포이?"
"드레이코?"
나는 시리우스와 리무스의 의문 서린 기색을 무시하고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와중에도 무디의 마법의 눈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방금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게 신기할 정도로 익숙한 이들을 발견했다.
"아버지, 어머니?"
그들도 놀란 기색이 만연했지만 나보다는 아닐 거다. 왜 저기에 있는거지. 솔직히 둘을 설득하는 걸 제일 고민했었는데. 생각치도 못한 데에서 얻어 걸린 느낌이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설마 마법사 결투하러 오셨어요?"
"풉!"
시리우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거린다. 나시사의 얼굴은 당황에서 황당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나는 마땅한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라면, 왜 불사조 기사단하고 전직 죽음을 먹는 자들이 모인 거냐고.
카르카로프의 영문 모를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을 그제야 알아차린 나는, 카르카로프가 의심을 더 보태기 전에 덤블도어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볼드모트의 부활 때문에 모인 겁니까?"
"…오, 그렇지."
덤블도어가 한 발 늦게 대답하며 싱글 웃는다. 과연 덤블도어. 레질리먼시도 안 하면서 어떻게 알아차린거지. 눈치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나는 빠르게 입을 열어 말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루시우스가 당황한 듯 입을 벌리는 게 먼저였다.
"왜 여기에 온거냐? 아직 몸은 괜찮아?"
"건강합니다."
"그보다 왜 카르카로프와…?"
카르카로프도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것 같았다. 그는 말하기는 죽기보다 싫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술을 비틀었다. 그리고는 입을 꾹 다문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싫은거냐. 나는 입을 다시 열어서 카르카로프의 말을 대신했다.
"카르카로프 교수님께서, 덤블도어 교수님의 편에 합류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명령으로 카르카로프를 설득한거고요."
"뭐? 드레이코, 덤블도어가 너에게 그런 명령도 내렸니?"
"…제가 하고 싶다고 자원했습니다."
덤블도어가 의미모를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좀 도와주라고. 들여보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냐. 덤블도어는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다가, 시선이 몰리자 싱긋 웃고는 입을 열었다.
"오, 그랬지. 그랬어. 카르카로프, 자네가 도망칠 것 같아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네."
"아, 카르카로프 교수님은 후방에서만 지원하고 싶다 하셨어요."
"그 정도는 나도 말할 수 있다, 말포이 군."
카르카로프가 퉁명스럽게 덧붙인다. 나시사가 잠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듯 입을 벌리다가, 곧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나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내 귀에 거의 속삭이듯이 말을 이었다.
"덤블도어가 너에게 제안한거니? 너에게?"
"…아니요. 제가 하고 싶다고 한 거예요."
"솔직히 말해도 된단다."
솔직히 말하면 시키지도 않았다. 이대로 가면 덤블도어가 천하의 몹쓸 놈이 되는데. 나는 눈을 조금 굴리다가 다시 말했다.
"정말이에요. 우연히 해리에게서 듣고 볼드모트의 부활을 알았고, 교수님께 제가 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어요."
"왜, 그 일을 네가…!"
나시사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문다. 뭔가 이상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빨리 입을 열어 해명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루시우스가 먼저였다.
"드레이코, 얘기 좀 하자꾸나."
루시우스가 급하게 일어나서는 나를 바라본다. 아니, 저는 이대로 기숙사로 가고 싶은데요. 시리우스가 빈정거리는 기색으로 톡 쏘아붙였다.
"우리는 기사단의 본부를 알아 보고 있었지 않나? 말포이께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
루시우스가 경멸어린 시선으로 시리우스를 한 번 쳐다보다가(시리우스도 루시우스와 마주보며 눈싸움을 했다) 이내 나를 보고 뭔가를 깨달은 듯 했다. 루시우스의 동공이 조금 확장되면서 금방 고민하는 기색으로 변했다.
"…또래 친구가 없어서 외롭니?"
"네?"
"그, 잡-"
"머글 태생 말씀하시는 거죠?"
