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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꿈의 고백(2부 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처럼 파혼으로 인한 후폭풍은 정말로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더 이상 그들은 화제에 오르지 않았고, 더 이상 그들은 파혼으로 인해 아파하지 않았다. 담담해진 것이다. 하지만 마주치면 서로를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은 여전했다. 그리고 리들과 리브 역시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평화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는 호그와트에서 보낼 거야.”
매번 집으로 돌아가던 에밀리는 호그와트에 남는 목록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연휴 때 열리는 순수혈통 파티에 참석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는데―매년 참석 했었다― 이번에는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집안에서는 파혼을 당한 처지라고 해도 그녀가 굳건한 모습을 대외적으로 비추기를 바랐으나 에밀리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에드가가 에밀리의 편을 들어줄 예정이었다.
“그럼 나도 학교에 남지 뭐.”
리브는 그렇게 대꾸하며 목록에 서명을 했다. 굳이 알링턴로(Arlington Row, 라이트 저택이 있는 곳)로 돌아갈 중요한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리브가 한숨을 내쉬는 에밀리를 데리고 기숙사로 돌아간 후, 그 이름 아래 또 하나의 이름이 적혔다.
‘톰 리들(Tom Riddle)'
*
크리스마스 휴가기간, 많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학교는 조용한 분위기인 게 일반적이었으나 올해는 조금 달랐다. 기숙사 공동 휴게실은 누군가의 등장으로 조금 소란스러웠다.
“세상에. 너를 영영 못 볼 줄 알았는데!”
달빛을 머금은 은발이 눈에 띈다. 청년은 자수정빛 눈동자를 휘어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호그와트로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는 거야?”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버리다니 서운했어!”
“하하, 미안해. 어머니께서 너무 완강하셔서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어…….”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해사한 웃음을 흩뿌리고 있는 이 청년은 불과 반년 전까지 호그와트의 학생이었던 크리스티안 카르티에였다. 그는 방금 막 소식을 듣고 공동 휴게실로 들어온 여학생 두 명에게 밝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리브, 에밀리. 그동안 잘 지냈어?”
*
“크리스 너를 다시 호그와트에 볼 줄은 꿈에도 몰랐어! 무슨 일로 온 거야?”
리브의 말에 크리스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호그와트 측과 아직 정리가 덜 된 문제가 있거든. 기부금 문제도 있고, 내가 급히 떠나는 바람에 서류 문제도 있고……. 그래서 지금 어머니께서 교장실에서 디펫 교수님과 얘기 중이셔.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는 리브에게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톰 리들과는 잘 만나고 있어?”
그 말에 리브의 움직임이 멈칫하며 낯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크리스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리브는 말을 돌리는 것을 택했다.
“있잖아, 에밀리가 아브락사스 선배랑 파혼했어.”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표정은 좋지 못해서 크리스는 떠오르는 말을 바로 뱉어내기 보다는 조금 순화시키기로 했다.
“나도 그 얘기는 들었어. 어쩐지 에밀리가 안 좋아 보이더라니…….”
크리스는 리브의 표정을 보고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사실 언젠가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기는 했어.”
“어째서?”
청년은 쓰게 웃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의 어머니는 목숨을 위협받는 호그와트―그녀는 작년 습격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보다는 차라리 보바통이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기에 크리스를 무리하게 전학시켰다. 하지만 유럽 전역을 휩쓸고 다니는 어둠의 마법사, 갤러트 그린델왈드의 횡포로 인해 보바통의 분위기는 살얼음판과 같았다. 지금 이 세상은 크리스가 전생에 읽었던 원작의 설정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보바통의 앞날을 걱정하는 프랑스의 마법사들과는 달리 크리스는 태평했다. 몇 년 후, 덤블도어가 그를 결투에서 이기고 평화의 시대를 열 테니. 이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크리스는 재차 그렇게 생각했다.
“원작이 그러하니?”
리브의 물음에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대꾸했다.
“그래.”
