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102화 (102/115)

0102 / 0115 ----------------------------------------------

Chapter 16. 돌이킬 수 있는

“머틀이 죽고 그걸 이용해서 호크룩스를 만들었죠?”

리브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체…… 왜 그랬어요?”

그 물음에 리들은 현실로 돌아왔다. 청년은 그제 서야 소녀가 그토록 자신을 거부한 이유를 알아 차렸다. 일련의 사건들뿐만 아니라 그 뒤에는 이런 엄청난 오해가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어쩐지 자신을 피하는 게 너무 과하다 싶었다. 리들은 이제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호크룩스? 호크룩스 따위는 만들지도 않았어!”

리브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리브의 얼굴에 담긴 감정을 불신으로 판단한 리들이 다시 한 번 말했다.

“호크룩스 따위는 만들지도 않았어. 그럴 겨를조차 없었단 말이야.”

리브가 그리 되고 리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어떻게 호크룩스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정말이야…….”

리브의 벽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건 평소와 다른 의미의 경악이었다. 자신의 예상이 철저히 틀렸다는 그런. 리브는 또다시 무의식적으로 리들의 찻잔으로 눈을 옮겼다. 이제 찻잔은 깨끗하게 비어져 있었다. 그는 한 치의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저것을 다 마셨다. 그럼 진실이라는 소리였다. 리들이 마신 차 안에는…….

“제발 믿어줘.”

“하지만 호크룩스를 만들 계획이 있다고……. 슬러그혼 교수랑……. 그 노트 말이에요! 나랑 필담을 나누던 그 노트를 호크룩스로 만든 것이-”

그 말에 리들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는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표정으로 살벌하게 말했다.

“헛소리 작작해.”

리들은 품에서 리브가 말한 문제의 노트를 꺼냈다. 리들과 리브가 멘토링을 하며 필담을 나누곤 하던 그 노트였다. 리브는 그것을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호크룩스라고 생각하니 저 새까만 물체가 사악해보였던 것이다.

“이게 호크룩스라면 내 영혼의 일부가 담겨 있기 때문에 절대로 훼손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봐.”

리들은 그렇게 말하며 망설임 없이 그 노트를 쫙쫙 찢었다. 절대 훼손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노트는 갈가리 분해되고 있었다. 그리고 리들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종이에 불이 붙더니 이내 타들어가며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리브의 눈이 커졌다. 원작대로면 호크룩스가 되었어야 할 물건이 사라져버렸다. 저건 호크룩스 일 리가 없었다. 정말 호크룩스를 만들지 않았던 거야?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리브는 몹시 당황했다.

“이래도 못 믿겠다는 표정이네.”

“…당신이 사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리브가 내온 차를 마신 이상 리들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리브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철저히 전부 틀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본래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힘든 법이다.

“그럼 이제 믿겠어? 설마 다른 것을 호크룩스로 만들었다는 말을 지껄이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그럼 회색 숙녀하고는 왜 친하게 지냈어요? 호그와트 창립자들의 물건을 조사한 것은요? 호크룩스 일곱 개는요!”

리브는 이상하게도 마치 궁지에 몰린 것 같아보였다. 리들은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그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건 고대 유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어. 너도 내 취향은 알 텐데?”

그는 라이트 저택에서도 오래된 골동품에 지대한 관심을 표하곤 했다. 물론 강탈해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회색숙녀는 래번클로의 보관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접근한 거고……. 그래, 솔직히 탐났어. 하지만 그건 오랜 기간 마법사들이 찾아오던 유물이잖아. 보관을 탐내는 건 나뿐이 아닐 걸. 필리우스 플리트윅도 그 중 하나였거든.”

리브는 필리우스 플리트윅이 졸업하기 전에 회색숙녀를 졸졸 쫓아다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보관 때문이었구나.

“그리고 호크룩스 일곱 개는 가정일 뿐이야. 그 때는 네가 그런 식으로 날 몰아붙여서…… 홧김에 한 말이야.”

리브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불사를 갈망하잖아요. 호크룩스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던가요?”

“…그래, 그랬었지.”

리들은 차를 마시려다가 찻잔이 비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겸연쩍게 그걸 내려놓았다. 리들은 무의식적으로 리브의 시선을 따라 가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하지만 생각이 달라졌어.”

“…?”

“네가 싫다면 안 해. 필요 없어.”

