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99화 (9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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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16. 돌이킬 수 있는

    개학을 한지 한 달이 훌쩍 넘어가 두 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리브는 이제 오리온이 자신을 리들에게 밀고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듯 했다. 오리온은 틈만 나면 리브에게 돌아오라 설득을 하다가 지치면 학교 소식에 대해 읊고 리들의 일상을 쏟아냈다. 리브는 리들의 부분에서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항상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오리온이 전해오는 리들의 일상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이번에 오리온이 전해온 소식은 특히 가관이었다. 리들은 반장의 권위를 이용해 교칙을 어기는 학생이 있으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징계를 준다고도 했다. 오리온은 그 행동이 마치 분풀이나 스트레스 해소 같다고 했다.

    “그건 권력 남용이잖아! 사적인 감정을 넣어서 권력을 휘두른다니…….”

    “반장으로서 그 분은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

    “하지만 가혹해! 그건 너무 심하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여간 그 인간은 여전하구나!”

    다 너 때문이잖아, 이 여자야. 기분이 안 좋으니까 그걸로 화풀이 하는 거지. 오리온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뻔한 것을 꾹 참았다. 그보다는 리브의 감성을 자극할만한 것을 입에 올리는 것이 현명했다.

    “그렇게 분풀이를 하시다가도 금방 우울해 하셔. 그것도 몹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

    오리온은 살짝 과장을 섞었다. 리들은 대외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더 가차 없어졌고 더 냉혹해졌다는 것을 빼면. 리들을 무서워하는 학생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이미지 관리의 귀재이던 리들은 이제 그딴 건 집어치운 듯 했다. 막 나가는 것 같기도 했고 왠지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오리온은 본의 아니게 리들의 상태를 정확히 짚어 냈다. 사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리들의 마음속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난공불락의 성이라 생각했던 리들의 마음은 리브라는 존재가 들어가자 마치—과장 조금 더 보태서— 모래성 같아졌다.

    “끊임없이 뭔가를 생각하고 슬퍼하셔. 울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해 보여서 걱정 돼.”

    “거짓말,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그 말과는 다르게 리브의 얼굴은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왜 아직도 나를 찾고 있는 거야. 당신은 그럴 사람 아니잖아. 자신의 손을 떠난 것은 필요가 없다면서. 리브는 참담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표정이 어두컴컴했다. 항상 반짝반짝 빛나던 벽안은 이제 비통함으로 가득했다.

    “거짓말 아니야. 리들 선배답지 않게 멍 때리기도 하시고 시도 때도 없이 한숨을 푹푹 내쉬고 그래. 머리 빈 계집애들은 사색을 즐긴다는 둥 헛소리를 해대지만 그딴 게 아니야.”

    리브는 이제 울고 싶어졌다. 그만하라고, 더 이상 그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고, 자신을 흔들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부재로 몹시 흐트러져 있다는 그의 소식에 마음 한켠에서는 미세하게 기쁨이 샘솟고 있었다. 리브는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이유를 알자 더욱 더 그러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어.”

    그 말에 리브는 울컥해서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사실 그녀 역시 항상 리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했다.

    “언제 터질 지도 몰라. 그러니까 순순히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알아. 이제 그는 나를 찾아내면 가만두지 않겠지.”

    그 말에 오리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서도 리들이 리브를 찾아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리들 선배는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셔.”

    그 말에 리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가 이내 쓰디쓴 씁씁함을 담았다. 학교에 자퇴서까지 내고 모습을 감춘 자신을 절대로 가만 둘리가 없었다. 엄청 화가 났겠지. 하지만 리브는 후폭풍의 두려움보다 슬픔이 더 깊었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끝이 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들기도 했다.

    [리브, 어떻게든 그와는 끝을 봐야해. 이대로는 안 돼.]

    크리스의 편지가 떠오르자 리브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리브의 약해진 모습을 잡아낸 오리온은 그곳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었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처지였다. 들키기 전에 리브가 먼저 돌아가야 상황이 호전 될 수 있었다.