옆에서 다른 이들의 못마땅한 눈초리가 느껴진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불사조 기사단 앞에서 '잡종'이라고 하려는거냐고. 나는 내심 불안한 눈초리로 루시우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시우스는 잡종이든 머글 태생이든, 호칭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머글 태생 말이다. 아무튼, 그것들과도 친하니?"
"……네."
가만히 듣고 있던 나시사의 얼굴이 처음으로 변했다. 방금 전부터 티나지 않게 인상 찡그리던데(아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닌 듯 싶었다) 지금은 티나게 인상을 찡그린다. 루시우스도 인상을 조금 찡그리다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렇구나. 그래서, 방학 때 많이 외롭니?"
머글 태생과 친하다고 했는대도 꾸지람을 하거나 호통을 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루시우스 말포이가 맞는건가. 나는 조금 생소한 기분으로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조금요?"
"…그래."
루시우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시사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뭐지, 내가 이상한 대답을 한건가. 다른 이들도 눈을 가늘게 뜨며 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부루퉁한 표정을 짓는 카르카로프를 발견했다. …까먹고 있었다.
"저는 덤블도어 교수님께 카르카로프 교수님이 합류한다는 걸 알리러 왔어요. 후방 지원이기는 하지만요."
"…알았다, 말포이 군."
파란색 눈이 반달모양을 그린다. 그래서 난 이만 가도 되는건가. 내가 그 말을 하려는 찰나, 카르카로프가 꼬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그 불사조 기사단인지 뭔지에 들어가는 것이냐?"
"전직 죽음을 먹는 자들이 3명이나 되는군. 누가 보면 불사조 기사단이 죽음을 먹는 자인줄 알겠어."
"나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
루시우스가 비웃는 듯한 기색으로 말을 던진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에서, 덤블도어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그럼, 말포이 군은 이제 가도 되겠구나."
"네? 네."
"카르카로프, 자네는 남게."
"……."
카르카로프는 뚱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루시우스처럼, 그도 교장실 소파에 앉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누가 보면 앉아주라고 부탁한 줄 알겠다. 나시사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얘기 하고 싶니? 기숙사로 돌아갈래?"
"나중에 말하고 싶어요. 기숙사로 돌아가면 안될까요?"
"…그래, 그럼 그러거라."
나는 꾸벅 인사하고 교장실을 나갔다. 카르카로프에 대해서만 했는데. 뭔가 피곤한 느낌이다.
* * *
Side, Lucius Malfoy
"자, 이제 불사조 기사단 회의를 계속 해야겠구나."
덤블도어가 진지하게 말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불사조는 꽥꽥 거리며 창문 너머로 들어왔다. 아마 방금 전에 쫓겨난 게 불만인 것 같았다. 루시우스는 전혀 상관하지 않으며 조금 걱정스레 드레이코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죠. 네, 방금 말했다시피, 불사조 기사단의 본부로 쓸 저택을 구하고 싶어서요. 지원자 있나요?"
교장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솔직히 자신의 집이 본부로 사용된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긴, 집을 새로 지을 만큼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주지는 않겠지. 루시우스는 입에 비웃음을 가득 담았다. 덤블도어가 그런 루시우스를 보며 살짝 웃었다.
"루시우스, 자네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
눈치만 빨라서는. 루시우스가 혀를 쯧하고 차며, 나시사를 살짝 보았다. 그녀는 굉장히 싫어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우스도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족의 배신자, 잡종, 그리고 머글 옹호자까지. 말포이 저택에 이들을 들이는 건, 역사상으로도 처음 있는 일이지 않을까?
하지만 드레이코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도 했다. 그런 아이에게 전쟁을 겪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마음 편하게 놀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솔직히 드레이코가 원했더라면, 그는 외국으로 나갈 생각까지 있었다. 결국은 그대로지만. 루시우스는 눈썹을 꿈틀거리다가 괜히 나시사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난, 내 저택을 기사단의 본부로 사용하고 싶다."
동시에 교장실에서 정적이 맴돌았다. 모두들 충격과 경악에 휩싸인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헤스티아 존스였다. 존스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눈썹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무얼 믿고? 말포이 저택에 들어갔는데 죽음을 먹는 자들이 잠복한 걸 수도-"
"필요하면 깨뜨릴 수 없는 맹세를 하겠다."
