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108화 (10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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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호칭(Nickname)

리브가 슬리데린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그녀를 잡아 당겼다. 화들짝 놀라는 여자의 입술에 누군가의 것이 겹쳐졌다. 흑발의 미남자는 연인의 온기를 느끼며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와 동시에 행동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서,선배……!”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놀란 여자가 무어라 입을 열자 남자는 위험한 눈웃음을 치며 말을 잘랐다.

“톰. 이라고 불러야지. 그 놈의 선배 소리…….”

그리고 다시 입맞춤이 이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호칭에 대한 벌이라도 되는 마냥 남자의 행동은 살짝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벽에 부딪힐라 정성스레 여자의 뒷머리를 받쳐주고, 혹 넘어질까 저어대어 허리를 감싸주는 배려는 섬세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농밀한 입맞춤으로 가려는 도중, 여자는 흐름을 끊으며 미남자를 밀어냈다. 방해 당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남자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지만 여자도 그 못지않게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배야 말로 더 예쁘게 불러줘요.”

또 선배라고 하지. 그러면서 여자는 꽤나 당돌한 요구를 해왔다. 남자는 무슨 소리인가 하여 살짝 눈을 가늘게 뜨다가 씩 웃으며 여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좋아, 나의 올리비아(My Olivia)”

그리고 다시 입을 맞추려는 데 접문이 시작되는 직전 여자는 남자를 탁 밀어냈다. 꽤나 듣기 좋은 말이었음은 분명하나 여자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점점 애가 타는 지 잔잔하기 그지없던 흑안이 점점 일렁이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말하라는 남자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그것을 직접 말해줄 생각은 없어보였다.

“My love.”

나의 연인. 리들은 인내심을 잃지 않고 난데없는 호칭 맞추기에 가세해주었다. 다 잡은 분위기를 이런 식으로 깨야겠냐며 투덜거릴 법도 했으나 남자는 막 성인이 된 연인에게 신사다움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My lovely Olivia."

나의 사랑스러운 올리비아. 친히 ‘사랑스러운’이라는 간질거리는 형용사까지 붙여주었으나 여자는 통과시켜줄 용의가 없어보였다. 여자가 살짝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며 다시 입을 맞추려던 남자는 여자의 불통(不通)에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괜한 승부욕이 발휘되어 남자는 반드시 그 호칭을 맞추고 여자를 함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My sweetie.”

오늘 남자는 그 붉은 입술에 설탕을 한 덩어리 머금기라도 모양인지 듣기 좋은 달달한 소리가 연이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My Darling, Olivia.”

이쯤이면 맞추지 않아도 통과시켜줄 법 했으나 여자는 수줍게 웃으면서도 입술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런 연인에게 괘씸함을 느끼면서도 리들은 의외로 신사다움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는 듯 흑안이 들끓고 있었지만 무작정 자신의 욕심을 채우지 않는 것은 꽤나 기특한 모양새였다.

“My honey, Olivia.”

이제 ‘Honey’까지 나오다니. 톰 리들을 아는 이들이라면 식겁 했을 만 했으나 여자는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칭 맞추기에 지친 리들이 그냥 봐달라고 애걸이라도 할 까, 그딴거 무시하고 확 덮칠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데 인내심이 끊긴 것은 오히려 여자였다.

“이런 눈치 없는 남자 같으니.”

여자는 신경질을 내며 자신을 품에 가둔 남자를 확 밀어버렸다. 방금까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미소 짓던 연인의 돌변한 태도에 남자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리브의 고운 얼굴은 정말로 눈치 없는 머저리를 보는 표정이어서 리들은 내심 충격을 받았다. 이는 가히 횡포 수준이었다. 적어도 리들에게는 그러했다.

“나도 계속 선배라고 부를 거야. 리!들!선!배!”

여자의 횡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허우대만 좋지 성격 나쁘고 사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내가 왜 만나고 있는지……. 거기다 눈치까지 없어!”

남자가 급기야 자신이 요 근래 무얼 잘못 했나 행동을 돌이켜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자는 그것도 모르고 야속하게도 비수를 꽂아버린다.

“이 얼간이! 머저리!”

흥! 여자는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떠버렸다. 덩그러니 남은 리들은 리브의 독단적인 태도에 화가 나기보다는 충격이 더 큰 것 같았다. 허우대만 좋지 성격 나쁘고 사악하기 짝이 없는……. 리들에게 있어 그 말보다 더 충격인 것은 연인이 떠나기 직전에 뱉고 간 말들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단어에 리들은 얼이 빠졌다. 얼간이라니, 머저리라니!

Mentoring 'Supplementary Story'

Tom Riddle X Olivia Brilliant

[Nickname]

“리브. 왜 이렇게 심통 난 표정을 짓고 있어?”

친구 오리온의 물음에 리브가 혼자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그의 사주라도 받은 모양이지? 너한테는 말 안 해.”

그 말에 오리온의 무뚝뚝한 얼굴에 뜨끔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을 정확히 캐치한 리브가 새침하게 덧붙였다.

“그런 건 본인이 직접 알아내라고 해. 뒷공작 하는 남자 매력 없어.”

연인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려는 남자의 노력을 뒷공작으로 명명한 여자의 냉정함에 오리온은 땀을 삐질 흘렸다. 그 뒷공작 하는 매력 없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리브는 입꼬리를 쓱 올렸다. 난데없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그리고 그녀는 트레이드 마크와도 다름없는 골드 블론드를 높이 틀어 올려 비녀를 꽂았다. 새하얗게 드러난 목덜미에 남몰래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던 남학생들의 시선이 확 쏠리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있는 오리온도 예외는 아니었다. 항상 단정하게 정돈된 생머리를 고수하던 금발이 틀어 올려지며 몇 가닥 흘러내린 모습은 색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저 흘러내린 몇 가닥과 새하얀 목덜미는 리브 특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능적이기 까지 했다. 그 리들도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킬 정도로.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들의 눈초리가 험악해졌다. 남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눈웃음을 치고 있는 모양새는―그 눈웃음의 상대가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들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데 충분했던 것이다. 저건 분명히 일부러 그런 거다! 리들은 그 추측을 확신으로 굳히며 리브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이제 남자는 자신의 연인을 응시하는 저 눈들을 하나하나 파버리고 싶다는, 누가 엿보면 기겁할 생각에 당도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흑안에 위험한 빛이 서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또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다음 행동은 남자의 광기를 사그라들게 할 만큼 예상에 없던 것이었다.

“허.”

여자가 남자에게 베하고 혀를 내밀어보인 것이었다. 마치 아이 같은 그 모습에 리들은 멍청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 멍한 모습은 리브가 자리를 휭 떠버릴 때까지 계속 되었다. 멍한 표정을 수습한 리들은 이제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방비해졌는지 본심이 흘러나왔다,

“나도 중증이다 정말.”

이제 박장대소를 하는 아브락사스에게 리들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모습도 귀여워 보이니 원.”