리브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래서 아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원작과 이 세계를 분리하기가 힘들어. 우리 학교는 내가 예상한 대로 갤러트 그린델왈드의 압박을 받고 있고, 그의 위세는 암담할 정도로 절정에 치닫고 있어. 그에게 반발하는 지식인들이 누멘가드에 갇히는 일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야. 모두 그대로 흘러가고 있어.”
“…….”
“미안해, 나는 바꿀 수 있다는 너의 생각에 동조하기가 조금 힘이 들어.”
그 순간 리브는 볼드모트로 생각이 미쳤고 자신도 모르게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너의 현실이 그러한걸.”
크리스는 리브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너는 꼭 그렇게 원작을 맹신한다고, 바꿀 수 있다고 화를 낼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그녀는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리들과 리브의 관계가 원만치 못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둘의 마음은 서로에게 향해 있을 텐데 어째서? 이쯤 되니 답답한 수준을 넘어서 질릴 지경이다.
“리들과는 어때?”
크리스는 기어이 리브가 회피했던 화제를 꺼내들고 말았다. 하지만 상대가 부담스러워 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해사한 웃음으로 가장하는 것은 잊지 않는다.
“에밀리와 아브락사스가 파혼했다고 해도…… 너와 리들이 사귀고 있을 테니 원작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럼 네 말대로 볼드모트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나는 이 세계를 원작과 분리하고 바꿀 수 있다는 너의 생각에 동조 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크리스의 말에 리브의 얼굴은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양상을 보였다.
“내가 잘못 짚은 거야? 나는 네가 호그와트로 돌아간 순간, 리들에 대한 마음을 인정했다고 생각했는데.”
리브는 파르르 속눈썹을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행동에서 깊은 슬픔이 묻어 나와 크리스는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리들이 너를 잡으러 갔을 거고. 네가 순순히 돌아갔다면 분명 리들도 너를…….”
“나를 좋아한대.”
크리스의 자안이 순간 커졌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듣는 것은 꽤나 느낌이 색달랐다.
“진심이래.”
“…….”
“내가 본인을 좋아해줬으면 좋겠대. 그냥 옆에 있어 달래. 나를 기다려주겠대.”
말에 담긴 의미와는 달리 리브의 얼굴이 너무 어두워서 크리스는 간신히 그 이유를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말 뿐. 바다 같은 벽안이 그 깊이만큼이나 큰 슬픔을 담고 있었다.
“리브, 그게 무슨…….”
리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에 자신은 어찌했던가. 베리타세룸을 써서 그를 기만했다. 믿지 못했기에. 리브의 불신은 그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뿌리 깊었다. 또한 용서를 빈다고 해서,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그 일이 없어지는 것 또한 아니었다.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간에, 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는 순간 리들에 대한 괘씸함을 가득 느꼈다. 속 좁은 자식. 그렇게 데려갔으면 잘해줘야 할 거 아니야! 이런 모습을 보자고 돌아가라 설득한 게 아니었는데. 행복이 아닌 슬픔을 가득 떠안고 있는 모습은 크리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건 중요치 않잖아.”
크리스는 리브가 겪고 있는 무수한 감정 속에서 핵심을 잡아 끌어올렸다.
“리들은 너를 용서했을 거야. 아니,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용서할 수밖에 없어.”
자신이 그날의 그녀를 용서했듯이, 톰 리들 역시 그러했으리라.
“네가 리들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과는 무관해. 그리고 리들 역시 그렇게 생각할 거야.”
이런 모습을 보자고 너를 보내준 게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그녀를 보바통으로 데려갔으리라.
“왜 리들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은 거야? 그에게 미안해서?”
리브가 리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소녀는 그 원초적인 두려움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있었다면 그와 관계가 이러지 않았을 테지.
“아니면 여전히 네 마음을 인정할 수 없는 거야? 난 더 이상 너를 책하지 않아. 리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알았으니까…….”
그것을 인정하는 건 크리스에게 꽤나 힘든 과정이었다. 사실 크리스는 여전히 리들에게서 완전한 편견을 거두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리브에게 진심이라는 것은 알았으니 되었다고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리브의 마음이 그러한데 자신이 볼드모트니, 원작 얘기를 하며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 마음은 조금 아팠지만.
