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107화 (1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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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지지부진(遲遲不進)

* 오늘은 후기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휴재관련 내용입니다.

“저 자식이 내 여동생을 겁탈했어! 근데 나보고 그걸 참으란 말이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리브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입을 쩌억 벌렸고 오리온은 기어이 일을 쳤다는 생각에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리고 리들에게 에드가를 병동으로 데려갈 것을 지시받은 슬리데린 학생도 깜짝 놀란 듯 아브락사스에게 알 수 없는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의 시선이 심상치 않자―심지어 리들마저 미심쩍은 눈을 하고 있었다― 아브락사스는 발끈하며 억울함을 표하기 시작했다. 겁탈이라니! 누굴 뭘로 보고! 그런 적 없어! 아브락사스의 부정에 에드가가 삿대질을 하며 포효했다.

“이 더러운 개자식! 그럼 에밀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래! 거짓말이야! 억지로 키스한 건 맞지만 끝까지는 안 갔어!”

키스는 했지만 끝까지 하지는 않았다는 아브락사스의 말에 에드가는 기가 막힌 듯 했다. 아니 에드가 뿐만이 아니라 전부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슬리데린 학생은 아브락사스를 파렴치한 놈을 보듯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드가가 지팡이를 빼어들고 아브락사스를 향해 겨눈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드가의 등에 붉은 빛이 명중하더니 이내 고꾸라졌다. 리들이 기절 주문을 날린 것이다. 리들은 아브락사스를 찡그리며 응시하고 있는 슬리데린 학생에게 명했다.

“깨기 전에 어서 병동으로 데려가. 젤러 부인에게 진정물약 처방해 주는 게 좋을 거라고 전해드려.”

한참을 충격에 빠져있던 리브는 리들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엉엉 울던 에밀리를 생각하며 리브는 아브락사스를 싸늘하게 응시했다.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릴까 보다. 아니 어떻게 해야 저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잘 손봐줄 수 있을까. 리브는 치명적인 마법을 쏘고 싶은 욕구를 꾹 참다가 순간 드는 생각에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이 누가 있지? 다행히 주변 수습은 완벽하게 끝내 놓아서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에드가의 발언이 새어나갈 일은 없을 터. 하지만 저 슬리데린 학생은 그 문제의 내용을 들었단 말이지. 순간 리브의 벽안이 예리해졌다. 이런 내용이 소문이라도 났다가는 진위여부를 떠나서 전적으로 곤란해지는 것은 에밀리였다.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리브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친구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행동력을 과감하게 발휘하여 지팡이를 빼어들었다. 기억을 아예 지워버리리라. 기억력 마법은 잘못 사용되면 위험한 정신계 마법이었으나 리브는 개의치 않았다. 리브에게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슬리데린의 면모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리브는 심호흡을 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오블리…….”

“오블리비아테.”

하지만 리브의 주문보다 먼저 리들의 주문이 더 빨랐다. 리브가 결의를 다지고 기억력 마법을 시도하려 했던 것과는 다르게 청년은 몹시 손쉽게 그것을 해냈다. 마치 숨을 쉬듯 몹시 자연스러운 모습에 리브는 잠깐 넋을 잃었다. 기억력 마법의 여운 때문인지 잠깐 움직임을 멈춘 슬리데린 학생은 다시 에드가를 공중으로 띄우고 병동으로 향했다.

“문제되는 부분은 지웠어.”

“고,고맙습니다.”

예상치 못한 리들이 베푼 친절에 리브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말했다. 싸늘하게 오리온과 아브락사스를 응시하던 리들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올리비아, 넌 먼저 가봐.”

“…네?”

“멘토링 시간은 좀 미뤄야겠어.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오리온과 아브락사스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리브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면서 오리온에게 동정 가득한 눈길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아브락사스는 그래도 싸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리들이 특유의 독설로 자근자근 밟아 주길 바랐다. 심정 같아서는 주문 한 번만 쏘고 가면 안 되냐고 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디에 주문을 쏠 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자.) 리브가 시야를 벗어나자마자 리들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굳었다.

“리들, 내가-”

“말포이, 넌 다음이야.”

차갑게 아브락사스의 말을 끊은 리들이 오리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리들은 효과적으로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보통이라면 사건의 직접적 연루자인 아브락사스부터 족쳤겠지만 리들은 보통의 범주를 벗어나는 이였다. 그는 잘못을 저지르거나 관계된 사람보다는 그에 대한 책임자, 혹은 지인부터 족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활용하는 것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블랙.”