*

대외적으로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리들은 유년시절의 리브가 어땠는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유년시절의 리들에게 리브는 튀는 색감을 가진 벙어리 여자아이 정도였다. 금발과 벽안은 서양에서 흔한 색감이기는 했으나 리브의 것은 화려함의 극치였고 보기 드문 빛이었다. 거기다가 여자애들이 갖고 싶어 할만한 인형처럼 생긴 벙어리 여아는 또래 여자애들이 신경써주는 편에 속했다. 그래서 가끔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어린 리브를 쿡쿡 찌르는 등 괴롭힘을 일삼으면 또래 여자애들이 무어라 쏘아붙이는 모습이 종종 발견되곤 했다. 그 괴롭힘은 악의 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예쁘장한 또래에 대한 호기심이나 호감과도 같은 행동이었으나 그만 때 애들이 그것을 알 리는 만무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빛을 발하는 보호본능은 본연의 것인지 유년시절에도 제 힘을 발휘했다. 짓궂은 남자애들은 리들에게 나쁜 짓을 일삼다가도 리브가 근처에 있으면 눈치를 보며 그것을 관둘 정도였던 것이다.(리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들을 잔인하게 응징해주었다.)

리브는 또래에 비해 체구도 작았고 특히 성장이 상당히 더딘 편이었다. 그 아이들에게 리브는 자신들보다 아주 어리게 느껴졌으리라. 그리고 천사가 현신한 듯한 리브의 외모에 알아서 행동을 조심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사실 이런 저런 이유로 리브는 고아원 아이 치고는 별 탈 없이 자란 편이었다.

그런 리브가 어리게 느껴지는 것은 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리브 특유의 연약함과 보호본능은 리들에게도 어김없이 통용되었다. 그래서 리브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면서도 어리게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리브의 존재를 정확히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열 두 살일 때였으나 그때의 리브는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리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어른이 되어 가듯 소녀가 여자가 되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다.

키가 크면서 허리가 잘록해지더니 어느 순간 가슴이 봉긋 솟아있었다. 그리고 마냥 아이 같던 몸에 곡선이 생기며 여자의 모양새를 갖춰가는 모습을 보며 리들은 종종 리브가 여자라는 것을 확 느끼곤 했다. 언젠가 무심코 끌어안았을 때 느낀 말랑한 가슴의 촉감에 리들은 답지 않게 움찔하기도 했다. 리들에게 리브는 정말로 여동생 같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리브에게 고백하는 남학생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저 순진하고 젖비린내 나는 애한테 뭘 바라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리들이 오판을 한 게 있다면 리브는 마냥 어리지 않았고 그렇게 순진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성격을 파헤쳐보면 리브는 절대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리들은 종종 아브락사스 같은 친인에게 다들 리브의 저 천사 같은 외모에 속고 있다며 얼마나 영악하고 무서운 여자인 지 아냐며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타인은 물론이고 가끔은 그 톰 리들 마저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모양새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다른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당했지만 눈치가 비상한 리들은 그걸 고스란히 알았다. 타인이었다면 얄짤 없겠지만 그녀는 그가 마음에 담은 유일무이한 여자였다.

그렇게 알면서도 휘둘릴 수밖에 없는 그 무한한 사랑스러움은 리들이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연인을 영악하다, 괘씸하다 하면서도 리들은 매 번 져줘야만 했다. 그리고 리브는 그런 리들을 너무나도 잘 알았고 적정선을 지키며 이리저리 주물렀다.

“내가 이렇게 끌어안고 사랑 한다 속삭여주면 당신은 이제 안 그러겠죠? 그저 감정 조절이 서툴렀던 것뿐이고 몰랐던 거니까. 그렇죠?”

리브는 리들을 다루는 데에 아주 도가 터있었다. 어리고 서툴러서 싸우기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좀 더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재주는 나날이 상승하고 있었다.

“사랑해요.”

그 달콤한 속삭임에 리들은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었고, 자신의 심장을 꺼내 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연인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잘근잘근 씹어 삼키고 싶을 만큼. 리들은 이대로 리브를 완전히 가지고 싶은 것을 참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몰랐다.

리들은 순간의 혈기를 다루지 못해 일을 치는 또래에 비하면 인내심이 상당히 깊은 편에 속했다. 리브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그는 연인이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무한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하루 빨리 진도를 빼고 싶어 하는 것은 불안한 이들의 전유물이라며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그리 조급하게 구냐며 신랄하게 비웃었다. 리들에게 키스와 같은 성적 행동들은 리브와 함께 딸려오는 옵션에 불과했다. O로 도배된 성적표를 받으면 항상 딸려오는 교수들의 칭찬과 학생들의 찬양 같은 그러한.

하지만 리들은 그 옵션에 중독되었다. 맛보고 나니 너무나도 달콤하고 황홀하기 짝이 없었다. 리들도 남자인 이상 사랑하는 여자를 만지고 싶고 입을 맞추고, 더한 짓도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자신의 품에서 곱게 웃는 리브를 볼 때마다 리들은 참기 힘든 위험한 충동을 느꼈다. 지금은 상관없었지만 과거에 키스를 하다가 절로 손이 가슴으로 가는 것을 참느라 애쓴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리브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닌 여자였지만 리들은 조심스러웠다. 혹 이런 방면에는 순수한 그녀가 자신의 섣부른 행동으로 겁을 먹으면 어떡하나 걱정됐던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리들은 키스를 하며 엄한 곳을 지분거리는 등의 리브의 환상을 깰만한 짓을 절대로 삼갔다. 그는 꽤나 배려심 있는 남자였다. 여자들이 키스 그 이상의 것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지대한 지 아브락사스가 종종 흘리는 말들 때문에 잘 알고 있었고, 그리하여 기꺼이 연인의 환상을 지켜주고자 했다. 그렇게 리들이 억누르던 스킨십이 더 확장된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사실 리브가 무덤을 판 것이기도 했다.

*

[내 남자친구는 자꾸 키스를 하다가 가슴을 만지는 데 정말 안 그랬으면 좋겠어.]

[맞아 맞아, 내 애인도 그래! 한 번 그러지 말라고 화를 냈는데 글쎄 본능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더 이상 화를 못 냈어. 사실 익숙해지니까 그리 나쁘진 않더라구.]

또래 친구들의 말에 리브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어진 또래 친구들의 물음에 당황해야만 했다.

[리브, 리들 선배도 그래?]

[당연히 그러겠지. 리들 선배도 남잔데.]

[맞아, 그건 본능이래. 절대 못 참는 거라던데?]

리브는 친구들이 리들을 성욕 없는 고자로 몰 것이 두려워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재차 대답을 요구하는 친구들에게 ‘그는 무척 신사적이야.’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해줬을 뿐이었다. 그리고 리브는 궁금증을 못 이겼고 결국 무덤을 파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무덤은 본의 아니게 돌직구라는 방법으로 표출되었다.

“리들 선배도 내 가슴 막 만지고 싶고 그래요?”

마담 퍼디풋의 찻집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리들은 그것을 뿜을 뻔했다. 리브는 자신이 불쑥 뱉은 말이 뭔지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너,너……. 여자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것도 미성년 주제에!”

리들의 당황하는 모습은 꽤나 신선했다. 그래서 리브는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여유 있게 그렇다, 혹은 아니다. 라는 딱 부러진 대꾸를 할 거라 생각했던 남자는 의외의 부분에서 차분함을 잃고 있었다.

“그래봤자 선배랑 나랑 한 살 차이거든요? 그리고 나도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성인이라구요.”

