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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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나은 수준의 외모가 된 시어도르(팬시의 표현이었다)는 꽤 들뜬 마음으로 다프네를 만났다. 옆에서 그레인저에게 인사하는 빅터의 목소리도 들었고. 시어도르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은 채로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뭐야?"
"어? 이상해?"
"아니, 쓸데없이 잘생겨서."
다프네가 그렇게 말하고는 쿡쿡 웃었다. 시어도르도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직까지 승산이 없지는 않은가? 그의 머릿속에서 수만가지 생각이 겹쳤다. 시어도르는 잡생각들을 버리고는 다프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출까요, 아가씨?"
"물론이죠, 아저씨."
"아저씨 아니거든!"
"그럼- 도련님?"
"뭐, 나쁘지는 않네."
시어도르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렸다. 그로서는 보기 드문 미소였다. 연인을 위한 곡인지, 잔잔한 노래가 무도회장을 채웠다. 다프네가 키득대며 시어도르의 팔을 잡았다.
좋아, 괜찮았다. 여기까지는.
* * *
"그래서- 어떻게 된건데?"
"발을 한 여덟 번은 밟았나…"
"대단하네."
팬시가 비웃으며 손뼉을 쳤다. 시어도르는 뚱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았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도 망한건 잘 알고 있었다.
"다프네는?"
"정원."
"나 정원 가볼게!"
팬시는 벌떡 일어나더니 정원을 향해 뛰어갔다. 시어도르는 굳이 가는 팬시를 막지 않았다.
아, 망했어. 시어도르는 춤을 곱씹어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때 먼저 스텝을 밟는게 아니었는데. 여덟 번 째 밟힌 다프네는 정말 살인이라도 할 수 있을 듯한 표정이었다. 시어도르는 순간적으로 몸을 떨다가, 호박주스를 바로 들이켰다.
"아, 진짜 시어도르 노트!"
시어도르가 거칠게 머리를 헤집으려다 손을 내렸다. 분명 이 머리를 푼다면 팬시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이 틀림없었다. 시어도르는 턱을 괸 채로 그레인저와 춤을 추는 빅터를 뚱하니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분위기가 아주 좋다. 어째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바로 자신의 앞에 멈춘 빅터가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긴 내, 친구다."
"안녕, 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야."
"어, 시어도르 노트야."
퀴디치를 보면서 박수만 치던게 어제 같은데. 시어도르는 친구가 된 빅터를 조금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빅터가 그레인저가 안보이게 이를 악물며 귓속말을 했다.
"그거 뭐냐, 그 인사법."
"…진짜 했어?"
"……."
"풉."
빅터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 진짜 화가났나 보다. 시어도르는 되도록이면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일단 다프네가 정원에 있다고 했으니까, 정원으로 가보아야 겠다.
"잘 있어, 그레인저. 힘세고 강한 저녁이야."
"…? 아, 설마 그 인사법-"
"안녕!"
정말로 화가 날 것 같은 빅터를 피해 정원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풍기는 장미냄새에 시어도르가 미간을 폈다. 땀냄새 보다는 훨씬 나은 냄새였다. 시어도르는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정원을 거닐었다. 그래, 그 부엉이만 오지 않았다면 분명히 나아진 기분이었을 거다.
"……."
시어도르는 날아오는 부엉이를 잡으며 동시에 기분이 바닥까지 치닫는걸 느꼈다. 무도회에 왜 부엉이를 보내는걸까. 시어도르는 짜증스럽게 편지를 뜯었다.
「순수혈통답게 행동해라.」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걸 어기면 징벌방에 한 달 동안 갇혀 있어야 할거다. 시어도르는 나오는 한숨을 굳이 막지 않았다.
"너 뭐해?"
"별거 아냐."
팬시가 어쩐 일인지 혼자서 시어도르에게로 다가왔다. 시어도르는 자연스럽게 편지를 뒤 쪽으로 숨겼다. 눈치 빠른 팬시는 편지를 발견하고 짜증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님께 온거지?"
"…다프네는?"
"정원 구경 중이야."
팬시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시어도르의 옆에 섰다. 시어도르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고 있었다.
"나도 엄청 쪼아대더라? 미친거 아니냐고 편지까지 온 거 있지. 방학 때에도 그렇게 잔소리 하더라. 웃겨, 정말. 내가 다른 애들 그렇게 괴롭힐 때에는 한 마디도 안하더니."
"……."
"뭐, 너도 같이 다니기 싫다면 안 다녀도 돼. 뭐라고 하지 않을게."
네가 뭔데? 시어도르는 혀 끝까지 올라오는 빈정거림을 삼켰다. 그래, 팬시 파킨슨은 알지 못한다. 말을 어긴다면 어떤 벌을 받게되는지. 징벌방이 될 수도 있고, 집요정이 대신 맞아주는 걸 수도 있겠군. 시어도르는 한 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도 순수혈통이 끔찍하게 싫었다. 다프네도 다르지 않겠지. 자신을 대신해 화를 내던 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뭘 안다고? 팬시 파킨슨은 아무 것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다프네의 곁에 남았는지. 어떤 처벌을 견딜 준비를 했는지.
시어도르가 머리를 헤집었다. 팬시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침착해야 한다. 대상없는 원망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일부러 숨을 골랐다.
"괜찮아. 그보다, 드레이코랑은 잘 돼?"
시어도르가 택한건 말을 돌리는 것 뿐이었다. 팬시는 시어도르의 말에 그냥 웃기만을 반복했다. 시어도르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로 계속해서 단어를 내뱉었다.
"남 연애나 도와주지 말고 네 연애도 하라-"
"포기했어."
"뭐?"
팬시가 정원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포기했다고? 시어도르는 팬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포기했다고?"
"그래, 드레이코는 연인을 만들 준비가 안되었더라고. 뭐, 이대로 친구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팬시가 다시 웃었다.
"시어도르 노트, 뱀은 때를 기다려. 먹잇감도, 자기자신도 준비가 될 때를."
팬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시어도르는 그것이 혼잣말인지, 자신을 향한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냥, 충고야. 노트 가문이 그렇게 심하다며? 파킨슨 가하고 그린그래스 가는 그렇게까지는 아니지. 말포이 가는 말할 것도 없고."
"……."
"귀하게 자라온 아가씨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시어도르가 고개를 들었다. 팬시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팬시 파킨슨은 쓸데없이 눈치가 빨랐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눈치챘겠지.
"-뱀은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지."
"……."
"모든걸 혼자하는게 좋은 방법은 아니야."
팬시가 어깨를 으쓱였다.
[작품후기]
여러분 제가 조금 전에 깨달았는데 팬아트를 못 올리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네요.... 조아라 초보라서 막 뭘 건드린 건지는 모르겠는데...! 8ㅅ8 못올리시는 분들은 [email protected]으로 보내주십시오! 제가 물빨핥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