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103화 (10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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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17. 지지부진(遲遲不進)

    * 별거 없는 후기지만 읽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브의 호그와트 재등록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은 리브가 걱정했던 것만큼 그리 복잡하지도 힘겹지도 않았다. 쓴 소리와 비난을 들을 거라 각오했지만 대부분이 리브가 돌아온 것에 대해 몹시 기뻐하며 반겨주었다. 특히 슬리데린 기숙사는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든 주범인 리브를 원망하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리브를 환영해주었다. 확실히 리브가 돌아온 후로부터 리들은 더 이상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리브는 어떻게 말없이 잠적할 수가 있냐며 섭섭함을 표하는 에밀리를 비롯한 몇 몇 친인들을 달래느라 애를 먹어야만 했다.

    엄격한 비어리 교수 같은 이들은 리브에게 자퇴는 경솔한 결정이었다며 쓴 소리를 뱉긴 했으나 래번클로 사감인 메리쏘우트 교수 같은 이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리브에게 좋은 말만 건넸다. 특히 슬러그혼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방황을 하는 법이라는 말을 늘어놓으며 리브에게 파인애플 설탕절임을 한가득 안겨주었다.(그리고 리브는 그걸 기점으로 파인애플 설탕절임의 달콤한 맛에 빠지게 되었다.) 교장인 디펫 교수는 리브를 따로 불러 차를 대접했는데 그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리차드 라이트 초상화가 리브에게 잔뜩 설교를 내뱉는 바람에 끼어들 곳이 없어졌다.

    “호그와트를 자퇴하다니 집안이 그야말로 뒤집어진 건 알기나 하느냐! 경솔하고 어리석은 아이야. 그 작은 머리에 얼마나 큰 고민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엘비스(리브의 할아버지)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지니아(리브의 어머니)처럼 천한 머글이랑 눈이 맞아서 도망이라도 간 게 아닌지 노심초사 했다! 그 어미에 그 딸이고 쌍으로 집안 망신을 시키는 줄 알고…….”

    한참동안 쓴소리인지 막말인지 모를 단어들을 가득 뱉은 리차드는 리브가 평소와 달리 아무런 말대꾸도 하지 않자 조금 머쓱해진 듯 했다. 자신과 같은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진 초상화를 보며 리브가 살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증조부님도 저를 걱정하셨어요?”

    그 말에 리차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째 눈앞의 아이가 지니아보다 더 영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 이 잔망스러운 후손 아이야! 네가 지니아처럼 되는 줄 알고…….”

    어머니의 최후를 알기에 리브는 쓰게 웃었다. 조상님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혼비백산 했을지 알만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 다더니 나도 결국 사랑 때문에 도망치고 말았구나. 하지만 그 의미는 엄연히 달랐다. 지니아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도피를 했다면 리브는 사랑을 끊어내기 위해 도피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도 비극인 걸까. 리브는 슬퍼졌다.

    “이제 이건 태워야 겠구나.”

    덤블도어 교수의 반응은 소리 없이 강했다. 긴 말 없이 리브가 보는 앞에서 자퇴서를 손수 태워 버렸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리브는 간신히 입을 열어 사과의 말을 뱉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저 때문에 자퇴서 수리를 내내 미루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곤란하셨죠.”

    “곤란하기는.”

    잠깐 리브를 지그시 응시하던 덤블도어 교수가 인자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단다. 청춘은 아름다운 법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덤블도어는 잠깐 킬킬거렸다. 그리고 직설적으로 물음을 던졌다.

    “그래, 리들을 용서한 거니? 그래서 돌아온 거겠지? 대충 이야기는 들었단다.”

    “리들 선배가…… 그런 얘기까지 했나요?”

    리브는 돌아오자마자 주변 친인들을 비롯한 교수들에게 리들이 자퇴서 수리를 막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덤블도어 교수를 설득했는지 알지는 못했다. 그리고 교수는 지금 그것을 리브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네가 떠났노라 말하더구나. 돌이키겠노라고. 너를 꼭 데려오겠노라고. 시간을 달라며 필사적으로 나를 설득했었지. 사실 나는 그렇게 정중하고 저자세인 톰은 처음 보았단다.”

    너 때문에 내가 덤블도어한테 무슨 짓을 한 지 알면 넌 깜짝 놀랄걸. 그날 리들이 그렇게 궁시렁거렸던 것을 기억해낸 리브는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리들은 덤블도어 교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축에 속했다. 자신의 자퇴를 막기 위해 싫어하는 이에게 가서 고개를 조아렸던 말인가. 리브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잘 해결 된 거니?”

    덤블도어 교수의 자애로운 눈빛과 마주한 리브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늘어놓았다.

