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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돌이켜야 하는
크리스는 리브에게 자신의 집에 머무를 것을 권했다. 크리스는 무척 아슬아슬해 보이는 리브를 도저히 혼자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혹 자신의 호의를 거절한다면 어떻게든 데리고 가고 마리라 결의를 다졌지만 무척 힘이 든 탓일까. 의외로 리브는 순순히 그리하겠다고 대답했다. 크리스는 몹시 걱정스러워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는 리브를 영국에서 사귄 친구라며 가족들에게 소개했다. 머글 친척들은 리브를 이튼스쿨 근처의 사립 여학교생으로 알아들었고 그녀를 친절히 맞아주었다. 한편 크리스의 부친인 카르티에 씨는 리브를 보고 크리스에게 슬그머니 귓속말을 했다. 저 아이도 네 엄마처럼 마법이란 걸 쓰는 거니?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르티에 씨는 새삼 신기해하며 마녀는 전부 이사벨이나 저 아이처럼 아름답고 예쁜 사람들이냐고 말해 한바탕 웃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리브는 아까 마법부에서부터 자신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는 아름다운 은발 소녀를 정식으로 소개받았다. 크리스의 외가인 마르소 가문의 막내딸이라는 그녀는 서투른 영어로 재잘재잘 리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모니카는 드디어 크리스에게 알음알음 배운 영어 실력을 시험해 볼 기회가 왔다며 기뻐했다.
“안녕하세용. 저는 크리스의 사촌이고 이룸은 모니카 마르소에용. 만나성 반가워용.”
“네. 안녕하세요. 마르소 양.”
크리스의 모친인 카르티에 부인 역시 리브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음에 리브는 이사벨 카르티에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멍하니 잠깐 넋을 잃어야만 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아름다웠던 것이다. 마치 여신이 하강한 것만 같았다. 학교에서 변신술에 어려움을 겪는 크리스를 도와줘서 고맙다며 감사의 말을 뱉는 이사벨 카르티에는 몹시 기품 있고 우아해서 오히려 리브가 몸둘바를 몰라 했다. 리브가 그렇게 이사벨 카르티에의 미모에 푹 빠져 있는데 크리스와 그 여성은 또다시 학교 문제로 옥신각신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니, 프랑스로 돌아가면 사업은요? 영국 순혈 가문 사이에서 하던 장신구 사업은 어쩌시구요.”
“그런건 프랑스에서도 할 수 있어. 그리고 그딴 사업 따위보다는 난 하나 뿐인 아들이 더 중하단다.”
그 말에 크리스는 뜨겁고 뭉클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멍하니 눈동자를 깜박이던 크리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저를 아껴 주시는 건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감사하면 보바통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렴. 나는 절대로 이번에는 양보 못한다.”
그 말을 마친 채 이사벨은 리브에게로 시선을 돌려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한 뒤 자리를 떠버렸다. 크리스가 리브에게 어떻게 하냐며 한숨을 푹 내쉬는데 당사자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 어머니 진짜 아름다우시다……. 웬만하면 원하시는 대로 해드려…….”
크리스는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어머니에게 홀려있는 리브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머니의 페로몬은 어떻게 된 게 가끔은 동성한테도 잘 먹히더라고. 나보다 더 벨라의 피가 짙으셔.”
“그렇구나……. 어쨌든 너무 아름다우시다.”
페로몬 때문인지 몰라도 이사벨의 미모에 푹 빠져있는 리브를 보며 크리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 아까처럼 우울하게 슬픔에 젖어 있는 것 보다는 이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일부러 페로몬을 쓰고 가신게 아닐까 추측해보는 크리스였다.
“이왕 프랑스에 온거 내가 확실히 관광시켜줄게. 베르사유의 궁전부터 루브르 박물관까지 내가 전부 데려가주지.”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이런 식으로 폐를 끼치게-”
“그런 말 하지 마.”
크리스는 잠깐 리브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 말이야.”
잠깐 입술을 달싹이던 크리스는 꽤 홀가분하게 사과의 말을 뱉어냈다.
“말 심하게 해서 미안해.”
줄곧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말이 심했다.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그냥…….”
“괜찮아. 사과할 필요 없어. 난 그런 말 들어도 싸.”
크리스는 슬그머니 리브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는 그 때의 일을 별로 담아두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네가 아니면 누가 나한테 그런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해주겠어.”
역시 담아두고 있었다는 생각에 크리스의 마음속에서 슬그머니 죄책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은 너 뿐이야. 내 주변엔 그의 추종자로 가득한 걸.”