“리브,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네가 솔직해졌으면 좋겠어. 난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아. 네가 이러는 게 나 때문이라면…… 미안해.”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야. 이건 내가 나약하기 때문이야. 말없이 고개를 젓는 그녀는 몹시 괴로워보였다. 하지만 크리스는 분명히 그녀에게 일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역시 끝을 봐야겠지.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는데. 사실 크리스는 자신이 품은 마음에 대한 리브의 대답을 알기에 말하지 않으려 했었다.
“영국 마법부에서 처음 너를 봤을 때 말이야. 나는 그 후로 너를 잊을 수가 없었어.”
미세하게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으나 청년의 표정은 몹시 진지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벨라 청년은 말을 이어나갔다.
“첫눈에 반한 상대를 호그와트에서 다시 보게 돼서 기뻤어.”
그 말에 리브의 벽안이 확장되었다.
“네가 파트너라서 좋았고, 나처럼 전생을 갖고 있었을 때는 정말 기뻤어. 너는 정말 내게 큰 힘이 돼줬어.”
크리스는 잠깐 침묵했는데 입술을 달싹 거리는 모양새가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리브, 그동안 정말 많이 좋아했어.”
그 말의 무게와는 달리 크리스의 고백은 명백한 과거형을 띠고 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너에게 부담주려고 하는 고백이 아니야.”
당황이 역력한 리브의 얼굴을 보며 크리스는 쓰게 웃었다. 크리스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마음을 서서히 내려놓고 있었는데 오늘로서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은 그녀의 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 감히 그녀와 이루어 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 첫눈에 반했을 때는 다시 만나면 인연이 아닐까, 그런 낯간지러운 상상을 했었다. 그리고 호그와트에서 다시 만났을 때, 같은 환생자였을 때. 어쩌면 우린 정말 인연이 아닐까 그런 꿈같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상상하고 바랐던 인연은 아니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녀의 마음은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리들이 원작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고집을 피웠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 역시 그러고 있는 걸지도.
“네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리들에게도 느끼니?”
그 말에 리브가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리들이 너에게 고백했을 때 말이야. 지금과 같았어?”
리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크리스는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아닐 테지. 분명 다를 거야.”
리브는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거절의 의미가 역력한 말과 이를 전하는 리브의 태도에 크리스는 다시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 들으려고 한 고백이 아니야. 네 대답은 애초에 알고 있었어. 내 말은…….”
결말은 알고 있었음에도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네가 혹 확신이 없어서 그렇다면 나를 통해서라도 확실히 알았으면 싶어서야.”
인정은 아주 오래전에 했다. 크리스 뿐만 아니라 리브에게 고백하는 남학생들은 꽤 많았고 그들의 것은 리들의 고백과는 명백히 달랐다. 그걸 리브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래도 리들을 끊어내고 싶은 거야? 아직도 그런 거야?”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한 편으로는 슬그머니 나쁜 마음이 들어 은근슬쩍 부추겨 보았다.
“이래도, 지금의 네가 너무 힘들다면 그렇게 해.”
크리스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이 이 따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 솔직해지라고. 너의 마음을 말하고 그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주라고. 그리고 어서 편해지라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런 말을 해야 했다. 크리스는 이런 자신이 잠깐 추하다는 생각을 했다.
“리들을 떠날 생각이라면 이번에는 제대로 떠나. 그래야 끊어낼 수 있을 테니.”
크리스는 당당하지 못한 마음에 리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그러려고 했어.”
크리스의 귓가에 또렷한 리브의 음성이 들려왔다. 청년은 스르륵 시선을 돌려 소녀를 응시했다. 신비로운 자안에 골드 블론드가 가득 담겼다. 어쩐지 그 황금빛이 처연하다.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그런 생각을 해. 그를 떠나야겠다고. 리들 선배를 끊어내야 한다고.”
소녀의 푸른 벽안이 슬픔으로 가득 반짝였다.
“어린 날의 결심처럼 엮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더 늦기 전에 그를 끊어내고, 떠나야한다고. 그렇게 수도 없이 생각해. 하지만 결국은…….”
