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작파괴범-90화 (90/130)

90회

689

어떻게든 오해를 풀지 않으면 망할 것 같다. 그런데 이것 이상으로 망할 수 있을까. 피를 뱉은건 둘째치고 영혼이 다른걸 뭐라고 설명하냐고.

"드레이코, 내 말 듣고 있는거냐?"

"…약은 안먹어도 상관없어요."

"하."

스네이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그 나이에 코웃음을 소화할 수 있다니. 역시 스네이프 답다고나 할까.

"약은 안먹어도 상관없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어차피 약을 먹어도 안먹어도 전 건강-"

"시끄러워!"

왜 물어봤으면서 말을 막냐고. 폼프리 부인을 쳐다보았지만 어쩐지 단호한 얼굴로 스네이프의 말을 듣고있을 뿐이었다. 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네가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누가 치료해줄 수 있냔 말이다!"

"……?"

스네이프의 표정은 굉장히 진지했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거 착각이라는거 알면 좀 창피하지 않을까.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쌍둥이들을 상기했다.

내가 피를 토한 이유를 말한다면 분명 루시우스나 나시사의 귀에도 들어가게 될거다. 그렇게되면 위즐리 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압박을 받게 되겠지.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시발, 이건 둘째 치고 영혼이 다른건 뭐라고 설명하지.

'전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서 영혼이 다릅니다.'

'…? 드레이코, 너 어디 아프니?'

이것도 아니다. 정신과 치료나 받으면 더했지. 나는 스네이프를 다시 올려다보며 최대한 착각하지 않을만한 대사를 생각해냈다.

"전 아프지 않아요, 교수님. 이건 다 장난-"

"좋다, 드레이코."

스네이프가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린다. 뭔가 승부욕에 불을 붙인 것 같은 느낌인데. 누가 아니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네가 포기한다면, 내가 잡게 해주지. 오늘부터 매일, 수업이 끝난 후에 내 사감실로 와라."

"죄송하지만-"

"이건 선택이 아니야."

이걸 뭐라고 풀어.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내렸다. 처음 말부터 뭐라고 해야할지 감도 안잡힌다.

"교수로서의, 명령이다."

그거 해리한테 말하면 아주 날뛸 것 같은데요. 나는 반쯤 체념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 크루시오!

- 아아악!

비명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나는 사색이 된 채로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찢어질 듯한 비명과는 다르게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렸다. 아니, 그걸 들었는지 인지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이명이 웽웽 울리고 머릿속의 모든게 하얗다.

- 어떠냐, 드레이코?

웃음기 베인 목소리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로 자리에서 서있었다.

- 너도 그 분에게 복종해야 한다.

차갑게 굳어있는 시체 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아, 안돼. 아니야. 나는, 나 때문에-

- 이렇게 약해 빠져서야.

혀를 차는 소리가 웅웅대며 울려퍼진다. 공간이 확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 순수혈통의 긍지를 잊지 마!

"……!"

…꿈이었나. 나는 머리를 한 번 쓸고는 아직 신호가 오지 않은 지팡이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그제서야 지팡이를 세게 쥐고 있었다는걸 알아차렸다.

"볼드모트는, 부활하면 안돼."

말을 내뱉고 깨달았지만, 다짐하는 듯한 어조였다. 나는 세게 쥐고 있어서 탈색된거 같은 손을 다시 내려다 보았다.

죽고 죽는, 죽이고 다치는 전장. 아직 작은 학생들은 교실 대신 전쟁터에서, 지팡이를 쥐고 마법을 외친다. 적을 쓰러트렸다고 좋아하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울 것처럼 입술을 깨물고 있었지. 코끝을 마비시키는 것 같은 피비린내도, 동료의 배신도, 다시 한 번 더 목격한 시체도. 그 순간만큼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할 수 있다.

그런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

"들어와도 될까요?"

"……?"

"말포이의 문병이니? 이번이 10번째구나. 그래, 들어오렴."

처음 듣는 목소리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갈색 머리카락에 싱글싱글 웃는 얼굴. 제이콥 골드스틴인가.

"음, 말포이. 조금은 괜찮아?"

"네, 애초에 아프지 않아요."

"…알았어, 말포이."

골드스틴이 바닥을 보며 침울한 어조로 말한다. …전혀 알아듣지 못한 표정이잖냐. 생각하는 그거, 전혀 다르다고.

"음- 우리 래번클로에서 한 번 더 토론을 해보았어. 슬리데린 참관으로 이러저러 말이 많았었거든. 래번클로만의 자랑거리를 타 기숙사생과 나눈다고 말이지."

골드스틴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해석하자면 병자한테 알려주는게 맞는 정보인지 헷갈리는 것 같았- 아니, 애초에 병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즐거웠어. 역시 다른 기숙사생이 있으니 더 재밌더라. 토론결과는 뭐였는지 알아?"

골드스틴이 다시 활짝 웃는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대충 모르겠다는 얼굴로 맞장구 쳐주었다.

"토론을, 개방적으로 돌리자는 거였어."

"……!"

"타 기숙사생은 아직 조금 꺼려져. 래번클로만 갖는 특권을 버리고 싶지 않아. 이게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골드스틴은 굉장히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즐거운거지.

"-래번클로는, 발전하고 싶다고?"

"……."

"그런 의미에서 말포이, 오고 싶다면 언제든 와. 다른 래번클로들도 타 기숙사생들을 초대하고 있을거야. 조금 체제가 잡혀야 하겠지만, 너는 언제든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어."

"고맙습니다."

일단은 고개를 숙였다. 골드스틴의 악당같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뭐를 생각하는건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이다.

"대신에 래번클로를 대표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물을 말이 있어. 대답해줄래?"

"…? 무슨 질문인지 듣고나서요."

"넌 어째서, 어둠의 마법이 나쁜거라고 생각한거야?"

골드스틴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건 순전한 의문이었다. 역시 좀 무례했나? 골드스틴이 다시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왠지 대답을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굴리다가 그냥 생각나는대로 대답하기로 했다. 뭐, 적당한 말로 꾸며내면 되겠지.

'아아악!'

순간적으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머리를 메운다. 피비린내, 웃고있는 볼드모트, 그걸 보고만 있었던 나.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 입은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볼드모트는, 부활하면 안돼요."

"…? 그게 무슨 소리-"

"어둠의 마법으로 죽거나 다치는걸, 보고싶지 않아서요."

골드스틴의 표정이 조금 묘하게 변한다. 그는 뭔가 복잡해 보였다. 착잡한 것 같기도 하고, 깨달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랬구나."

"……."

"말 해주어서 고마워. 많이 힘들었을텐데."

골드스틴이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바라본다. 나는 손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지팡이를 세게 움켜잡고 있었다. 전혀 눈치 못챘었는데.

"정말 가볼게. 아, 참. 반말해도 돼."

"…잘가."

골드스틴이 나간 병동에는 정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폼프리 부인은 기척조차 내지 않으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는 이제는 정겨울 지경인 지팡이를 던졌다가 받았다.

"볼드모트는 부활하면 안돼."

다시 생각하지만, 다짐하는 것 같은 어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