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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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하지만 ………은 얼마없어."
"조금이라도 괜찮아. 나중에 더 받으러 올거야."
시리우스가 굉장히 기분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스네이프가 코웃음을 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곧이어 갈색의 물체가 딸려나왔다.
"그나저나 여기는 왜 이렇게 어두침침 한거야?"
"신경쓰지 마라."
"누가 너 신경쓴데? 드레이코 목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시리우스가 나를 걱정스레 보다가 스네이프를 노려본다. 스네이프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동안 머뭇거렸다. 아니, 머뭇거리지 않아도 된다고.
"전 괜찮아요."
"…아에르."
스네이프가 전혀 듣지 않는 기색으로 지팡이를 희두르자 주위의 공기가 맑아진다. 시리우스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스네이프의 사감실을 나섰다.
"드레이코, 나중에 보자."
"네."
시리우스가 나가자 스네이프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불청객을 쫓아내서 속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그럼… 우리도 수업을 시작해야겠군."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휘둘러 용지를 가져왔다. 용지에는 무언가 쓰는 칸이 인쇄되어 있었다.
"좋아, 드레이코. 요즘 노트와 같이 다니는 것 같더군. 노트는 잘하는게 뭐냐?"
"땡땡이요."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너무 망설임없이 대답한건가. 스네이프의 얼굴이 조금 꿈틀거린다. 나는 시어도르를 떠올리며 답을 정정했다.
"…마법약, 마법의 역사 같은걸 잘해요."
"그래, 좋아하는건?"
"퀴디치를 좋아해요."
"책읽기는 안좋아하던?"
"별로 좋아하지는 않은 것 같던데요."
스네이프의 표정이 조금 변한다. 뭔가 의외인 것 같다. 솔직히 나도 그건 의외다.
"파킨슨은?"
"변신술을 잘해요. 사실 실기 마법은 거의 다 평균 이상이고요."
"좋아하는건 뭐지?"
"퀴디치를 보는 것만 좋아해요. 수다떠는 것도 좋아하고요."
스네이프가 호응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주의깊게 듣는 것 같은 태도였다. 도대체 뭐 하는거지.
"좋아, 그린그래스는 어떻지?"
"천문학이랑 약초학을 엄청 잘해요. 좋아하는건… 남 괴롭히기?"
스네이프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나는 얼른 말을 정정했다.
"다프네는 좋아하는건 거의 다 잘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거에 빠져들어서 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래, 그렇구나."
스네이프는 계속 호응을 해주며 다른 이들의 장점을 물어보았다. 나는 그냥 생각나는대로 대답해주었고. 그런데 이거 언제까지 하는거지.
"좋아, 그럼 너는 어떠냐, 드레이코?"
"……?"
지금 나한테 물어본건가. 잘못 물어봤나 했지만 스네이프는 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잘못 말한건 아닌 것 같다.
"저는… 그다지 잘하는건-"
"사소한거라도 괜찮다."
"…마법을 또래보다 잘하죠?"
"그래, 그렇지."
뭔가 호응해주니까 기분이 이상한데. 나는 열심히 장점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다른 이들을 말할 때는 계속 생각났는데 나를 말하라니까 뭔가 턱 막힌 기분이다. 아무 것도 생각안나.
"……."
"좋다. 이제 숙제."
"……?"
보통 수업이 이렇게 빠르게 끝나나? 스네이프가 마법약과 양피지 뭉치를 내민다. 빈칸이 인쇄되어 있는 그 양피지였다.
"더 이상 시간 끌어봤자 제자리걸음이겠군. 네 장점을 500개 써와라. 사소한거라도 좋다. 깊게 생각한다던가, 배려할 줄 안다던가 같은."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정 생각이 안나면 주변 이들에게 물어보거라."
500개라니. 별로 할 것도 없는데 이 정도는 무리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표정은 전에 없이 단호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 마법약도 마셔야겠군. 여기서 다 먹고 가거라."
이번에도 뒤에서 소멸 마법을 쓰고 먹는 척 했다.
* * *
숙제는 일단 서랍에 박아두고 나서 쌓인 것 같은 편지들을 하나씩 해치웠다. 가장 많이 온 편지는 돈이 들어있는 답장이려나.
"역시…"
빠른 시일 내에 성공할 회사들에만 투자했더니 돈은 확실하게 들어온 것 같았다. 이럴거면 쌍둥이들하고 계약기간을 조금 조정했어야 했는데. 더 놀라운건 편지로 온게 사례금 비슷한거고 진짜 돈은 내 은행계좌에 쌓여 있다는거다. 마법세계에서는 시리우스의 계좌에 쌓여있겠지.
오늘자 신문에는 「시리우스 블랙,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주식 투자.」 정도로 적혀 있었다. 한동안 고생하겠군. 물론 내가 고생하는게 아니니 무시하자.
"일단은-"
-크라우치를 어떻게든 해야겠지.
힘없고 권력은 아버지한테 있는 도련님이라면 모르겠지만 난 그런 도련님은 아니다. 이 정도 돈과 시리우스의 신분도 있으니까.
'호그스미드 갈 때 마법부도 들려야겠다.'
뭐, 시리우스의 신분으로 가면 되겠지. 플루가루 네트워크는 편하지는 않지만 빠른 이동수단이다. 혹시 모를 위험수단은 다 제거해야 한다. 볼드모트가 절대 부활하지 못하도록.
* * *
"드레이코, 오늘 호그스미드 같이 안가?"
"어."
"정말?"
"어."
팬시가 한층 쳐진 안색으로 입을 삐죽인다. 그래봤자 마법부도 들리고 돈 가지고 청탁(?)해야 해서 바쁘다고.
"아, 드레이코. 말해주라고 했었는데 까먹었다. 너 해그리드 교수님이랑도 보충 수업 있다고 했잖아."
"……아."
"보충 수업, 가봐야 하는거 아냐?"
다프네의 말을 듣고는 지팡이를 휘둘러 스터를 잡았다. 여전히 내가 만지기만 하면 딱딱거려서 손도 못 대는 중이다.
"고마워, 다프네. 나 먼저 가볼게."
"잘가-"
다프네의 인사를 뒤로하고 슬리데린 기숙사를 나갔다. 뭐, 수업에 가고나서 호그스미드로 가면 되겠지. 해그리드의 오두막집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숲으로 지나가니 동물들이 몰려오는게 잘 보인다.
"프로테고.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방어 마법과 동작정지 마법을 써서 동물들을 벗어났다. 항상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을 갈 때면 나타나는 동물들이다. 부활도 하는거냐. 왜 똑같은 종인거지.
"……?"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을 가려는데 이상한 검은 물체가 주위에서 어른거린다. 아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누군가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누구지? 호그와트에 침입할 수는 없을텐데? 혹시 켄타우로스 인가?
빠르게 동물들에게 동작정지 마법을 걸고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다가갔다.
"…크라우치?"
"빨리- 덤블… 덤블도어를 만나야-"
예전보다 훨씬 늙어보였지만 분명 크라우치다. 그보다 덤블도어를 만나야 한다고? 크라우치 2세가 여기에 잠입했나? 볼드모트는 어떻게 된거지?
"아, 웨더비? 괜, 찮네. 난 괜찮…"
크라우치는 뭔가 정신이 이상해 보였다. 크라우치가 쓰러지는건 두 번째 트리저워드 시합이 끝나고 나서 아닌가? 난 지팡이를 들고는 투명 마법을 외쳤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페를루키디타스!"
크라우치 2세가 크라우치를 따라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