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6
초조하기도 했고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폼프리의 안색을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내가 드레이코 말포이가 아니란 걸 알아챈 사람은, 폼프리 뿐이었으니 더 그랬다. 나는 조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것보다, 말하지 않으실 건가요?"
"넌…."
"4년 정도만요. 4년 뒤면 어차피 안 볼 텐데요. 그때까지만이라도 안 되겠습니까?"
원작이 4년 뒤에 끝나기도 하고, 호그와트도 그때 졸업한다. 그 뒤면 보건 교사인 폼프리에게 더 볼일이 없을 거다. 냉정하게 말한 건가 싶었지만 어차피 사실이었다.
원작을 비트는 동안 드레이코 말포이가 아니다, 맞다, 같은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 다른 나비효과를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고의는 아니더라도 마법을 썼고 과거로 돌아왔다. 최대한 원작을 비틀어서 되도록 많은 이를 살리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방관하느라 가졌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것뿐이다.
"…좋아."
"고맙습니다."
"대신 말포이, 너도 네 몸을 돌보았으면 좋겠구나. 마법 약을 줄 테니 꼭 정기적으로 복용하거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전에 포기하는 버릇은 어디서 배운 거니?"
"네?"
"앞으로는 네 몸을 이렇게 만든 이와 절대 접촉하지 말 거라! 절대로!"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이때쯤이었다. 뭘 포기한다는 거지? 몸을 이렇게 만든 이? 나는 기묘한 기시감에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폼프리는 더 이상의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용납해줄 수가 없구나. 영혼의 상태도 매우 불안정하고, 이 주 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을 거야. 아무리 마법 약을 먹었다고 하지만, 마법은 사람의 재생력을 끌어올릴 뿐이란다. 넌 안정을 취해야 해."
"…네."
왠지 모를 찝찝함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모른 척하면서 눈을 감았다. 오해했다면 나중에 풀면 되겠지. 신의 권능인지 뭔지를 쓴 덕분인지 몸이 축 처지고 눈꺼풀이 철근처럼 무거웠다.
Side, Severus Snape
"말포이는 지금 막 잠들었어요."
세베루스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이코는 침대에 누워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쯧,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지팡이를 까딱이자 땀은 냄새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했다. 그는 무표정하게 드레이코를 응시하면서 딱딱한 말을 꺼냈다.
"어둠의 마법에 조종당하고 있었습니까?"
"아직은 괜찮아요. 스네이프 교수님이 주신 약을 써봤는데 이상 없더라고요."
최악까지 간 건 아닌 것 같았다. 고문을 당하고 있었던 걸까? 죽음을 먹는 자 중에 그렇게 간이 큰 사람이 있었던가? 순수 혈통들이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드레이코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었지만, 숨을 멈추면서까지 이득 없는 장난을 치는 아이는 아니었다.
세베루스는 여러 추측을 하면서도 인상을 파삭 찡그렸다. 아무런 낌새도 없이 덜컥 일어난 일은 모든 것이 의문점이었다. 조용히 잠든 드레이코의 얼굴에 말 많고 철없는 드레이코가 겹쳐 보이는 듯했다.
"영혼이 이상해졌다고 했습니까? 드레이코 말포이가 아닐 가능성은…?"
"다른 영혼이 그저 정착한 건 아니라는 말이죠? 어떻게 다른 영혼이 가족과 아이들까지 알아보겠어요? 최근에 일어난 일까지도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요?"
"괜한 소릴 했군요."
세베루스는 오랜만에 멍청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쓸 일이 없었던 머리를 굴렸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숨이 멈추고 영혼이 없어졌다. 그건 어둠의 마법에 당한 자들의 증상이다. 드레이코는 그래서 어둠의 마법에 당했다…?
"어둠의 마법에 당한 건 확실합니까?"
"예전에 말했듯이 영혼이-"
"영혼이 빠져나가기만 했습니다. 다른 정황은 없고요. 영혼이 없어진 건, 다른 상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방금 말포이의 영혼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저건 사람의 영혼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에요. 사람의 영혼은 저렇게 뒤틀려 있지 않아요."
폼프리는 말하면서도 씁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호그와트의 학생이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퍽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세베루스는 폼프리의 푸념을 다 걸러 들으면서 드레이코의 상태를 살폈다. 드레이코는 자면서도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말합니까?"