리브는 또다시 비어 있는 찻잔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은 분명 저 차에 베리타세룸 한 병을 몽땅 넣었다. 세 방울이면 충분했지만 무려 한 병을 쏟아 부었다. 그만큼 효과는 완벽하리라. 리들의 말은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리브는 긴장이 쭉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모든 것이 오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죽은 머틀과 퇴학당한 해그리드는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을 리들에게 책임지라고 몰아붙일 수도 없었다. 그건 리들의 전적인 잘못이 아니었고 그는 나름 자신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비어리 교수에게 맨드레이크 회복 약에 대해 언질을 준 것도 그런 의도였을 터. 리브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왜 일찍 깨닫지 못했을 까. 지금 이 상황은 편협한 시선과 지독한 선입견이 불러온 참극과도 같았다. 리브는 그 생각에 미치자 자신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베리타세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그랬다. 자신이 지금까지 굳게 믿어온 생각이 송두리 째 무너졌으므로 쉽사리 인정하기 힘든 것이었다. 사람인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브가 갑자기 대화를 제안하고, 차에 베리타세룸을 탄 것은 리들과의 인연을 끝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리들이 자신에게 베리타세룸을 먹였다고 난리를 치면 어찌 대처할 지도 이미 생각해 두었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거짓을 말하며 자신을 기만(欺瞞)했을 거라고 쏘아 붙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확인사살을 하고 떠나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뒤집혔다.

대체 지금까지 난 무얼 한 거지? 리들을 끊어내려 노력하고 괴로워했던 그 모든 날들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리고 그제 서야 리브는 자신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짓을 저지른 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대화를 하자는 자신의 말에 그는 애초에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리브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결국 리들이 마실 차에 베리타세룸을 넣었다. 이걸 리들이 알게 된다면……. 리브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야 말로 리들을 기만(欺瞞)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올리비아.”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는 리브를 보며 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리들은 리브를 이대로 잃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야 했다. 더없이 높은 프라이드였으나 리들은 그것을 망설임 없이 내려놓았다. 자존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애초에 용서를 빌 작정으로 오지 않았던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

“용서해줘, 다시는 안 그럴게.”

편지의 내용이 이제 당사자의 입술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절절한 감정을 담아서.

“나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줘, 제발.”

“……나한테 왜 이래요, 정말.”

리브는 이제 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억눌린 목소리에서 깊은 혼란과 어떤 두려움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내가 대체 당신한테 뭔데 이렇게 까지 하냔 말이에요!”

리브의 외침에 리들은 흑안을 깜박였다. 그 물음에 머릿속이 텅 비었다. 뇌는 계속해서 그 대답을 도출하라 부추기고 있었지만 리들은 쉽사리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리들의 입술에서 주인의 의지를 배반한 채로 마음 속 생각이어야 할 것들이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게, 네가 뭐라고 내가 이러는 걸까.”

리들의 잘생긴 얼굴 역시 혼란을 담고 있었다. 말을 하기 전에 정리가 필요했으나 이놈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사실 나도 모르겠어.”

그 말에 리브는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그 감정은 서운함이라 정의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난 이 감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순간 야속해졌다.

“대체 당신은 날 어떻게 생각해요? 날…….”

리브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 세월동안 참아왔던 그 질문을 입에 올렸다. 그건 베리타세룸을 탈 때와는 다른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날 좋아해요?”

순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리브는 저 작은 입술에서 나올 말이 두려웠다. 차라리 열리지 말았으면, 그냥 모르겠다고 해. 차라리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저 입술에서 ‘네가 싫어.’, ‘좋아하지 않아.’같은 부정적인 말이 나오면 어떡하지. 리브는 리들이 베리타세룸에 대해 알게 되는 것 보다 그 대답이 더 두려웠다.

“그래.”

리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에 리브는 멍하니 벽안을 깜박였다.

“네가 좋아, 이런 내가 낯설고 두려울 만큼.”

이제 리브는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면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거야.”

주인의 의지를 배반한 입술은 이제 절절한 고백을 내어놓고 있었다. 리들은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네가 떠난 후로부터 지금까지, 네가 없는 세상에서 내 마음은 내내 지옥이었어.”

자신이 하고 있는 말들은 전부 한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으므로.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올리비아, 제발.”

보통 여자라면 리들의 절절한 고백과 애원에 마음을 홀랑 내줬을 것이었다. 그만큼 리들의 마성은 치명적이었고 상대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리브 역시 여자인지라 마음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도 마음에 담고 있는 상대의 고백인데 오죽하랴.

