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104화 (10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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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17. 지지부진(遲遲不進)

    * 오늘도 별거없는 후기지만 읽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0^

    “안녕, 올리비아.”

    “아,안녕하세요.”

    리들은 리브와 마주치자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방금까지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던 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으며 태도를 바꾸자 아브락사스는 어이가 없는 듯 했다. 그러던 백금발의 청년은 리브와 있는 에밀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날 아브락사스는 리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에밀리는 정말로 남학생에게 외출 신청을 받고 있었는데 아브락사스에게 보란 듯이 그것을 수락했고 기어이 데이트를 나가버렸던 것이다.

    “어디 가?”

    “도서관이요. 밀린 과제가 많아서…….”

    리브는 결석하는 동안 쌓여있는 과제를 해결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갑작스럽게 떨어진 반장 업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리들은 그런 리브에게 하나하나 세심하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리브가 어리숙하게 굴거나 실수를 연발해도 구박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학생들은 반장 업무에 적응이 다 끝났는데 갑자기 튀어나와 일을 더디게 하는 리브를 불만스레 여기는 여학생 회장을 본인이 직접 달래기도 하며 리브를 감싸고돌았다. 현재 리들은 리브가 반장업무에 익숙해지도록 아예 그녀를 전담해서 일을 가르치며 돕고 있었다.

    “슬러그혼 교수님의 과제는 적당히 해도 괜찮을 거야. 오히려 비어리 교수님의 과제를 꼼꼼히 해가는 게 좋아. 엄격하셔서 결석했다고 해도 봐주지 않을 테니까.”

    “네……. 조언 감사합니다.”

    리브에 깍듯한 태도에 리들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날 이후로 쭉 이런 식이었다. 리브는 리들에게 지나치게 예의를 갖추며 잔뜩 눈치를 보았다. 마치 저학년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만든 거야. 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너 나랑 얘기 좀 해.”

    리들과 리브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아브락사스의 낮은 목소리였다. 티격태격하면서도 관계가 좋았던 둘은 항상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곤 했으나 오늘은 기묘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필시 무슨 일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리브는 얼마 전에 울면서 기숙사로 돌아왔던 에밀리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리고 리들은 동시에 풀이 죽어서 기숙사로 돌아왔던 친구를 떠올렸다.

    “싫어.”

    에밀리의 대꾸에 아브락사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에밀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여성에게 만큼은 신사적이고 매너가 출중했던 아브락사스의 거친 행동에 리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밀리는 정말 진저리 치며 아브락사스를 뿌리쳤다.

    “어디다 손을 대!”

    에밀리의 말투는 날이 서다 못해 몹시 표독스러워졌다.

    “내 몸에 손 끝 하나라도 갖다 댄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 태도에 당황한 아브락사스가 무안하게 내쳐진 손을 뒤로 숨겼다. 이제 리브와 리들은 각기 다른 생각으로 둘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리브는 어리둥절했다.

    “에밀리, 내가 미안해. 그땐 내가 미쳤었나봐. 그러니까…….”

    “미안해 리브. 난 먼저 가봐야겠어.”

    에밀리는 아브락사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 버렸다. 아브락사스는 빠르게 다가가 그녀를 어깨를 붙잡아 돌려 세웠다. 하지만 청년은 곧바로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파공음을 동반한 채로 아브락사스는 뺨에 화끈한 고통을 느꼈다.

    “말포이,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지.”

    얼굴이 돌아간 채로 꼼짝도 하지 않는 아브락사스에게 에밀리가 차갑게 말했다. 그녀는 마치 치를 떠는 것 같았다.

    “그 날 널 이렇게 때려 줬어야 했는데……. 머저리 같이 굴었던 내가 후회 돼.”

    에밀리는 아브락사스를 혐오스럽다는 듯 응시하고 있었다. 리들과 리브는 에밀리가 언급한 ‘그날’이 언제인지 알 것 같았다.

    “네가 한 짓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잘 지켜봐.”

    그렇게 위협적인 말을 마친 채로 에밀리는 휭 자리를 떠버렸다. 홀로 남겨진 아브락사스는 붉어진 뺨을 만지작거리며 그 자리에 붙박이 마냥 서있었다.

    *

    “아브락사스가 무례한 짓을 했거든.”

    함께 야간 순찰을 도는 도중 리들이 리브에게 한 말이었다.

    “네 성격에 맥밀란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는 묻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할 게 뻔하니까. 그런데 궁금하잖아?”