턱을 괴고 눈을 빛내며 연인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는 리브의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러워서 리들은 공개적인 장소라는 것을 잊고 말았다. 남자는 그대로 몸을 불쑥 앞으로 내밀고 여자에게 입을 맞췄다. 깜짝 놀란 연인이 몸을 뒤로 빼려하자 리들은 그러지 못하게 손을 뻗어 여자의 뒷머리를 아프지 않게 움켜쥐었다. 이어지는 열렬한 키스에 리브는 포기한 채 눈을 감고 화답하듯 입술을 열어주었다. 공개적인 데서는 싫은데…….

그리고 어느 순간 리들의 다른 손이 제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리브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가 귀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 낯선 느낌에 리브가 움찔했으나 남자는 귓불을 지분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묘하게 자극적이어서 리브는 살짝 몸을 떨었다. 이제 그 손은 가냘픈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 쇄골에 닿고, 점점 내려가 가슴골에 닿기 직전 떨어졌다. 하지만 이어서 그 손은 여자의 작은 손을 잡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 손에 들어간 악력에 리브는 아픈지 살짝 소리를 내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 순간 퍼붓다시피 하던 키스가 멈추고 리들이 입술을 떼어냈다. 코가 맞닿을 만큼 가까이에서 본 리들의 흑안은 거칠게 일렁이고 있었다.

“아프게 해서 미안, 참느라 그랬어.”

키스의 여운으로 거칠게 숨을 내쉬는 리들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섹시하게 들려왔다. 마찬가지로 숨을 가쁘게 내쉬는 리브의 숨소리를 들으며 리들은 충동이 치미는 것을 꾹 참았다.

“뭐,뭐,뭘요…?”

“나도 남자야, 안 만지고 싶겠어?”

리들이 무엇을 만지고 싶다는 건지 깨달은 리브가 얼굴을 확 붉혔다. 남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무언가를 참느라 몹시 가라앉아 있었다.

“먼저 말을 꺼냈으니 허락한 것으로 알게. 이제 안 참을 거야.”

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남자였다. 그제 서야 리브는 자신이 무덤을 팠음을 깨달았다. 리들은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네가 성인이 되면 그 이상을 기대해도 되겠지?”

지금의 남자는 얼굴, 미소, 눈빛, 목소리 하나하나까지 몹시 고혹적이었다. 리브는 그 마성에 홀려 순간 ‘네.’라고 대답해버렸다. 여자가 정신을 차리고 그것을 정정하기도 전에 남자가 다시 입술을 부딪혀왔다. 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을 들여 부드럽고 황홀한 키스를 선사했다. 리브가 자신이 무덤을 하나 더, 그것도 거하게 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주 먼 훗날이었다.

*

리들은 리브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이대로 그녀를 완전히 가지고 싶다는 욕망과, 아껴주고 더 소중히 여겨야 하나는 욕망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그리고 승리한 것은 전자였다. 아브락사스가 리들의 혼란에 사랑하면 당연한 거라며 명쾌하게 마침표를 찍어준 것이었다. 오히려 리브는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본인이 들으면 펄쩍 뛸 소리를 하긴 했지만 리들의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대답이기도 했다.

그 때 리브가 판 무덤을 기점으로 둘의 스킨십은 더욱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매번 부끄러워하면서도 의외로 리브는 연인과의 성적 행동에 대해 예상보다 관대한 편에 속했다. 성격 상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스킨십을 꺼렸으나 단 둘이 있을 때는 리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고, 가끔은 자신이 먼저 입맞춤을 시도하기도 했다. 나긋나긋하게 감겨오는 리브는 리들에게 황홀경을 줌과 동시에 위험한 욕망을 부채질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을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기에 그녀는 너무나도 깨끗하고 순수했다. 마치 순백의 천사와도 같았다. 그래서 종종 리들은 리브의 입술을 탐하고 스킨십을 할 때마다 자신이 그녀를 타락시키는 것이 아닌 가 이유 모를 죄책감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리들은 사악한 성정에 가학적인 기질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은 가끔 거친 양상으로 표출되었다. 그래서 종종 리브는 리들의 거친 행동에 숨을 헐떡거리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리들은 자제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며 한동안은 리브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으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말 견디기 힘들 때면 리들은 리브가 미성년이며 어리다고 자신을 세뇌시키듯 되뇌었다. 그럴 때마다 아브락사스는 리브는 어린애가 아니라 성숙한 여자라며 그 세뇌를 깨곤 했지만 어쨌든 리들은 정도를 아는 착실한 남자였다.

그 강제적인 세뇌는 리브가 성인이 되자마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리브가 열일곱 생일을 맞고 성인이 되자 리들이 억눌렀던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기다 언젠가부터 급격하게 성장한 리브의 성숙한 몸도 한 몫 했다. 리들의 특유의 예리함은 이런 곳에도 발휘되어 리브의 몸매를 훤히 꿰기에 이르렀다. 사실 리들은 머릿  속으로는 수도 없이 리브를 안고 또 안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꿈속에 나타나 리들과 사랑을 나눴다. 그런 리들에게 리브의 나체에 대한 상상은 별 것도 아니었다.

매끈한 다리와 엉덩이부터 시작해서 가슴 크기까지. 그렇게 연인의 벗은 모습을 상상하던 리들은 자신의 음란함에 당황하기도 했다. 특히 순수한 눈망울로 자신을 응시하는 리브를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이 문득 들 때면 남자는 죄책감을 물씬 느꼈다. 이제 리들은 과거에 했던 리브를 망치면 어떡하나. 이 생각을 다른 쪽으로 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그런 연인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들에게 특히 무방비한 리브는 참으로 배려가 없는 여자였다.

특히 리브가 리들에게 폭 안길 때마다 느껴지는 가슴의 말캉한 감촉 같은 것은 특히나 곤혹스러웠다. 그럴 때면 리들은 키스를 퍼부으며 원인을 지분대는 것으로 달래보곤 했지만 사람의 욕심을 끝도 없는 것이었다.

“자고 싶다.”

그렇다. 리들은 리브와 자고 싶었다. 순수하게 자는 것 말고.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직접적인 단어로 섹스라고 했던가.

“자면 되잖아.”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리들의 본심에 아브락사스가 대꾸했다. 하지만 리들은 곧바로 반박했다.

“어떻게 그래. 그녀는 아직 어려.”

리들의 말에 아브락사스는 대놓고 콧방귀를 뀌었다.

“걔가 뭐가 어려. 넌 가만 보면 리브를 참 어리게 보더라. 아무리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다고 해도 그렇지 좀 심해. 꼭 지켜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니까. 하긴 리브가 또래보다 동안인 데다가 보호본능이 장난 아니긴 하지. 가끔은 나도…….”

아브락사스는 싸늘하게 변해가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말을 뚝 멈췄다. 리브의 외모가 아브락사스의 취향에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은 리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특히 아브락사스는 리브를 대할 때 행동을 조심해야만 했다. 리브가 친구의 연인만 아니었어도 아브락사스는 리브에게 편하게 말을 놓으라며 거리를 확 좁혔을 것이었다. 아니 그 마수를 뻗었으리라. 하지만 친구의, 그것도 꽤나 소유욕과 집착이 강한 리들의 여자친구였기에 거리를 일정 부분 두었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현명한 판단이었다. 아마 리브와 편하게 격의 없이 대할 날은 자신이나 혹은 리브가 결혼하고 난 후가 아닐까 생각하는 아브락사스였다.

“내 여자친구 보면서 이상한 생각하면 너라도 가만 안두겠어.”

“그.그런 생각 안 해!”