    “……전부 오해였어요. 제가 그를 믿지 못했던 거에요.”

    “저런.”

    덤블도어 교수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변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는 너무…… 너무…… 교수님은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 말에 덤블도어 교수가 알쏭달쏭하게 웃으며 모르겠다는 대꾸를 하자 리브는 잠깐 약오르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지. 네가 톰을 믿지 못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 이유가 과연 정당한지 리브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이는 자신의 편협한 시선과 지독한 선입견으로 인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만큼 리들이 볼드모트가 될 사악한 소지가 다분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에게는 그러한 명분이 있었다. 리들은 의외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사악한 본성은 도저히 리브가 감싸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리들은 납득하지 못할 테지만 리브에게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리브에게 실망한 리들 역시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리들은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신이 가득한 인물이었으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믿고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리브는 결정적인 순간에 리들을 믿지 못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법약이라는 강제적인 수단까지 동원했다. 리들은 리브에게 보여준 진심과 솔직함의 대가가 베리타세룸이라는 것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철저히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끔찍한 수준의 배신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냥 당신과 나는 인연이 아닌 걸까. 그 생각을 하자 리브는 서글퍼졌다. 만약 그 날 리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면 둘의 인연은 그 날로 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들은 기어이 리브와의 인연을 얼기설기 붙여 놓았다. 하지만 그 후로 둘의 사이는 데면데면해졌다. 타인이 보기에는 전처럼 친근한 사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둘 사이를 갉아먹는 그것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믿을 수 없는 이유가 타당하다고 해도 당사자에게는 괴로운 일이지. 톰에게 리브 너는 남다르잖니.”

    그렇게 말하며 덤블도어 교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리브는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교수의 장난기 어린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잘라내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지만 그렇게 되면 그 실은 영영 쓸 수 없게 되잖니.”

    잔뜩 꼬이다 못해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관계. 덤블도어는 리들과 리브의 관계를 꽤나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런 말은 너무 뻔해서 굳이 해 줄 필요가 있나 싶다만 그래도 역시 갈등을 푸는 데에는 대화가 제격이란다.”

    결국 덤블도어의 조언은 리들과 대화를 나누라는 것이었다. 뻔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해결방안이기도 했다. 최소한 실타래를 잘라버리는 것 보다는 차근차근 풀어내는 것이 나으리라.

    대화는 매일 하고 있어요. 정말로 매일 하고 있었다. 마주치면 그는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고 안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누가 먼저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멘토링을 재개했다. 그는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반장 업무에 시달리게 된 리브를 도와주기도 했다. 모르는 게 있어서 끙끙대고 있으면 무엇이든 알려주었고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성심성의껏 도와주었으며 리브가 어리숙하게 굴어도 조금도 구박하지 않았다. 독설은 물론이거와 싫은 소리든 아쉬운 소리든 리브의 기분이 상할만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그때의 일 자체를 입에 올리지 조차 않았다. 만약 마법약을 공부하는 도중에 리들이 베리타세룸 부분에서 잠깐 멈칫하지만 않았다면 리브는 리들이 그 일을 깨끗이 잊었다고 착각했을 지도 몰랐다.

    어쩌면 리들의 태도는 전보다 더 사려 깊고 세심할 지도 몰랐다. 하지만 리브는 그 일련의 행동들에 텅 빈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전보다 더 친절하고 상냥하며 신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브는 그게 마치 리들의 빈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대하듯 그녀 역시 대하고 있었다. 적어도 리브는 그렇게 느껴졌다. 전과 다른 미소를 지으며, 전과 다른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리들은 마치 영혼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들이 볼 때는 별 다를 바 없을 테지만 리브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전과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리들이 만인을 속여 왔던 철저한 가면이었다. 이제 그걸 자신에게도 보이고 있었다.

    나를 정리하고 있는 걸까. 이제 내가 아닌 그가…… 나를 끊어내려 하는 거야. 그는 나약한 자신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말 끊으려 하면 정말로 끊었고, 버리려 하면 정말로 버렸다. 리들은 자신보다 더 강철 같은 이성과 냉정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냉정하다 못해 냉혹하고 잔인한 그 잣대가 자신에게 드리워진다면…… 어느 순간 그는 멀어져 있을 지도 몰랐다. 그때는 손을 뻗어도 절대로 닿지 않을 것일 테지.

