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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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는 미리미리 해놔."
"드레이코, 의외로 정리 안하고 사는구나."
"괘, 괜찮아…!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돼!"
"……그래, 고마워."
셋의 격려(?)를 받고는 다시 말끔해진 망토를 옷걸이에 걸었다. 의외로 빌린 물건(빌리기 보다는 강제로 안겨 주었다는게 맞겠지만)도 많아서, 돌려주는게 더 힘들 지경이다.
"뭔, 손수건이 이렇게 많은거지."
열 개 정도 되는 손수건을 책상에 놓고는 그냥 침대로 누웠다. 나중에 돌려줘야겠다. 이제는 익숙해진 수면제를 입에 넣는다.
* * *
"헤르미온느."
"응?"
"저번에 빌린 손수건."
헤르미온느가 의외라는 듯 손수건을 받는다. 뭐냐, 그 못 받을걸 받았다는 표정은. 옆에서 로널드가 해리에게 소근거린다.
"진짜 줬네? 까먹은 줄 알았는데."
"고마워. 까먹은 줄 알았는데."
"……."
내 취급이 왜 이런거지. 설마 다 잊을 줄 알은거냐. 나는 그냥 무시하고는 래번클로 기숙사로 향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초상화들이 쑥덕거린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어디를 그렇게 가냐?"
뒤를 돌아보니 시리우스가 보인다. 천문학 수업 가는 도중인가. 시리우스는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초상화를 망가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지팡이를 들며 으르렁 거렸다.
"너희는 구경났어? 왜 수근대는데?"
"어머, 어머!"
"어머는 무슨."
시리우스가 심드렁하게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이미 초상화에는 아무도 들어있지 않았다. 다 도망간건가. 시리우스는 나를 보더니 마음에 안든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건 강하게 나가야 하는거야. 듣고 있기만 하지말고."
"…그러네요."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눈을 크게 뜨다가 씨익 읏는다. 방금 그 웃음, 밀리센트 벌스트로드가 봤으면 쓰러지고도 남았다.
"어디 가요?"
"천문학 수업. 드레이코, 너는?"
"…래번클로 기숙사요."
"어디 있는지는 아냐?"
작게 고개를 끄덕이니 미묘한 표정으로 변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호그와트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돌아다닌거야?"
"시리우스도 그랬잖아요."
"그건 그렇긴 하지."
할 말이 없는지 우물대는게 꼭 개 같았다. 나쁜 뜻은 아니고, 그냥 진짜 개 같았다고.
"저 먼저 갈게요."
"아, 그래. 몸조심하고!"
…그게 인사인거냐. 나도 손을 대충 흔들고 래번클로 기숙사로 향했다.
"……."
너무 힘들면 말도 나오지 않는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랬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서있지도 못할 것 같다.
"네가 풀어봐!"
"아니, 독수리님, 제발 보내줘요."
그나저나 왜 이렇게 사람이 가득한거지.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니 독수리 석상과 그 앞의 래번클로 학생들이 한가득 이었다. 설마 문제 못푼거냐.
"그냥 포기해-"
"래번클로의 이름을 걸고 그럴 수는 없어!"
"네 침낭도 줄까?"
"……어."
학생들을 살펴보니 러브굿은 없는 것 같았다. 설마 기숙사 안에 있는건가. 그냥 래번클로 학생 한 명한테 갖다달라고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를 못 맞추면 들어갈 수 없다!"
"융통성없는 새대가리 같으니라고."
"야, 다 들려."
"반장, 반장님 없어?"
"반장님도 못풀었단다."
…좀 심각한 것 같은데. 어떡하지. 그냥 들어갈까.
"아니, 이건 진짜 풀 수 없는 문제-"
"어?"
"슬리데린 학생이 왜…?"
"말포이 아냐?"
"말포이?"
수근대는 목소리가 학구열에 불타오른다. 래번클로는 또라이들 이라더니, 어느 정도는 맞는 소리인 것 같다. 나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그냥 적당한 래번클로 여학생을 찾았다. 러브굿한테 건내달라고 부탁하면 되겠지.
"뭐야, 말포이 도련님 아니야?"
"……?"
비꼬는 목소리가 유난히 적대적이다. 고개를 들으니 아니꼬운 표정이 한가득인 래번클로 남학생이 있었다. 옆의 또다른 남학생들이 그 남학생에게 수근거린다. 지금 사람을 앞에 두고 뭘 하는거지. …그리고 계속 생각하는 거지만, 귓속말 다 들린다.
"쟤 말포이잖아! 그 말포이! 아픈 애한테 지금 뭐하는거야."
"그런데 무슨 병 걸렸는지 궁금하지 않아?"
"물어보면 되잖아."
"실례야."
"래번클로가 언제부터 그런걸 따졌다고."
"조용히 해. 나 순수혈통 싫어하는거 몰라?"
남학생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일갈하며 나를 흝어본다.
"순수혈통의 대표격인 말포이 도련님께서 웬일로 행차하신거야?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도련님?"
표정과 말투에 악의가 가득했다. 아직까지 건드리지는 않는다. 나는 그냥 가만히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별로 화내고 싶지도 않았고, 조금 한심하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나랑 3살 차이 나는 사촌동생이 시비거는 느낌이다.
"……뭔데."
"문제를 못 풀겠어서 말이야! 기숙사 문제 좀 풀어줄래?"
"루나 러브굿 알아?"
"…? 알지."
남학생이 그건 왜 물어보냐는 듯 눈썹을 까딱인다. 어쨌든 안다는거지.
"그럼 이것 좀 전해줘."
"……?! 뭐? 지금 자신 없는거야?"
계속 도발하려는 남학생을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움찔거릴 거면서 도대체 왜 시비거는거냐.
"지혜는 인간의 가장 큰 보물이다."
"뭐야?"
"인간의 보물을 말하라고 했잖아. 당연히 그거겠지."
반장이 막 생각난 듯 탄성을 지른다. 나는 다시 슬리데린 기숙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