“…죄송합니다.”

“고개 들고 내 눈 똑바로 봐. 허튼 짓 했다간 너부터 가만 안 둘 줄 알아.”

리들은 레질리먼시를 사용해 사건의 전말을 알아낼 생각이었다. 우선 족치는 것보다는 앞뒤를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야 일을 조용히 수습할 수 있었다. 아브락사스가 에드가에게 어둠의 마법을 쓴 이상 그게 밝혀지면 곤란해짐은 자명했다. 곤란해지는 것은 아브락사스 뿐만이 아니었다. 그 마법의 출처는 리들이었으므로 본인에게도 불똥이 튈 지도 몰랐다.

리들은 오리온의 오클러먼시 시도를 끊어놓았지만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그의 실력으로는 리들의 레질리먼시를 방어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기억을 읽은 리들은 가장 먼저 오리온의 한 발 늦은 대처와 안일함을 질책했다. 더 빨리 중재에 나섰더라면 에드가가 그렇게 치명상을 입을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시작은 에드가와 아브락사스였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이제 아브락사스는 무섭게 질책당하고 있는 오리온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네가 뭘 잘못 했는지 하나하나 짚어줄 필요는 없겠지.”

오리온은 반장으로서의 직무를 소홀히 했다. 아무리 에드가가 먼저 시작했다고 해도 슬리데린 구역에서 싸움이 일어났는데 곧바로 중재에 나서지 않고 관망했던 것은 명백했고 이는 실로 안일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늦은 대처로 심하게 다치는 학생까지 속출했다. 비록 문제의 마법을 시전한 사람은 아브락사스였지만 오리온에게도 일종의 책임이 있었다. 리들은 지금 그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5학년 남학생 반장은 뿐만 아니라 몰린 학생들을 해체시키는 일도 하지 않았다. 보통 싸움이 나면 중재하고 구경꾼들을 해체시키는 게 순서였다. 특히 이 일은 학생회가 연루되고 어둠의 마법이 쓰인 이상 커지면 안 되는 사안이었다. 슬리데린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입막음을 시킬 수 있겠지만 타 기숙사생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장소였다면 일은 무척 커졌으리라. 그리고 이는 학생회 임원 간의 싸움이니 기강 문제도 걸려 있었다. 한 마디로 학생회 망신인 것이었다. 이미지가 대폭 깎여 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벌을 받으면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도록 해.”

리들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모습에 오리온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꼴사납게 비명소리 같은 것을 내며 고통을 호소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리들의 말에 아브락사스는 당황이 역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잠깐만 리들. 오리온은 혼신의 힘을 다해 나와 에드가를 말렸어. 잘못한 건 나야. 오리온은-”

“그에게 미안해?”

오리온을 옹호하는 아브락사스의 변명을 끊고 리들이 뱉은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리들은 차갑고 혹독했다. 자신의 잘못이라 호소하며 상대를 감싸는 모습은 퍽 아름다울 법도 했으나 청년에게는 조금의 감흥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리들, 차라리 내가-”

“네 몫은 따로 있어. 아브락사스, 더 이상 나서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무리 너랑 오리온이라도 이건 넘어갈 수 없거든. 왜 그런지는 본인들이 더 잘 알거라 믿어.”

리들의 마지막 경고에 아브락사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순간 주목나무 지팡이에서 빛이 번쩍하며 오리온의 몸이 쓰러질듯 휘청거렸다. 그 모습에 아브락사스는 이제 미안해서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자신의 경솔함과 순간의 성미로 애꿎은 오리온이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자 아브락사스는 차마 고개조차 못 들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몰아친 고통에 오리온은 주저앉을 뻔한 것을 꾹 참았다. 리들은 자기 선에서 벌을 줄 때 이런 식으로 저주를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오리온은 리들에게 벌을 처음 받아보았다. 눈치 빠르고 총명한 지라 단 한 번도 그의 기준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딱 한 번, 리브를 빼돌렸을 때를 제외하고. 아마 지금의 이 벌은 그때의 일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오리온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리고 블랙가의 청년은 리들에게 벌을 받아본 다른 학생들이 왜 그렇게 행동을 조심하는지 십분 이해했다. 이 정도 고통이라면 정신이 번쩍 들고도 남을 것이 분명했다. 항간에 알려진 크루시아투스 저주 에 비하면 턱없이 약한 고통이었으나 상대를 괴롭게하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앞으로 너한테 이 마법을 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다시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통의 여운으로 오리온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리온은 그것을 티내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리들은 혀를 한 번 찬 후 아브락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브락사스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리들은 그럴 때면 고개를 들게 해서 상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철저히 눈에 담는 악질적인 면모를 발휘했다. 네가 슬리데린의 명예를 훼손시켰으니 나는 너를 짓밟겠다는 것 마냥. 하지만 나름 친구이기 때문일까. 리들은 아브락사스에게까지 그런 잔인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해, 리들. 내가 정말 경솔했어.”