“그건 내가 필요하기 때문인가요?”

하지만 불신은 여전히 리브를 옭아매고 쉽게 놓아주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리브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야망보다 자신이 더 중하다는 그런 확신을. 욕심인 것을 알지만 그러했다.

“내가 당신에게 이용 가치가 있으니까 그런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건가요?”

확실히 리브의 마음이 동할 만큼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순간 리브는 눈물을 쏟으며 자신 역시 당신을 좋아하노라 말할 뻔했다.

“난 당신에게 보기 좋은 전리품이고 훌륭한 도구니까 그런-”

“그놈의 전리품 소리 좀 그만해. 도구라고?”

리들의 얼굴이 순간 구겨졌다.

“난 널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왜 너 스스로를 그렇게 격하시켜?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이라도 했던가? 난 널 항상 소중히 대해왔어! 왜 너는 항상 네 마음대로 생각하고 네 멋대로 단정 짓는데!”

고백에 대한 답변이 저따위라니. 리들 역시 자신이 뱉은 말들이 의지와 무관한 것이었다고 해도 좋아하는 여자에게 하는 고백이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리들의 흑안에 진심를 의심당한 것에 대한 불쾌감이 어렸으나 리브의 불안한 얼굴과 마주한 순간 그것은 자취를 감췄다.

“단지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도 않았어.”

무엇이 너를 그토록 불안하게 하는 거야? 리들은 오히려 자신의 고백을 납득시키려 애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만 했다.

“나는 그냥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널 좋아하는 것처럼 너도 날 좋아했으면 좋겠어.”

베리타세룸의 영향 때문일까. 지금의 리들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 몹시 솔직했다. 동시에 더없이 당당하고 떳떳했다.

“네 마음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장담은 못해. 나는 끊임없이 네가 나에게 넘어오도록 만들 거야. 널 원하니까.”

사랑을 쓸데없는 감정이라 정의하던 이와 동일인물인 지 의심 갈 정도였다.

“너는 그냥 내 옆에 있으면 돼. 그럼 너도 네 마음을 인정하게 될 거야.”

리브가 무어라 말을 하려하자 리들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인정할 마음조차 없다고 말할 것 같았다.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굳이 듣고 싶지는 않았다.

“올리비아 너 역시 나를 좋아하잖아. 그래서 아까 나한테 마법을 쏜거 아니야? 내가 정곡을 찔렀으니까.”

지금까지 지낸 세월이 헛것은 아닌 듯, 리들은 리브에 대해 속속히 잘 알았다. 아까 ‘너도 날 좋아하잖아.’라는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리브는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주문을 쐈다.

“너는 원래 속마음을 내비치는 것을 무서워하잖아. 그게 네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

리들은 상처 입은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입술을 끌어올렸다. 이어서 손을 뻗어 리브의 가디건 주머니에 삐죽 튀어나와있는 양피지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래서 이 편지도 못 태운 거겠지? 그렇게 항상 소지하고 다닐 만큼 소중했어?”

리브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리들의 손에 들린 그것을 휙 낚아챘다. 리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아직 리들은 리브에게서 고백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것 마냥 자신만만해보였다. 마치 리브가 자신을 받아준 것 마냥 기분이 좋아보였다. 리들이 볼 때 리브는 그저 솔직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그녀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었으므로. 상관없었다. 앞으로 함께할 시간은 많으니까.

“나는 널 기다려줄 수 있어. 내내 참았는데 기다리는 것 정도를 못할까.”

리들의 달콤한 미성에 리브는 가슴이 가득 설레는 것을 느꼈다. 심장 박동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가 날 좋아한다고 했다. 이는 진실이고 진심이었다.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리브는 한편으로는 사랑이 두려웠고 자신의 저지른 짓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베리타세룸으로 얻어낸 진실이며 고백이었다, 리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에 리브의 한켠이 죄책감으로 얼룩졌다. 베리타세룸은 진실을 말하지만 그 고백이 자의가 아니라는 사실이 리브를 옥죄었다. 과연 베리타세룸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했을까. 날 좋아한다고 말했을까? 리브는 그 대답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너무 기다리게 하지는 마. 내 인내심에도 한계는 있거든.”

리들은 이제 리브에게 ‘호그와트로 돌아올 거지?’라는 물음을 던졌다. 리브는 미소 짓고 있는 리들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돌아갈게요. 함께 가요.”