    복잡하게 꼬이고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쓸모가 없었다. 그 실을 잘라버리고 새로운 실을 쓰든가, 그 실을 풀어서 다시 쓰든가. 어찌 됐든 끝을 봐야했다. 특히 리들이 다른 식으로 끝을 내기 전에 리브가 먼저 끝을 봐야 했다. 사과를 하든, 용서를 빌든,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래야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가 어찌 됐든 각오를 해야만 했다. 덤블도어 교수의 말대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절대 그러한 과정을 불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리들은 리브와 그런 진지한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해야 했다. 그러나 그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리들을 영영 잃을지도 몰랐으므로.

    *

    리브가 돌아오자 확실히 리들은 더 이상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 그로 인해 무겁게 가라 앉아 있던 슬리데린 기숙사의 분위기도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제동이 걸리고 있었다. 리들이 더 이상 살벌한 분위기는 풍기지 않을지언정 싸늘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같은 태도는 별 문제 없었다. 본래 리들은 칼같고 냉정했으므로.

    하지만 그는 묘하게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물론 전처럼 급격한 감정변화라던가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리브가 없을 때와 동일인물이 맞는 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몹시 잔잔하고 이성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리들이 뱉는 독설에 있었다. 그의 친인을 비롯한 슬리데린 학생들은 리들의 차갑고 거침없는 독설에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전처럼 히스테릭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묘하게 신경질 적이었다. 그 독설의 피해자는 친인들에게서 주로 속출했다. 첫 타자는 친인 중의 친인인 아브락사스였다. 그는 넌지시 리들에게 리브와 아직도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가 리들의 독설 세례를 맞아야만 했던 것이다.

    “문제?”

    리들의 묘하게 날선 대꾸에 아브락사스는 속으로 아차 했다. 본래 아픈 곳을 찌르면 상대는 바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법이었다.

    “그녀와는 아무 문제도 없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니까 네가 걱정해 주지 않아도 돼.”

    말 자체만 보면 아무 이상도 없었지만 문제는 그 말투와 분위기에 있었다. 리들의 싸늘한 말투와 흉흉한 분위기에 아브락사스는 자신이 주제넘게 굴었다고 생각하며 수습을 하고자 했으나 금방 가로 막혔다. 이제는 리들이 아브락사스의 아픈 곳을 찔러대기 시작한 것이다.

    “내 멘티한테 신경 쓸 시간에 넌 맥밀란이나 신경 쓰는 건 어때? 다른 여자 신경 쓸 여유는 없을 텐데.”

    요즘 아브락사스는 다른 남학생과 외출을 하려 하는 에밀리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 너도 다른 여학생들과 뻔질나게 데이트를 하고 연애를 하지 않았느냐, 나도 그렇게 하는 것뿐이다. 너는 되고 왜 나는 안되냐. 난 충분히 네 사생활을 존중해왔으니 이제는 네 차례다. 그런 에밀리의 말에 아브락사스는 논리를 잃고 슬리데린인 말포이는 되지만 후플푸프인 맥밀란은 안된다는 일명 개소리―에밀리의 표현에 따르면―를 뱉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당연히 둘 사이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리들은 이 같은 사이를 맹렬하게 꼬집은 것이다. 이제 리들의 독설은 거의 폭탄 수준이 되었다.

    “올리비아와 내 사이를 신경 쓸 시간에 슬리데린은 되지만 후플푸프는 안 된다는 헛소리부터 개선시키는 게 낫지 않겠어? 누가보면 슬리데린은 전부 너같이 머저리만 있는 줄 알겠어.”

    아브락사스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말이 심한게 아니냐며 항의를 하려 했으나 리들이 덧붙인 말에 의해 무산되었다.

    “아까 보니까 맥밀란이 외출 신청을 수락한 것 같던데.”

    “뭐?”

    아브락사스는 그야말로 펄쩍 뛸 기세로 대체 어느 놈이냐며 채근했으나 리들은 대답대신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밉던지 아브락사스는 친애하는 친구를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쩐지 그 미소에서 특유의 사악함과 교활함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네 정혼녀한테나 가봐. 본인한테 묻는 게 더 빠르겠지.”

    아브락사스는 ‘약혼녀야!’라고 정정해주며 쌩하니 래번클로 기숙사 쪽으로 가버렸다. 자리를 뜬 말포이가의 청년은 알지 못했지만 에밀리가 누군가의 외출 신청을 수락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독설을 뱉다가 순간적으로 악질적인 마음이 샘솟아 뱉은 거짓말이었다. 그 결과가 흡족했는지 리들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둘이 지금 재앙 수준으로 싸우고 있다는 것은 모른 채 리들은 혼잣말을 툭 내뱉었다.

    “정말로 싸워 버리라지.”

