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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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서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나는 입술을 조금 깨물고는, 그대로 슬리데린 기숙사를 뛰쳐나갔다. 지팡이를 휘둘러서 찾았지만 결국은 헛수고였다. 벌써 슬리데린에서 없어진건가. 나는 고르지 못하게 변한 숨을 되돌리려고 노력하면서,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향했다.
블랙, 시리우스 블랙을 만나야 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만이 가득한 것 같았다. 페티그루를 놓친걸 그에게도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정신없이 걸어서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액자 앞에 섰다.
"패드풋."
"너는 슬리데린 학생이잖니?"
나는 대꾸하지 않고 부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니까. 부인이 투덜거리며 문을 열어주었다.
"블랙."
그렇게 부르자 블랙이 짜증나는 듯 몸을 들썩였다. 쌍둥이들이 이쪽을 바라본다.
"도련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물음표의 향연이다. 내가 어때서 그러냐. 내 얼굴을 못보니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쌍둥이와 블랙을 데리고 금지된 숲 쪽으로 갔다. 내가 항상 다니던 인기척이 드문 장소였다.
뭐부터 말해야 되지? 여러 생각이 뒤섞여서 하나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본론이니 말해야겠다.
"…페티그루를 찾았어."
"와우, 진짜?"
"그런데 놓쳤어."
"오…"
쌍둥이들이 서로 눈짓을 했다. 그러더니 결심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레질리먼시냐.
"그럼 도련님-?"
"우리는 이만 가볼께!"
"알지는 모르겠지만-"
"-퀴디치 결승전 이거든!"
"래번클로와의 대결이지."
"연습을 해야한다고?"
"어차피 우리가 이기겠지만!"
그들이 빠르게 말을 나열하고는 허허허 웃으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블랙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사람으로 변했다.
그가 나를 한참동안이나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곧 머리를 벅벅 긁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무슨 일 있냐?"
내 얼굴이 그렇게 티가 나는건가. 빠르게 표정을 수습하고는 무덤덤히 블랙을 바라보았다.
"아니요, 별로 없어요."
"알았다."
둘다 우뚝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생각이 잘 정리되는 것 같았다. 일단 페티그루는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으로 향했을 확률이 높다. 원작에서 그랬으니까. 언제 도망칠지 모르니 바로-
"그, 뭐냐. 그러니까 내가 할 말은-"
블랙이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몇 번이고 마른 세수를 하며 앓는 소리를 내던 블랙이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안 찾아도 돼."
"…네?"
"신원은 너에게 줄께. 물론 내 혐의가 풀리면 말이지. 그러니까 이제 안 찾아도 돼."
블랙이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한다. 그가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돌렸다.
"하여간 저 녀석들, 눈치만 더럽게 빨라. 내가 둘이 얘기하고 싶다는걸 어떻게 안거야?"
말을 돌리는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블랙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가 주절주절 다른 말을 하면서 나를 걱정하는 듯 곁눈질을 반복했다.
왜 모르고 있었을까. 피해자가 가해자인 것처럼, 가해자도 피해자일 수 있었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집."
"…엉?"
"제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 말만 하고는 다시 호그와트로 향했다. 더러운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도 같았다.
* * *
해그리드와의 수업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었다. 해그리드는 분명히 변화가 있을거라고 말하지만, 글쎄. 변화가 없는게 정상 아닐까. 애초에 난 동물이 싫어하니까 말이다. 괴물책도 동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책에 먹이를 가까이 대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여전히 이빨을 딱딱거리며 으르렁 거렸다. 넌 질리지도 않냐.
"잘 되고 있어?"
해그리드가 차를 끓이며 물었다. 특별 수업이라고 계속 얼굴을 맞대서 그런지 조금 친해진 것 같았다.
"그런 것 같아요?"
"음… 조금 더 노력해봐."
노력한다고 될 일이냐. 사납게 으르렁 거리던 괴물책이 지팡이를 들자 잠잠해졌다. 역시 폭력 말고는 방법이 없는건가.
"대화를 해보는게 어때?"
"……?"
"시범을 보여볼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해그리드가 끓이던 차를 나무 탁자에 놓고는 최대한 친절해 보이는 얼굴로 괴물책을 바라보았다. 웃으려고 열심히 입을 벌리는게 약간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안녕, 너는 이름이 뭐니?"
"……."
"괴물책(Monster book)이니까 스터(Ster)라고 물러도 될까?"
"……."
"좋아, 스터. 과자 먹을래?"
"……."
반응이 없는 것 같은데. 이게 바로 집단적 독백인가. 한 쪽은 으르렁거리고 한 쪽은 열심히 말을 거는 모습이 슬프기 그지 없었다.
"과자 싫어하니? 초콜릿?"
해그리드,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어이가 없다는 뜻으로 해그리드를 바라보았지만 괴물책에게 말 걸기도 바쁜 해그리드는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럼- 과일 좋아해?"
계속 답이 없자 해그리드가 실망한 기색으로 사과 한 개를 괴물책에게 내밀었다.
"머, 먹었어! 드레이코, 이거 보이니?"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하네요."
놀랍게도 괴물책은 사과를 맛있다는 듯 먹고 있었다. 그런데 저 사과는 어디로 가는거지. 책이니까 소화도 못하지 않나.
"스터는 과일을 좋아하나 보네- 좋아, 이런 식으로 다루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꺼야. 할 수 있겠어?"
"…노력해 볼께요."
나만 보면 으르렁 거리기 바쁜 괴물책에게 사과를 준다는 것부터가 하드 모드인 것 같지만.
나는 해그리드 몰래 지팡이를 휘둘러 보았다. 블랙이 찾겠다고 했지만 약간 떠넘긴 것 같아서 그랬다. 뭐, 어쨌든 여기에 있겠지.
…없어?
* * *
세베루스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아이의 말이 아직도 선연했다.
- 그게- 폭력이란건 알고 계십니까?
폭력이었을까. 알고 있었지만 역시 인정하기는 싫었다. 세베루스가 눈을 꾹 감았다. 릴리, 넌 어떻게 했을까.
아니, 릴리는 화풀이를 하지도 않을 거였다. 세베루스는 그녀를 잘 알고 있으니까. 세베루스가 자조적으로 미소지었다. 애초에 그녀는 너무나 빛나는 사람이었다. 자신과는 대조적으로.
화풀이는 별로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 스니벨루스.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네빌 롱바텀. 그 아이만 생각하면 짜증났지만, 그가 잘못한 걸 수도 있었다.
"제길…"
그는 마침내 인정했다. 그가, 그 빌어먹을 마루더즈와 비슷한 짓을 했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