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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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생일선물을 사고 슬리데린 기숙사로 돌아오자 다프네와 팬시가 언쟁 중이었다. 시어도르는 그냥 책을 읽고 있었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냐. 팬시가 나를 보더니 전투적으로 외친다.
"드레이코, 무도회 누구랑 갈거야?"
"나랑 갈거지?"
"넌 저 녀석이랑 가."
"미쳤어? 쟤 춤 진짜 못춰."
"…다 들린다."
시어도르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팬시와 다프네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이야기 중이었다. 아니, 애초에 나는 무도회에 참석 안하는데.
"저택에 갈거야."
"저택?"
"어."
"무도회 안 가는거야?"
"부모님이 오라고 하셔서."
다프네가 한숨을 푸욱 내쉰다. 팬시도 세상이 무너진 표정이었다. …시어도르의 춤실력이 그렇게 나빴나. 다프네가 기운이 빠진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럼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겠네."
시어도르는 고려 대상도 아닌거냐. 팬시도 마찬가지로 시어도르를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아니, 나 이제 춤 잘 추거든?"
"팬시, 넌 누구랑 할거야?"
"몰라. 일단 쟤는 아니겠지."
"나도 너랑 안해!"
"난 그럼 크레이브한테 말해볼까? 어쨌든 시어도르 보다는 나을거 아냐."
"음, 그럴까?"
"내 말은 듣고 있는거냐?"
시어도르의 목소리는 아련하게 씹혔다. 이제는 인간 취급도 안해주는거냐. 나는 그 사이에서 초콜릿 한 개를 더 먹었다.
* * *
기차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빈 객실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무도회에 참석하는 경우라서, 나는 편하게 빈 객실에서 혼자 있을 수 있었다.
"디키!"
"드레이코!"
"오랜만이에요."
"그래, 어디 안다쳤니? 아픈 곳은 없고?"
"없어요."
"집요정."
"네! 가일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요!"
나시사가 나를 껴안는 동시에 가일이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이동은 언제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지. 토할 것 같다. 나시사가 나를 더 꽉 껴안으며 중얼거린다.
"디키, 보고 싶었단다."
"저도요."
"주인님, 마님, 도련님! 생일파티를 시작해도 될까요?"
루시우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볼이 상기되어 있다. 나시사도 후후 웃으며 가일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신이 난 부모님은 처음이다. 가일도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주인님과 마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생일은 아니지만 말이지."
"드레이코와 함께 축하 받으니까 더 좋은 것 같군."
루시우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오늘따라 루시우스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어쩐지 나를 볼 때면 얼굴이 무너졌지만.
"아, 여기 선물이요."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 주려고 산거니?"
그럼 누구 주려고 산 거겠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목걸이를 내밀었다. 루시우스와 나시사의 백금색이 그대로 담긴 목걸이였다. 은색 줄이 백금색의 보석을 휘감았는데, 그것마저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고맙구나."
"디키, 최고의 선물이란다."
나시사가 목걸이를 바로 목에 걸었다. 루시우스도 마찬가지였다. 나시사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는데, 어쩐지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가일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목걸이가 그렇게 감동적이었던 건가. 루시우스가 손뼉을 쳤다.
"생일파티를 해야지, 씨시."
"……응."
"아직은 괜찮잖아, 아직은…"
루시우스가 달콤한 어조로 나시사에게 속삭인다. 목소리가 슬픔에 베여 있었다. 그나저나 아들 앞에서 연애하고 싶은건가. 한창 뜨거우실 때다.
* * *
"말포이 군, 조금 숨을 참으셔야 합니다. 약이 쓸 수도 있어요."
"약은 안 먹어도 돼요."
"아뇨, 드셔야 합니다."
왜 그걸 네가 정하는데. 나는 나오려는 한숨을 참고 약을 입에 머금었다. 뒤쪽의 손은 소멸마법을 착실히 쓰고 있었지만. 치료사가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원하는대로 먹어줘도 그런 표정이냐.
"이주일에 한 번만 오시는 대신에, 이 약은 꼭 병행하셔야 합니다. 보호자분을 통해 드릴게요."
"저 안 아픈데요."
"꼭 그러셔야 합니다."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는 것 같다. 루시우스와 나시사도 그렇고, 도대체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있기는 한건가.
"안 아프다고요. 검사하셨으면 아시잖아요?"
"…네, 잘 알고있죠."
치료사가 입술을 깨문다. 그러니까 알고있는 사람이 왜 저러냐고. 내가 말을 하려는 순간 치료사가 표정을 갈무리 하고는 입을 열었다.
"무조건 절대안정 입니다. 하루 동안 침대에 누워 있으세요. 마법약 드릴테니까 그건 지금 복용하시고요."
"……?"
그리고 나갔다. 뭐지, 엿 먹으라는건가.
* * *
이왕 온거 성 뭉고 병원이나 구경해야 겠다. 아니, 사실 병동에 쳐박혀 있기가 싫었다.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병동에 누워 있으라니. 심지어 책이나 게임기도 없이 말이다.
"어쩌다 다치신겁니까?"
"꼬맹이한테… 음, 맞을 뻔 했어."
"스키터 씨를요?"
"그 빌어먹을… 그나저나 여기에 온 유명한 사람들 없어? 진짜?"
"개인적인 일은 안됩니다."
왜 이렇게 시끄러운거지. 나는 지팡이를 휘둘러 방음 마법을 걸었다. 덕분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서 조금 편했다. 그런데 여기 어딜까. 몇 분 만에 길을 잃어버린 나는 침착하게 길을 되짚었다. 조금만 가다보면 나오겠지. 아니면 치료사가 찾으러 올거다.
"아무 것도 안들리니까 진짜 편하네."
쓸데없이 예민한 귀 때문에 귓속말도 들렸었는데. 역시 방음마법을 배워놓은건 잘한 일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병실에 도착했을거다. 누군가와 부딪히지 않았다면.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에 보석이 박힌 안경 그리고 악어 가죽 핸드백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사실 방음 마법 덕분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나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떨치려고 노력하면서, 뒤쪽의 손으로 지팡이를 휘둘러 방음 마법을 풀었다.
"내가 몇 년을 살았지만 너같이 예의없는 애는 처음본다. 사례비 안줄거면 썩 꺼-"
내가 보고있는건 환상일거다. 제발 환상이라고 해줘. 여자는 나를 알아본건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빨간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이 내 어깨를 감싼다.
"설마 드레이코 말포이 군이니?"
시발, 왜 넓은 병실에서 리타 스키터랑 마주치냐.
[작품후기]
옛날의 시어도르와 다프네
다프네: 시디(애칭) 다음 주에 파티 참석할거야?
시어도르: 아니
다프네: 같이 하자- 다른 애들은 별로란 말야. 춤출 사람도 없고.
시어도르: …그러던지.
*
다프네: 춤출래?
시어도르: 싫어.
다프네: 힝(8ㅅ8)
시어도르: …….
*
다프네: 잠시, 야, 잠시만.
시어도르: …내가 싫다고 했잖아.
다프네: 이렇게 못 출줄은 몰랐지…! 악, 내 발!
시어도르: …….
다프네: …내가 리드할테니까 그냥 따라와(박력)
디키가 스키터를 만난 이유
팬시: 아, 진짜 심심해! 저 녀석이랑은 춤도 추기 싫어!
다프네: 그래서 파트너가 없구나?ㅎ(악의없음)
팬시: (말없이 딱정벌레를 던진다)
스키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