    사실은 대화거리가 떨어진 리들이 무거운 침묵을 이기지 못해 친구를 팔아먹기 이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리브가 알리는 만무했다.

    “정확히 무슨 짓을 했는데요?”

    리브가 입을 열어 질문을 던지자 리들은 순간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문제의 그날 이후로 항상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리들이었다. 리브는 대답만 할 뿐 먼저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모르는 게 있어도 묻지 않고 끙끙 앓기만 했고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리들은 항상 알아서 그것을 눈치 채고 도움을 줘야만 했다. 안달 나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리들은 비참하면서도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선을 넘었어.”

    “…?”

    선을 넘다니 무슨 말이지? 리브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리들은 노골적인 단어 하나를 읊어주었다.

    “키스. 사실 그 이상으로 갈 뻔했던 것 같기도 해.”

    리브는 순간 헉하는 소리를 냈다. 그날 흐트러진 상태로 돌아온 에밀리는 잔뜩 떨면서 울고 있었다. 그 모습과 함께 전말이 밝혀지자 리브는 아까 에밀리에게 뺨을 맞은 아브락사스에 대한 동정심이 확 가시는 것을 느꼈다.

    “맞아도 싸네요. 어떻게 에밀리한테 그런 짓을…….”

    “아브락사스는 맥밀란을 좋아해. 그런데 자꾸 엇나가니까 홧김에 그런 거지.”

    “그건 이유가 되지 못해요. 아무리 약혼관계라 해도 상대방의 동의 없는 행위는 파렴치한 짓이라구요.”

    마치 범죄라고 명명할 듯한 기세에 리들은 살짝 움찔했다. 청년은 2년 전 병동에서 충동적으로 아픈 리브에게 몰래 키스했던 것이 떠오르자 양심이 콕콕 찔러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그건 평생 비밀로 안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리브가 알게 된다면 파렴치한 놈으로 낙인찍히리라.

    “아브락사스 선배가 에밀리의 사생활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어요. 본인은 상관없지만 에밀리는 안 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던데 그게 말이 돼요? 좋아하면 우선 진심으로 마음을 전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짓을…….”

    리브는 진심으로 분개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다고 그런 인간 이하의 짓을 하려 하다니……. 자신이야 전생이라는 연륜도 있으니 그런 상황에 당도하면 곧바로 대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에밀리는 그러지도 못했을 게 분명했다.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울면서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왔으리라. 에밀리가 아브락사스를 진저리 칠 만도 했다.

    “마음을 전해도 안 되니까 그런 거겠지. 오죽하면…….”

    리브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리들은 입을 다물었다.

    “에밀리는 아브락사스 선배를 믿지 못해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 선배는 이성 문제에 있어서 가볍잖아요.”

    “맥밀란은 전혀 아브락사스의 취향이 아니야. 진심이 아니면 고백할 이유가 있겠어?”

    화려한 외모를 좋아하던 아브락사스는 언젠가부터 취향이 정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아브락사스의 여자친구들이 하나 같이 브라운 계통의 머리칼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게 아니면 눈동자 색이 어둡던가. 마치 에밀리 맥밀란처럼. 그 모습을 보며 오리온은 블랙가 사람에게 그 마수를 뻗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부터 놓았다. 블랙가의 은회안은 에밀리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으므로.

    “그쪽 사정이 어떨지 몰라도 에밀리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거에요. 아무리 에밀리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여자를 만난 건 약혼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어요. 그것도 당당하게 대놓고 만났죠. 그런데 에밀리가 어떻게 아브락사스 선배의 고백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하다못해 에밀리에게 다른 여자의 존재를 숨기기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믿지 못하진 않았을 거에요. 평소에 신뢰를 줬어야 믿을 거 아니에요.”

    리브의 말을 들은 리들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졌다. 아브락사스의 짝사랑이 안타까워서가 아니었다. 리브가 자신에게 베리타세룸을 먹인 그 치 떨리는 행동을 순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그건 일종의 자업자득이었다.

    “거기다가 에밀리에게 그런 짓을 했으니 절대 용서받지 못하겠네요.”

    ‘겨우 키스 정도로?’라는 대꾸를 하려던 리들은 리브의 분개하는 모습을 보며 관두었다.

    “에밀리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당장에 파혼을 할 거라고 하던 걸요.”

    리브의 말에 리들이 말도 안된다는 듯이 대꾸했다.