순간적으로 느껴진 살기에 아브락사스는 재차 결백을 호소했지만 리들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리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로 마음먹고 말았다. 여자들은 분위기에 약하다고 하니 함락시킬 수 있으리라.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다. 그렇게 한 걸음 씩 내딛다 보면 종국에는 Z까지 진도를 빼게 되겠지. 그렇게 리들이 머리를 굴리는 시기에 리브가 난데없이 성질을 부리는 지경이 이른 것이었다.

[선배야 말로 더 예쁘게 불러줘요.]

대체 무슨 호칭을 원하길래? 온갖 낯간지러운 단어는 다 갖다 붙여보았지만 리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괜히 심술을 부리는 건가 싶기에는 그 후에 들은 리브의 언행이 너무나도 거칠었다. 눈치가 없다니, 얼간이라니, 머저리라니!

특히 그 이후로 리브는 리들을 볼 때마다 새침하게 굴었다. 묘하게 퉁명스러웠으며 스킨십도 일체 받아주지 않았다. 학생회실에서 회의를 하는 데 리브가 남학생회장인 리들의 안건에 사사건건 반대하며 반박을 하는 통에 주변에서 식겁하기도 했다. 그쯤 되자 둘이 싸운 게 분명하다며 리들리브 커플의 불화설이 돌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리들이 차일 것이다. 아니면 리들이 이별통보를 할 것이다. 이런 억측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분수도 모르는 여학생들이 리들을 탐내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여학생들은 리브라는 막강한 존재 때문에 차마 질투도 못하고 리들의 여자친구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리들과 얽혔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던 저학년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의 리브는 호그와트 내에서 상당한 거물이었다. 많은 여학생들의 동경을 한 몸에 받는 롤모델이며 남학생들에게 여신으로 추앙 받는 아름다운 미모의 여학생은 톰 리들의 여자친구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톰 리들을 올리비아 브릴리언트의 남자친구라고 칭하며 여자 쪽이 더 아깝다는 의사를 표할 정도였다. 하지만 불화설이 돌면서 희망을 갖는 여학생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리브와 사귀면서 타인에게 행동이 너그러워진 리들의 성격이 그들에게 환상을 심어준 것이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임자 있는 남자는 그 여자의 작품이라고. 리브의 작품인 리들은 가히 최상품이었다. 사실 톰 리들이라는 본연의 원석 자체도 매력적이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잘 다듬어진 세기의 작품이라니 더욱 더 탐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녀들은 그 최상품에게 손을 뻗기 시작했고 리들은 결국 유한 모습을 벗고 본성을 드러내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리브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악!”

거침없는 몸짓으로 장미목 지팡이를 휘두른 리브는 리들의 주위에 방어막을 침으로써 그녀들을 떼어놓았다. 참으로 섬세하게도 리들만을 둘러싼 반투명한 방어막은 가까이 오는 여자들을 무참하게 내팽개쳤다. 한 여학생이 이게 무슨 짓이냐며 항의를 했지만 리브는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한 마디 내뱉었다.

“도둑질을 하려던 주제에 참 당당하네.”

“무슨 소리에욧!”

“남의 남자를 탐내는 게 도둑질이 아니면 뭐야.”

리브는 리들에게 배운 행동 양식들을 아낌없이 써먹었다. 지금 리브가 드러내고 있는 오만함과 고고함은 리들에게 배운 것이었다. 리브는 리들과 멘토링을 하며 지식만 습득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하나하나의 태도와 행동양식까지 섭렵했다. 그렇게 좋은 것은 취했고, 나쁜 것은 버리기 보다는 아예 당사자 자체를 바꿔놓았다. 그것은 오랜 기간 리브의 인내심과 노력이 첨가된 결과물이었다.

“둘이 싸운 거 아니었어요? 아니, 헤어졌다고 들었는데!”

한 어린 여학생의 당돌한 말에 리브는 얼굴을 찌푸리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참으로 매력적이어서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까딱하면 홀릴 정도였다. 주변의 남학생들은 아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무 데서나 그렇게 웃지 말라니까. 리들의 눈빛에 살짝 불만이 서렸다. 당장이라도 훈계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헤어졌어요? 당신이 대답해.”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목소리는 묘하게 신경질 적이었다. 이 상황 자체가 달갑지 않다는 표시에 리들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 여자야, 너도 내 기분을 알겠지? 여기서 그런 헛소리를 뱉었다가는 저 지팡이에서 어떤 주문이 흘러나올지 몰랐으므로 리들은 순순히 원하는 대답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그놈의 호칭 문제에 대한 분풀이로 심술을 부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리들은 여전히 그 호칭의 정답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 정도 다툼으로 헤어질 생각은 없어. 그런데 네가 조금 억지를 부리긴 했지. 불화설이 도는 것도 당연해.”

만약 눈치라는 게 있다면 여학생들은 바로 자리를 뜨는 게 현명했을 지도 몰랐다. 리브는 어떻게 하면 연인을 혼내줄 수 있을까 주문을 고심 중이었던 것이다.(물론 그 후의 리들은 화를 내고 규칙을 어겼으니 벌을 주겠다며 분풀이를 하겠지만 리브는 전부 각오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까지 고려하기에는 너무 감정적인 상태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 여학생은 너무 어린 탓에 눈치가 덜 발달해 있었다.

“뭐야, 싸운 건 맞다는 뜻이잖아.”

그 말에 막 마법을 걸어 리들을 개망신 주려는 리브의 시도가 끊겼다. 저 지팡이의 주문이 철없는 여학생을 향할 거라는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리브는 지팡이를 품속에 감췄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그 걸음걸이는 고명한 순수혈통 가문의 핏줄답게 기품이 넘쳤다. 남들은 몰랐지만 역시 리들에게 답습한 패턴이었다. 그 작은 행동 하나에도 여학생은 주눅이 들었다. 급이 다르다는 것이 물씬 느껴진 것이었다.

“흐음, 혹시 너 머글 태생이니?”

“저,저를 혈통으로 모욕주실 생각이세요? 그렇게 안 봤는데! 그리고 전 혼혈이거든요!”

여학생의 날선 태도에 리브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니? 난 그저 네가 머글식 폭력에 대해 알고 있나 궁금해져서 물어본 거란다.”

뜬금없는 ‘머글식 폭력’이라는 말에 여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상스러운 짓은 리브와는 정말 거리가 멀어보였던 것이었다. 리브는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만큼 순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저 작은 손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니 날아가던 부엉이가 웃을 것이다.

“가령 머리채를 잡아서 흔든다든가……. 뺨을 내리치는 것이라든가……. 혹시 본 적은 있니?”

그 말에 리브의 전적을 알고 있는 고학년 생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협박이었다.

“원하면 내가 알려줄 수도 있어. 한 번 쯤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마치 어린 아이에게 알파벳을 알려주겠다고 선심 쓰듯 상냥한 말투였다. 여학생은 감이 잡히지 않는 지 멀뚱멀뚱 리브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브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을 보며 주변에서는 제 2의 파킨슨이 탄생하겠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차마 말리려고 나서지 못했다. 제 2의 파킨슨이 자신이 될 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리브는 한 번 화나서 폭발하면 몹시 무서운 여자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리브가 요즘 들어 특히 기분이 좋지 못하며, 지금은 몹시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리들이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방어막은 리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리들이 지팡이를 꺼내 그것을 톡톡 두드리자 스파크가 튀었다. 마치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이런 고난이도 마법은 또 어디서 배운 거야. 그렇게 생각하던 리들은 리브의 마법에 관한 모든 것은 자신에게 배웠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나 때문이로군. 하지만 톰 리들이 누구던가. 이 정도 마법 하나 못 깰 인물이 아니었다. 그 움직임을 눈치 챘는지 리브가 싸늘하게 경고했다.