크리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사실 정신이 번쩍 들라고 한 말이 아니라 분노로 제 성질 감당 못하고 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남몰래 품었던 보답 받지 못한 마음에 대한 뒤틀림도 조금 첨가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조곤조곤 말을 뱉는 리브를 보니 크리스는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
“리브, 미안해.”
“…?”
너에게 내가 느낀 리들에 대해서 말해줘야 하는데……. 크리스는 어느 순간 톰 리들이라는 인물이 원작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브가 원하는 대로 원작은 바뀔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다. 바꿀 수 없는 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자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 역시 전생의 편린 탓일까. 있잖아 리브. 톰 리들은 말이야, 너를……. 하지만 크리스는 말하기 싫었다. 그저 어리둥절해 하는 친구에게 사과의 말을 다시 한 번 내뱉을 뿐이었다.
“정말 미안해.”
*
크리스는 리브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려고 애썼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크리스는 리브에게 관광명소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하지만 둘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생활을 금세 접어야만 했다. 리브는 크리스가 정말로 프랑스 머글세계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는 연예인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껴야만 했다. 은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에게는 여러 파파라치가 따라 붙었다. 크리스는 자신은 이미 은퇴했고 현재는 연예인이 아니라고 큰 소리로 투덜거렸지만 플래시 세례는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크리스, 너 정말 인기 많구나…….”
“…미안해, 리브. 많이 놀랐지? 나야 이런 것에 익숙하지만…….”
“괜찮아.”
리브는 예쁘게 웃으며 크리스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그 순간 찰칵거리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크리스는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리브에게 급히 씌워주었다. 그는 본래 파파라치들에게 관대한 편이었지만 리브가 끼어있는 이상 상황은 달라졌다. 청년은 강경 대응이라도 해서 사진을 회수하려 했지만 리브는 그런 그를 만류했다.
“그러지 마. 파파라치들을 다 적으로 돌릴 생각이야? 그들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하지만 네 사진이…….”
리브가 크리스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귓속말 했다. 또다시 플래시가 터져 나왔고 크리스는 이마를 짚었다. 부디 이상한 기사가 터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본인이야 은퇴한 지라 무어라 떠들든 상관없었지만 일반인인 리브라면 말이 달라졌다. 하지만 리브는 그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다. 그저 자꾸 터져 나오는 플래시 세례에 살짝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여긴 내 세계도 아닌걸. 나는 마녀잖아. 상관없어.”
크리스는 이제 리브를 관광명소로 데리고 다니는 대신 파파라치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고급 갤러리라든가, 유명 레스토랑 같은 곳으로 안내하며 리브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애썼다. 예전에 비하면 표정이 많이 펴지긴 했으나 여전히 리브의 얼굴에는 짙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그 흔적을 없애려고 몹시 고군분투 했으나 그것은 몹시 힘들었다.
그렇게 리브가 파리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호그와트에서 새 학기를 안내하는 편지가 도착했다. 리브는 부엉이가 물어온 편지를 읽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편지에는 5학년이 된 리브가 래번클로의 반장으로 선출됐다는 알림과 함께 반장뱃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축하해, 리브. 너라면 반장이 될 줄 알았어.”
하지만 리브는 어두운 얼굴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무언가가 가득 써진 양피지였는데 그것을 펼쳐서 다시 내용을 읽더니 결심한 듯 방금 도착한 호그와트의 편지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날아가려는 부엉이를 붙잡고 그것을 전부 돌려보냈다. 그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어서 빠르고 신속하게 이뤄졌다.
“너 설마…….”
“자퇴서야.”
“자,잠깐만! 너 정말로 호그와트를 자퇴할 생각이었어? 맙소사.”
크리스는 입을 쩌억 벌렸다. 리브는 왜 그렇게 놀라냐는 듯한 눈길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영국을 떠난 순간부터 결심했던 거야.”
잠깐 리브의 벽안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호그와트로 돌아가면 그를 봐야 하니까……. 이래야 확실하잖아.”
영국을 떠난다는 말에 호그와트 자퇴까지 포함되어 있다니. 리브가 호그와트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하기는 했으나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크리스는 식겁했다.
“하지만 리브. 톰 리들 그 인간 하나 때문에 네 인생을 비틀 수는 없어! 학교 졸업은 해야…….”
학교만큼은 졸업해야 하지 않겠냐며 설득하는 크리스에게 리브가 날선 목소리로 소리쳤다.
