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작파괴범-87화 (87/130)

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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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굿이 당연한 듯이 로웨나 래번클로의 석상 뒷편으로 다가갔다. 러브굿은 석상 밑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융통성 없는 새대가리."

"……?"

러브굿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래번클로의 석상이 진동하는 소리를 냈다. 단상 쪽 네모난 부분 중 한 쪽 면이 활짝 열리자, 그곳에는 상자 여러 개가 가득 차 있었다. 러브굿이 나를 흘깃 바라보다가 몽롱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달의 토론암호야. 토론은 익명성과 자율성을 보장하지. 참석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자율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익명성은 어떻게 보장하는 거지. 그걸 이야기라도 해주듯, 러브굿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상자들이 차례차례로 날아왔다. 상자 안에는 가면과 망토가 합쳐진 것 같은 복장이 가득했다. …무슨 가면회인거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비주얼이다.

"…가오나시."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딱 비주얼이 가오나시다. 가면도 똑같이 하얀색이야. 심지어 눈코입도 비슷하게 뚫려있다. 네가 가오나시 복장을 구경하고 있자, 러브굿이 꿈을 꾸는 것 같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원래 이건 토론 담당자가 있어. 담당자는 사회를 맡아서 토론을 이끌어가고 토론준비와 정리를 해. 오늘은-"

러브굿이 말하는데 누군가가 뛰어들 듯 기숙사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전에 보았던 남학생이다. 남학생은 입에 무언가를 잔뜩 물고는 헉헉대면서 뛰어왔다. 조금 밖에 안지난 것 같은데 벌써 다 먹은건가. 러브굿은 남학생을 흘긋 바라보고는 다시 꿈꾸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레이븐 클로가 토론 담당자야."

"루나, 풀네임으로 말하지 마."

"알았어, 클로."

"…젠장, 너 일부러 그러는거지? Claw(발톱)라고도 부르지 마."

"그래, Raven.(까마귀)"

"Raven이 아니라 Laven이라고!"

"알겠어, Raven."

"하아-"

전혀 듣고있는 어조가 아닌걸 알아차렸는지, 클로가 푹 한숨을 내쉰다. 왜 놀리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반응이 재미있었다. 잠깐, 이름이 레이븐 클로인가. 참 특이하게도 지었다. 클로가 나를 발견했는지 몸을 굳혔다.

"그, 그-"

"……?"

혼자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괴성을 내지르다가 한숨을 쉬다가, 별짓을 다한다. 도대체 왜 저러는거지. 러브굿도 이상한 눈으로 클로를 쳐다보았다. 클로가 결심한 듯 눈을 치켜뜨고는 입을 열었다.

"미… 안해."

"무슨 일인데?"

러브굿이 몽롱하게 중얼거리다가, 갑작스러운 탄성을 내뱉는다. 혼자 묻고 혼자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럴거면 왜 물어본거냐.

"하긴, 레이븐은 '그 자'와 관련된거면 다 싫어하니까. 시비 걸었구나-"

"……."

러브굿은 가볍게 클로에게 일침을 날리고 지팡이를 휘둘러서 빈 상자들을 다시 석상 밑에 넣었다. 클로는 반박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있었다.

근데 왜 지금 사과하는거지? 나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방금 전에는 시비를 걸었다가 갑자기 사과라니. 아, 설마 제이콥 골드스틴한테 계속 구박당한건가. 나가면서도 구박했으니까 그럴 가능성이 적지는 않았다. 애초에 사과하라고도 했으니까. 클로가 나를 바라보다가 눈동자를 굴리며 입을 연다.

"…제이콥이 사과하라고 하기도 했고, 계속 생각해 봤는데 그래도 환자니까. 화풀이하는 것 같기도 해서."

"……?"

"융통성 없는 새대가리."

"뭐?"

"Raven, 이거 토론 암호야. 이름이 Raven이라고 진짜 까마귀가 된건 아니지?"

"Laven이라고…"

러브굿이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 클로를 바라본다. 뭔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시선이기도 했다. 클로가 입을 닫았다. 그건 할 말을 잃은 것 보다는 어이를 잃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러브굿이 드물게 또렷한 어조로 말한다.

"정신차려, 레이븐. 말포이는 그냥 드레이코 말포이야."

"알고있어."

"……?"

"…미안해."

"괜찮아."

내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리자 클로의 안색이 조금 나아진다. 클로는 사과를 받아주어도 찝찝한 표정이었다. 그걸 뚫어져라 보던 러브굿이 지팡이를 휘둘러 클로를 가격했다. …지팡이는 때리는 거라고 있는게 아닐텐데. 클로가 머리를 부여잡고는 앓는 소리를 낸다.

"왜 때리는거야!"

"정신 차리라고."

"……."

"말포이, 이거 입어."

러브굿이 나긋한 손짓으로 가오나시 복장을 나한테 내민다. 방금 머리 때린거랑 너무 반대되는거 아니냐. 나는 구멍이라고는 발 밑과 가면의 눈코입 밖에 뚫려 있지 않은 가오나시 복장을 걸쳤다. 이거 숨 못쉬는거 아닌가.

"……?"

그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가오나시 복장은 내 얼굴과 몸에 맞는 체형으로 줄어들었다. 숨은 가면을 쓰지 않은 것처럼 잘 쉬어지고, 펄럭이는 망토는 발 밑 빼고 전부 막혀있지만 전혀 덥지 않았다. 오히려 밖보다 더 쾌적한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일부러 고정하지 않아도 복장은 자연스럽게 내 얼굴에 붙었다. 그 밑에 있는 망토도 무겁지 않았고. 클로가 그걸 보더니 조금 자랑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래번클로 밖에 모르는 토론식 복장이지."

이걸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는건가. 토론보다 토론식 복장이 더 철처한 것 같다. 러브굿은 깔깔대며 웃는게 아니라, 아주 조용히 미소지었다. 굉장히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아, 설마 그래서 래번클로의 입장을 그렇게 잘 알았던거냐.

"너도 입어, Raven."

"Raven이 아니라- 하아, 됐다."

클로는 아예 포기한건지 토론식 복장을 순순히 입었다. 러브굿도 마찬가지로 토론식 복장을 입었고. 내가 입은게 아닌, 다른 애들이 입은걸 보니까 더 호러같다. 난 분명히 앞이 잘 보였는데 다른 애들의 눈코입이 뚫린 부분은 검정색으로, 이목구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애들도 오는 것 같아."

목소리 변조도 가능한거였냐. 또렷하지만 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곳은 러브굿이 있던 곳이고. 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거 훔치는 사람은 없어?"

내 목소리는 과할 정도로 하이톤이었다. 내가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니.

"독수리상이 감시하고 있는데 그럴 수는 있을까? 그리고 이 복장 자체에 방지 마법이 걸려 있어. 가져가면 스스로 다시 기숙사까지 돌아와. 래번클로에 경보도 울리고."

"……."

호그와트보다 더 성능이 좋은 것 같은 복장이 여기에 있다. 러브굿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몽롱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항상 저 목소리일 수 있는거지.

"선배들이 다녀가면서 마법을 덧씌우고 덧씌웠다고 들었어. 게다가 이걸 처음 창조한건, 로웨나 래번클로야. 거의 죽기 직전에 테스트용으로 만든 것 뿐이지만."

그 한마디에 모든게 이해가 갔다. 그런거였냐.

[작품후기]

사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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