아브락사스는 리들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자진납세 했다. 리들은 무어라 독설을 마구 뱉으려다가 안 그래도 복잡할 친구의 속을 고려해 입을 다물었다. 오리온에게 미안해서 죽으려고 하는 것을 보니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맥밀란의 일도 있겠고. 나름의 관대함을 베풀었다. 물론 벌을 면해줄 수도 있었지만 리들은 그 정도 관대함을 베풀 만한 성품은 되지 못했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리들은 어둠의 마법을 써서 크게 소란을 일으키는 학생들은 친인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자였다.

슬리데린이 어둠의 마법 애호가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자명했으나 그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만큼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특히 행동을 조심했다. 입학하자마자 신입생들이 가장 먼저 교육 받는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순혈 자제들은 어둠의 마법에 친숙했는데 그만큼 그것을 남발할 확률이 높았다. 사실 이는 비단 순수혈통만이 아닌 슬리데린 학생들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대로 선배들은 신입생들에게 어둠의 마법에 한해서만큼은 엄격하게 교육했다. 음지에서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눈감아 줄 수 있지만―오히려 이를 권장했다. 뒤처리만 깔끔히 하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은 잊지 않았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행한다면 슬리데린의 명예를 깎는 것으로 간주하고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고. 또한 그것을 묵인한 이들도 똑같이 용서치 않겠다며 일종의 연좌제까지 두었다.(사실 오리온은 그 연좌제의 범주에 걸려든 것이기도 했다.) 리들이 친인임에도 봐주지 않고 강경책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특히 아브락사스가 쓴 어둠의 마법은 리들이 만든 것이기도 했다.

“감히 용서를 바라지는 않겠지.”

한 마디 뱉은 리들은 이어서 강도 조절에 실패한 아브락사스의 능력을 꼬집었다.

“그리고 말포이, 감당 못할 마법이라면 쓰지를 마.”

이제 정말 자신의 차례라는 생각에 백금발의 청년은 이를 악물었다. 피가 흐르는 어깨를 움켜쥔 채로 부르르 떠는 모습에 동정심이 일만도 했지만 리들은 가차 없었다. 지팡이가 번쩍하며 아브락사스에게 명중한 순간 화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고통에 부르르 떨고 있는 아브락사스를 본 리브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없을 거라 생각한 이를 발견한 리들의 흑안에 당혹스러움이 맺혔다.

“올리비아, 네가 왜 여기에…….”

리브는 리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방책을 강구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가는 대신 근처에서 그가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사태를 지켜보기에 이른 것이었다.

리들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오리온을 무섭게 혼내는 모습을 보며 리브는 혀를 내둘렀다. 슬리데린에 안 간 게 다행일 지도. 어쩌면 저 자리에 자신이 있었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자 리브는 온 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리브는 반장업무에 익숙해졌으나 초기에는 실수투성이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호되게 혼나도 할 말 없는 그러한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리들은 말없이 묵묵하게 리브 대신 그것을 수습했다. 한 마디의 질책도 없이. 래번클로에 와서 정말 다행이야.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리브는 리들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모습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지팡이에서 빛이 번쩍하며 오리온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경악하기에 이르렀다. 리브는 그 모습에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았다. 마치 부하들을 고문하는 볼드모트의 모습과 겹쳐지자 공포심마저 들었다. 그러자 도저히 방관할 수가 없어진 리브가 나서기에 이른 것이었다.

“대체 이게…….”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푸른 벽안이 떨리듯 넘실거렸다.

“선배로서 후배를 혼낼 수는 있어요! 반장으로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훈계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수단으로 저주를 쓰다뇨! 거기다 아브락사스 선배는 환자가 아니던 가요?”