그 대답에 리들은 더없이 기쁜 표정으로 잘생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담았다.

“자퇴서 수리는 내가 막아놨어. 네가 여기서 안 돌아오겠다고 또 고집부리면 덤블도어에게 호언장담한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뻔했어.”

너 때문에 자신이 덤블도어한테 무슨 짓을 한 지 알기나 하냐며 리들은 잠깐 궁시렁 거렸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리브가 말했다.

“정말 날 좋아해요?”

베리타세룸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도 듣고 싶었다. 어쨌든 진실이 아니던가. 자의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으나 그래도 톰 리들의 고백은 달콤했다.

“그래, 네가 좋아, 정말 진심이야.”

리들은 친절하게도 다시 한 번 그 대답을 내주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갑자기 고백을 하게 되었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 어둠이 걷힌 리브의 얼굴을 보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 역시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확신이 리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리들은 오해라는 사실을 모두 밝히고 마음 속 깊이 품어왔던 마음까지 펼쳐놓자 불안감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었다. 동시에 항상 날카롭던 철의 이성이 한층 깨어났다. 그러자 리들은 이제 아까부터 느꼈던 리브에 대한 의아함이 증폭되었다. 아까부터 자꾸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데……. 왜 자꾸 찻잔을 쳐다보는 거지? 여기 뭐라도 넣었…….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의 파편에 리들의 흑안이 확장되었다.

“너 설마…….”

의아함은 의혹이 되었다. 평소의 빈틈없는 이성을 되찾은 리들은 이제 리브가 보여줬던 모습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내 자신을 거부하며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더니 갑자기 대화를 하자고 했던 것, 차를 가져오는 시간이 지나치게 늦었던 것,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였던 혼란스러운 표정들, 그리고 계속해서 찻잔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모습까지……. 이어서 내내 지나치게 불안해하던 리브를 떠올리자 리들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너 차에다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리들의 흑안이 예리해지며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수면제라도 탄 거야? 날 재우고 도망갈 생각으로?”

불안하게 눈을 굴리는 리브를 보며 리들은 신랄하게 비꼬았다.

“그런다고 네가 나한테서 벗어날 수-”

그 순간 리들의 머릿속에 베리타세룸의 존재가 스쳐지나갔다. 진실을 말하게 만드는 무색무취의 마법약. 그리고 자신을 말을 못 믿겠냐고 물었을 때의 그녀의 답변.

[당신이 사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그녀는 불신이 가득한 얼굴로 그런 말을 뱉었다.

“아니, 수면제가 아니야…….”

계속해서 쓸데없는 말을 하던 자신이 떠오르자 리들은 이제 그 추측을 확신으로 굳혔다. 지나치게 솔직하게 입을 놀렸던 이유가……. 리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지다 못해 살벌해졌다.

“베리타세룸.”

움찔하는 리브를 보며 리들은 헛웃음을 뱉었다. 내내 참아왔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며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리들을 수포로 돌려놓았다. 리들의 목소리에 잔뜩 날이 서다 못해 상대를 난도질할 기세였다.

“정말로 베리타세룸을 넣었어?”

베리타세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리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반응을 보니 대답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그래서 차를 내오는 게 늦어진 거였어. 리들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베리타세룸의 영향으로 그 분노는 노골적으로 흘러나왔다. 리들이 소리 지르듯 말했다.

“그렇게 날 못 믿었어?”

리들은 눈앞의 리브에게서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대체 나야 말로 너한테 뭐야?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쌓아온 신뢰는 겨우 이 정도였어?”

마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리들은 그것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내내 차분하던 리들의 흑안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정말 단단히 화가 났는지 얼굴도 살짝 붉었다.

“나한테 저 베리타세룸을 먹이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내가 네 예상과 같은 답변을 하길 바랐나 보지?”

정곡을 찔린 듯 리브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날 끊어내려고? 그래, 그럴 생각이었겠지! 그러니까 넌 이런 어마어마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거야!! 나와의 훗날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다시는 날 안 볼 생각이었겠지!!!”

리들의 말이 맞았다. 애초에 그 순간을 위해서 리브는 리들이 알면 경을 치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렀다. 리들과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겠다는 독을 품었기에 그런 행동력이 나온 것이었다. 그 후에는 다시 볼 생각이 없었으므로. 리브는 끊어낸 인연에 대해서는 몹시 냉정하고 잔인했다. 그런 리브의 성품을 알기에 리들은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몹시 화가 났고 이제는 슬프다 못해 애통했다.