"아뇨. 이야기를 꺼내기도 싫어하던걸요. 우선 치료에만 집중하기로 했어요. 스네이프 교수님도 모른 척해주세요. 이건 저와 말포이 부부, 스네이프 교수님만 아는 사실로 하죠."
"하지만-"
"알아요. 말포이를 이대로 둘 수는 없죠. 그러니까, 비밀리에 말포이를 보호해주실 수는 없나요? 이런 짓을 한 이들도 따로 알아봐 주시면 좋겠어요."
폼프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간곡한 어조였다. 세베루스는 한숨을 조금 내쉬면서 뒤를 돌았다. 입술을 깨물며 눈을 부릅뜬 폼프리가 시야에 담겼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네?"
"누구의 소행인지도 압니다."
이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몰랐으나,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준 폼프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폼프리는 항상 그가 말을 하면 코웃음을 치기만 했으니까 말이다. 폼프리가 드레이코의 상태를 알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도 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드레이코에게 무슨 짓을 한 것 같습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무슨 이유로…?"
"아마 순수 혈통들의 정치적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루시우스 말포이의 말로는 항상 죽음을 먹는 자들을 보면 거부 반응을 보였댔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인상을 찡그리거나 몸을 움츠렸다고요."
세베루스는 사실만을 나열했다. 다른 많은 경우의 수도 있었지만, 드레이코가 어릴 때부터 접촉했던 이들은 순수 혈통뿐이었다. 다른 어둠의 마법사들과는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니, 드레이코가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은 순수 혈통이었다.
"제발 그만… 그만 해요. 하지 마세요…. 부모님만, 은…."
"멀린이시여."
놓치기 쉬운 작은 달싹임은 둘의 귀에 충분히 닿았다. 폼프리의 말은 자연스레 듣지 않은 세베루스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부모님을 빌미로 삼은 건가. 죽음을 먹는 자들다운 방식이었다. 하나 같이 제 주인을 빼닮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세베루스는 속으로 비꼬며 그가 죽음을 먹는 자란 사실을 무시했다.
레질리먼시는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드레이코는 모르는 듯했지만, 그건 정신계를 지속해서 고문 받아오면 생기는 자기 보호 본능 쪽에 가까웠다.
세베루스는 왠지 더러워진 기분을 느끼면서 지팡이를 까딱였다. 다시 송골송골 솟아나기 시작한 식은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드레이코의 얼굴은 한층 편안해졌다.
"항상 철없는 아이의 연기를 한 건가요? 그리고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그만둔 거고요?"
세베루스는 폼프리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하기엔, 모든 정황이 이상하리만치 들어맞았다. 드레이코와 이야기를 할 때에도 연기하는 것 같은 기시감은 자주 느꼈던 것이었다. 상황에 따른 반응은 거의 정해져 있다시피 했고, 과장된 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네요."
"…아니길 바라야죠."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드레이코 말포이를 응시했다. 몇 년 동안 잘 알고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세베루스는 꽤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따지자면 허탈함과 실망감 따위의 것들이었다.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몰랐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학생의 일에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꽤 적극적이시네요. 슬리데린 사감이라고 슬리데린만 좋아하는 건가요? 차별은 좋지 않아요."
폼프리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농담을 던졌다. 아마 아이들을 챙긴다는 칭찬을 돌려 말하는 걸 거다. 세베루스는 슬리데린적 표현을 바로 알아듣고는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세베루스는 기본적으로 슬리데린을 포함한 모든 학생을 싫어했다. 그의 눈에 호그와트 학생들은 머리에 든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하는 멍청이들이었다. 눈치만 보고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들은 더더욱 싫어했고, 빽빽 울면서 호의가 권리인 줄 아는 아이들은 경멸했다. 단지 드레이코 말포이는 철은 없지만, 눈치는 있었고, 오만했지만 오만 할만한 실력이 충분했다. 그래서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준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말포이 부부가 시끄러워질 게 뻔하니 움직이는 것뿐이다.
세베루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폼프리는 조금 머쓱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눈동자를 굴리면서 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병동에서 맑게 울려 퍼졌다.
[작품후기]
2019. 2. 15. 수정완료.
+) 저거 쓰면서 입덕 부정기 생각났어요...ㅎ 스넾 교슷님 죄송합니다ㅋㅋㅋㅋㅋㅋ
++) 냉철하고 의심많고 섹시(?)한 스넾 교슷님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잘 표현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