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작파괴범-15화 (15/130)

15회

122

슬리데린이라면 다 아는 예법이었다. 나긋한 목소리와 팔랑거리는 움직임도 알았다. 보가트이니 모르는 것이 나왔을 리 없지. 그리 생각했지만 당황스러웠다. 어이없다는 쪽에 더 가까우려나.

나시사와 루시우스. 보가트는 드레이코 말포이의 보호자였다. 몸보다 커 보이는 음식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좀 더 단란한 부부였을 것이다.

심각한 무언가가 튀어나올 줄 알았다. 바람이 빠지는 느낌이 났다. 긴장과 기대가 한꺼번에 증발한 것이리라. 나는 넘어질 뻔한 자세를 겨우 가다듬었다.

뭐야? 두려움이라며. 저게 드레이코가 무서워하는 건가? 나도 가주님이 무섭기는 한데. 아이들이 입을 모아 의문을 내뱉었다. 슬리데린은 정중했지만 지독할 정도로 집요했다. 또 한참을 시달리겠군. 벌써 몇 배는 늙은 기분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지팡이를 주섬주섬 꺼냈다.

"리-, 아…."

나는 지팡이를 쥔 손이 조금 떨리는 걸 알아차렸다. 입술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뒷걸음질만 치던 발이 풀썩 꺾인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자유로운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자니,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신의 권능 부작용, 시발.

전생과 전전생의 것을 숨기는 일에는 신의 권능이 사용됐고, 보가트에도 당연히 그게 사용될 것이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전생과 전전생에 뭉쳐 있으니까 말이다.

속으로만 리디큘러스를 열 번도 넘게 되뇌었다. 바깥으로 나오지는 못할 소리였다. 누가 보아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어린아이였다. 좆되었음을 빠르게 직감했다.

"리, 리, 리디큘러스!"

누군가가 보가트를 막아준 것 같았다. 쨍하고 높은 톤은 팬시 파킨슨이었다. 나는 햇살에 늘어진 고양이처럼 몸을 풀었다. 몽롱하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기분이 마음에 들었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드레이코, 괜찮니?"

"……."

"드레이코?"

"아… 네…."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알싸한 고통을 따라 감각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쓰러지면 기절만 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권능을 조금 쓴 건가? 내성이 생겨서? 원인을 추려가며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정말 괜찮은 거야? 병동 안 가도 돼?"

"안색 안 좋아 보이는데?"

"드레이코, 내가 병동 같이 가 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이들의 반응을 처음 봐서 그런 걸까? 약간은 얼떨떨했다.

나는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인 고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폼프리 부인을 불러오라며 난리를 부리고 있었다. 크레이브는 짧은 다리를 움직여 병동으로 뛰어갔고, 파킨슨은 툭 치면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전쟁이 끝났을 때와는 상반되는 태도였다. 속으로 계산하며 가까워지고 쓸모 없어지면 쓰레기를 버리듯 다시 멀어졌던 때와는 정말 달랐다.

아이들은 고작 13살이었다. 그 사실이 퍽 묵직하게 와닿는 듯했다.

Side, Remus Lupin

"첫 수업은 괜찮은가?"

쪼르륵, 레몬티가 앙증맞은 잔에 담긴다. 자, 수업 후에는 티타임이지! 덤블도어는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교수님 수염을 분홍색으로 물들일 때도 이런 표정이었다. 리무스는 잔잔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꺼내서 더듬을 때마다 닳아 빛까지 바랜 기억이지만, 그만큼 좋았던 시절도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보가트 수업이라서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잘 따라와 줬습니다. 제 기숙사였던 터라 그리핀도르에 애정이 갑니다. 론과 네빌, 패르바티하고 시무스…. 거의 모든 아이가 성공했죠."

"다른 기숙사는?"

"후플푸프에서 저스틴과 한나가 특히 잘했습니다. 래번클로는 음, 모두가 완벽하게 수업을 마쳤고요."

"…슬리데린도 마음에 들었나?"

리무스, 자네와 항상 싸웠던 기숙사이네. 덤블도어가 레몬티를 머금으며 찡끗거렸다. 가벼운 어조와는 반대로 눈동자는 깊고 맑았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이었다.

드레이코가 보가트에 쓰러지고 나서, 아이들은 마음을 굳게 걸어 잠갔다. 설명을 이어나가도 코웃음만 쳤고, 보가트 근처에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아프다고 손을 든 이가 10명도 넘었다. 사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슬리데린의 특성상, 그것은 매우 당연하였다. 그리핀도르인 리무스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슬리데린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드레이코가 보가트를 상대했는데, 물리치지는 못했습니다. 무서워하며 움직이지도 못하던걸요."

리무스는 레몬티를 한 모금 머금었다. 레몬의 강렬한 맛이 혀를 구석구석 누빈다. 안개가 걷힌 듯 머리는 한층 맑아졌다.

"이런, 귀신이나 트롤이라도 된 건가?"

"아뇨…."

학생의 아픔을 말해도 되는 걸까. 리무스는 잠시 주저했지만, 따뜻하게 웃는 덤블도어를 믿기로 했다. 덤블도어가 학생을 아프게 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으므로.

"드레이코의 보가트는 부모님이었습니다. 아주 행복한, 부모님이요."

드레이코의 반응은 리무스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맑게 웃음 짓는 부모님을 보며 겁에 질리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 드레이코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달달 떨며 쓰러지기까지 했다. 리무스는 그 광경과 의문을 함께 되새겼다.

