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6
"드레이코, 더 먹어야 한단다."
나시사가 눈을 번뜩이며 칠면조 고기를 들어 올렸다. 양손에 가득한 음식은 이대로 배가 터져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나는 마른 혀를 침으로 축이면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뒤에는 호박 주스를 들고 있는 루시우스가 있었다.
"디키, 말라 보이는구나."
음산하게 깔린 말이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켜 주었다. 두 분 모두 집요정을 시키지 않고 직접 음식을 들고 있었다. 꽤 위급한 상황이란 것은 분명했다. 분명 내가 가만히 있다면 저 끝도 없는 음식에 깔려 죽고 말 것이다.
죄송해요. 나는 마음속으로만 사과를 내뱉으면서 루시우스를 밀쳤다. 디키, 디키-! 뛰어봤자 상관없단다! 광기 어린 목소리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난 슬리데린 퀴디치 팀의 수색꾼이다. 원작만큼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 딱 죽을 만큼만 몸을 움직이면서 체력을 길렀다. 적어도 나시사와 루시우스에게 잡히지 않을 자신은 있다는 뜻이다.
"디키-! 뛰어봤자 저택 안 집요정일 뿐이란다!"
나는 발을 더욱더 빠르게 놀리면서 주머니를 반사적으로 살폈다. 지팡이는 없다. 시발, 저절로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쿠구궁-!
심장이 꼬여서 탭댄스를 추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이 차서 헉헉거리면서도, 눈앞에 나타난 벽을 절망적인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뒤를 홱 돌아보자, 루시우스가 지팡이를 들고서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드레이코…."
"디키…."
나시사는 나긋하게 웃으면서 칠면조를 눈앞에 들이밀었고, 루시우스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박 주스를 입에 넣으려 했다. 도비! 살려달라는 뜻으로 외쳤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비는 말포이 가의 집요정이기 때문에, 어차피 여기 있어도 루시우스의 말만 들었을 거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호주머니를 다시 확인했다. 불행히도 막대기로 보이는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
"제발 그만… 그만 해요. 하지 마세요."
목 끝까지 숨이 차올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많이 뛰었구나. 영양 보충을 해야 하지 않겠니. 우아한 목소리는 내 말을 전부 무시한 것 같았다.
나는 루시우스가 내미는 호박 주스를 받아 마시면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달리기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리가 풀려서 움직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달린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마법이라도 건 듯, 호박 주스는 마셔도 마셔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만은 믿었는데…."
나는 탄식하듯 내뱉었다. 사실 멍한 기분으로 되는대로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섬뜩하게 웃고 있는 루시우스와 나시사가 뿅, 하고 사라졌다. 순간 이동이라도 한 건가? 어디로 간 거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주위의 공간이 어그러진다.
"말포이, 어디 가려고 그러니?"
"……!"
꿈속의 말과 비슷해서 순간 놀랐지만, 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는 폼프리였다. 나는 여기가 병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꿈에서 거세게 뛰었던 심장은 규칙적으로 차분히 콩콩대고 있었다. 달리느라 흘렸던 땀이 증발이라도 한 듯 몸은 보송보송했다.
"어머, 나 때문에 놀랐니?"
"괘, 괜찮습니다."
폼프리가 눈을 가늘게 접어 올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머리를 굴렸다. 피곤했던 몸이 휴식을 취하자 머리도 제 기능을 했다. 새로운 질문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할 말 있니? 폼프리의 질문에 필터 없는 말이 입에서 뛰쳐나왔다.
"저… 그건 누가 알고 있는 거죠?"
"무슨 사실… 아… 그건 스네이프 교수님, 덤블도어 교수님, 그리고 나밖에 알고 있지 않아. 입단속은 확실히 해 두었단다."
"덤블도어 교수님도 알고 있습니까?"
"그렇지."
자신의 인생 설계가 모자라서 남의 인생까지 계획하고 있는 사람에게 알려졌다니. 확실히 망한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동요한 것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심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폼프리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그녀는 똑똑, 하는 두드림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폼프리는 문을 열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더니, 전보다 상쾌하고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네 친구들이 병문안 온 것 같은데?"
"네?"
"병동엔 다섯 명 이상이 병문안을 오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히 봐주도록 하마."
폼프리의 관대한 발언과 동시에 여섯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흝어보다가 살짝 당황했다. 파킨슨과 크레이브, 고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포터와 위즐리, 그레인저는 정말 뜻밖의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멀린이시여! 드레이코, 정말 괜찮은 거야?"
"그렇게까지 심각한 건 아니야."
"아니긴! 배에서 피까지 흘렀잖아."
파킨슨이 울 것 같은 얼굴로 호들갑을 떨었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호위라도 하는 것처럼 파킨슨의 양 옆에 서서 고개를 주억였다. 이들을 보니 슬리데린의 반응을 안 보아도 알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해그리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그리드는…?"
"괜찮아, 드레이코. 내가 부모님께 사건의 전말을 말씀드렸으니까!"
고발자가 너였구나…. 나는 배신감 어린 눈으로 파킨슨을 응시했다. 파킨슨은 헤실헤실 웃더니 엄지를 쫙 핀 오른손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나만 믿어! 크레이브와 고일이 급하게 손뼉을 친다. 짝짝짝, 영혼 없는 박수 소리가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래도 둘은 순수 혈통인 거로 아는데, 파킨슨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는 게 뻔히 보였다.