    “돌아와, 리브.”

    “…….”

    “네가 자의로 돌아오면 상황은 훨씬 좋아질 거야. 응? 제발.”

    돌아오라는 말을 하면 언제나 입을 꾹 다물거나 축객령을 내리는 리브였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마음이 약해졌는지 순순히 대답을 내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겠다는 대답이 아니라 오리온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 없어. 난 이미 마음을 굳혔어. 더 이상 리들 선배를 볼 수 없어.”

    리브의 목소리는 지독할 정도로 슬픔이 가득 차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 모습에 오리온은 안타까워졌다. 그리고 내내 참고 참았던, 말하고 싶지 않았던 그 말을 뱉어냈다.

    “리들 선배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

    그 말에 리브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타인이 정확히 집어낸 마음 속 깊은 감정은 리브의 평정을 잃게 하기에 충분 했다. 리브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리브의 모습에 오리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남자의 마음을 몰라. 리들 선배의 마음을 그렇게 모르겠어?”

    안다, 그가 나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리브는 영악하게도 그것을 진작에 알아 차렸다.

    “넌 눈치가 비상하면서도 막상 네 일에는 둔하더라. 정말 모르는 거야?”

    오리온은 리브가 모른 척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물어보았다. 소녀는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으나 오리온은 쐐기를 박았다.

    “아니. 모른 척 하는 거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의 정체를 알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리들 선배가 나를 남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에게 내가 ‘특별하다’는 것도 알았다. 모를 리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싸늘한 눈이…… 나에게 만큼은 더 없이 부드러워졌으니까, 그는 나 외의 그 누구에게도 그런 눈빛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신경써주었고, 나를…… 소중히 대해주었다. 그 행동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를 향해 갖고 있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른 척 해왔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만약 알고 나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리들 선배는 이곳을 알아내고 말거야. 그냥 돌아와서 무작정 떠나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빌어. 그럼 용서해 주실 거야.”

    그 말에 리브의 눈이 번쩍 했다. 지금까지 잔잔한 태도를 유지하던 리브가 빽 소리쳤다.

    “네가…… 네가 뭘 알아!”

    “만약 리들 선배의 잘못이라면 네가 그 분을 용서해줘. 충분이 뉘우치고 계셔.”

    오리온은 진심으로 호소하고 있었으나 리브는 사정없이 상대에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닌 그야!”

    “그럼…….”

    “용서할 수가 없어서 떠난 거야. 너는 아무 것도 몰라! 그는 정말 끔찍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야!”

    비밀의 방은 열렸고, 습격이 일어났다. 머틀이 죽었고 해그리드는 퇴학당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막으려던 자신 역시 죽을 뻔했다. 원작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리들은 그 가엾은 머틀을 희생양으로 기어이 호크룩스를 만들었으리라. 그의 사악한 야심 하나로 저런 끔찍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리고 무력감과 절망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그 허탈함. 타임 터너를 깨부숴 버림으로써 악행에 일조한 나. 얼마나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 악행들을 전부 눈감고 용서하라고? 그가 뉘우쳐? 톰 리들이? 퍽이나!

    리브의 벽안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가 아닌 처절함이었다. 리브는 자신의 안일함과 나약함이 너무나도 싫었다. 마음 가득 슬픔이 복받쳤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리브, 그럼 평생 이러고 살 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해리포터에 의해 몰락할 때까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리브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에 오리온이 당황한 듯 은회안을 깜박이다가 닦아주려는 듯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소녀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잠깐 쓰디쓴 표정을 짓던 오리온은 이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브, 그냥 돌아와. 응?”

    리브는 고개를 숙인 채로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돌아갈 수 없어. 난 이미 마음을 굳혔어. 여기서 돌아가면 절대로 그에게 헤어 나오지 못 할 거야. 두렵다. 나는 너무나도 두렵다. 이제 리브의 벽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리브의 치맛자락이 젖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더 이상은 못 버텨, 그리고 너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오리온은 갑자기 말을 뚝 멈췄다. 뒤를 돌아보는 듯싶더니 청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나,난 이만 가봐야겠어!”

