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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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에는 해리 포터의 영웅담이 솟구쳤다. 다프네가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 포터가 이길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면 말 다했다.
다프네의 말에 의하면, 해리 포터는 처음에 빗자루를 소환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을 피해 도망다녔고. 바뀐 지팡이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꽤 괜찮았어. 그 지팡이는 바꾼거라며? 그러니까 그 모양이지. 용한테 공격받으려 할 때 바로 빗자루가 날아오더라."
"맞아, 그리고 그 빗자루를 타고 용을 유인했어."
팬시가 드물게 신이 난 목소리로 말한다. 그게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거냐. 하긴, 팬시 파킨슨은 퀴디치를 엄청 좋아했으니까. 내가 퀴디치 팀에 들어갔을 때 제일 기뻐했던 사람이었다.
"완전 굉장했었어! 빅터 같았다니까?"
"빅터?"
"아, 크룸 말이야."
팬시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시어도르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프네만은 달랐다. 다프네는 거의 금시초문 격인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팬시를 바라보았다.
"크룸하고 친해?"
"뭐… 그다지? 그냥 연애를 도와주는 여자라고 할 수 있지."
팬시는 어깨를 으쓱이며 과자를 하나를 더 집어먹었다. 시어도르도 알고있는 사실 같았다. 두 사람은 책을 읽는 것으로 경쟁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헤르미온느와의 연애를 도와주는거겠지. 도서관에 거의 매일 드나든게 이렇게 적용될 수도 있었구나. 조금은 신기했다.
"나보다는 저 녀석하고 더 친해. 그렇게 열심히 읽던 책이 빅터가 추천한 책이었다니까?"
"하긴, 시어도르가 퀴디치를 좋아하긴 하지. 크룸도 좋아하고 말야."
다프네가 쿡쿡 웃으며 시어도르를 놀린다. 시어도르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그냥 책에 얼굴을 묻었다. …책장이 안넘어가는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말 나온 김에 도서관 가자. 연애가 얼마나 진행된건지 확인도 할겸."
"너희도 같이 갈래?"
다프네는 조금 고민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룸도 임페리우스 저주나 다른 저주에 걸렸을 확률이 있으니까. 이고르 카르카로프가 교장인데 뭔들 안걸릴까 싶었다. 변장했을 가능성도 있고 말이다.
"드레이코, 아닌 척 하더니 크룸 팬이구나? 좋아, 나도 갈게."
다프네가 다시 웃으며 중얼거린다. 시어도르도 아닌 척 비웃고 있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나는 변명하는걸 포기했다.
* * *
"같이 왔는가? 친구랑."
크룸이 꽤 유창한 말로 중얼거린다. 문제는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거다. 크룸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인상을 쓰고는 입을 열었다.
"드레이코, 말포이?"
"유명인이라서 좋겠다?"
킥킥 웃는 시어도르를 노려보다가 떨떠름하게 서있는 크룸에게 다가갔다. 크룸이 엉거주춤하게 손을 내민다. 악수하자는 건가.
"넌 빅터 크룸?"
"그렇다."
"그래서 진전은 있어? 말은 걸어봤어?"
"……."
팬시의 말에 크룸이 조개마냥 입을 딱 다물었다.
"너희 지역으로 초대는 했어? '그 애'랑 대화는 했고?"
"대화를 했으면 도서관에 이렇게 쳐박혀 있지 않았겠지."
크룸은 그 말을 듣고는 몸을 추욱 늘어뜨린다. 정곡을 찔린거냐. 신랄하게 중얼거린 시어도르도 아직까지 말을 걸지 않을지는 몰랐는지 입을 살짝 벌렸다.
"설마 아직 말도 안건거야?"
"……."
"와, 너도 참 여러 의미에서 대단하다."
"해봤다, 노력. 그런데 있다, 계속, 붙어."
크룸이 이를 갈며 중얼거린다. 지금 동작만 보면 질투에 눈이 먼 전남친 같다. 딱 그 느낌이었어. 다프네가 궁금하다는 듯 눈을 말똥말똥 떴다.
"누군데 그래?"
"포터랑 붙어다니는 애 있잖아."
"아, 그레인저?"
크룸이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누가 듣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어차피 뒤에서 따라다니는 다른 학생들도 이 거리에서는 대화내용을 못 들을텐데. 참 유난이었다.
"불러라, '그 애'라고."
"하아?"
이러면 여자 친구는 커녕 여자사람 친구도 없을거야. 팬시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쯧쯧 찼다. 다프네는 어이없다는 듯 크룸을 쳐다보았지만 금방 호칭을 그 애라고 바꿨다.
"하지만 포터는 그 애를 여자로도 취급하지 않아. 그 애도 그렇고."
"내가 연회장에서 봤었는데, 너는 포터를 경계할게 아니라-"
"……?"
"-아니,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시어도르는 충고를 하려다가 포기한 것 같았다. 그래, 조금 참담하긴 하다. 크룸이 눈을 끔뻑끔뻑 뜬다. 다프네가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내가 상상한 빅터 크룸이 아니야."
마찬가지다.
* * *
"못한다, 그런거."
"할 수 있다니까?"
팬시의 말에 크룸의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오른다. 누가 보면 괴롭히는 줄 알겠다. 팬시가 답답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왜 못해! 그냥 날씨 좋구나! 이렇게 말하고, 그리고 말문 좀 트고! 그렇게 하면 되잖아!"
"모, 못한다."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거야."
다프네가 흥미로운 어조로 중얼거린다. 누가 봐도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놀림받는 크룸이 퍽 불쌍해질 때쯤, 그가 마침 생각난 듯 고개를 들고는 나를 쳐다봤다. 설마 안 도와줬다고 삐진거냐.
"말포이."
"……?"
"말했다, 카르카로프 교수가. 배에 한 번 놀러오라고."
카르카로프는 같은 죽음을 먹는 자인 말포이와 어떻게든 연을 대고 싶은 것 같았다. 뭐, 나로서는 좋지만. 어차피 그 쪽도 수색할 거였는데 초대해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