    “말포이 가문과 맥밀란 가문은 공동으로 사업을 하고 있어. 경제적 협력 때문에 둘을 약혼시켰지. 겨우 키스정도로 파혼이 될 것 같아? 둘은 어떻게든 결혼하게 될 거야.”

    “맥밀란 가문은 후플푸프에요. 이해관계를 따지기보다는 외동딸의 의사를 더 존중할 가능성도 있어요.”

    “아무리 선량한 후플푸프라고 해도 순수혈통인걸. 집안 대 집안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쉽게 끊을 수는 없어.”

    아브락사스가 무슨 짓을 해도 둘은 결혼하게 될 테지. 그 생각이 들자 리들은 단 한 번도 부러워한 적 없었던 친구에게 질투를 느꼈다.

    “에밀리는 래번클로에요. 좋게 말하면 영리하고 나쁘게 말하면 약은 래번클로 말이에요.”

    리들은 그런 래번클로의 면모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지켜봐온 리브부터가 영악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리브는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나 본래 선한 것과 영악한 것은 별개였다. 리브는 깜찍할 정도로 영악한 면모에 슬리데린의 면모까지 지니고 있어서 리들은 종종 혀를 내두르곤 했다. 천사 같은 외모와 착하디착한 성격 때문에 많은 이들이 리브가 슬리데린에 배정받을 뻔한 학생이라는 것을 잊곤 했는데 리들도 그중 하나였다.

    “두고 보세요. 파혼이 되든 안되든 아브락사스 선배는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테니까.”

    리브는 순간 아브락사스와 에밀리가 파혼하게 된다면 원작대로 흘러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크리스는 에밀리와 아브락사스의 사이에서 루시우스 말포이 같은 작자가 나온 다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제성이 작용해서 원작대로 흘러가는 것일까. 크리스는 그것을 순리라고 했다. 리브는 리들의 섬세한 옆모습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볼드모트가 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라는 걸까. 만약 자신과 그의 관계가 끝장나면 정말로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순간 강하게 들었다.

    이제 리브는 착잡하다 못해 속이 답답해졌다. 난 그를 믿어야 했어. 믿음을 주지 않은 리들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리브가 저지른 일의 무게는 컸다. 리들은 리브를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리브는 리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심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나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거야. 그래서 더욱 더 상냥하게 구는 거야. 리브는 더 이상 지지부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늦어버리기 전에…….

    “리들 선배.”

    순찰이 끝나고 리브는 기숙사로 돌아가려는 리들을 불러 세웠다. 학생회실에서 순찰 일지 작성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리들은 눈꺼풀을 깜박이다가 이내 리브를 향해 그림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리브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날 말이에요.”

    그날의 일을 꺼내는 것은 둘 사이에게 있어 금기와도 같았다. 리들의 얼굴에서 순간 미소가 사라졌다.

    “…미안해요.”

    “…….”

    “정말 미안해요.”

    리브는 리들이 화를 내도 전부 감당할 생각이었다. 저 상냥하고 사려 깊은 태도는 화를 참기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이제 화를 내겠지. 어떤 독설이 날아와도 견딜 생각이었다.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르리라. 리브는 그렇게 각오를 다졌다.

    “당신을 믿지 못하고 베리타세룸까지 쓴 것…… 정말 미안해요. 그건 제가 잘못했어요.”

    리들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용서를 비는 리브의 귀에 리들의 미성이 내려앉았다.

    “괜찮아.”

    리브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들고 리들을 응시했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리브는 그 미소가 꾸며낸 것이라는 것을 곧바로 눈치 챘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도 거짓말이었다. 그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네가 나를 기만한 것이 무작정 화가 났어.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너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철저하게 오해하고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게 너무 실망스러웠고 정말 끔찍했어. 그런 배신감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지.”

    그 말을 하는 리들의 목소리는 조금도 상냥하지 않았다. 리브는 지금의 리들이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 후로 잘 생각해보니까 넌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 그리고 방금도 깨달았어. 내가 너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던 거야.”

    아브락사스가 에밀리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리브의 말은 한편으로는 리들에게도 비수처럼 다가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신뢰를 비롯한 감정들이 밑바탕이 되어야 견고해 진다고 하지. 하지만 너와 나 사이에 그 어느 것도 남은 게 없는데 어떻게 우리의 관계가 견고할 수가 있겠어.”