“거기서 움직이기만 해봐. 당신부터 경험하게 해줄 줄 알아. 처신하나 못해서 이딴 상황을 만들어?”

리브의 말투에는 질투라는 감정이 섞여서 보다 날선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리들은 그 정도에 쫄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자신으로 인해 질투를 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이대로 관망하자니 리브가 또 하나의 사건을 만들 것이 분명했다. 리브가 원한다면야 무얼 하든 리들은 상관없었지만 이런 식의 행동은 장기적으로 리브 본인에게도 좋지 못하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았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폭발하는 성격은 일차적으로는 주변이, 이차적으로는 리브 본인에게 해가 되었다.

그래서 리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지팡이를 휘둘러 방어막을 해체시키기 시작했다. 점점 리브의 마법실력이 느는 통에 리들은 살짝 난항을 겪었지만 제 2의 파킨슨이 탄생하려는 순간 방어막을 깨고 그녀를 막아 세웠다. 그리고 그 사이에 주변 여학생들이 화를 당할 뻔한 여학생을 데리고 줄행랑을 쳤다. 리브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려 하자 리들이 빠르게 지팡이 끝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이제 무언 주문을 자유자재로 쓰는 리브는 마법을 쓰는 속도도 몹시 빨랐다. 하마터면 튀어나온 주문으로 손을 다칠 뻔했다. 깜짝 놀란 리브가 마법을 시전하려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빽 소리쳤다.

“큰일 날 뻔했잖아요! 막 잡으면 어떡해! 다치면 어떡하려고!”

“이러지 않으면 넌 멈추지 않을 테니까.”

리브를 제지하는 리들의 목소리는 엄격했다. 리브가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고 리들을 떨치려 했다.

“올리비아, 참아. 겨우 저학년 생한테 뭐하려는 거야.”

“이거 놔요. 혼찌검을 내줄 거니까. 그리고 당신은 나한테 할 말이 없는 사람이야.”

“할 말이 왜 없어. 너부터 나한테 혼날 줄 알아. 감히 나한테 저딴 걸 걸어놔?”

이제는 리들도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했다. 리들은 리브가 자신을 떨쳐내는 주문을 쓰려는 것을 알았다. 리브를 가르치는 일은 꽤 보람찬 일이었지만 이렇게 써먹을 때마다 리들은 괜히 가르쳤다 싶었다.

“너 그 주문 쓰는 순간 정말로 화낼 거야. 경솔하게 굴지 마.”

“화내면 어쩔 건데! 내가 그렇다고 가만있을 줄 알아?”

“잠자코 따라와, 널 구경거리로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리들의 강압적인 말에 리브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의 손목을 붙잡고 무작정 끌고 가기 시작했다. 리브는 이거 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반항을 시도했지만 리들은 싸늘하게 조용히 하라는 말로 입을 닫아놓았다. 보는 눈이 없는 한적한 복도로 도착하자마자 연인을 놔주었다. 그러자 여자는 홧김에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그 모습에 남자는 과거의 좋지 못한 기억이 떠올라 분노가 솟는 것을 느꼈다.

“왜, 또 내가 가르친 주문으로 날 공격하기라도 하게?”

그 순간 리브의 얼굴이 파삭파삭 굳었다. 순간 여자의 눈길이 흉터가 남은 리들의 귓바퀴로 향했다. 과거에 도망친 자신을 잡으러 온 리들에게 리브가 주문을 날렸고 그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피를 쏟으며 아파하던 그는 리브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목으로 지팡이의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리브는 눈물을 쏟아내며 리들을 원망했다. 그 흉터는 그날의 흔적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나자 잔뜩 날서있던 리브의 기운이 바닥을 뚫을 듯이 가라앉았다. 잔뜩 풀 죽은 리브에게 리들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나한테 마법 쓰는 그런 못된 건 누구한테 배웠어. 내가 한 번만 더 그러면 혼난다고 했지. 거기다 날 공격하려고 해? 내가 한 번 크게 다쳐서 네 눈물을 쏙 빼놓기라도 해야 해?”

리브는 이성적이고 유순하기 짝이 없다가도 가끔 이렇게 감정적으로 폭발해서 주변을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그것에서 그치면 좋으련만 그 행동은 리브 본인도 좀먹게 만들었다. 리들은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었고 그래서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평소에 너무 참지 말고 그것을 표현하라 권했다. 하지만 억누르기만 하는 리브의 성격은 쉽게 고쳐질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리들은 그러한 리브의 성격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았다. 리브는 겉모습과는 달리 정신력이 강했으나 의외로 여린 편에 속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언제든 미움 받고 버려질까 두려워 전전긍긍했다. 리들은 그것을 정확하게 짚어냈고 리브에게 자신은 결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이 감정을 지속할 거라 납득시켜야만 했다. 그 고질적인 성격 탓에 리브는 리들과의 관계를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너무 겁이 많았다. 그래서 리들이 그토록 강박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걸지도 몰랐다.

“내가 너로 인해 죽기라도 해야 정신 차릴 거야?”

리브는 발작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창백한 얼굴로 파르르 눈꺼풀을 떠는 연인을 보며 리들은 마음이 약해졌지만 강하게 밀고나가기로 했다.

“참으려면 아예 끝까지 참으란 말이야. 이렇게 이상한 데서 터뜨릴 거면 평소에 참고 쌓아두지를 마.”

그 말에 리브는 살짝 울컥한 것 같았다.

“이상한 데서? 내가 왜 화가 난 지 몰라요?”

잠자코 리들에게 혼나던 리브가 고개를 치켜들고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리들에게 따져봤자 논리적으로 다 막히고 더 호되게 잡힐 거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어느 정도 감정적으로 경솔하게 군것이 맞으니 순순히 혼이 나고 있었건만 리들의 말에 리브는 야속해졌다. 눈앞의 연인이 원망스러워 졌다.

“화가 날 게 뭐 있어. 나한테 달라붙는 여자가 한 둘이야? 옛날에는 잘만 무시하더니 왜 그래.”

“내가…….”

“그렇게 따지면 난 매일 화내고도 남았어. 너도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이 나쁜 놈아!”

리브가 빽 소리를 지르며 리들을 노려보았다.

“화가 날 게 뭐있냐고? 내가 성녀라도 돼? 그것들 당신한테 사랑의 묘약을 먹이겠다고 호시탐탐 노리던 계집애들인건 알아?”

리브의 외침은 정점을 찍었다.

“내 남자를 탐내는 데 내가 그런 치졸한 짓까지 계속 참아야 한단 말이야?”

순간 리브의 푸른 눈동자에 맺힌 집착과도 같은 감정에 리들이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당신만 소유욕이 강한 줄 알아? 나도 내 것에 대한 인식이 강해!”

리브는 리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종종 리들이 리브에게 그러하듯. 순간 적으로 리들은 짜릿한 쾌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당장에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 거리는 연인이었으나 너무 사랑스러워 이대로 끌어안고 싶었다. 그대로 손을 잡고 끌어당기려는데 리브는 가차 없이 그 손을 쳐냈다.

