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130
"스코지파이, 아쿠아멘티, 스코지파이, 아쿠아멘티…."
나는 몇 번이고 세척 마법과 물 마법을 반복했다.
블랙은 도저히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디멘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꼬질꼬질한 차림새였다. 아즈카반은 기본적인 세면 도구조차 안 주는 걸까.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지독하던 냄새가 없어지고 검댕이가 묻은 얼굴이 윤곽을 드러냈다. 블랙의 얼굴도 하얗게 탈색되었지만, 깨끗해졌다는데 초점을 두기로 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굽니까?"
의아한 표정을 꾸며냈다. 시리우스 블랙과 설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원작을 바꾼다고 마음을 먹은 후부터, 많은 것에 손을 쓰지는 않았다. 까딱하면 최악의 결과를 돌려받게 될 테니까. 막말로 나시사와 루시우스가 싸늘한 시체가 되거나, 볼드모트가 마법부 장관이 될 지도 몰랐다.
시리우스 블랙도 같은 맥락이었다. 괜히 관여하며 일에 오차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블랙은 그 과정에서 힘들겠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분명 그도 죽음보다 해리와 행복하게 사는 걸 원할 거였다.
"나, 는-"
블랙은 금붕어처럼 입술을 뻐끔댔다. 내가 호그와트는 외부인 출입 금지라고 말하기도 전에, 블랙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마치 자기가 무해하다는 걸 입증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나는, 금지된 숲의 지킴이다."
둘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로써 블랙의 애니마구스가 개인 이유가 확실해졌다. 자꾸 개소리를 하니까.
"아…. 네."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겠다는 판단을 내린 나는 지팡이를 쳐올렸다. 토마토 마냥 빨갛던 블랙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하얗다가 빨갛다가 파랗다가. 나중에는 초록색으로도 변할 것 같았다.
"수, 숲의 지킴이를 해치면 벌을 받는다!"
블랙이 다급한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나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안 해쳐요. 기억만 지울겁니다."
"그게 해치는 거지!"
"제가 피 토한 기억만 없앨 거라고요. 그것만 없앨 테니까 얌전히 좀 있어요, 지킴이 씨."
"……."
블랙은 입술을 일자로 다문 채 나를 빤히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복합적인 감정이 섞인 눈빛이었다.
나는 표정을 살피는 걸 그만두고 마법을 이어갔다. 말이 없는 걸 보니 분명 무언의 긍정일 것이다.
"오블리비-"
주문을 외우기도 전이었다. 얌전히 땀만 뻘뻘 흘리던 블랙이 돌연 몸을 뒤집었다.
돌발 상황에 발을 뒤로 뺐지만, 블랙이 성큼 다가오는 것으로 걸음은 좁혀졌다. 그는 내가 손을 휘두르기 전에 지팡이를 잡아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당한 악력이라 손에 잡힌 지팡이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잡힌 채로 마법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블랙이 움직였다.
"……!"
블랙이 내 손목을 잡아 채고는, 돌려서, 꺾었다. 아니, 그리 아프지 않은 걸 보면 어깨 뼈가 나가기 직전에 힘을 푼 모양이다. 머글식 싸움도 배운 것인지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싫다고 했잖아, 이 싸가지야."
내 등 뒤에 올라탄 블랙이 으르렁거리듯 뇌까렸다. 순간 그의 눈알이 서늘하게 번뜩인 듯했다. 블랙이 잡은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내 팔을 꺾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아즈카반의 죄수라는 명성에 걸맞는 분위기였다.
13살의 몸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아파?"
상당한 체중이 확 사라졌다. 숨이 트였다. 나는 잔기침을 토해내면서도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블랙에게 잡힌 손에서도 힘이 빠져나갔다. 남은 건 손을 맞잡은 거라고 느낄 만큼 가벼운 힘이었다.
"그…. 많이 아프면 병동 가라. 호그와트 보건 교수는 꽤 뛰어나니까."