    급하게 한 마디 뱉은 후 청년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리브는 두 손을 얼굴에 감싸더니 한참동안 소리 내서 울었다.

    *

    벽난로에서 몸을 뺀 오리온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쩐지…… 수상하다, 했어.”

    리들이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서늘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브락사스는 폭발 직전의 리들을 보고 어찌해야하나 발을 동동 굴렸다. 오리온 네가 만난 게 설마 리브야? 상황을 파악한 아브락사스는 입을 쩌억 벌렸다.

    “나 몰래 그녀와 연락하고 있었단 말이지…….”

    “…….”

    “말 해, 어디야.”

    “…….”

    리들의 흑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조금도 기다리기 힘든 듯 리들은 휘적휘적 다가가 후배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그 모습에 주변의 친인들이 식겁하며 리들을 말리기 시작했으나 청년은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새끼야, 당장 그녀가 어디 있는 지 말하란 말이야!”

    평소에는 입에도 올리지 않던 욕설까지 뱉으며 오리온을 겁박하는 리들의 흑안에 위험한 붉은 빛이 번뜩였다. 그와 함께 오리온의 멱살을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브락사스가 용기 있게 나서서 리들에게 진정하라 애원했지만 이는 화난 자의 분노를 부추길 뿐이었다.

    “닥쳐,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이 자식이 올리비아를 빼돌렸잖아!”

    리들의 분노는 평소와 다른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화가 나더라도 그것 역시 차분하게 표현하던 청년은 이제 목소리를 사정없이 키우고 있었다. 리들은 쩔쩔 매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친인들을 쓱 둘러보다가, 대답하지 못하는 아브락사스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었다.

    “설마, 너도 알면서 숨겼어?”

    리들의 흑안은 위험한 광기로 가득 차있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기세였는데 그것은 몹시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했다. 아브락사스는 그런 리들과 정면으로 마주본 상태에서 두려움으로 주저앉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얼마나 리브를 찾는지 아는데…….”

    오리온 당장 말해! 어서! 아브락사스는 입모양으로 오리온에게 당장 리브가 어디 있는 지 사실대로 고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오리온의 입술에서는 다른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리들 선배가 이러시니까 숨겼던 거에요.”

    오리온의 은회안에는 두려움이 서려있었고 그 여운으로 목소리 역시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태도는 상당히 침착했다. 제발 들키지 않기를 바랐지만 블랙가의 청년은 이 같은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고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너무 빨리 왔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리브의 모습에서 오리온은 이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엿보았다. 그런데 이대로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오리온은 지금 풍전등화 같은 자신의 처지보다도 리들의 광기가 리브에게로 향할 것이 가장 두렵고 걱정스러웠다.

    “요즘 선배님 상태가 어떤지 아세요? 그 상태로 리브를 만나면…….”

    리들은 멱살을 틀어쥔 손에 다시 힘을 줌으로써 오리온의 말을 끊어 놓았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오리온과 눈을 마주친 리들은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위협적으로 속삭였다.

    “말하지 않는 다면 강제로 알아내는 수밖에.”

    리들은 레질리먼시를 쓸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오리온이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이 건방진…….”

    리들은 레질리먼시를 차단당하자 오리온을 거칠게 밀쳐 버렸다. 그 바람에 오리온은 사정없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블랙가의 청년은 오랫동안 멱살을 잡힌 탓에 숨이 막힌 듯 벌게진 얼굴로 켁켁 거렸다. 그러든가 말든가 리들은 지팡이를 꺼내 오리온에게 정확히 겨누었다. 그 모습에 주변 친인들이 펄쩍 뛰었다. 리들은 임페리우스 저주를 써서 털어놓게 할 생각이었다.