“내가 원하는 게 뭔 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때까지는 안 받아 줄 거야.”

리들은 리브의 축적된 화가 어디서 기인한 지 깨달았다. 리들이 자신이 원하는 호칭을 불러주지 않아 단순히 삐진 게 아니었다. 기다림에 지치자 리브는 이제 화가 나기 이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불편한 심기는 리들을 탐내는 여학생들에 대한 분노로 분출되었다. 이성적이고 착하디착한 연인의 질투는 생각보다 깊고 질겼다. 그러자 리들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다음으로 리브가 뱉은 말에 웃음이 쏙 들어가 버렸다.

“이런 걸 내가 남자친구라고 데리고 있다니, 눈치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지!”

“오,올리비-”

“시끄러워요, 이 멍청아.”

이제는 멍청이라는 소리까지 듣기에 이르자 리들은 정말 자신이 멍청하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당신, 다른 계집애한테 한눈이라도 팔아봐! 머리채를 다 뜯어버릴 줄 알아!”

“한 눈 판적 없어. 앞으로도 안 그럴 거고…….”

“그럼 내가 나서기 전에 알아서 떼어내란 말이야! 전에는 잘만 했으면서!”

“그러면 올리비아 네가 싫어하잖아.”

타인에 대한 리들의 유순한 태도는 리브로 인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리들은 억울해졌다. 원하는 대로 해줘도 난리.

“그 정도 구분은 좀 알아서 해!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도 모를 시기는 지났잖아!”

이제 리들은 리브가 혹시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있다는 그 날인지 의심이 갈 지경이었다. 리브는 화인지 짜증인지 모를 것을 잔뜩 내고 있었다. 리들은 리브가 제 성질을 못 이겨 엉엉 울 지경에 다다를 까봐 가만히 입을 다무는 것을 택했다. 여기서 같이 따지고 들었다가는 결과가 좋지 못했다. 리브는 한 번 눈물이 터지면 좀처럼 멈추지 못하는 쪽에 속했고 그때는 리들이 아무리 달래도 쓰러질 때까지 울었다. 그가 사랑하는 연인은 참으로 까다로운 여자였다.

“허튼 짓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남자 구실 못하게 만들겠어.”

“올리비아 너 말이 좀…….”

이제 남성을 위협하는 소리까지 서슴지 않는다. 리들이 무어라 한 마디 하기도 전에 리브가 빽 소리쳤다.

“그리고…… 그놈의 올리비아 소리 좀 그만하란 말이야!”

그 말을 마친 채 리브는 뒤돌아서 휘적휘적 가버렸다. 여자는 나름 힌트를 준 것이었다. 하지만 리들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리들은 답답함에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빽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이 리브에게 들릴 리는 만무했다.

“그럼 너를 올리비아 말고 뭐라고 불러!”

*

정답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남자들은 다 그렇게 눈치가 없어? 톰 리들도 똑같아!”

리브의 말에 에밀리는 헛소리를 들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까지 나를 ‘올리비아’라고 부를 생각인지! 난 정말 많이 기다렸다구.”

에밀리 역시 리들이 리브에 대한 호칭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리브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에밀리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리들에 대한 동경보다 리브에 대한 우정이 더 깊었기에 잘 모르겠다고 일관했다.

“정말 모르는 것 같은데 직접 알려주는 건 어때?”

에밀리의 말에 리브는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거 하나 요구한다고 리들 선배가 널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

“……자존심 상해. 괜히 이상한 데서 집착하는 거 같잖아. 나한테 질릴 지도 몰라.”

그 말에 에밀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미 집착하는 건 다 드러난 거 같은데……. 물론 에밀리는 그 말을 뱉을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리들 선배가 너한테 질릴 리가 있겠어?”

“나보다는 더 고분고분한 여자를 좋아할 수도 있지……. 아까도 혼났어. 경솔하게 굴었다고. 그리고 또 싸웠어. 아마 나 같은 여자는 질릴 거야. 잔뜩 화만 내고 왔으니. 나라도 싫겠다.”

리브는 이제 잔뜩 풀이 죽었다.

“나중에 사과해야겠어. 그리고 호칭 따위는 그냥 관둘래. 굳이 ‘리브’라고 부르기 싫어하는 사람한테 고집할 수는 없지. 그러면 더 비참할 거 같아.”

풀이 죽어서 학생회실을 나간 리브를 보며 에밀리는 어딘가에서 엿듣고 있을 리들에게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했다.

“하긴 연인 사이에다가 알고 지낸 지도 오래 됐는데 계속 풀네임을 부르는 것은 섭섭하긴 하다. 웬만하면 눈치채주지.”

*

리들이 리브를 ‘올리비아’라고 굳이 풀네임을 부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리브가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굳이 그것을 애칭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리브가 종종 그것을 넌지시 돌려서 말해왔던 것 같기도 했다. 가령 자신은 리브라는 애칭이 귀여운 느낌을 줘서 좋다든가. 그래 수많은 암시를 줘왔다.

하지만 리들은 리브를 꿋꿋이 ‘올리비아’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꽤나 유치한 마음에서 유래되었다. 자신의 연인은 많은 이들에게 쉽게 애칭을 허락했다. 그 이름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것이라서 싫었다. 그래서 리들은 리브를 절대로 그 애칭으로 부르지 않았고 남들이 쓰지 않는 풀네임으로 호칭했다.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양. 그래서 ‘올리비아’라는 이름이 마치 자신만의 전유물과도 같은 기분이 들어서 리들은 무척 흡족했다. 자신만이 부르는 이름. 그것은 특별함. 오로지 나만의 것. 끝까지 풀네임을 고집하는 데에는 이런 내막이 있던 것이었다.

리들이 리브에게 선배라는 호칭 대신 ‘톰’이라는 이름을 요구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그것은 리브가 리들에게 정말 특별하다는 하나의 증표였다. 리브가 그것을 알지는 모르겠지만. 눈치도 빠르면서 왜 이런 건 못 알아차리는 건지. 이런 바보 같은 여자야.

“리들 선배, 화내서 죄송해요. 그리고 마법 쓴 것도.”

“난 이제 네 선배이기 전에 연인이야. 죄송하다는 경어는 쓰지 마.”

“……그럼 미안해요.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어요. 크게 혼내도 되고 화내도 돼요.”

잔뜩 풀이 죽은 리브의 모습을 보며 리들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이런 너한테 어떻게 화를 내.”

“미안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알았어, 용서할 테니까 얼굴 좀 들어봐. 응? 리브(liv).”

그 말에 리브가 고개를 퍼뜩 들고 놀란 듯 리들을 응시했다.

“네가 이 호칭을 바라고 있을 줄은 몰랐어.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해야 될 거 아니야. 말도 안하는 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다고 레질리먼시 쓰면 넌 학을 떼잖아.”

과거의 리들 같았으면 당장에 레질리먼시를 써서 알아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리들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좀 더 성숙했고, 배려할 줄 알았다. 리브에 한해서였지만.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질리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 집착해도 상관없어. 오히려 난 좋은데? 귀엽거든. 아까도 그랬어.”

자신의 속을 전부 들킨 듯 리브는 리들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확 붉혔다.

