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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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주 평범한 학생. 사실 과거는 별로 회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뜬끔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건.
- 힘이 남아 도나보다?
꿈 속에 내 과거가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들더니 남자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주먹 쥔 손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 …하지마.
- 하지뭬~
- 미친, 똑같잖앜…!
남자가 유쾌한 듯 웃는다. 그 밑에는 표정없이 반쯤 누워있는 '내'가 있었다. …시발, 별로 보고싶지도 않았는데.
- …….
- 요새, 너무 교육을 안한것 같아서.
- 야, 대답안해?
남자(이름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는 다시 낄낄대며 웃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면서,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원래부터 이랬지. 소름돋는 이중성에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장면이 바뀐다. 교실이 무너지고 그것을 채운건 체육관이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공을 던지고 있었다. 남자가 실수인척 공을 '내' 쪽으로 던진다. 그걸 누군가가 잡았다.
- 좀, 그만하라고
아.
- 유치하지도 않냐?
더는 못 볼것 같았다.
다시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었다. '날' 도와준 그 애가 '나'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니까, '나'대신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 유치하지도 않냐라고?
- 재밌네. 이건 유치해보이냐?
'나'는 반쯤 업드려 있었다. 제발, 그만하면 좋겠다. 제발, 제발 멈춰 줘.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었다.
- …도와줘야 할까.
- 왜?
- 나 때문에 저렇게 된거잖아.
- 어차피 넌 아니잖아.
그 애가 '나'를 지나간다. '나'는, 그 애를 모른척했다.
다시 장면이 바뀐다. 이번에는 옥상이었다.
- 뭐… 하는거야?
- 전부 너 때문이야.
그 애가 서늘하게 웃었다. '내'가 앞으로 살짝 다가갔다. 그 애는 장난치듯 옥상 끝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는 놀람을 넘어서 경악한 것 같았다.
- 너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 ……잠시만, 내려와. 내려오라고!
그만, 제발 그만하라고. 눈을 감았지만 감은 눈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 애는, 망설임없이 뛰어내렸다.
- 아아악!
- 다 안으로 들어가! 다가오지 마!
- 여보세요, 거기 119죠?
빨간 피, 학생들이 웅성대는 소리, 선생님들의 고함소리. 모든게 섞여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황망히 서있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옥상에 다가선다. 빌어먹게도, 그 애는 너무 잘 보였다.
"…제발."
다시 장면이 바뀐다. '나'는, 전화를 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 …어, 괜찮아.
분명 저건 정민균이었다. 쓸데없이 걱정이 많아서, 상담센터에 간 다음 한 전화일거다.
- 괜찮다니까. 그렇게 힘들지 않-
그리고, 트럭이 '나'를 쳤다.
* * *
"……!"
…꿈이었냐. 하긴, 애초에 꿈인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땀으로 젖은 머리를 쓸었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네, 얼마나 지난거죠?"
"아, 거의 반나절 동안 잠들어 계셨어요."
쌍둥이들을 욕할 기력도 없어졌다. 나는 그냥 침대에 몸을 늘어뜨렸다. 계속해서 속이 울렁거렸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피와 사이렌 소리, 고함 소리와 웃는 그 애의 얼굴은. 아주 선명하게 말이다.
"……우욱."
"괜찮으세요?"
"…네."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내가 혐오스러웠다. 어떻게 그 일을 잊으려고 할 수 있지? 어떻게 내가. 나는 그 일을 잊어서는 안되었다. 다른 누구도아닌 나는, 감히 그 일을 잊을 수 없었다.
"드레이코!"
"디키!"
루시우스와 나시사가 나에게 다가온다. …진짜 빠르다. 루시우스가 나를 꾹 안았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떨렸다.
"괜찮, 괜찮은거냐…?"
"환자분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이런 증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영, 아무튼 그게 문제인 만큼 작은 스트레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
옆에 서있는 치료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사실 조금 더 피곤했다. 다시 잠들고 싶었다. 나는 그냥 눈을 꾹 감았다.
* * *
"아픈게 아니라니까요? 꾀병사탕을 먹어서 그런거예요."
"그걸 왜 먹었는데?"
이러면 할 말이 없어진다. 쌍둥이들을 말하면 분명히 일이 커질거다. 나는 눈을 대답대신 도르륵 굴렸다. 나시사가 그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급하게 말을 돌린다.
"호그와트에 다시 갈거니, 디키?"
"……네."
"그래, 크리스마스 쯤에 무도회가 열린다는구나. 디키, 네가 가고싶다면 참석해도 된단다."
"괜찮아요."
"올거니?"
"와야죠."
"…고맙구나."
루시우스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 이상 시체를 보기는 싫었다. 누군가가 싸늘하게 죽는걸 보는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어떻게는 버텼지만 지금도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디키, 호그와트에 가서도 뭐든지 네 마음대로 하렴. 참을 필요 없단다."
"그래,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
루시우스가 농담조로 중얼거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꾹 쥐었다.
볼드모트는 부활하면 안된다. 그 지옥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아니, 보고싶지 않았다.
[작품후기]
여러분ㅠㅠㅠ 팬아트를 받았어요ㅠㅠㅠ 진짜 너무 기뻐요ㅠㅠㅠ 우리 디키 왜 이렇게 예쁜거죠ㅜㅜ 나리아키님 감사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