"숲의 지킴이라면서 보건 교수도 아십니까?"
시선을 돌리니 개의 발바닥 모양인 손이 보였다. 날카로운 발톱이 절로 히포그리프를 연상시킨다. 저 발톱으로 밧줄을 끊은 게 분명했다.
"숲의 지킴이는 뭐든 다 알아."
블랙이 한껏 근엄한 어투로 말했다. 창피한 걸 넘어서니 뻔뻔해지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젠 어쩔 겁니까? 마법 쓰시게요? 얼굴 갖다 대드릴까요?"
나는 블랙처럼 아무 말이나 지껄이며 흙바닥에 축 늘어졌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에 가까웠다. 시리우스 블랙이 호그와트 학생을 해칠 리가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슬리데린은 예외일 수도 있지만, 설마 피를 토한 애를 죽이겠냐.
햇빛을 쬐니 나른해지는 기분이다. 눈커풀이 새삼스럽게 무거워졌다….
"아프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은 마라."
"……?"
블랙이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내 지팡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원래부터 블랙 건 줄 알았다.
나는 척추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비꼬는 말을 애써 삼켰다. 애초에 블랙은 학생에게, 그것도 말포이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 도망자 신세에 쓸데없는 도덕성까지 탑제한 그가 할 수 있는 마법은 별 없었다.
제일 가능성 높은 마법은 아마,
'기억 조작 마법.'
그리고 나에겐 신새끼의 권능이 있었다. 해보았자 별 소득은 없을테고, 그 반작용으로 기절하는 건 나일 테다.
"지킴이 씨-" 나는 통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입을 열었다.
블랙이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며 상큼하게 웃었다. 거의 처음보는 시원한 웃음이었다.
"안 해쳐. 기억만 지우는 거야."
시발, 나는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다시 돌아와서 몇번을 기절하는지 모르겠다.
의식이 저편으로 밀려나며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나는 블랙의 외침을 가볍게 흘려 들으며 생각했다. 이 느낌은 언제 겪어도 별로야.
*
바가지 머리에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인상을 가진 소년이다. 아담한 체구에 순하게 내려간 눈동자는 흔히 말하는 강아지상이었다. 소년은 걱정을 한가득 담고 말했다.
"많이 아파?"
소년이 눈을 올망거렸다. 그의 눈에는 원인 모를 억울함까지 서려 있었다.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언제더라. 이제는 맞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질 만큼 익숙했기에 저런 눈빛은 도리어 생소했다. 소년의 걱정에 어쩐지 머쓱해진 내가 짧게 답했다.
"어."
까져서 빨갛게 부푼 부분을 만져보았다.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소년이 으, 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눈을 올망이는 것이 꼭 저가 다치기라도 한 듯한 태도였다. 곧 있으면 울기라도 할 것 같았기에 나는 재빨리 상처에서 손을 뗐다.
"보건실 가서 약이라도 좀 가져올까?"
"그럴 필요는 없어."
"하지만…."
소년이 울듯 얼굴이 일그러뜨렸다. 정말로 나 대신 눈물을 쏟기라도 할 것 같았다.
"하현우, 괜찮아." 나는 단정짓듯 말했다. "걔네들이 뭘 하든 상관없어. 내가 혼혈인 게 문제는 아니니까."
흑발에 청안. 대한민국에서 퍽 특이한 조합이었다. 나는 이 학교로 올 때를 떠올렸다. 혼혈에 이민 온 남자애라 그런지 관심을 유독 많이 받았더랬다.
나는 말수도 적고 사람을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당연히 전학올 때의 과도한 관심도 달갑지 않았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계속 말을 걸어오는 통에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몰랐다. 내 대답이 어떻게 퍼진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느새 교내의 소문난 싸가지가 되어 있었다.
하나둘 말을 거는 이들이 줄어들고 시비를 거는 이들이 늘어났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은 후였다.