"아, 다쳤는데도 순수 혈통의 긍지를 잃지 않은 건 멋있었-"
"해그리드의 일을 고발한 게 너였어?"
그레인저가 파킨슨의 말을 끊었다. 차분한 목소리엔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하긴, 쟤 아니면 누구겠어. 위즐리가 말을 놓칠세라 호들갑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파킨슨이 눈빛을 바로 바꾸면서 포터를 노려본다. 말한 사람은 그레인저와 위즐리인데 왜 포터를 노려보는 걸까.
"해그리드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아? 아즈카반을 갈 수도 있다고 들었어. 그걸 네가 고발했다고?"
"난 옳은 일을 했을 뿐이야. 너희는 왜 병문안을 와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거야? 나가주는 게 드레이코의 정신 건강에 더 이로울 것 같은데."
파킨슨이 코웃음을 쳤고, 그레인저는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싸움이 끝날 것 같은 타이밍에, 위즐리가 흥, 콧방귀를 뀌었다. 꽤 큰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해리가 오자고 해서 왔다, 됐냐? 우리도 오고 싶지 않았다고."
"위대하신 마법 세계의 영웅 님이 드레이코가 걱정되기라도 했나 보지? 참 대단한 공감 능력이네. 오고 싶지 않았다면 당장 나가. 드레이코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보다 아즈카반에서 썩을 그 작자를 위해 책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걸 추천할게. 그래봤자 살인미수죄로 무기징역이겠지만."
파킨슨의 비꼬기 실력은 어디로 가지 않은 듯했다. 나는 감탄이 튀어나오려는 걸 애써 참다가, 여긴 원작 유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싸움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싸움 구경은 솔직히 재밌었지만, 머리 한구석에서 양심이 있으면 아이들을 말려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말 다 했어?"
"아직 다 안 했는데?"
"…그만해줄래? 병동에서 싸우는 건 보고 싶지 않은데."
파킨슨이 마치 선심을 썼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오물이라도 묻은 것처럼 몸을 툭툭 털어내면서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손짓했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어느새 파킨슨의 말도 순한 양처럼 잘 따르고 있었다.
"드레이코, 나중에 올게. 지금은 진흙(mud) 같은 애들이 너무 많아서."
잡종(mud blood)을 비꼬아 만든 표현이다. 나는 그 뜻을 알아듣고 인상을 찡그렸지만, 포터와 위즐리, 그레인저는 알지 못했는지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 좋지 못한 말이기에 알아차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걸까.
파킨슨과 크레이브, 고일이 나가자 병동은 바로 조용해졌다. 어색함 사이에서 깔려서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포터, 위즐리, 그레인저를 차례로 뜯어보았다. 뭘 봐? 위즐리의 시비가 섞인 말을 듣고 무감각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너희는 왜 온 거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온 발언에 내 입을 저주하고 싶어졌다. 원작을 비튼다고 마음먹었다면 주인공 일행과 친해지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7년 동안 굳혔던 태도를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툭툭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왔고, 비꼬는 발언이 수십 가지도 넘게 머릿속을 채웠다.
"말포이…."
포터가 머뭇대며 입을 열었지만, 끝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정적이 주위를 채우자 위즐리가 딱딱 이빨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산만하다는 걸 몸소 증명했고, 그레인저는 팔짱을 끼며 조금 못마땅한 태도를 드러냈다. 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포터가 병문안을 왔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 전적이 너무나도 다양했다. 특히 포터와는 부모님 안부까지 주고받는 사이였다. 나는 과거의 화려한 기억을 애써 외면하면서 포터가 여기 온 이유를 추측했다.
"아…. 해그리드 교수님 때문에 온 거야? 아버지가 아즈카반으로 보낼까 봐?"
"응?"
"걱정하지 마. 아즈카반은 어떻게든 말릴 테니까. 그건 너무 과한 처사야."
원작을 바꾸려면 일단 내가 달라졌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걸 실행하기에 해그리드의 사건은 너무 좋은 먹잇감이었다. 죄 없는 교수를 아즈카반에서 썩힐 생각도 없고 말이다. 나는 포터를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어쩐지 포터는 표정을 더 굳히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5초 정도 뒤에 위즐리와 그레인저를 데리고 병실을 나갔다. 쿵, 꽤 큰 울림이 병실을 뒤흔들었다. 왜 저러는 걸까. 나는 멀뚱멀뚱 나간 곳을 노려보았지만, 돌아온 건 폼프리 뿐이었다.
"어머…. 말포이, 친구들은 어디 간 거니?"
자기 혼자 입술 깨물다가 나갔어요. 나는 진실을 전하지 않고 애매하게 웃기만 했다.
[작품후기]
2019. 2. 21. 수정완료.
해리: 그동안 나를 위하고 있었던 건가? 그 말포이가? 그럴 리 없는데? (혼란)
+) 아가리 파이터 팬시….
+) 요새 글이 너무 안 써져요....ㅠ 다른 사람들 소설을 보고 자꾸 글 쓰는 방식을 바꿔 보고 싶기도 하고... 제 글이 재밌는지도 잘 모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