“더 이상 그를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 내가 못 견디겠어. 정말 죽을 것 같단 말이야!”
그렇게 소리치는 리브는 슬프다 못해 몹시 괴로워보였다.
“하지만 리브! 생각을 다시-”
“내가 타임터너를 깨버린 것보다 더 한 짓을 하면 어떡하니?”
리브의 벽안에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나도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단 말이야…….”
크리스는 끊임없이 리브의 자퇴를 만류했다. 이 생각은 크리스 뿐만이 아닌 모양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그와트에서 반장뱃지를 동봉한 안내장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는 메리쏘우트 교수의 친필편지까지 동봉되어 있었다. 하지만 리브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결정은 변함이 없다는 정중한 답장을 적어 다시 그것을 돌려보냈다.
그 이후로는 슬러그혼 교수가 호들갑이 섞인 끈질긴 편지를 보내왔고 교장인 디펫 교수까지 편지를 보내와 리브는 답장을 어떻게 써야하나 애를 먹어야만 했다. 디펫 교수는 리브의 외증조부인 리차드 라이트를 들먹이며 그는 거의 졸도할 기세로 애타게 손녀딸을 찾았다며 리브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과장 섞인 내용을 적어 보냈다.(하지만 리브는 리차드 라이트의 성품을 잘 아는지라 초상화 양반이 무슨 졸도를 하냐며 냉소적으로 비웃었을 뿐이다. 리브는 집요정을 시켜 자신의 소재를 알아오라고 명령한 리차드를 여전히 잊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머리를 싸매며 교수들의 답장을 쓰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크리스는 학교 측에서는 너를 끝까지 설득할 것이라고 자퇴는 힘들 거라 겁을 줘 보았지만 리브의 결심은 굳건했다. 그렇게 진드기처럼 끈질겼던 슬러그혼 교수가 떨어져나가자 호그와트 측에서 리브의 자퇴를 막기 위해 내민 다음 타자는 덤블도어 교수였다.
그는 슬러그혼과는 다른 느낌의 장문의 편지를 적어 보냈는데 무작정 자퇴를 만류하는 내용이 아니라서 리브는 마음 편하게 답장을 적을 수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는 방학이 끝나기 까지는 아직 시일이 남아 있으니 자퇴 같은 복잡한 사안보다는 자신과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자는 말을 전해왔다. 리브는 이것마저 매몰차게 거부할 수는 없어 그리하겠다는 답장을 적어 보냈다. 하지만 역시 반장뱃지와 안내서를 돌려보내는 것은 잊지 않았다. 크리스 역시 이제는 무작정 호그와트 자퇴를 만류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했다.
“난 이번 학기에 보바통으로 돌아가.”
“…그게 너의 안전에는 더 좋을 거야. 좋게 생각하는 게…….”
“같이 가자.”
그 말에 리브가 눈을 깜박였다.
“영국을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럼 호그와트 대신 보바통에 다니면 되지 않겠어?”
크리스는 보바통으로의 편입은 물론 프랑스어를 비롯한 학교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리브는 그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크리스가 그 이유를 물어도 리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던 리브에게 편지가 한통 도착했다. 에밀리의 편지였다.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약혼식이라 투덜거렸음에도 리브가 막상 오지 않자 섭섭함에 삐쳐서 한동안 연락을 안 하다가 최근 들어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에밀리는 약혼식 때 찍은 사진을 여러 장 동봉해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적어 보냈다. 에밀리는 리들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번 편지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었다.
[리들 선배가 너를 몹시 찾고 있어. 네가 머물던 리키 콜드런이랑 라이트 저택까지 찾아갔었대. 편지도 보냈다던데 답장하지 않아서 찾아갔다더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토록 그를 피하는 거야? 혹시 약혼식에 오지 않은 것도 설마 리들 선배 때문인 거야? 어쩐지 리들 선배가 그날 내내 나한테 시선을 떼지 않는 게 혹시 나한테 반했나 싶더라니까. 물론 이건 농담이야. 어쨌든 그는 누군가를 찾는 것 같기도 했고,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어. 근데 그게 너였구나.]
편지를 읽던 리브는 어떤 대목에서 얼굴을 굳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호그와트에서 보게 될 텐데 어떡하려는 거야? 어쩌면 그 전에 널 찾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지금 리들 선배는 네가 프랑스에서 크리스랑 머물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거든. 크리스가 사는 곳이 머글 세계라 시일이 좀 걸리는 모양이지만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일 거야. 아브락사스랑 오리온이 몹시 힘을 쓰고 있거든. 어쩌면 편지를 받은 지금쯤이면 알아내서 프랑스로 가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널 봐야겠다는 기색이 역력했거든.]