    “임페리…….”

    “선배가 이 모양인데 제가 숨기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오리온은 간신히 몸을 굴려 임페리우스 저주를 피했다. 주변에서 이러다 큰일 난다고 그만하라 애원했으나—그러면서도 무서워서 감히 리들을 붙잡거나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리들은 네들이 오리온을 대신할 생각이냐고 살벌하게 속삭임으로써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아브락사스에게 저들을 전부 치워버리라는 듯 눈짓 했고 아브락사스는 눈치 빠르게 자신이 리들을 말리겠다며 친인들을 물러가게 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줘 봤자 동요만 확산 될 뿐 그다지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리들 선배가 지금 리브를 만나면 몰아붙이는 것 밖에 더 하겠어요?”

    다시 지팡이를 겨누는 리들에게 오리온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가면 저에게 이러 듯이 리브에게도 화내고 윽박지르겠죠! 아니 그 보다 더한 짓을-”

    “네가 그녀랑 같아?”

    리들이 으르렁 거리며 지팡이를 오리온의 심장부근으로 겨누었다. 그 모습에 아브락사스가 식겁하며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 리들에게 겨누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결과였다. 말포이가의 청년은 무장해제주문을 입에 담았다.

    “익스펠리아르무스!”

    그 바람에 리들의 손에 있던 주목나무 지팡이가 휙 날아가 벽으로 처박혔다. 아브락사스는 재빨리 다가가 친구의 지팡이를 꼭 쥐고 뒤로 숨겼다. 리들의 살벌한 시선이 아브락사스에게 꽂혔고 백금발의 청년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너…… 오리온을 죽이기라도 할 셈이야? 진정하고 대화로 해!”

    아브락사스는 이판사판의 심장이 되어 아무 말이나 읊어댔다.

    “리들 지금 너 정말 미친놈 같은 건 알기나 해? 제발 정신 차리고 평소처럼 이성적으로 굴어! 너답지 않게 왜 이래 정말.”

    홧김에 저지른 일이었으나 아브락사스는 그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방금의 리들은 보통 살벌한 게 아니라 정말 오리온을 죽일 것 같은 기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브락사스는 리들에게서 훅 끼쳐오는 섬뜩한 광기에 절로 몸이 떨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더없이 완벽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폭발하면 정말 이렇게 제대로 미치는 구나. 아브락사스는 숨을 간신히 내쉬며 벽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온 몸에 힘이 풀렸는지 스르륵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에게 달려들면 어떡하나 아브락사스는 바짝 긴장하며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다행히 리들이 아브락사스에게 무어라 하기 전에 간신히 몸을 일으킨 오리온이 입을 열고 쏘아붙이듯 말했다.

    “선배님한테 저랑 리브는 당연히 다르겠죠. 하지만 지금의 리들 선배가 리브한테 어찌 대할지는 안 봐도 뻔해요. 저는 선배님이 리브를 만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어요!”

    오리온은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와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분명 이대로라면 리들 선배는 리브에게 분풀이를 하실 거에요! 그 후에는 절대로 리브에게 용서받지 못하시겠죠. 왜 또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하려고 해요? 충분히 돌이킬 수 있는데 왜 선배 손으로 그걸 망치려고 하시는 거에요?”

    내내 씩씩거리던 리들은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렸다. 새하얀 얼굴에 괴로움이 설핏 서렸다.

    “리브는…….”

    오리온은 입술을 잠깐 말아 물었다가 말했다.

    “리들 선배를 좋아하고 선배 역시 그러하잖아요.”

    리들의 흑안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가라앉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좋아하는 여자라면 좀 더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거잖아요. 생각만 하지마시고 행동으로도 보여주세요, 네?”

    리들은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는지 이제는 당장 오리온을 죽일 것처럼 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과 눈빛은 차갑고 서늘했다. 청년이 여전히 극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건 마찬가지였다. 리브가 얽혀 있는 탓일까, 리들은 좀처럼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말해, 그녀는 어디에 있어.”