루시우스는 귀찮은 듯 손을 내저으며 말을 끊었다. 그는 불필요한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시리우스가 굉장히 못마땅한 기색으로 눈썹을 추켜세웠다. 제 공을 못 세운다고 저러는건가. 루시우스는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비웃음을 날렸다.
"저택에는 초상화들이 있을텐데요?"
"어르신들은 조언의 방에 계신다. 말포이 가주는 필요할 때만 그 방에 들어가 조언을 구하지. 아주 똑똑하셨거나, 위대한 업적을 세우신 분들만이 방 밖에 계실 수 있어."
"잔인하거나 박쥐같은 술수를 쓴 분들만이 아니라?"
"지금 뭐라고 했지?"
루시우스가 데달루스 디글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는 짜증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 같았다. 디글의 잘난 면상에 저주를 날려주고 싶다는 충동도 함께.
"감히, 말포이를 욕한건가?"
"나는 기사단원이 화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네."
뜬끔없는 덤블도어의 말에 모두가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덤블도어는 냉철한 눈으로 사태를 관전하고 있었다. 시선이 몰리자 그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 전에 분열된다면, 죽음을 먹는 자들을 맞설 수 있겠나?"
디글과 루시우스가 서로를 노려보다가 곧 고개를 돌렸다. 루시우스는 삐딱한 자세로 서서 고개를 한 번 까딱거렸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아이들을 저택으로 데려와."
"뭐?"
제일 날카롭게 반응한건 아서 위즐리였다. 위즐리는 눈썹을 추켜세우다가 루시우스를 찢어버릴 듯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덤블도어의 충고를 들은건지,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어째서?"
"드레이코가 외롭다고 했으니까."
루시우스의 말에 어이없다는 기색이 더 늘어났다. 나시사는 더이상 그들과 말을 섞기 싫은지 불사조만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존스가 잔뜩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루시우스 말포이, 이건 소꿉장난이 아니야. 전쟁이야. 불사조 기사단이라고. 그런데 고작, 어린 애가 외롭다는 이유로 이러는건가?"
"그럼 뭔가 더 숭고한 이유가 있을 줄 알았나?"
호그와트의 교장이 되겠다던가? 루시우스가 잔뜩 비꼬는 어조로 말하자, 다른 이들의 적대적인 시선이 더욱 늘어났다. 루시우스도 나시사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니, 루시우스는 도리어 분노가 담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드레이코만 아니었다면, 기사단원이 될 일은 꿈에도 없었을거다. 너희들과 말 섞는 일도 없었을거고, 아마 지금쯤 죽음을 먹는 자일 수도 있겠지. 아니, 드레이코가 호그와트에 계속 다니고 싶다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당장 짐 싸고 떠났을 수도 있을거다. 하지만 드레이코가 편지로 말하더군. 아무리 전쟁이 나도 학교를 그만두는 건 싫다고! 드레이코에게 이 전쟁을 겪게 하는 것도 미안한데,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거지? 고작? 고작이라고? 드레이코는-"
"루시."
"……흥분했군."
루시우스가 차가운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는 여전히 믿지도 믿고싶지도 않았다. 드레이코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도,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것도. 나시사도 그걸 자각했는지 다정한 어조로 속삭였다.
"루시우스, 화풀이 하지 마. 이제는-"
"알아, 씨시. 같은 편 이니까."
루시우스가 이를 조금 갈며 말을 끝맺었다. 다른 단원들은 그 말을 듣고 생소한 기색이었다. 화난 것 같기도 하고, 낯선 것 같기도 한 얼굴.
"그럼-"
루시우스는 자신의 방인 듯 소파에 털석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불량한 자세였음에도, 그가 그렇게 하니 퍽 우아한 듯 보였다. 그는 오만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디 반박해봐, 말포이 저택이 본거지로써 불리한 이유를."
카르카로프는 생각했다. 난 도대체 왜 여기 있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