    너와 나 사이에 그 어느 것도 남은게 없는데……. 그 말에 리브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는 리들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니까 너와 나는 항상 싸우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회피하고 그렇게 아슬아슬했던 거야. 불안한 평화는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깨지지 않았던가. 이대로라면 또 그렇게 되겠지. 리들은 다시 안면에 미소를 띄웠다.

    “나는 이미 너를 용서했어. 그러니까 더 이상 마음 쓰지 마.”

    진심이 아니야. 그는 나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어. 리브는 마음을 꽁꽁 감추고, 감정을 억누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리들이 순간 무서워졌다. 저 꽁꽁 숨긴 분노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리브는 오싹해졌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 그런 짓까지 하게 만들어서.”

    지금 리들의 눈빛은 무언가를 참고 있는 티가 역력했다. 리브는 정말로 덜컥 겁이 났다. 저 분노를 풀지 못하면 관계는 끝이었다. 지금 그는 얽힌 실타래에 가위를 들이대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반짝거리고 세련되어 있을지 모르나 그 날은 거침없으리라. 리브는 큰 불안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리들 자체가 무섭기 보다는 겨우 이어온 관계가 깨질 예정이라는 게 무서웠다.

    “리,리들 선배, 내가 미안해요. 정말로 죄송해요.”

    재차 리브는 사과를 뱉었으나 리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태도는 몹시 고요해서 리브는 마치 폭풍전야처럼 느껴졌다. 그건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 같았다.

    “선배,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그 날 이후로 후회 많이 했어요. 그때도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요. 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당신이…….”

    리들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지자 리브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아니 이건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라……. 죄송해요. 그러니까 전…….”

    리들은 이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브는 다른 이들이 리들에게 횡설수설 변명을 내뱉을 때의 기분을 십분 이해했다. 그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리들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치가 있는 이들은 그 모습에 오히려 불안감에 떨며 미안하다고 자신이 잘못했노라 빌고 또 빌었다. 왜 그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제 당신을 믿을게요. 믿어요. 정말이에요. 다시는 그런 일 없어요. 그러니까…….”

    리브는 이 상황이 너무 처참해서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리브는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참아냈다. 리들은 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유년 시절부터 고아원의 어린 아이들이 울고 있으면 인상부터 찌푸리던 사람이었다. 특히 잘못을 저질러 놓고 눈물로 때우려 한다면 더욱더 진저리 칠 것이 분명했다. 달래주지도 않으리라. 그리고 아무리 소중히 여겼던 이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순간 입술에 상쳐가 났는지 아릿한 고통과 함께 피 맛이 느껴졌지만 리브는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야 리브는 리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관대하게 굴었는지 깨달았다. 단 한 번도 리들은 리브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올리비아…….”

    리들이 무어라 말을 이어가려 하기도 전에 리브가 말을 뱉어냈다.

    “리들 선배 제발……. 제가 어떻게 하면 돼요? 어떻게 해야…….”

    리브는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리들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의 흑안에 순간 착잡함이 서렸다. 너까지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거야. 리브는 항상 당당하게 빛이 났다. 다른 이들이 두려워하는 리들에게도 조곤조곤 할 말을 내뱉곤 한 당찬 마녀였다. 거기다 자존심이 강하고 프라이드가 높아 리들에게 조차 쉬이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리들이 처음에 리브를 밟아 놓고자 했을 만큼 고고했다. 하지만 지금의 리브에게 그런 모습은 조금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리들이 용서해 줄 테니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 정말 그렇게라도 할 기세였다.

    다른 이들은 리들의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아무리 드높은 프라이드라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리들은 그것에 우월감을 느끼며 흡족해했다. 하지만 리브가 그런 모습을 보이자 리들은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제서야 리들은 깨달았다. 자신은 리브를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고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조금의 희열도 없었다. 리브는 엄연히 상하 관계가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의미였던 것이다. 리들은 리브와 동등한 동반자 같은 관계를 원했다. 자신의 옆에서 당당하게 빛나길,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듯 자신이 선택한 리브에게도 역시 그러하길. 그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리브는……. 나 때문이야. 리들은 자괴감이 들었다. 전부 나의 과오고 자업자득이야. 죄책감이 몰려왔다. 넌 잘못이 없어.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든 거야. 리들은 괴로워졌다. 어쩌다 너와 내가 이렇게 된 걸까. 리들은 자신 때문에 이토록 처절하게 구는 리브를 보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대로 무릎 꿇리고 자신에게 굴복 시키고 싶다는 나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정말로 그녀를 온전히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충동이 든 것이다. 너에게 이대로 족쇄를 채워버릴까. 자신에게 밟히고 복종하는 순종적인 리브도 그것대로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 처절한 아름다움을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기도 했다. 그리해도 리들이 마음에 품은 ‘리브’임은 마찬가지였기에. 위험한 소유욕과 독점욕이 들끓었다. 그냥 이대로 널 타락시키고 정말로 망쳐버릴까. 그럼 넌 망가질지 언정 내 품을 떠나지 못할 텐데. 리브가 절대 자신을 떠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리들은 그만 그 충동에 홀려버렸다. 철의 이성을 가진 리들은 훗날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를 그런 선택을 하려하고 있었다.

