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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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장갑."
어쨌든 수업은 시작해야 했기에, 나는 팬시와 다프네, 시어도르에게 장갑을 던져주었다. 다프네가 능숙하게 장갑을 끼고는 부보투버의 고름을 짜냈다. 팬시는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드레이코."
"……?"
"저 쪽으로 가자."
시어도르의 은밀한 손짓과 함께, 우리는 큰 잎의 뒤 쪽으로 이동했다. 방금 전만해도 래번클로가 주시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의아하게 시어도르를 바라보자, 그가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인지방해 마법. 우리가 없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걸."
"좋아요, 잘하고 있어."
스프라우트의 격려아닌 격려로 팬시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렇게나 손에 닿기 싫은거냐. 장갑을 꼈는데도 격하게 싫어한다는 기색이다.
"바보 아냐? 저런건 요령 좋게 피해 있어야지."
시어도르가 팬시를 보며 비웃었다. 물론 안들리겠지만. 나는 시어도르의 옆에서 부들부들 손이 떨리는 팬시를 구경했다.
"이 잎은 사람들을 숨길 정도로 엄청 커. 저쪽에 있는 나무는 구멍에 충분히 숨을 수 있고. 저 꽃은 안그래 보이지만 만지기만 하면 커져서 숨기 편해."
한 두번 땡땡이(?)친게 아닌가보다. 그러면서도 약초학 시험을 볼 때면 언제나 최고점. 내 이상한 눈빛을 눈치챘는지 시어도르가 어깨를 으쓱인다.
"이번만이거든? 예전에는 한 번도 땡땡이 친 적 없어. 자리만 봐 놓은거지."
"그럼 왜?"
"…하고 싶은걸 할거야."
"……?"
시어도르가 나를 흘긋 보다가 고개를 돌려 다프네가 하는걸 바라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걸 할거야. 아주 작은 반항부터. 계속해서 조금씩 내가 원하는걸 할거야."
시어도르가 그렇게 말하고는 실없이 웃었다. 정말로 즐거워서 못 견디겠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냥, 그러고 싶어."
땡땡이 치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감상적으로 하는거냐. 나는 시어도르를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시어도르는 내 눈빛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다시 웃으며 말을 반복했다.
"이제 그러고 싶더라고."
* * *
"드레이코, 어디 가?"
"보충 수업…"
"…? 네가 학업에서 떨어지는건 못 봤는데. 필기 성적은 몰라도."
애초에 그거 대충 한거라고. 내 성적을 보면서 열심히 비웃던 시어도르가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한심하다는 뜻을 가득 담으며 비웃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거야. 너와는 다르게."
"뭐? 너 지금 비꼰거지? 야!"
"…시어도르가 둘."
실상은 스네이프가 하고 싶어서 한거지만. 다프네의 감탄조가 어째선지 기분이 나쁘다. 그거 무슨 뜻이냐. 나는 시어도르를 무시하며 슬리데린 기숙사를 나갔다.
사감실로 향하는 길은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 아니, 사감실 자체도 엄청 음침해. 나는 지팡이로 보온 마법을 걸고는 계속 내려갔다. 솔직히 음침한걸로 따지면 슬리데린 기숙사도 만만치 않다.
앞에서 새까만 뒤통수가 보인다. 저건 어디로보나 시리우스인데. 시리우스는 여러 무리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블랙 교수님- 이것 좀 봐주세요!"
"블랙… 아, 그게 교수는 이런거 받으면 안되거든."
"괜찮아요!"
좀 더 가까이 가보니 시리우스의 표정이 가관이다. 화를 내고 싶지만 학생이라 참는 것 같았다. 그 시리우스가…! 처음에는 어쩐지 해리하고 잘도 싸웠던 것 같았는데 리무스의 교육(해리의 증언이다)이 빛을 발하나보다.
시리우스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어, 눈 마주쳤다. 시리우스는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는 어색하게 하하하 웃었다.
"정말 미안하지만 얘들아, 말포이 학생이 나한테 질문거리가 있다고 하네."
"아… 그래요?"
"그렇단다."
"…맞아요."
학생들이 아쉽다는 눈길을 던지며 하나 둘 자리를 떠난다. 시리우스는 입꼬리가 진동할 정도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경련 오는거 아니냐.
"후… 고맙다, 드레이코."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교수는 참 힘들어… 아, 참. 몸은 좀 괜찮냐?"
시리우스가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시리우스가 그 말을 듣고는 활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요즘은 꽤 잘 웃는 것 같다.
"난 지금 스니-에이프의 사감실에 가거든."
"아직도 그 스니벨루스인가 뭔가 하는 별명 부르죠?"
시리우스가 찔끔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렇게 표정에서 다 티나면 어떡하냐. 나는 한숨을 쉬고 시리우스를 마주보았다.
"그거 부르지 마요. 그리고 저도 스네이프 교수님에게 가고요."
"뭐? 왜?"
"보충 수업이요-"
"네가?"
"제가 원해서 한거예요."
이렇게 말해야 가만히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시리우스는 당장이라도 나설 것 같은 표정을 꾹 눌러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기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이상할 정도로 웃겼다.
"시리우스, 그 표정 뭐예요?"
"어? 아, 아니-? 나도 보충 수업 해줄 수 있는데…"
"시리우스의 사감실은 선물이 쌓여서 안돼요."
"……."
반박을 못하는거 보니 사실인가보다. 시리우스는 축 쳐진 안색으로 입을 삐죽였다. 개냐.
시리우스가 목이 타는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나를 따라왔다. 그보다 물도 선물 받은건가. 뭔가 번쩍거리는 물통이다. 여전히 나에게는 한 마디 말도 붙이지 않는다.
"삐졌어요?"
"아니…"
삐졌구나. 나는 결론을 내리고 시리우스를 앞서 걸었다. 뒤에 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결국에는 따라오는건가. 어느새 스네이프의 사감실이었다. 나는 노크를 두어 번 하고 들어갈 셈이었지만 시리우스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스니벨- 에이프, 받아가야 할게 있어."
스니벨에이프라니. 내가 별명 부르지 말라니까 왜 이상한 별명을 창조하는거지. 스네이프는 시리우스를 완전히 무시하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드레이코. 왔느냐. 여기 앉거라."
"-그래서 내가 온거라고. 야, 내 말 듣고 있냐?"
"…잠깐만 실례하마."
"아, 네."
스네이프가 드디어 시리우스를 마주본다. 스네이프는 예전의 원수를 상대했던 눈이 아니라, 철없는 어린아이를 보는 눈을 하고 있었다. 시리우스도 그걸 느꼈는지 한껏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고.
"무슨 일이지, 블랙?"
"젠장, ………님께서 ……을 가져……고 하셨어."
"정말로?"
"그래, 드레이코의 치료로 쓰려고."
뭔가 일이 커지는 것 같은데. 해독제까지 만들고 있었던거냐. 나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지만 둘은 진지하게 얘기만 할 뿐이었다. 목소리가 굉장히 작아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