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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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자. 지금 스키터는 내가 드레이코 말포이란걸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모른 척만 하면 된다는거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부러 높은 목소리를 내었다.
"네에? 저는 시다네 그래슨인데요."
"그럴 리가…"
스키터가 이상하다는 듯 눈을 게슴츠레 뜬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내가 드레이코 말포이라는걸 들키면 진짜 좆된다. 스키터는 '말포이 가의 하나뿐인 외동아들! 병에 걸린 채로 투병생활중?' 같은 기사만 쓰겠지. 그 주제로 책 한 편도 더 쓸 수 있을거라고 확신한다.
"말포이 군이라면 그 드레이코 말포이 말하시는 건가요? 으음, 슬리데린의 그 순혈주의자요?"
시발, 내가 날 까게 될 날이 올줄이야. 스키터가 모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뭔가 헷갈리는 것 같다. 얼굴을 알면서도 그런 반응이냐. 아니, 드레이코 말포이는 가끔 보기만 했으니까 얼굴을 잊을 수도 있나. 스키터가 또다시 입을 열기 전에 옆의 노인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할머니! 저기 아줌마가 나한테 자꾸 말걸어."
"……."
제발 도와주세요. 간절한 눈길로 노인을 바라보자,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나와 스키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곧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감싼다.
"뭐냐? 우리 손자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뭐야."
스키터는 짜증나는 듯 머리를 한 번 쓸고는(아마 기사거리를 놓쳐서 그런 것 같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소설이 한 편 써졌다는걸 시어도르를 걸고 장담할 수 있다) 궁시렁대며 다른 곳으로 갔다. 곧 노인이 나를 보며 다시 묻는다.
"얘야, 괜찮니? 하여간 저 기자들이 문제지. 리타 스키터는 나도 안단다. 예언자 일보를 안보게 된 계기니까."
"네, 고맙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니 노인이 더욱 호탕하게 웃는다. 도대체 뭐냐.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는 말을 이었다.
"혹시 보답을 원하신다면-"
"아니다. 그런걸 바란게 아니니까."
"……."
"……."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정적만이 감돌았다. 되게 어색한데. 이제 가봐도 될까. 나는 되도록이면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노인이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가보아도 된단다. 가끔 우리 손자랑 놀아주지 않겠느냐? 방학에 올 수 있다면 말이다."
"…이 주에 한 번은 와요."
"오, 우리는 5층의 제일 안 쪽 방이란다. 나는 어거스타 롱바텀이지."
롱바텀은… 잠깐, 롱바텀은? 네빌 롱바텀의 할머니? 내가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 롱바텀은 유유히 병실로 돌아가셨다.
* * *
"전 진짜 안 아프다고요."
"디키, 오, 디키."
"무슨 병인데요?"
나시사의 얼굴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다. 아니, 그래도 아프지도 않은데 약을 먹이는게 말이 되는거냐. 지팡이로 약을 없애기도 힘들다. 병명이라도 알면 모를까.
"제발 털어놔주렴. 제발."
"……?"
"영혼이 망가진 것. 알고 있단다."
나시사가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 루시우스는 옆에서 나를 간절히 응시하고 있었다. 영혼이 망가졌다고? 영혼의 종류가 아예 달라서 그런게 아니라?
애초에 난 마법을 쓸 때에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써진다는게 느껴진다. 책에서 묘사하거나 교수님들이 알려주는 것보다 내가 감으로 하는게 훨씬 더 낫더라. 주문은 똑같았지만. 전생에 켄타우로스 강사도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영혼이 '다르다고'. 당연하다. 난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니까.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중이병 같은데.
"……."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제 영혼이 다른 세계에서 와서 그래요? 완벽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미친 것 같은 말이었다.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루시우스가 입술을 꽉 깨무는 나시사의 손을 잡는다. 루시우스는 한껏 슬픔에 베인 어조로 말했다.
"…자거라."
시발, 이젠 나도 모르겠다.
* * *
"디키, 아프면 꼭 편지하고."
"교수님들에게도 수업 못 듣는다고 해라."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루시우스와 나시사에게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기차에 올라탔다. 여전히 빈 객실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치자 창문에서 부엉이가 고개를 내민다. 사람 하나 죽일 듯한 눈빛이었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창문을 열자 예상대로 맹렬히 돌진하더라. 나는 익숙하게 동작정지주문을 걸었다. 시발.
"누가 보낸거지?"
「드레이코 말포이에게.」
아, 이건 시어도르의 글씨체였다. 분명히 부엉이가 나 싫어하는거 알고 보냈다. 나는 움직이지 못하는 부엉이를 다른 한 곳에 놓아주고는 편지를 펼쳤다. 다른 선물같이 생긴건 의심스러우니까 탁자에 놓았고.
「야, 크리스마스 선물 깜빡해서 지금 보낸다. 감사히 받아라. 그거 위험을 감지해주는 거래, 스니코스코프.」
완전 쓸데없는거 샀다. 호그와트에 있으면 언제든지 위험이 감지될텐데. 그나저나 왜 너는 안보내나 했더니 깜빡한 거였냐. 나는 선물을 힐끔 바라보고는 포장을 풀지 않기로 다짐했다. 분명 풀면 윙윙대면서 울리겠지.
「지금쯤 분명 안 풀려고 하겠지? 빨리 풀어. 넌 언제 어디서 위험에 처할지 모르니까. 그리고 네 생일 언제냐?
시어도르 노트.」
"…끝인건가."
괴상한 내용이 잔뜩 담긴 편지를 반으로 접고는 주머니에 넣었, 아니, 여기에 넣으면 안 되지. 그냥 쓰레기통에 넣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어야지.
* * *
"드레이코! 진짜 오랜만이다!"
"이 주 밖에 안봤는데."
"넌 그렇게 태클을 걸고 싶니?"
시어도르와 다프네가 서로를 노려본다. 팬시가 익숙한 듯 둘을 중재했다.
"다프네, 네가 참아. 뇌가 없는 사람한테 뭘바래."
"하긴, 알았어."
저게 중재하는건가. 시어도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둘을 바라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굉장히 가소롭다는 태도였다.
"어차피 책내기에서 진 주제에."
"시디도 여전히 춤 못 추더라?"
결국에는 같이 춘거냐. 투닥거리면서도 잘도 논다. 그런 심정을 담아 시어도르를 쳐다보니 그는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팬시가 알만하다는 듯 혀를 찬다. 시어도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
나만 이 상황 이해 안 되는건가. 때마침 어리둥절한 기색인 다프네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너도 이해 안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