    리들이 한걸음 다가가 리브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억센 힘에 리브는 인상을 찌푸렸다. 청년의 흑안이 위험하게 들끓고 있었다. 새까만 흑안에서 붉은 빛이 번쩍했다. 리들의 붉은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내가 널…….”

    내가 널 용서한다면 넌 무릎이라도 꿇고 나에게 빌 거야? 아니, 이대로 널 마음대로 해도 돼?

    정말로 그렇게 말할 뻔했다. 그 후의 행동은 뻔했다. 리브가 비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맛보다가 그대로 입을 맞추고 마음껏 그 몸을 탐하리라. 그 때는 리브가 울고불고해도 멈출 수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랑에 눈이 멀고 욕정에 미친 미성숙한 청년은 짐승과도 같은 포악함을 드러낼 터였다. 하지만 리들은 다음 단어를 뱉기 직전에 리브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티 없이 맑은 사파이어 눈동자와 맞닥뜨린 리들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정말로 너를 망치려 하고 있어. 리들은 위험한 충동을 내리 누르고 리브의 어깨를 밀쳐내듯 놓았다.

    “난 이미 너를 용서했어. 정말이야. 날 믿는 다고 했지? 그러니까 이것도 믿어.”

    충동의 여운 탓인지 목소리는 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거기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낀 리브는 입이 탁 닫혀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리들은 잘생긴 얼굴에 간신히 미소를 띄웠다. 이성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억지 미소를 지으려 하니 입술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리브는 그 꾸민 티가 역력한 거짓 미소에 참담해졌다. 차라리 화를 내란 말이야. 그게 더 낫겠어. 하지만 리브는 그 말을 할 수조차 없었다. 막상 화내는 리들은 그것대로 두려웠던 것이다.

    “밤이 늦었어. 조심해서 들어가.”

    리들이 학생회실을 나가버리고 리브는 스르르 주저앉았다. 왜 나는 그를 오해한 걸까. 왜 그를 믿지 못한 걸까. 왜 나는…… 베리타세룸이라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한 걸까. 그것만 아니었어도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리브는 차에 베리타세룸을 탄 것을 특히 뼈저리게 후회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제가 오늘 후기를 읽어달라고 부탁드린 이유는.. 지난 후기에 오해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서요.. 우선 제가 비유했던 감과 배는 순수한 감상이 아닙니다.

    리들리브 화해했음 좋겠어요 아브엠 분량이 줄어서 아쉬워요 리브가 너무 답답해요 리들 나쁜놈이에요 리브 리들한테 주지마세요 등등

    이런 많은 감상들은 제가 말한 감내놔라 배내놔라가 절대로 아니에요! 저 항상 감상 코멘이나 쪽지들 정말 기쁘고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엄한 분들이 죄송해하셔서 제가 다 죄송합니다ㅜㅜ...여러분 전 표현의 자유까지 억압할 생각은 없어요ㅠㅠ..그러니까 앞으로도 편하게 코멘트 남겨주셔요..♥ 선추코 해주시는 분들♥♥

    하지만 이야기 진행에 대해서까지 걱정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멘토링이 지름작이라고는 하나 플롯은 전부 짜놓고 질렀답니다^^ 그러니까 걱정 뚝!

    후기가 본문의 흐름을 끊어놓지 않았으려나 걱정되네요ㅜㅜ

    느끼셨을 지 모르겠지만 리들리브 지금 서로의 태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게 맞습니다..ㅋㅋ.... 걱정마세요. 이번 챕터 안에 이뤄질 거에요 아마도

    그럼 여러분 좋은밤 되세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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