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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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곳을 받아들이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고? 내가? 난 분명 열심히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겨우겨우 정지된 것 같은 사고를 돌려 정신을 차렸다. 태초의 목적은 반지였다. 잘 떼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서 힘겹게 말을 꺼냈다.
"…반지는 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 싫어! 감히 날 이렇게 대하다니!
나는 가까스로 지팡이를 휘둘러 통역 마법의 범위를 넓혔다. 이제는 쌍둥이들과 델라쿠르도 인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델라쿠르가 앞으로 쪼르르 달려나온다. 인어가 델라쿠르를 바라보다가 외쳤다. 아마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난 정말 이 곳을 거부하고 있었던건가? 어째서? 사실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 지겨울 정도로 끔찍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로, 동물들이 나를 거부하는 이유가 그런 것일 줄은 몰랐다.
전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동물들은 한결 같이 나를 싫어했다. 그게, 내가 이 곳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돌려주싱 수 잉으싱가요?"
- 그래!
"네?"
- 알았다고.
"……?"
- 나는 예쁜 애들한테는 관대해지는 주의라서. 저기 저 백금발 소년도 예쁘지만, 나한테 그런 짓을 하는건 못 참거든!
옆에서 미친 듯한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쌍둥이들일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냥,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도련님! 반지 받았대! 밧줄 마법 좀 풀어줘!"
"사실 우리는 조금 더 연구하고 싶은데. 안 풀어줘도 돼!"
쌍둥이들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나는 바로 밧줄 마법을 풀어주었고, 인어는 빠르게 호수 쪽으로 사라졌다.
모두가 조용했다. 나는 멍한 상태에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고, 델라쿠르와 쌍둥이들은 바로 해결된 상황에 모두가 벙쪄 있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역시 쌍둥이들이었다.
"아하하하하!"
"예쁜 도련님, 여기 좀 봐줘!"
"……."
"도와주셔서 강사항니다-"
"나야 말로. 이제 슬리데린 기숙사로 가볼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멍하게 슬리데린 기숙사로 향했다.
"어?"
"드레이코!"
그리고 반대 방향에서 오는 셋을 마주쳤다. 셋 모두 얼굴이 땀으로 가득했다. 하긴, 여기에 있는 호수가 한둘인가. 나를 찾으러 왔다갔다 한 모양이었다.
"찾았잖아! 네가 호수 간다고해서 얼마나 놀랐는데!"
"난 솔직히, 네가 대왕오징어에게 잡아먹히지는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어."
"왜 갔다온거야?"
조금 이상했다. 나는 분명 이 곳에서 즐거우면 즐겁다고 할 시간을 보냈었고, 끔찍하다면 끔찍하다고 할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데 난 왜 여기가 싫은거지? 솔직히 말해서, 전전생의 지구에서 보다 마법 세계가 훨씬 더 즐거웠다. '나'로 산 기억보다 '드레이코 말포이'로 산 기억이 훨씬 더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내 이름이 뭐였더라."
"응? 드레이코잖아."
이상하다는 팬시의 말을 흘려들으며 기억을 상기했다. 이상할 정도로 선연한 '그 애'에 대한 기억을 빼면, 아무런 기억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나는 그런 기억만이 가득한 곳이 더 좋은걸까. 어째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걸까. 전전생에서의 나는, 부모님조차도 없었다. 아니, 있었나? 사실 이제와서 뭐가 중요할까 싶었다.
"드레이코? 괜찮아?"
"너 좀 아픈 것 같다, 드레이코."
"병동 갈래?"
드레이코, 드레이코, 드레이코. 평소에는 당연한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거슬리는 기분이었다. 아니, 예전에도 거슬렸었지만 지금 발견한 것 같았다.
"드레이코 말포이."
"왜 그래, 드레이코?"
나는 정말로 우습게도, '드레이코 말포이'로서 받는 사랑이 싫었던거다. '드레이코 말포이'에게서 빼앗은 관계가 싫었다.
"나 자러 갈게. 잠시만."
"…? 그래."
정신없이 슬리데린 기숙사를 향해 걸었다. 사실 내가 걷고있는지도 모를 것 같았다. 모든게 다 이상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인사하는 초상화도 이상했고, 복도를 지나다니는 유령들도 이상했다. 일상적으로 여겨왔던 것들이 생소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모든게 다 내가 누릴 수 없는 것 같았다.
"망포이? 겨우 잡앙어요…"
"…델라쿠르?"
플뢰르 델라쿠르에게 간거 아니었나? 그보다 왜 온거지?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델라쿠르가 히히 웃었다.
"말하고 싶은게 잉어서요. 음… 먼저, 이릉으로 불러도 돼용?"
"…마음대로 해."
"정말요? 드레이코도 저 이릉으로 부르세요!"
"이거 물어보러 온거야?"
"아, 아니요!"
가브리엘이 생각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브리엘을 바라보았다. 사실 어린 애의 말을 끊고 가기도 뭐했고 말이다.
"그게… 그냥 망하고 싶어서용. 드레이코가 말했잖아요. 아무리 망쳤다고 해도, 최성을 다했으니까 비난하지 않을거라고요."
"……."
"그래서, 고망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요! 누군가가 다칠 것 강아서 못했었는데, 이제는 안 그럴려고용! 하고 싱은걸 할거예요."
가브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나한테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듣고싶은 소리만 골라서, 보기 좋게 포장해 놓은 것 같았다. 너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줄까.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내 입이 먼저 열렸다.
"쌍둥이가 있어, 가브리엘. 한 명은 쌍둥이의 존재를 알고, 한 명은 모르지. 그리고 모르는 한 명이 죽어버렸어. 다른 쌍둥이는, 죽은 쌍둥이의 삶을 살아가. 모르는 이들이 쌍둥이에게 호감을 표하고 애정을 줘. 너라면, 어떻게 할거야?"
"……."
"…아니, 됐어. 괜한 말 해서-"
"저라명요."
가브리엘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꾸밈없는 파란색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
"저라명,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어요. 모르능 이들도 친해지고 싶어용."
"……."
"그러명,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