    리들은 만나기만 하면 티격 거리기 일쑤인 아브락사스와 에밀리가 은근히 눈에 거슬렸다. 전에는 시끄러워서 짜증났다면 지금은 다른 의미로 열이 받았다. 사실 리들과 리브가 싸우는 것에 비하면 아브락사스와 에밀리는 거의 소꿉장난 수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둘은 싸우더라도 관계가 끝날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리들은 리브와 조금이라도 부딪힐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관계가 끊어지면 어떡하나 그거부터 신경 쓰고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아브락사스 최소한 넌 맥밀란이 도망가지는 않잖아. 올리비아는 나를 피해 달아났어. 리들은 어느 순간 아브락사스와 에밀리가 묶여있는 약혼이라는 관계에 부러움을 느꼈다. 둘은 허울뿐이라 말하는 그 굴레가 리들은 실로 탐이 났다. 그래서 다른 남자를 만나려 한다며 펄펄 뛰는 아브락사스가 얼마나 아니꼬웠는지 몰랐다.

    걔가 설사 수많은 남자들이랑 자고 다닌다 해도 어차피 네 약혼녀고 미래의 부인이잖아.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자신의 고백을 믿지 않고 자신과의 약혼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상심에 빠져 있는 아브락사스에게 리들이 짜증처럼 뱉은 말이었다. 리들은 심정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리브에게 족쇄를 채우고 싶었다. 자신을 절대 떠나지 못할 그런 굴레를. 아무도 탐내지 못하도록, 아예 눈길조차 주지 못하도록 가두고 혼자만이 마음껏 탐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해도.

    사실 리들은 리브에게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었다. 사랑의 묘약을 먹여서 자신에게 무조건 적인 사랑을 바치게 할 수도 있었고, 강제로 그 몸을 취하고 처녀성을 앗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여자들은 흔히 순결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하니 그것을 잃으면 넌 어찌하지 못할 테지. 리브가 그런 부류인 줄은 알지 못했으나 그런 식으로 영원히 떠나지 못할 족쇄를 채워버릴 수도 있었다. 나에게 더렵혀진 몸으로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임신이라도 해버리면 착하디착한 그녀는 그 생명을 없애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옆에 남으리라. 가족애에 목말라 있는 그녀는 아이에게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지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리들은 기꺼이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리브가 평생 벗어나지 못할 트라우마였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정말로 최악의 끔찍한 인간이 되어 그런 짓을 감행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면 그게 무슨 대수랴.

    만약 리들이 단순히 리브의 마음을 유념에 두지 않고 그 몸만을 원했더라면 정말로 그렇게 했을지도 몰랐다. 자신만이 아는 곳에 가두고, 자신만을 눈에 담게 하고, 자신만을 부르짖도록, 자신만을 상대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평생을 괴로워하든. 평생을 눈물로 살든, 평생을 자신을 원망하든,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리들은 리브가 괴로워하는 게 싫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도 싫었다. 자신을 원망하고 저주하게 될 것도 싫었다. 예전에 리브가 호크룩스를 만든다면 반드시 파멸하라고 저주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몰랐다. 그때 리들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짓을 하면 리브는 당장 죽을 것처럼 울다가 정말로 죽어버릴 지도 몰랐다. 그럼 정말 이 손으로 너를 망치게 되겠지.

    그것은 리들이 리브를 알게 된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진 원초적인 불안감이었다. 리들은 자신의 손으로 리브를 망칠 것이 두려웠다. 이미 한 번 그러지 않았던가. 그녀는 자신을 피하고자 그야말로 인생을 내집어던지고 달아나는 것을 택했다. 리브는 호그와트를 졸업하고 출세가도를 달릴 능력이 출중한 마녀였다. 그런 그녀가 호그와트를 그만뒀다. 자신은 정말로 그녀를 망칠 뻔한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리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올라와 전신을 뒤덮었다.

    어떻게 보면 리브를 놓아주는 게 그녀에게는 나을 지도 몰랐다. 언제부턴가 리들은 악마가 되어 천사를 타락시키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 처음에 그녀를 경계했을 지도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상극임을 느낀 것일 테지. 하지만 그 악마는 순백의 천사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천사에게 분노를 느끼면서도 어느새 마음을 내주고 졸졸 쫓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천사는 쉽지 않았다. 그럼 그 천사를 망가뜨려서라도 가져 버리면 어떨까. 리들은 종종 그런 자신에게 깜짝 놀라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너를 놓아 줄 수 없어. 네가 없는 세계는 지옥과도 같단 말이야.

    리들은 리브라는 존재가 특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수월했다. 하지만 그 특별함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고집을 부리며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리들은 자존심을 접어야 했고 드높던 프라이드가 꺾이는 것도 경험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은 점점 커지고 깊어져서 단순한 애정을 넘어서 버렸다. 그리고 리브에게 품은 연정(戀情)은 강렬한 열망과 소유욕을 낳았고 집착과도 같아졌다.