    리들이 이를 악물고 내뱉은 말에 오리온이 잠깐의 침묵 후에 말했다.

    “만나자마자 따지실 거잖아요.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시려구요.”

    그 말에 리들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안 그래. 그러니까 당장 말해,”

    “아직은 안 돼요. 일단은 진정부터 하세요. 누가 보면 리브를 죽이러 가는 줄 알겠어요.”

    리들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 했다. 그리고 아브락사스에게 몸을 돌려 자신의 지팡이를 내놓으라는 듯 손을 척 내밀었다. 백금발의 청년은 네가 무슨 짓을 할 줄 아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리들, 난 너를 살인자로 만들 수 없어. 오리온을 죽일 거잖아. 일단 이성을 찾아.”

    그 말에 리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는 훨씬 감정이 가다듬어진 상태였다.

    “시끄러, 누굴 뭘로 보는 거야. 그 정도 이성은 있어.”

    오리온이 입술을 달싹하다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그것은 마치 혼잣말 같기도 했다.

    ”둘 다 정말이지……. 왜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몰라요?“

    리들의 흑안과 오리온의 은회안이 얽혀 들어갔다. 리들이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오리온이 말을 이어나갔다.

    “서로에 대해 잘 알면 뭐해요. 조금도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있는데!”

    “네가 뭘 알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고? 내가 얼마나 그녀에게…….”

    리들이 말을 하다 말고 오리온에게 매서운 시선을 던졌다.

    “나와 올리비아의 일이야. 더 이상 끼어들지 말고 그녀가 어디에 있는 지나…….”

    오리온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뗐다.

    “리들 선배가 리브를 그 누구보다도 특별하게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 온 거 알아요. 가치관이 다름에도 이해하려고 애쓴 것도.”

    그 말에 리들의 잔잔하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났다. 이성적이고 차분하기로 정평이 난 청년은 친인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자신의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에 대한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것 역시.

    “하지만 왜 결정적일 때에는 그러지 못하시는 거에요? 이해해야할 순간은 바로 지금이잖아요. 선배님 기분만 생각하지 말고 리브의 마음도 헤아려주세요.”

    오리온의 눈에 리들은 리브가 떠난 것에 대해서만 분노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분노의 반만큼이라도 배려를 베풀면 좋을 텐데. 결국 블랙가의 청년은 지금까지 내내 쌓아오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한가득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체 선배는 리브한테 무슨 짓을 하신거에요? 대체 무슨 잘못을 하셨길래 리브가 저래요? 누구보다도 가깝던 둘 사이가 이렇게 멀어질 만큼 큰 잘못을 하신거에요? 그리고 리브는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 거에요? 왜?”

    차마 리브에게 묻지 못한 것을 리들에게 묻는 오리온이었다. 아브락사스 역시 내심 궁금했는지 더 이상 리들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라며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리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둘 다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오리온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리들 선배님이 맺고 끊음이 확실하다고 했던 리브는…….”

    “…….”

    “아직 선배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했어요.”

    오리온의 말에 내내 절망으로 가득 차있던 리들의 흑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타인의 판단보다 자신의 것을 더 우선시하던 리들은 후배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감정이 좌지우지 될 만큼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였다.

    “저는 리브와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어디 있는 지 못 알려 주시겠다?”

    리들의 목소리에 미세하게 날이 섰다. 강제로라도 알아내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모습을 보며 오리온이 재빨리 말했다.

    “저는 리브가 자의로 돌아오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그런 약속을 한거에요.”

    하지만 이제 오리온은 그 약속을 깰 생각이었다.

    “선배를 믿고 그 약속을 깨겠어요.”

    “…!”

    막 눈을 마주치고 레질리먼시를 시전 하려던 리들이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총애하는 후배는 이제 그것을 털어놓으려 하고 있었다.

    “부디 제 선택이 옳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오리온의 무뚝뚝한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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