“이딴 약이 아니어도 나는 너에게 진실만을 말하려고 했어!! 그러겠다고 말 했잖아!! 그런데 왜!!!”

리들은 자신의 판단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리브는 리들의 고백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 한 차례도 자신 역시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으나 리들이 괘념치 않았던 것은 같은 마음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확신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졌다.

눈앞의 소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정말 날 좋아하기는 하는 건지. 문득 자신만의 일방통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확신이 깨지자 불안감에 휩싸였다. 당장이라도 리브가 ‘나는 당신이 싫어요.’라고 말하며 도망갈 것 같았다. 리들은 이제 리브를 닦달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고 싶어졌다. 당장 날 좋아한다고 말 해.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말하란 말이야! 하지만 리들은 리브가 거짓된 감정을 말할 성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리들은 대답을 요구함으로써 듣게 될 거절의 말이 두려웠다. 억지로 대답을 종용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건 의미가 없었으므로.

“대체 왜 이런 짓을 했느냔 말이야!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리들의 눈에 잔뜩 핏발이 섰다.

“넌 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거야. 그랬다면 넌 이런 짓 못해. 이 못된 계집애야.”

리들의 눈시울이 순간 붉어졌다. 이는 분노와 울분 그리고 슬픔 같은 감정들이 응집된 결과물이었다.

“너야말로 정말 내게 한 번이라도 진심인 적이 있기는 해?”

내내 리들의 격렬한 감정을 감당하던 리브는 눈을 질끈 감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말해야 했다. 처음엔 아니었지만 그 후에는 쭉 진심이었다고. 의심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해 사과해야 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믿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해야만 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리들의 얼굴을 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결정과 행동들이 전부 후회스러웠다. 리들이 신뢰를 주지 않았노라 합리화를 해보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건 명백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뭐라고 말을 해보란 말이야!!”

제발 변명이라도 해. 하지만 리브는 리들을 쳐다보지 조차 않고 있었다. 리들의 그 절규와도 같은 외침에 리브는 울음이 터질 것 같았으나 꾹 참았다. 자신은 눈물을 흘릴 자격조차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상황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리들이 말대로 리브는 그를 더 이상 안 볼 생각이었으므로. 그래서 리브는 더욱 더 리들에게 감히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었다.

“내가 어린 날의 너에게 관심 갖지 말아야 했다고? 이제는 나도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어.”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흐려졌다. 인연을 부정당하는 느낌은 생각보다 괴로웠다. 당신도 이런 기분을 느꼈었나.

“너는 내 모든 것을 흔들고 나약하게 만들어. 너만 사랑이 싫은 게 아니야. 나도 싫어!”

리브가 사랑에 회의감을 느끼듯 그 감정에 부정적인 것은 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리들이 더 심할 지도 몰랐다. 이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날이 커지고 깊어지는 마음에 리들은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이런 불신과 배신이라니. 리들은 리브에게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집착과도 같은 연심(戀心)이 공존했다.

“그런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

리들에게서 짙은 슬픔이 묻어났다. 실망감, 배신감.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치며 몹시 괴로워졌다. 리들이 리브에게 화를 내고 큰소리를 낸 것은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고개 들고 날 봐.”

기다릴 수도 없는 듯 리들이 벌떡 일어나 리브와 거리를 좁혔다. 다행히 리브는 리들을 피하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의 미동조차 없었다. 그 모습을 잠깐 내려다보던 리들은 리브의 손목을 틀어쥐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리들은 휘청이듯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는 리브를 으스러질 듯 꽉 끌어안은 채 귓가에 속삭였다.

“이대로 내가 너한테 실망해서 떠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혹시 그걸 노리기라도 했어?”

리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난 너랑 달라, 이 악독한 계집애야.”

괴로움과 함께 분노가 그대로 묻어났다. 리브에 대한 원망까지.

“네가 정말 미워. 하지만 난 너 없이는 안 돼.”

리들의 목소리는 몹시 어둡고 음습했다.

“그러니까 넌 무조건 내 옆에, 내 시야가 미치는 곳에 있어야 해.”

리들의 흑안이 정인(情人)에 대한 집착과 광기로 번들거렸다.

“나는 네가 날 기만한 것보다……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게 더 견딜 수가 없거든.”