“내가 널 혼낸 건…… 네가 평소에 너무 참다가, 터뜨리기만 하면 괜찮은데 네 스스로를 망치기 때문에 그런 거야. 그 후에 넌 항상 자신을 자책하니까. 결과적으로 너한테 안 좋잖아. 정말이지 넌 너무 착해, 쓸데없이. 약은 만큼 덜 착하면 좋을 텐데.”

약았다는 뒷말에 리브가 뾰로통하게 리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리브라고 안 부른 건……. 그 이름은 다른 애들도 부르는 거잖아. 흔해 빠졌어. 내가 그것들이랑 너한테 같아? 그래서 ‘올리비아’라고 부르는 게 더 좋단 말이야.”

리들의 본심에 리브가 눈을 깜박이다가 작게 웃었다. 이제는 리들이 겸연쩍어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둘만 있을 때는 불러줄게, ‘리브.’”

리브의 고운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담겼다.

“My lovely liv."

연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애칭, 그리고 낯간지러운 수식어에 여자는 얼굴을 살짝 붉히다가 그 어느 때보다도 예쁘게 웃어보였다. 그 꽃 같은 고운 미소에 리들은 잠깐 넋을 잃었다.

“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연인이 너무 사랑스러워 리들은 그녀를 끌어안고 급하게 입을 맞췄다. 갑작스럽게 연인이 입술을 부딪혀오자 살짝 당황하던 리브는 익숙한 패턴인 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급하게 시작한 입맞춤은 당연하게도 점점 격렬해지고 있었다. 당장에 잡아먹을 듯한 키스에 리브는 살짝 당황 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여자가 입술을 열어주자 남자의 혀가 무섭게 침투하며 입속을 거칠게 휘젓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리를 끌어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여자의 몸을 더듬는 남자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지금까지 스킨십을 거절당하고 욕구불만이 쌓인 결과물이었다.

농밀한 키스와 맞물린 그 손길은 몹시 자극적이어서 리브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여자의 입술에서 달뜬 신음소리가 흘러나오자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더욱 더 손을 지분거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열정적인 입맞춤에 여자가 어느 순간 힘겨워 하자 남자는 잠깐 입술을 뗐다. 그렇게 마주한 리브의 얼굴은 몹시 자극적이어서 리들이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인내심이 끊어졌다.

필요의 방은 리들의 거대한 욕망에 따라 침대를 제공했다. 리들은 이제 여자를 침대에 눕히고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 연인의 정신을 홀딱 빼놓기에 여념이 없던 리들은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살짝 살짝 살갗에 스치는 그 손길은 무척이나 뜨거웠고 리브는 리들의 매혹적인 얼굴을 보며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의 리들은 몹시 야했고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그래서 리들이 무얼 하고 있는 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옷이 벗겨지고 있는 지도 알지 못했다. 강력한 무언가가 리브를 옭아매고 놔주지 않았다. 그것은 페로몬 보다 더 강력한 마성이었다.

리브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리들은 빠르게 진도를 빼고 있었다. 인내심이 끊어지자 욕망은 거침없이 분출되어 그 행동으로 드러났다. 거의 단추를 뜯다시피 풀어낸 리들은 거세게 입을 맞추고 놀고 있는 손으로 연인의 온 몸을 지분거렸다. 가슴을 움켜쥐자 리브가 고통과 쾌락에 찬 신음을 흘렸다. 그게 자극제가 된 듯 리들의 손길은 더욱 더 분주해졌다. 어느새 치맛 속으로 들어와 허벅지를 쓸어내리던 손은 점점 은밀한 곳으로 향해오고 있었다. 리브는 리들이 허벅지를 쓸다가 점점 손을 안쪽으로 향하자 그 생소한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블라우스가 완전히 벗겨져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치마 후크가 풀리고 나서야 리브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다. 리들의 마성에서 벗어나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선배……. 자,잠깐…….”

불행히도 리브의 가녀린 목소리는 욕망을 채우려는 리들에게 자극제가 될 뿐이었다. 이글이글 불꽃이 튀는 듯한 그 흑안에 리브는 순간 겁을 먹었다. 순간 붉은 빛이 번쩍한 것 같기도 했다. 리들은 이제 리브의 속옷 한 장을 벗겨내고 새하얀 가슴을 잠깐 응시하다가 얼굴을 묻고 깨물 듯 입을 맞췄다. 리브의 입술에서 간드러지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붉은 꽃잎이 자잘하게 새겨졌다. 그와 동시에 리들의 손은 점점 은밀한 곳으로 향해오고 있었다. 이제 리브는 딱 미치기 직전이었다. 집착하듯 가슴을 핥기도 하고 빨기도 하고 깨물고 지분거리던 리들은 거칠게 치마를 벗겨냈다. 점점 나신이 되어가며 리들의 스킨십이 정말 위험할 지경에 다다르자 리브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리들은 이제 마지막 한 장 남은 속옷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그만해요! 서,선…… 하으…… 선…… 선배……. 흐으.”

리들은 참 재주도 좋게 애무를 함과 동시에 자신의 옷을 벗고 있었다. 정말 눈에 뵈는 게 없는 듯한 그 거침없는 행동에 리브는 잔뜩 겁을 먹었다. 리들과의 잠자리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리브의 상상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적어도 이런 곳에서, 그것도 이런 식은 아니었다. 좀 더 낭만적이고 부드럽고……. 특히나 처음 느끼는 이런 생소하고 낯선 감각과 리들의 광폭함과 난폭함은 리브에게 두려움과 공포부터 주었다. 이제 리브의 머릿속은 순간순간 밀려오는 쾌락을 떨쳐내고 이 거친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두려움이 커져 공포에 다다르자 이성을 완전히 되찾았다.

“자,잠깐만! 그만!”

정말 발정이 제대로 났는지 남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바지를 벗는 그 모습을 보며 여자는 식겁해서 빽 소리쳤다. 그녀는 이제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그만하라니까!! 야! 톰 리들! 멈춰!! 멈추라구!!!”

리브의 필사적인 외침에 리들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리브는 막 자신의 마지막 남은 속옷을 반쯤 벗겨낸 리들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 그리고 후다닥 위의 속옷을 착용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울상을 지었다. 내 블라우스 어디 갔어.

“내 블라우스……. 뭐 하는 거야, 어서 찾아봐요!”

리들은 리브의 날카로운 외침에 움찔하며 침대 밑으로 떨어진 블라우스를 다소곳하게 내밀었다. 그것을 휙 빼앗다시피 잡은 리브는 떨리는 손으로 블라우스의 소매에 팔을 끼우다가 리들의 손에 들린 치마를 낚아챘다. 남자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다가 그만 헛소리를 뱉고 말았다.

“내가 입혀줄…….”

“뭘 입혀 줘! 손 떼! 이 짐승! 변태야!!”

리브는 리들의 손을 확 쳐내고 치마를 입고 후크를 채웠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끝까지 갈 뻔했다. 리브는 얼굴은 방금의 행위에 대한 여운으로 잔뜩 상기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겁을 먹었는지 고운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데다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리브는 찔끔 흘린 눈물을 손등으로 쓱 닦아냈다. 그 모습에 리들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리브의 거침없는 언행에 상처를 입은 듯 했다. 짐승이라니, 변태라니!

“넌 그게 남자친구한테 할 소리야?”

“뺨을 안 맞은걸 다행으로 알아. 어서 옷이나 입어요! 바지도 똑바로 입고!”

