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작파괴범-88화 (88/130)

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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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연회가 끝나고 20분 경과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래번클로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복장을 입어주시기 바랍니다. 토론을 하고싶지 않으시다면 나가주셔도 좋습니다."

클로는 의외로 잘 말하는 것 같았다. 러브굿은 예상 밖이었는지 클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래번클로 학생들은 빠르게 복장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토론식 복장을 뒤집어 쓰는 것 뿐이지만.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자리에 앉는다. 뭔가 이렇게 앉은걸 보니까 조금 무섭기는 하다. 가오나시 같이 생긴걸 떠나서, 하얀색 가면에 검정색 망토라니. 무슨 범죄집단 같았다.

"이번 주 토론 주제를 결정해 보겠습니다, 모베오."

"모베오?"

"예전의 래번클로들이 만든 주문이야. 우리는 일주일 동안 하고싶은 주제를 래번클로 휴게실에서 자유롭게 쓴 다음, 그걸 랜덤으로 돌려서 주제를 정해. 저 주문은 그걸 도와주고. 발표할 사람을 정해주기도 해."

러브굿이 음성변조로 인한 또렷한 목소리로 소근거린다. 그러니까 뽑기 마법 같은건가. 생각해보니까 나도 침입자가 있는지 찾아야한다. 어떻게 찾지. 눈에 띄지 않는 마법을 써야했다.

클로가 지팡이를 휘두르는 동시에, 많은 주장이 써진 종이 위에 시계 바늘같은 것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바늘은 조금 느려지는가 싶더니 몇 십개의 주제 중에서 한 개의 주제에 멈췄다. 클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조금 당황한 것 같다.

"…어둠의 마법은 과연 나쁠까."

래번클로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더 높아진다. 하긴 슬리데린이 있는데 이런 민감한 주제라. 게다가 이번에는 슬리데린이 참관한다는걸 들었는지, 연회장에서의 래번클로들 같은 숫자였다. 그나저나 어둠의 마법이라니. 네이밍 센스가 참… 그렇다.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 나뉘는 주제네요. 찬성 측은 왼쪽으로 반대 측은 오른쪽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것 같은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거나 가만히 앉아있었다. 몇몇은 재미있다는 듯 웃기도 했다.

"너는 뭐할거니?"

"찬성."

내가 중얼거리자 러브굿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와 같은 찬성 측에 앉았다. 클로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딱딱한 어조로 대본을 읽었다.

"회의시간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측, 반대 측 주장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래번클로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떠들기 시작했다. 뭐지, 왜 이렇게 열심히 인거야. 뭔가 기세가 무섭기도 했다.

"어둠의 마법에 대해서 조사해본 거 있어?"

"나는 예언자 일보 읽어본 적-"

"그 기사는 쓰레기야."

"좋아, 일단 주장은 내가 말한대로 하던지, 너희들이 하고 싶은거 하던지. 마음대로 해."

"발표는… 알지?"

눈코입이 없는 무리들이 전부 비장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도대체 뭔데. 나만 모르는거냐. 러브굿이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챘는지 조용히 말한다.

"발표할 사람은 아마 랜덤일거야. 왜냐하면 처음에 토론에서 말을 할 사람은 랜덤으로 선택되거든."

그런거였나. 이상한 부분에서 디테일하다. 나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설마 몇 십명이 넘는 애들 중에서 내가 뽑힐 일이 있을리가 없다. 클로가 손뼉을 치자 다른 래번클로들이 자리에 앉았다.

"찬성 측 먼저 주장하겠습니다, 모베오."

시계바늘 같이 생긴 것이 왼쪽의 학생들 주변을 돌았다. 내 눈이 다 어지러울 정도로 주위를 빠르게 돌던 바늘은 딱 내 앞에 멈춰 섰, 잠깐.

"주장해주시기 바랍니다."

"……."

뽑기 주문은 선배들이 만들었다고 했고, 동작도 주문도 다른 이들이 잠잠한걸 보니 맞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우연이라는 소리다. 가능한거냐.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도 감춰져 있으니까 아무도 모르겠지. 그냥 다른 학생들처럼 말해야겠다. 나는 가물가물한 토론대회를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개소리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면 되는건가.

"요즘은 어둠의 마법에 대한 인식이 옅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효율적이기 때문에, 더 빨리 하고 싶기 때문에 어둠의 마법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죠.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저는 어둠의 마법이 나쁘다는 의견에 찬성합니다. 첫째, 사람들의 아픔을 목적으로 한 마법입니다. 어둠의 마법을 대표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루시아투스 저주, 임페리우스 저주, 아바다 케다브라. 세가지 모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마법들이죠. 비록 좋은 부분에서 쓴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마법이라는 건 변함없습니다."

뭐, 실제로도 그랬고. 나는 볼드모트가 부활하고 전투를 하던 그 때, 코 끝에 감도는 비릿한 피비린내를 잊을 수 없었다. 결국 내 이기심을 위해 다른 이들의 목숨이 없어진거다. 난 항상 그랬다. 방관자에 가해자. 바꾸려고 하지 않았었고, 바꿀 수도 없었다.

"둘째, 어둠의 마법은 쓰는 당사자에게도 고통을 주는 마법입니다. 어둠의 마법을 쓰면 그만큼 영혼이 훼손됩니다. 이 연구는 대표적으로 영국의 세를린 헤이즐이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발표했고, 살해 당해서 거의 묻힌 내용이죠. 이 기록에 따르면 마법부의 허락을 받고 실험대상자 50명에게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다시 영혼의 상태를 점검했죠.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습니다. 50명 중 48명의 영혼이 뒤틀려 있었죠. 96%의 영혼이 뒤틀렸다는 소리입니다. 더 알고 싶으시다면 도서관에 있는 헤이즐의 연구발표 기록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입구부터 맨 끝에 칸의 두 번째 줄, 다섯 번째에 위치해 있습니다."

래번클로 학생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아, 이건 괜히 말한건가. 알고 있는 사람도 조금밖에 없는 사실인데.

"셋째, 어둠의 마법을 잘 사용한다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통을 주는 마법이라도 잘 사용한다면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그 자'의 활동시기를 아시다시피 저희는 어둠의 마법을 '잘'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희생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당사자도 다치고 심지어 그 마법까지 통제하지 못한다면 과연 이 마법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둠의 마법」이란 책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마법은 결국 생명을 앗아간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너무 많이 말했다. 나는 러브굿이 조용히 내민 물을 받아서 마셨다. 가면 사이로 들어가나 싶더니, 들어가기는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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