그때였다. 리브의 눈에 한 사람의 인영이 들어온 것은.
“리브?”
리브의 눈길을 따라 뒤를 돌아본 크리스는 실색했다. 리브의 시선이 미치는 곳에는 리들이 서있었던 것이다. 청년의 잘생긴 얼굴은 파삭파삭 굳어 있었는데 무언가를 참고 있는 듯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의 리들은 크리스에게는 눈길 한 조각 주고 있지 않았다. 저 살벌한 시선이 향하는 곳은 리브였다.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표정은 정말 무시무시했는데, 항상 차분하던 흑안이 이글이글 타오르다 못해 번뜩이고 있었다.
*
“리브, 그동안 정말 많이 좋아했어.”
복도를 지나가던 리들이 마침 리브를 발견했을 때는 타이밍 좋게도 크리스가 고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리들은 어디 보기 좋게 차여보라는 비웃음과 함께, 혹시 저 기생오라비 녀석이라면 받아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깐 불안해졌다. 하지만 리브의 ‘미안해.’라는 말에 그것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리브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말들에 의해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그런 생각을 해. 그를 떠나야겠다고. 리들 선배를 끊어내야 한다고.”
참담한 절망이 불안감으로 일렁이는 흑안에 가득 뿌려졌다. 리브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말들은 리들을 지옥으로 밀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어린 날의 결심처럼 엮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더 늦기 전에 그를 끊어내고, 떠나야한다고, 그렇게 수도 없이 생각해. 하지만 결국은…….”
청년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마음을 가라앉힌다든지 뒷말까지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무슨 말이 더 나올지 리들은 무섭고 불안해서 당장 저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리들이 내내 부정해왔던 생각들이 파도처럼 몰려와 철의 이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마음이 아닐 뿐더러 자신이 품은 마음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리들은 지금까지 내내 갈팡질팡했던 그 대답을 찾아냈다. 그녀는 조금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지 않았다. 참으로 비참한 깨달음을 얻었다.
“리,리들 선…….”
간신히 입을 연 리브가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에 청년은 돌아서버렸다.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전신을 타고 흘렀고 리들은 감당하기 힘들어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을 택했다. 리들의 이름을 입에 담던 리브는 그 순간 비친 눈빛에 호칭을 끝마치지 못했다. 단지 차갑고 냉담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리브는 그 어둠 같은 흑안 속에서 극심한 슬픔과 상처를 읽어냈다. 그 감정을 읽어낸 순간 리브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맛봐야만 했다.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자 마자 자신이 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리브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건 오해야…….”
리브는 정정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으나 이미 리들은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리브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며 불안감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그를 끊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생각의 끝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리브는 리들을 떠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그를 어찌 떠날 수 있겠냐는 대답에 직면해야만 했다. 만약 정말 끊어낼 수 있었다면, 그럴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돌아오지도 않았으리라. 그렇게 언제나 리브의 끝은 리들이었고 그것은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가봐.”
크리스가 멍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있는 리브를 떠밀었다.
“더 늦기 전에 가서 오해를 풀어. 그건 네 본심이 아니잖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브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리들이 사라진 곳으로 담박질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크리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멀어지는 리브를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면, 이번에야 말로 모든 마음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마음만은 남겨두었다.
부디 네가 바라는 대로 되기를.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멘토링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감사드려요.
*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챕터가 바뀌었습니다! 지난 편부터 새 챕터로 바꿨어요. 벌써 열 여덟번째 챕터네요.
* 지난편 추천수 보고 깜짝 놀랐어요! 처,천이 넘다니..! 정성스런 댓글들도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리들리브 잘부탁드릴게요^^
* 사실 쉬는동안 글쓰는 감이 떨어져서 고생을 조금 했어요. 그래도 연재 1주년에는 업뎃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무리하게 올렸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번 편이 생각보다 늦어졌습니다ㅜㅜ 그래도 여기서 끝나면 감질맛 나니까 다음편은 최대한 빨리 들고 오도록 할게요!
그럼 여러분 무더위 조심하시구 좋은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