리들에게서 리브를 향한 진득한 욕망과 지독한 소유욕이 묻어나왔다. 청년은 동시에 리브를 끌어안은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 악력에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어지자 리브는 리들을 밀쳐냈다. 의외로 순순히 리들은 리브를 놓아주었다. 그제 서야 리브는 슬픔과 배신감으로 얼룩져있는 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자 리브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아까보다 더 숨이 막혀왔다. 내내 잡혀있던 손목에 멍이 들었는지 몹시 아려왔으나 리브는 마음이 더 아팠다. 리브는 리들이 자신을 험악하게 다룬 것에 대해 조금의 원망도 가질 수 없었다. 내가 그를 이렇게 만든 거야.

“올리비아, 나는 널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야.”

*

리들은 철두철미하게도 호그와트로 돌아가기 직전 리브에게 베리타세룸 해독약을 요구했다. 리브는 곧바로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었고 그걸 전부 마신 리들은 소녀를 빤히 응시했다. 자신이 받은 상처만큼 그녀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너도 나만큼 아파봐야 해. 순간적으로 솟구친 감정은 리들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도록 만들었다.

“베리타세룸이라니, 너에게 나에 대한 인식은 그 정도뿐이었던 거지.”

“리들 선-”

“닥쳐.”

한마디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리들은 리브의 말을 거친 언행으로 끊어놓았다. 리브는 격렬한 감정을 토해내던 아까보다 고요한 지금의 리들이 더 무서웠다.

“이제는 너란 존재가 정말 질리려고 해.”

그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리브의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하지만 너란 여자를 못 놓는 내가 더 혐오스러워.”

그렇게 말하며 리들은 리브의 손목을 강하게 틀어쥐고 벽난로 앞에 세웠다. 아까 리들에게 잡혀 멍이 들었던 손목을 다시 잡히자 리브는 고통에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리들이 자신을 험악하게 다룬 것에 대한 섭섭함 이 몰려오자 리브는 청년을 확 뿌리치고 차갑게 말했다.

“내 발로 돌아갈 테니까 놔요!”

리들의 흑안과 리브의 벽안이 치열하게 얽혀 들어갔다. 자신에 대해 질리고 혐오스럽다고 말하는 리들에게 리브는 울컥했다. 자신도 무어라 독한 말을 뱉으려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가 먼저 가도록 해. 이젠 나도 널 믿을 수가 없거든.”

리들의 날카롭고 집요한 눈길이 리브에게 내리꽂혔다.

“엉뚱한 장소로 가기라도 했다가는 그땐 내가 널 정말 어떻게 할지도 몰라. 네 의사 따위 더 이상 개의치 않겠어.”

순간 리들의 흑안에서 붉은 빛이 번쩍 했다. 리브는 떨리는 손으로 플루 가루를 집어 들고 벽난로로 뿌렸다. 호그와트를 외치며 소녀는 벽난로 속으로 사라졌다.

순순히 자신의 뜻대로 하는 그 움직임에 리들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이렇게 돌이킬 수 있는 것을. 이제 그녀는 자신의 것이었다. 네 마음 따위 상관없어.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테다. 하지만 리들은 마음이 편치 못했다. 만족감도 그 무엇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돌이키는 것을 원한 것은 아니기에.

<돌이킬 수 있는> 마침.

============================ 작품 후기 ============================

새드엔딩 아닙니다....

내심 소제목 잘못 정한 거 같아서 후회중이에욬ㅋㅋㅋㅋㅋㅋㅋ이건 뭐 돌이킨 건지 뭔지.. 나중에 바뀌어도 놀라시지 마셔요!

사실 원래 여기서 완벽하게 이뤄질 계획이었으나... 리들에 대한 불신이 제 생각보다 너무 깊더라구요;;; 그리고 리브도 성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토리 부분 조언해주신 모작가님 감사드려요♡

개인지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분량을 줄여야한다는 생각에 강박감이 컸었는데.. 이제 그냥 쓰렵니다ㅋㅋㅋ용두사미는 바라지 않으니까요..

항상 선추코 감사드리구요♡ 좋은 밤 되세요^^

+ 새로 바뀐 표지는 낭랑낭님이 그려주신 리브입니다! 너무너무 예쁘죠ㅠㅠ♡ 큰 버전은 뜰에 오셔서 보세요^0^

+ 100편 리리플 작품설정에 올렸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