"난 정말 나쁜 스승인 것 같군."

덤블도어가 흘리듯 말을 내뱉었다. 그가 주름진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두들겼다. 말을 한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동공이 흐릿해지고 입매가 단단히 굳었다. 석상 같은 표정은 리무스도 자주 보았던 것이었다. 그가 불사조 기사단원일 때 주로 본,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주위의 공기가 리무스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 표정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리무스는 덤블도어가 해야 할 만한 일을 추려보았지만,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그의 스승은 감히 예측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생각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리무스는 작은 바람을 담아 나직이 속삭였다.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에는 신뢰감이 담뿍 묻어나 있었다.

"저한테는 제일 좋은 스승이셨습니다."

"…고맙네, 루핀."

덤블도어의 파란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학창 시절 때 빠짐없이 보았던 표정이다. 까마득히 어릴 때도 보았던 그 미소였다. '누구나 하나씩은 골칫거리가 존재하고, 리무스 루핀이라는 사람은 늑대인간이 골칫거리일 뿐이란다. 아주 사소한 문제야. 호그와트는 당연히 갈 수 있지!' 꿈에 그렸던 말을 내뱉으며 장난스레 올라갔던 입꼬리를, 리무스는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리무스는 자세를 기울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스승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호그와트 학생이라면 모두 교수님이 좋은 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그는 마루더즈 모두에게 가장 좋은 스승 아니었을까. 나아가 모든 학생과 교수들에게도. 더 나아가 마법 세계 전부에도.

*

향수병은 마음 한구석에서 생생히 존재하고 있던 것 같다. 나중에 듣자고 하면서도 손은 저절로 움직였다. 작고 볼품없는 반지는 갈레온 더미나 파이어볼트보다 매혹적이었다. 그 망할 부작용이 없어서 더 끌렸다.

이제 금지된 숲을 방문하는 건 일과였다.

"우웨에에엑…."

지팡이를 까딱여서 바닥에 흩어진 피를 제거했다. 일어서려고 하다가 쓸데없이 따뜻한 햇볕에 쓰러지듯 미끄러진다. 이불 대신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몇 개를 손에 움켜쥐었다. 적당히 딱딱하고 뜨뜻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집요정들에겐 미안했지만, 슬리데린 기숙사 침대보다 편안했다.

누워서 보니까 더 잘 보인다. 검은색 털에 은회색 눈동자를 가진 개, 가…?

"블랙?"

검은색인데도 까만 무언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고 더 더러워진 것 같았다. 내가 한 발짝 다가가자, 개는 두 발짝 물러났다. 왜 온 거지. 걸렸으면 안 오는 게 도망자의 도리 아니냐.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왜 여기 있어?"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까만 눈은 나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저번에도 왔었지?"

"……."

"내가 여기 있는 거 알면서 이쪽으로 온 거야?"

"……."

개는 짖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침묵 마법을 건듯 고요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개가 숨을 쉬는 것마저 미심쩍고, 수상했다. 찐득한 의심은 혈관을 따라 무럭무럭 퍼져나갔다.

"미안. 역시 그냥 넘어가는 건 꺼림칙해."

인카서러스. 튼튼한 밧줄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인카서러스, 인카서러스, 인카서러스. 개는 도망치지도 못한 채 밧줄 더미에 둘러싸였다. 누런 이로 물어뜯어도, 몸부림쳐도 풀리기는커녕 단단하게 묶일 뿐이었다.

"으르르…. 월! 월!"

"저기, 조금 따끔할 거야."

"월, 월월! 월!"

"실렌시오."

나는 지팡이를 개의 머리에 조준했다. 무려 기억력 수정 마법의 대가인 록허트에게 배운 것이었다. 실수할 리가 없는 자세와 어조다. 록허트는 가르치는데 실력이 없어서 내가 마법을 쓰는 걸 외우고 연습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오블리비아-"

꼬질꼬질한 더러운 개가 사람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되뇌던 주문도 잊고 멍청하게 시리우스 블랙을 살폈다.

그렇게까지 급했던 거냐.

때가 탄 몸이 거뭇했고, 옷인지도 모를 거적때기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악취까지 풍겼다. 블랙은 자유로운 집요정이에요! 활짝 웃으며 조신하게 손을 모으는 시리우스 블랙을 상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건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 …!"

블랙은 입술을 바삐 움직였다. 이제는 손짓, 발짓까지 동원하고 있다. 애처로울 정도로 간절한 몸놀림이었다. 블랙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쩍쩍 갈라진 입술을 툭툭 친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실렌시오.'

아, 침묵 마법 풀어달라는 건가. 블랙이 헉헉거리며 숨을 헐떡였다. 침묵 마법을 건 것뿐인데 왜 물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을까. 블랙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한껏 더러워진 상황에서도 보석 같은 얼굴은 빛을 발했다. 친구인 걸 증명이라도 하듯 루핀과 퍽 닮은 웃음이었다.

"하하…. 안녕? 놀랬니?"

"스코지파이."

"으얽…."

더러워.

[작품후기]

디키: (아 맞다. 얘네 13살이지….)(쓰러진 거 수습할 말 까먹음)

*

리무스: (이 정도는 말해도 괜찮겠지)

루시우스: 죄목은 사생활 침해랑 인권 침해, 그리고 명예훼손과-

리무스:

*

+리무스 루핀 +시리우스 블랙 = 122명

2019. 7. 7.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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