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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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Theodore Nott
"그냥 만나보라고!"
"못한다, 그건…"
"뭐, 앞에 서도 말 하나 못 붙일 것 같은데?"
시어도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팬시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빅터를 바라볼 뿐이다. 이대로 가면 30분은 버리겠군. 시어도르는 연애강의를 하는 팬시를 내버려둔채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금방 붙잡힐 반항이었지만 말이다.
"시어도르, 너는 또 어딜 가. 너도 다를 바 없다는건 알고 있겠지?"
"너무한거 아니냐? 그래도 난 말은 건다고!"
시어도르가 입술을 삐죽였지만 팬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어도르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런 녀석에게 들켜가지고는.
들킨건 그 날, 책읽기 시합을 하던 때다. 팬시와 경쟁이라도 하듯 책을 읽다가 다프네에게 독서록을 제출(?)했을 때 말이다. 그 때 다프네가 한 말이 아니었다면 들킬 일도 없었을거다.
'팬시랑 잘 어울리네?'
그 때 그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농담조로 말하는 다프네는, 아. 아, 얘는 나를 전혀 연애대상으로 안보는구나. 새삼스럽지만 딱히 생소하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입술을 깨물고는 슬리데린 기숙사를 나가고, 다음 날에 팬시 파킨슨이 하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시어도르는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걸 막을 수 없었다.
'너, 다프네 좋아하는구나?'
능글능글한 어조로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 약점을 잡은 것 마냥 거드름을 피우는 것도 짜증났다. 시어도르는 지금도 험악한 인상을 반쯤 더 험악하게 구겼다.
"내 말 듣고 있어?"
"…어어."
"안듣고 있지?"
팬시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시어도르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안듣고 있냐고 물어봤거든? 듣는 척이라도 해봐!) 책에 시선을 기울였다. 결국 펜시의 관심은 빅터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너는 충분히 승산있어, 빅터. 못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말라니까?"
"…해보겠다, 노력."
"그래, 그 말투 좀 교정하고 나서."
시어도르가 턱을 괸 채로 대꾸하면서 책장을 한장한장 넘겼다. 팬시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 이미 다 시도해 본 거니까. 그 놈의 친구. 친구가 안됐어야 했나. 시어도르는 짜증어린 손길로 머리를 헤집었다.
"너도, 일단 춤신청이나 해."
"춤신청은 무슨! 걔는 나한테 관심 없다니까? 그냥 친구로서 신청한걸로 알걸?"
"아니, 중요한건 그 뒤야."
펜시가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치켜세웠다. 시어도르는 슬그머니 턱을 받치던 손을 제자리로 내려놓았다.
"털털한 분위기를 달달한 분위기로 바꿔야지. 이렇게 말해. 춤 한 곡 추실래요, 아가씨?"
"우웩."
"네 얼굴로 말하면 어느 정도는 승산 있어. 그런 태도만 아니라면."
대충 팬시의 얼굴을 해석하자면, 천년동안 혼자 있고 싶지 않다면 하자는대로 하라는 뜻 같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참신하네. 시어도르가 입꼬리를 비틀어올렸다.
"확실한거지?"
"그럼."
시어도르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팬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한 번은 믿어도 될거다.
* * *
"춤 신청, 했다!"
"봐봐. 된다니까?"
팬시가 자신도 뿌듯한 표정을 하고는 빅터의 어깨를 팡팡 쳤다. 빅터는 조금 단호하게 팬시의 손길을 벗어났다.
"나, 있다. 여자친구."
"아직 그 단계는 아니지 않나…"
"뭐 어때! 기합 들어가서 좋잖아?"
팬시는 빅터가 성공했다는게 어지간히도 기쁜 것 같았다. 시어도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남 일을 자기의 일처럼 기뻐해 주는건가. 어쨌든 이제 자신의 차례였다. 팬시가 손을 모으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시어도르는 반쯤 긴장하며 슬리데린 기숙사에 들어갔다.
"야, 다프네."
"어? 왜?"
"너 내 파트너할래?"
"뭘 새삼스레? 난 항상 파티 때에는 네 파트너잖아."
다프네가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팬시가 들어오면서 혀를 차는 것 같았다.(무언의 압박이 들려왔다. 그렇게 신청하면 안돼) 어쨌든 허락했다! 시어도르가 입술을 끌어올렸다.
"아니, 할 여자애들이 없어서."
"그래? 알았어."
다프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숙사로 들어갔다. 시어도르는 입가에 웃음을 활짝 머금었다.
* * *
"…왜 여기까지 왔냐."
"넌 분명히 옷만 입고 올거잖아. 내가 꾸며주려고."
시어도르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물론 그렇다고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팬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마법약 몇 가지를 꺼냈다. 빅터도 같이 대동한 채였다.
"…너도 온거냐?"
"……."
빅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어도르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고는 빅터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진짜 너한테만 알려주는건데-"
"…진짠가?"
"그래, 영국에서 통하는거야."
빅터의 눈이 반짝반짝 해졌다. 시어도르는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열심히 참고는 빅터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중에 뭐라고 하기 없기다."
"…? 알았다."
넌 참 순진한 것만 빼면 시체야. 시어도르는 빅터를 위해서 그 말은 삼켜두었다. 팬시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시어도르를 바라보았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냐는 눈빛이었다. 시어도르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