리들은 리브가 무섭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화를 내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보아하니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래서 먼저 보낸 것이었다. 너한테 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리브, 끼어들지 마.”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리들이 아닌 오리온이었다. 그는 리들에게 화를 내는 리브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이건 슬리데린의 기강을 세우는 일이야. 타 기숙사생인 네가 나설 일이 아니란 말이야.”

오리온은 몹시 기분이 나빠 보였다. 누군가 이런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 그의 프라이드를 훼손시킨 것이다. 특히 그 누군가가 리브라니 더욱 더 그러했다.

“슬리데린에서는 이런 가학적인 방법으로 기강을 세운단 말이야? 어느 기숙사에서도 이런 법은 없어!”

리브의 외침에 블랙가의 청년이 차갑게 대꾸했다.

“난 잘못을 저질렀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은 것뿐이야.”

“저주 주문으로 벌을 주는 일은 정당하지 않아! 이건 과해! 그리고 네가 뭘 잘못했다는 거니? 넌 그들을 말리려고 했어. 어째서 그게 잘못이 되는데? 네가 에드가나 아브락사스 선배를 공격하기라도 했어?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어?  넌 억울하지도 않아? 대체 네가 뭘 했는데! 그리고 네가 그런 짓을 했다고 해도 리들 선배는 너에게 그런 가혹행위를 할 권한은 없어! 그 누구도!”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좋지 못하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그리고 나는 리들 선배의 판단에 조금의 반감도 들지 않아.”

살짝 억울하기는 했지만 리브의 말과는 달리 오리온은 리들의 벌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슬리데린 학생이 이 상황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상대가 슬리데린의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톰 리들이라서도 있지만 오리온은 리들이 지적한대로 일종의 책임이 있었다.

슬리데린은 위계질서나 명예에 특히 민감했다. 아무리 슬리데린이 어둠의 마법사를 다수 배출하고 여러 이유로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대다수의 순수혈통 자제들이 배정되는 기숙사인 만큼 명예만큼은 드높았다. 그들은 순수한 피에 걸맞게 능력이 출중했으며 또한 고상했다.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교활하게 이루어졌다. 퀴디치 경기에서 서슴없이 저지르는 반칙마저 슬리데린 다운 것이라 하지 않던가. 그들은 비열함 역시 슬리데린의 덕목으로 인한 것이라 포장했다.

그런 그들에게 위계질서만큼은 자로 재듯 정확했고,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문제였다. 타 기숙사에서 이미지가 안 좋다고 해도 그들은 대외적으로 학교 규칙을 잘 따랐으며―대신 뒷탈 없이 교활하게 어겼다― 교수들에게는 예의를 지켰다.(물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었다.)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엄격해서 그 선을 넘지 않았으며 그들 사이에는 선후배는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까지 만연했는데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절대 용서치 않았다. 그래서 천지분간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아주 가끔 여러 종류의 거친 수단이 동원되기도 했다. 이것은 일종의 전통이었으므로 슬리데린 사감들은 이런 행위를 암묵적으로 묵인했다. 그리고 리들은 그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권력자였다. 정말로 다소 거칠긴 했지만.

“교수님들도 우리에게 징계를 이런 식으로 주시지는 않잖아!”

“슬러그혼 교수님도 묵인하는 일이야, 리들 선배한테 뭐라고 하지 마!”

“묵인한다는 거 자체가 떳떳하지 않다는 거야! 다른 기숙사 교수님들이 아시면…….”

“그들은 슬리데린이 아니니까 이해 못해! 마치 너처럼!”

오리온은 저돌적으로 리들의 행동을 비호했다. 리브는 그런 오리온의 날선 태도에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고집을 꺾지는 않았다.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는 리브의 가치관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분명 슬러그혼 교수님은 정확히 어떤 벌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리브는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이 사안을 교수님들께 알릴 거야.”

“리브!”

그 순간 리들의 흑안과 리브의 벽안이 마주쳤다. 티 없이 맑고 곧은 사파이어 눈동자를 보며 리들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블랙, 올리비아와는 내가 잘 얘기 할 테니 말포이를 데리고 병동으로 가.”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오리온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아브락사스를 부축해 자리를 벗어났다. 리들과 리브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리들은 이 상황을 리브에게 어떻게 납득 시켜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리브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툭 내뱉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심하게 질책을 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작은 입술에서 나온 말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내가 잘못해도 그런 식으로 벌을 줄 건가요?”