언제 벗었는지 확 드러난 리들의 단단한 가슴팍을 보며 리브는 얼굴을 붉혔다. 훅 느껴지는 리들의 남성미에 리브는 새삼 그가 남자라는 것이 확 다가왔다. 특히 방금의 그 위험천만한 상황은 리브에게 리들의 남성적 면모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너무 가깝고 편해서 가끔 오빠 같다고 생각한 리브에게 그는 너의 연인이며 남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었다. 리들은 더 이상 단순한 선배나 오빠 같은 존재가 아닌 리브의 순결을 언제든 위협할 수 있는 남자였다.

사정은 리들도 별 다를 게 없었다. 막연히 자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자 리들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남자는 그런 자신에게 당황스러운 심정이었다. 꿈과 현실의 괴리감은 컸다. 리들은 언젠가 리브와 잠자리를 하게 된 다면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부드럽게 하려고 했건만 이건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도 거칠었다. 정말 리브가 힐난한 대로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철의 이성이라는 칭호는 리브의 벗은 몸 앞에서 순간 무너져 내렸다. 아브락사스의 말 대로였다. 리브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고 이제는 성숙한 여성이었다. 리들은 생각보다 큰 리브의 가슴에 놀라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얼마나 리브의 살결이 부드러웠는지, 그 신음소리가 얼마나 야했는지, 자신의 밑에서 잔뜩 들떠있던 그 얼굴을 떠오르자 리들은 또다시 욕망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리들은 슬그머니 이불을 자신에게로 끌고 왔다. 그리고 속으로 호그와트 교가 같은 다른 생각을 하며 자신의 부푼 아랫도리를 달래려 애썼다. 리브가 알았다가는 정말로 짐승으로 낙인찍힐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한동안 얼굴도 안 볼 지도 모르겠다.

둘은 잠자리 직전 까지, 다른 연인들이 하는 만큼의 진도를 뺐건만 아무래도 서로에 대해 다시 각인이 필요한 것 같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리들이었다. 간신히 욕정을 달랜 그는 리브의 발언에 대해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짐승에 변태라니. 저번에 내가 말했잖아. 네가 성인이 되면 기대해보겠다고. 그리고 넌 ‘네.’라고 했어. 난 네가 성인이고 그래서 괜찮은 줄…….”

참으로 뻔뻔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본인도 찔리는 듯 했다.

“아니야. 그러니까 넌 너무 무방비해. 한창 때의 나한테 네 행동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문인 지 알기나 해? 내가 참은 게 한 두 번이……. 아니 이게 아니지.”

횡설수설하던 리들은 리브의 날카로운 표정에 순순히 사과를 내뱉었다. 이건 자신의 실수였다. 리들은 자신의 인내심에 대해 과신한 셈이었다.

“급하게 굴어서 미안해. 배려가 부족했던 것 알아. 네가 준비가 덜 됐다는 걸 잊었어.”

그제서야 리브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새침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내가 너무 무방비했던 것 같네요. 이제 조심할게요.”

“아니 조심할 필요까지는…….”

“그렇죠? 그러니까 톰, 당신이 참아요. 신사적인 남자라면 당연히 그럴 테죠?”

너 정말 약았어. 리들은 지은 죄가 있어 그 말을 뱉지도 못하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연인을 응시했다.

“어서 대답해요. 설마 그 정도도 못 기다려요? 혹시 그럼 나랑 헤어질 생각?”

“시끄러워, 그딴 소리 하면 너라도 화낼 거야. 한 번만 더 그러면 정말 눈물을 쏙 빼놓을 줄 알아.”

순간 리들의 날선 태도에 리브는 눈을 깜빡이며 눈치를 보았다. 그녀는 기꺼이 자신이 경솔한 언행을 했음을 인정하고 사과의 말을 뱉었다. 리들은 리브가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것을 보다가 이질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찌나 급하게 옷을 입었는지 블라우스의 첫 단추가 어긋나 있었다.

“올리, 아니 리브. 단추 다시 채워.”

리들의 말에 리브는 자신의 블라우스를 보고 당황하며 다시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리들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거리낌 없이 단추를 푸는 모습을 보며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속옷을 입고 있다 해도 그렇지. 뒤라도 돌고 풀란 말이야, 이 여자야. 정말로 자신의 연인은 무방비하기 짝이 없었다. 어이구, 단추 또 어긋났다. 아무래도 나름 긴장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많이 놀랐으리라.

“이리와. 내가 해줄게.”

리들은 능숙하게 단추를 풀더니 그것을 하나하나 똑바로 채워주기 시작했다.

“단추 하나도 제대로 못 채우는 애를 데리고 내가 뭘 하겠다고.”

이러니 어리게 볼 수밖에 없지. 거기다가.

“내가 여기서 널 또 덮치면 어쩌려고 이렇게 가까이 와? 정말 무방비해, 너.”

당황하며 물러서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리브는 싱긋 웃으며 잔망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믿으니까요. 당신이 그런 파렴치하고 막돼먹은 놈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그렇죠?”

아니라고 대답하면 파렴치하고 막돼먹은 놈이 되리라. 리들은 리브를 찌릿 노려보다가 못 당해내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내가 너한테 빠져가지고.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는 여자다.

“리브. 너무 오래 기다리게는 하지 마.”

정말로, 그럼 내가 너무 힘들어. 리들은 나름 간절하게 말했으나 리브는 아는 지 모르는 지 꽃처럼 곱게 웃을 뿐이었다. 바로 앞에 있는 남자가 꽃을 꺾고 싶어 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End.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험을 거하게 말아먹고 온 아피아체레입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웃고 있지만 웃는게 웃는게 아니에욬ㅋㅋㅋㅋㅋㅋㅋ..부엉부엉시부엉

그래서 시험은 다 끝났냐구여? 아니여ㅎㅎ 이제 딱 절반 끝났네요... 하도 공부가 안돼서 주말에 휘갈겼던 거 올려요. 이건 불치병이에요. 시험기간에 소설 잘써지는 병 흐규흐규

이 외전의 시간적 배경은 막 열 일곱 살 생일이 지나고 성년이 된 6학년 생 리브. 리들은 열 여덟살로 졸업을 앞둔 7학년 생. 마법세계 식으로 둘 다 성인입니다.

수위가 있어서 충격받거나 놀라신 분이 있으실지돜ㅋㅋㅋㅋㅋㅋ사실 저도 지인과 리들리브 저런 므흣한 썰 풀때.. 처음에 진짜 죄책감...동심파괴급... 새드버전 가면 더 고수위로 치솟는다는게 함정... 리브야 미안해...

어쨌든 수위가 있기 때문에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외전. 스포도 조금 있고.. 이 호칭 문제같은 경우는 본편에 쓰려던 소재이기 때문에 다루게 된다면 아마 펑하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리들이 정신차리고 나니 진짜 연상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듯;;; 저도 쓰면서 너무 어른스럽고 신사적이여서 놀랐어요... 톰레기라고 욕먹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벤츠가 되었구나ㅜㅜ...너무 뿌듯하네요ㅠㅠ이렇게 컸어!

저는 그럼 이만 내일, 아니 이따가 볼 시험 공부하러 가여.. 으앙 큰일났다 벌써 두시야!

그럼 여러분도 열공하시고 좋은 꿈꾸세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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