"내 성격이 문제도 아니고. 그냥 걔네가 아직 어린 거야."
하현우가 입술을 잘게 깨물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무언의 수긍이었다. 조용히 있겠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하현우는 축 쳐져서 웅얼거렸다.
"그래도 내가 도와줄 만한 건 없을까?"
"어…."
하현우가 의욕이 넘치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말을 끌었다는 걸 귀신 같이 알아차린 듯했다. 뭐든 말해봐.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 하현우가 소리쳤다.
나는 눈동자를 굴렸다. 이런 부탁을 해도 되는지 알 수는 없었다.
"…나중에 일 생기면 말해볼게. 싫다면 거절해도 돼."
"싫은 게 어디 있어!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할게."
하현우가 생글 웃었다.
*
검은 호수 근처에서 깨어난 후, 호그와트를 걸어서 이동한 나는 이를 벅벅 갈았다. 마법을 펑펑 써서 몰랐지만 생각보다 호그와트는 더럽게 컸던 탓이다.
내가 기절한 후에, 시리우스는 도둑질을 시도했다. 주변에 그 짓을 말릴 사람은 없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지팡이를 빼앗겼다. 의식을 잃은 바람에 옛일도 새록새록 떠올랐고.
나는 의도적으로 복도에 발을 굴렀다. 유치했지만 분노를 풀 방법이 그 길 밖에 없었다.
"말포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곧추세웠다. 의식하기도 전에 나는 스스로가 느끼기에 가장 재수없다고 생각하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슬리데린은 시비를 거는 쪽인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혼자 있다면 시비를 걸리는 쪽이기도 했다. 모든 기숙사가 슬리데린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호주머니를 뒤졌다. 망할 시리우스 블랙. 호주머니에 지팡이는 없었다.
"야, 말포이."
"아."
로날드 위즐리다. 나는 풀리려는 긴장을 다잡았다. 위즐리가 공격 마법을 날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 놈이라면 마법보다는 머글식 폭력을 부리겠지만.
위즐리가 얼굴의 모든 근육을 찡그렸다. 거의 반사적인 행동 같았다. 나는 탈출구를 눈으로 찾았다. 삐딱하게 선 위즐리가 퇴로를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너 아픈 거 아니지?"
"자꾸 뭔 소리야, 위즐리. 내가 왜 아파? 그러는 너야말로 성 뭉고 병원에 가보지 그래? 아, 하긴-"
-위즐리 가문의 돈으로는 성 뭉고 병원에 갈 수 없으려나?
따발총처럼 튀어나가려는 말을 혀를 깨물어 제지시켰다. 시리우스 블랙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 모양이다. 말이 생각을 거치지도 않고 튀어나갔다.
원작을 바꾸기로 한 이상 시비는 자제해야 하지만, 애초에 그건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포터 일행과의 언쟁이 좋다는 소리는 아니다. 정말, 아무런 자각 없이, 시도때도 없이, 창의적인 비꼼이 튀어나온다는 소리다.
"하긴, 네가 아플 리가…. 잠깐만, 너, 어깨에 그거…."
"뭐가."
어깨를 살펴봤더니 교복에 피가 조금 묻어 있다. 옷은 안봤는데, 지금까지 이 상태로 돌아다닌 건가.
지우려 했지만 지팡이가 없어 불가능했다. 이것도 블랙 탓이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살심을 누르기 위해, 혀를 한 번 차고 망토를 여몄다.
"토마토 주스야."
짧게 말하고는 위즐리를 지나쳤다.
다음 수업은 한 시간 뒤에나 있으니까. 나는 발걸음을 옮겨 화장실로 향했다. 숲은 블랙과 마주쳐 갈 수 없었으며, 이런 더러운 기분으로는 수업마저 들을 수 없었다.
[작품후기]
디키가 모르는 사이에 나도는 소문...ㅋ.. +8=130
2019. 12. 13. 수정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