그 말을 뱉자마자 리브의 벽안에 후회의 감정이 맺혔다. 만약 그러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리브는 순간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럼 리들 선배는…… 나도 죽일 거에요?]

[그래, 죽일거야. 날 막는 자는 누구도 용서 안해.]

곧바로 번복했으나 그 말 하나에 리브의 마음 한켠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는 마음 전부가 무너져 내리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져버릴 지도 몰랐다. 정인(情人)에게 그런 냉정한 말을 듣는 것은 견디기 힘드리라.

“아니, 못해.”

리들의 대답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흘러나왔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그런 짓을 해.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리들은 다른 말을 뱉었다.

“래번클로인 너에게 슬리데린의 잣대를 드리댈 수는 없어.”

“제가 슬리데린이었으면…….”

“넌 영리해서 벌 받을 짓 안 할 거야.”

말을 요리조리 돌리는 리들에게 리브는 살짝 야속한 심정이 되었다. 욕심이었지만 너한테는 못한다는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 그 순간 리브는 실소를 머금었다. 미친 게 분명했다. 내가 뭐라고. 베리타세룸까지 탄 파렴치한 계집애라면 망설임 없이 잔인한 벌을 줄 테지. 리브는 순간 서글퍼졌다.

“이미 했잖아요.”

완벽하게 둘만 남은 복도에서 리브가 거의 울먹이듯 말했다. 마치 울음을 참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신이 날 용서 안 한 이유는 벌을 안 줘서 인건가요? 그 분이 안 풀려서?”

리브의 말은 제법 예리했다. 그녀가 내내 고민한 결과 나온 결론이기도 했다.

“총애하는 오리온에게 그런 벌을 준 것은 그때의 일에 대한 앙갚음도 있겠죠? 그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숨겼으니까. 그렇다면 나 역시 마찬가지겠죠. 거기다 나는 당신을 오해하고 철저하게 기만했어요.”

리브의 목소리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덤덤했다. 하지만 음울하고 슬픔이 가득했다.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는 아무런 분풀이도 하지 못했죠. 그 이후로 아무 언급도 일체 하지 않았어. 마치 잊은 것처럼.”

꽤나 그럴 듯한 말이었다. 리들은 리브에게 화가 난 일이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분을 풀곤 했다. 아니, 애초에 리브는 리들의 화를 돋울 만한 일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은 잊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거에요.”

리들은 종종 리브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응시하곤 했다. 때로는 번뜩이기도 했다. 그 눈빛은 묘하고 의미심장했다. 리브는 그것을 분노라고 생각했다.

“그런 당신이 나를 절대로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죠.”

리브의 말을 듣고 있던 리들이 잠깐 흑안을 깜박였다.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 리들의 얼굴이 흐려졌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들 역시 그때의 일이 쉽게 잊혀 지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서로에게 크나큰 상처로 남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벌을 주세요. 기꺼이 받겠어요. 그리고…… 이제는 용서해주세요.”

아까 리들에게 화를 내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리브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살짝 어깨가 떨리는 것을 보니 잔뜩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진정시키고자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은 리들은 멈칫 했다. 혹 그녀가 자신의 손을 뿌리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던 것이다. 전에는 그런 것 따위 아무렇지 않아했지만 이제는 그 무안함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리들은 자신감이 매우 떨어져 있었다. 전과는 달리 리브의 마음을 확신할 수가 없었기에.

“올리비아……. 말했잖아. 난 이미 너를 용서했어.”

그럼 왜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이런 거죠. 왜 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건가요. 리브는 그렇게 부르짖고 싶었다. 그녀는 리들과 자신의 사이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리들이 리브를 자신의 옆에 붙여놓고 리브는 그에 군말 없이 따랐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리브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리브가 모르는 게 있다면 리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널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지 모르겠지만……. 오리온이 말한 대로 이건 슬리데린의 방식이고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이야. 우린 위계질서와 명예를 최우선으로 삼아. 아까의 일은 슬리데린과 학생회의 명예에 먹칠을 한 거나 다름없었어. 오리온은 반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물론 에드가가 먼저 시작하긴 했지만 조직에서는 책임자를 질책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서……. 그리고 아브락사스는…….”

답지 않게 횡설수설 하던 리들은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리브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종류의 것이었을 뿐 더러 오리온에게 앙갚음을 한 것도 없잖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그녀의 말대로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을 만큼 떳떳한 방식도 아니었다. 슬러그혼 교수 역시 저주가 사용되는 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반장이 개인적으로 징계를 내린다고 생각할 뿐. 그는 전적으로 리들을 믿고 있었다.