    리들은 자신이 리브에게 고백을 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베리타세룸에 의한 것이라 자의는 아니었으나 그것의 진실성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마음 속을 온전히 내보였다.

    [네가 좋아. 이런 내가 낯설고 두려울 만큼.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면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거야. 네가 떠난 후로부터 지금까지, 네가 없는 세상에서 내 마음은 내내 지옥이었어. 그러니까 올리비아, 제발.]

    마치 애원 같은 고백을 했다.

    [나는 그냥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널 좋아하는 것처럼 너도 날 좋아했으면 좋겠어.]

    그것은 리들의 솔직한 바람이었다. 마음 속을 그대로 다 내비쳤기에 심지어 순수하기 까지 했다. 과연 베리타세룸이 아니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네 마음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장담은 못해. 나는 끊임없이 네가 나에게 넘어오도록 만들 거야. 널 원하니까.]

    강요? 리들은 섣불리 언급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로 다가가지 조차 못하고 있었다. 좋은 선배로 옆을 지키며 그 역할만을 충실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리들은 리브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더없이 상냥하고 사려 깊게 굴었다.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만을 띄웠다. 사실 웃을 기분은 전혀 아니었지만 리들은 억지로라도 그렇게 했다. 그래야 리브를 붙들어 두고 옆에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그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 기다리기라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널 기다려줄 수 있어.]

    어쩌면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리들은 단지 거절당할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고백에 대답하라 강요할 수도, 암시를 줄 수조차 없었다. 지금 간신히 얻은 평화가 깨질 것이 두려웠다. 기어이 관계를 연장시켜 놓은 것은 리들 본인이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라고 하나 리들은 그거라도 갖고 싶었다.

    [이딴 약이 아니어도 나는 너에게 진실만을 말하려고 했어!! 그러겠다고 말 했잖아!! 그런데 왜!!!]

    하지만 자신을 믿지 못하고 베리타세룸을 먹인 리브의 행동은 괘씸하다 못해 치가 떨릴 정도 였다. 그 잔혹한 배신에 리들은 끔찍함을 느끼며 괴로움에 몸부림 쳤다. 그것은 가히 모욕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들은 리브를 향한 마음을 끊어낼 수가 없었다. 진심을 짓밟히고도 정이 떨어지지 않다니 여전히 그녀를 갈구하다니 이건 중증이나 다름없었다. 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올리비아 너 역시 나를 좋아하잖아.]

    넌 정말 나를 좋아할까. 그때는 리브의 마음을 확신했지만 리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더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리들은 조바심이 들다 못해 잔뜩 안달이 났다.

    [너는 그냥 내 옆에 있으면 돼. 그럼 너도 네 마음을 인정하게 될 거야.]

    인정하지 않아도 돼. 그냥 이대로 내 옆에 있어. 언제가 되든 기다릴 테니까……. 리들은 이제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다.

    [정말 날 좋아해요?]

    그래, 아직도 난 네가 좋아. 이젠 내가 더 좋아해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없어져 버리지만 마. 리들은 진실로 간절했다.

    제발 날 버리지 마.

    ============================ 작품 후기 ============================

    선작이 만을 넘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작이 만을 돌파한 것을 보니 도저히 업뎃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비축분이 없잖아요? 아마 난 안될거야... 그래서 감기는 눈을 참고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0^

    * 왜 이렇게 늦게 오느냐 물으신다면 저희 과가 쓸데없이 빡셉니다ㅠㅠ.. 과제도 많고 벌써 시험도 여러번 봤어요... 다음 주에는 여유가 조금 생길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도저히 지난주에는 글을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죄송해여 엉엉

    * 정성스런 쪽지 주신 뮤륭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스트레스 만땅이었는데 많은 힘이 됐습니다ㅠㅠ 멘탈 회복!

    * 열여섯 번째 챕터명은 변경할 예정입니다. 이번 챕터명은 아직 미정입니다...

    * 여러분 저 감이랑 배 싫어해요. 그러니까 감내놔라 배내놔라 하지 말아주세요.... 전 복숭아랑 오렌지 좋아해요. 아 딸기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초콜릿도.. 근데 멘토링에 왜 달달함이 없냐고 하시면 흑흑.. 어쨌든 그건 드릴 수 있어요. 근데 감이랑 배는 좀.. 그니까 더 이상 감이랑 배는 찾지 마셔요. 그 대신 복숭아랑 오렌지 예쁘게 잘라 드릴게요^.^

    독자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럼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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