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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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듣고난 이후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대체로 말이 없었다. 각자 생각할 것도 울적해지는 날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파킨슨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드레이코 말포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오늘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말이 없는 해리와 론 사이에서 헤르미온느가 던지듯 툭 말을 꺼냈다.
"저녁 연회 쯤에 해그리드의 재판이 끝나."
"재판?"
"재판이 있었어?"
헤르미온느가 말하자 론과 해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헤르미온느는 한심하게 둘을 쳐다보았다.
"몰랐니?"
"어, 음…."
"가볼까? 지금 쯤이면 저녁 연회 시간이잖아."
변명거리가 없던 해리는 론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론과 해리는 도망치듯 그리핀도르 휴게실을 떴다. 헤르미온느도 어깨를 으쓱이더니 둘을 따라갔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으로 향하자 떠나갈 듯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론이 귀를 틀어막았다. 해리가 문을 두드리며 걱정스레 물었다.
"해그리드? 재판은 잘 끝났어요?"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땅이 울음소리에 맞춰 웅웅 울렸다. 해리는 중심을 잡기 위해 문고리를 생명줄마냥 붙들고 있어야 했다.
해그리드가 벌컥 문을 열었다. 나동그라질 뻔한 해리를 론이 붙잡아주었다.
"와 준거야?"
해그리드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해그리드, 어떻게 되었어요? 다 잘된 거예요?"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도와주기는 했어."
"그러면 잘된 게 아니에요?"
"크흡, 그게 말이지. 그게…."
해그리드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가 코를 훌쩍이며 띄엄띄엄 중얼거렸다.
"나 때문에, 벅빅이, 벅빅이 죽을 거야. 내가 계속 교수로 있어도 되는 걸까? 애초에 내가 잘 관리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고, 말포이도 다치지 않았겠지? 전부 나 때문이야."
해그리드는 말하는 도중에도 계속 훌쩍였다. 해리는 위로해야 할지, 동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해그리드가 더욱 울적한 어조로 자기 비하를 시작했다. 해리가 뭐라도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헤르미온느가 더 빨랐다.
"맞아요. 교수 실격이에요."
헤르미온느가 눈을 날카롭게 뜨고 울먹거리는 해그리드를 향해 쏘아붙였다.
"해그리드, 말포이한테 사과는 했어요?"
해그리드가 입술을 달싹였다. 론이 해그리드를 휙 돌아보았다. 그가 입을 쩍 벌리고 물었다.
"진짜 안 했어요?"
"내가 어떻게 해… 염치도 없지…."
헤르미온느가 팔짱을 끼고 해그리드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안 했어요?"
해그리드가 대답 없이 식탁보만한 손수건으로 코를 팽 풀었다. 훌쩍이는 소리에 헤르미온느가 더욱 화난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가 눈에 불을 키고 해그리드를 쏘아보았다.
"해그리드,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자책이 아니라 더 좋은 교수로서 나아갈 책임감과 학생에게 사과할 용기예요. 전 해그리드가 좋은 교수라고 믿어요."
헤르미온느가 그렇게 일갈하며 나갔다. 해리는 속으로 동조하면서도 상처받았을 해그리드를 걱정하며 우왕좌왕했다.
해그리드가 더욱 큰 소리로 울었다. 드문드문 자기비하를 하기 시작하는 해그리드를 향해 론이 헤르미온느 대신 쏘아붙였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거예요?"
"뭘, 어떻게…."
"해그리드가 더 잘 알잖아요! 해그리드는 교수니까!"
해그리드가 눈물이 가득 찬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에서 물방울이 떨어져서 해리의 머리를 적셨다. 론이 발을 크게 구르며 오두막집에서 나갔다.
혼자 남은 해리는 머리를 흔들어 해그리드의 눈물을 털었다. 해그리드를 바라보았다.
해그리드는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벌게진 그의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해그리드는 울음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건 해리에게 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혼잣말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로…."
해리는 눈을 도르륵 굴렸다. 그는 해그리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해그리드는 교수가 처음이었다. 항상 위험한 동물과 함께 살아온 사냥터지기였던 것이다. 그런 이에게 아무런 지침도 없이 덜컥 신비한 동물을 가르치라고 한다면 분명 제대로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해리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자신이 영웅이라는 걸 받아들일 때처럼.
"말포이에게 사과부터 하셔야죠. 플러버윔 수업 말고 다른 신비한 동물도 배워봤으면 좋겠어요."
해그리드가 큰 눈을 끔뻑이며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 거기 있었어?"
"네."
해리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해그리드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가 큰 손으로 벅벅 눈가를 문지르며 우물쭈물 말했다.
"내 수업은 괜찮았어?"
해그리드의 수업은 빈말로도 괜팒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해리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해리는 애꿎은 손가락만을 꼼지락거렸다.
해그리드의 자조적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긴, 내 수업이 괜찮을 리가 없지."
"그건ㅡ"
"그래서 말인데 해리."
해그리드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비장하고 기운에 차 있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해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수업을 계획한 노트가 있거든. 그것 좀 봐주면 안 될까?"
해리는 눈을 크게 떴다. 해그리드의 눈에는 도를 넘은 험담에 대한 상처가 아닌 단단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그건 처음 교수로 부임할 때 보았던 책임감과 열정이었다.
해리는 저도 모르게 씩 웃었다. 해그리드는 좋은 교수가 될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얼마든지요."
*
「호그와트의 학생을 혼수상태로 만들고도 파면당하지 않은 신비한 동물 돌보기 교수! 이대로도 마법부의 재판은 무사한가?」
나는 1면에 실린 기사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 위조한 거였지만, 덤블도어에게 준 증거 자료가 도움이 되었나 보다.
애초에 보내준 증거 자료는 설득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반대 편을 들어줄 명분'을 준 거지.
'명분'이 없는 상태에서라면 모를까 있는 상태라면 대다수는 덤블도어의 편을 들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뒷전인 늙은이더라도, 마법 세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무시할 만한 게 못 되었다.
일이 끝나니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나는 축 늘어진 몸을 침대에 맡겼다. 긴장 완화 마법과 안마 마법이 걸린 침대가 일을 시작했다. 몸의 뭉친 근육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노곤노곤해진 몸을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감겼다.
"……?"
주머니에 뭐가 걸리는 기분이다.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니는건 많으니까. 상관없기는 한데, 왜 주머니가 꿈틀거리는 걸까.
"찌, 찍…"
손에 잡히는걸 꺼내니 언제 들어온지 모를 쥐가 겁먹은 기색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같은건 기분 탓인가. 쥐는 경계심이 많은데 깨물지 않은 것도 신기하다.
그보다 왜 쥐가 여기 있는 거지.
[작품후기]
2020. 1. 19. 수정완료.
+) 해그리드는 거인 혼혈이고 사냥터지기이다보니 위험을 느끼는 시점이 엄청 적을 거예요. 수업을 준비할 때는 위험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조언자가 필요할 것 같아요.
++) 해리는 애지만 생각이 깊지요:) 뭐, 선도 좀 잘 그어서 자기 사람 한정으로지만ㅋㅋㅋ
+++) 손댈 부분이 거의 없어서 이거 먼저 가져왔네요ㅎㅎ 시리우스랑 디키디키 만나는 부분은 어디서부터 쓸 지도 고민인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