“……아니요. 제가 주제넘었어요. 오리온의 말대로 슬리데린의 일인데 아무 것도 아닌 제가 끼어들 일은 아닌 거죠. 죄송해요.”

결국 리브는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전처럼 자신은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런 비인간적인 짓은 하지 말라고 닦달 한다고 리들이 정말 그렇게 할까? 나 같은 파렴치한 계집애의 말을 얼마나 귀담아 들을까. 너부터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날뛰지 않는 게 다행일 지도 몰랐다. 화내기 전에 이쯤에서 물러서는 게 현명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네가 왜 아무 것도 아니야. 넌…….”

리들에게 리브는 자신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이 충분했다. 그녀는 더없이 특별하고 소중했으므로. 리들은 한 번 내린 결정도 기꺼이 바꿀 수 있었다. 여자에 미쳐서 나라를 말아먹은 역사 속 황제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리들은 자신이 리브에게 미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들은 리브가 나라를 말아먹을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더없이 선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여자였다. 오히려 나라를 부흥시킨다면 모를까. 하지만 리들은 또다시 자신의 속마음을 숨겼다.

“학생회 임원이니까 그 정도 발언은 할 수 있어.”

리브의 고운 얼굴은 몹시 어두웠다. 리들은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졌다. 나란 놈은 왜 항상 이 모양인건지!

“그런 표정 짓지 마.”

이래서 너한테 그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미안해, 앞으로 안 그럴게.”

리들은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사실 정해진 결말이기도 했다. 리들은 이런 리브를 도저히 이겨 먹을 수가 없었다.

“네가 싫다면 안 할게. 이거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

“정말이야, 응? 믿어줘.”

“…….”

“이것도 안 믿어 줄거야?”

리들의 간절한 눈빛과 마주한 리브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했다.

“알았어요, 믿을 게요.”

“…….”

“믿는 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선배야 말로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올리비아.”

“정말이라니까요.”

리브의 얼굴에 어두움이 걷혔다.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는 리들과 눈을 마주치더니 꽃처럼 곱게 웃으며 말했다. 리브는 몰랐지만 문제의 그 날 이후로 리들에게 거의 처음으로 내비치는 미소였다.

“당신은 이제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텐데 제가 못 믿을 이유가 없잖아요.”

리들은 순간 어쩔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정말이지 자신이 마음에 담은 여자는 정말 영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넌 이런 여자였지. 얼마나 괘씸해했던가. 마치 잠깐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 약은 계집애. 네가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어찌 너를 속일 수 있을까. 저 작디작은 여자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리들은 그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푹 빠진 모양이었다. 네가 그러라면 그래야지, 어쩌겠어. 리들은 어느 고서에서 읽었던 살라자르 슬리데린과 로웨나 래번클로의 관계를 떠올리며 혼잣말처럼 툭 내뱉었다.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로웨나 래번클로를 쉬이 여기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리고 리들은 정말로 저주를 쓰는 일을 그만두었다.

============================ 작품 후기 ============================

성장아이템 보내주신 티리오스님, 슷삐님 감사드립니다♡

이 편을 마지막으로 멘토링은 지난 편에 예고드렸던 것 처럼 공식적인 휴재에 들어갑니다. 아마 5월 둘째주나 시험 일정이 변동되면 셋째주 쯤 돌아오게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공식적인'이라는 사족을 붙이는 이유는 제가 시험기간에 소설이 잘 써지는 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에욬ㅋㅋㅋㅋㅋㅋ저만 그런거 아니잖아요..? 시험기간엔 갑자기 책이 읽고싶고 청소도 하고 싶고 드라마가 보고싶고 막 뭘 하고 싶고 다들 그러잖아요..? 오늘도 공부해야되는데 밀린 드라마 보고 그랬어요^^...오늘 하루 망함ㅠㅠㅠㅠ

최대한 자제자제자제하겠지만 회까닥해서 미친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면 아마 다음편이 올라올거에요 허허.. 이상하게 시험기간에 꼭 글이 잘 써지고 설정이 떠오르고... 어쨌든 5월이 안됐는데 다음편이 올라오면 이 인간 아직 시험 안 끝난거 같은데 병이 도졌구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당....

마지막으로 여러분도 시험기간이실텐데 공부 열심히 하시고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랄게요!

그럼 독자님들 좋은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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