리브는 리들이 생각보다 자신을 빨리 찾아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내가 프랑스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 편지를 읽다가 갑자기 짐을 싸는 리브를 보며 크리스가 어리둥절해 하며 그녀가 앉아있던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에밀리의 편지를 빠르게 읽은 크리스는 리브가 왜 그러는 지 금세 깨달았다.
“리브, 이곳은 리들이라도 못 찾아. 대외적으로 내 집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되어 있어서…….”
“찾아내고도 남을 사람이야.”
그렇게 대답한 리브는 빠르게 짐을 꾸리고 떠날 채비를 했다. 어느새 리브는 모자까지 눌러쓰고 변장까지 마친 상태였다. 혹시 파리 거리에서 리들과 마주치면 어쩌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리브의 술책이었다.
“리브! 이렇게 떠나는 게 능사가 아니야. 네 말대로라면 그는 기어이 널 찾아내고 말 거야. 피해도 소용 없다구.”
리브는 크리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저택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크리스. 인사 못 드리고 가서 죄송하다고 전해드려.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도.”
리브는 깔끔하게 작별인사까지 마치며 크리스를 떨어뜨려 놓았다.
“리브 이러지 마. 직접 만나서 얽히고 싶지 않다는 네 의사를 분명히 표현해.”
그 말에 리브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그게 쉽지 않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당장에 그를 보게 되면 모질게 먹었던 내 결심이 곧바로 깨어질 것 같아서 난 두려워.
“무작정 피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야. 그건 너도 알잖아!”
“……시간이 지나면 그도 나를 찾아내는 것을 포기할 거야.”
리브의 무조건적인 회피에 크리스는 속이 답답해졌다.
“리들이 그렇게 널 쉽게 포기할 리 없어. 그는 널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 갈 거야.”
“그럴 리 없어. 호그와트에 자퇴서를 냈으니 그때까지 잘 버티기만 하면 돼. 시간이 지나면…….”
그 말을 하는 리브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에게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리겠지. 리브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떠난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 해.”
설마 모르고 있는 거야, 모른 척 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크리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네 말대로라면 지금 리들은 널 찾으면 안 돼. 하지만 이토록 널 추적하고 있잖아.”
“그건 내가…… 그에게 있어서 전리품이기 때문이야.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니까 되찾으려고 하는거지. 하지만 시간이 흥미가 떨어질 거야. 나는 그때까지 잘 숨어있으면 돼.”
자신을 전리품이라 빗대는 리브의 얼굴은 괴로워보였다. 그 모습에 크리스는 전리품이라는 말을 내뱉었던 자신의 입을 한 대 치고 싶어졌다. 그건 자신의 고집이고 아집일 뿐이었다. 깨어나지 못하는 리브를 매일 보러 오는 리들을 보며 크리스는 자신이 얼마나 지독한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점점 깨달아야만 했다. 리들에게 있어서 리브는 적어도 전리품이 아니었다. 그에게 그녀는 좀 더 각별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러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럴 건데!”
“……볼드모트가 된 그가 파멸할 때까지.”
그 말에 크리스는 기가 막힌 듯 했다.
“너 그때가 언제인 지 알아? 그때까지 네 인생을 밑바닥으로 처박아버리겠다고? 왜 그 자식 때문에 네가 인생을 이렇게 저당 잡혀야 해!”
크리스가 목소리를 높이자 리브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래나 저래나 저당 잡힐 거라면 차라리 그를 안 보는 게 나아! 나는 분명 악의 무리에 이용될 테니까!”
크리스는 결심이 확고한 리브의 외침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그의 길을 택했듯이, 나는 나의 길을 택한 거야.”
“리브! 하지만…….”
“잘 있어, 크리스. 그동안 고마웠어.”
크리스는 리브가 정말로 작별인사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전에 말했지만…… 난 감이 좋은 편이야.”
이 말 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크리스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했다.
“그는 너에게 집착하고 있어.”
“그러겠지, 전리품이니까.”
“아, 그러니까…….”
그는 그보다 훨씬 더 너를……. 크리스는 사실대로 말하기가 싫어졌다. 그는 너에게 진심이야. 이 말을 해줘야 했지만 크리스는 하기가 싫었다. 너는 전리품이 아니야. 그는 너를 정말로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 말을 해줘야만 했다. 그때 크리스의 눈에 들어오는 낯익은 인물이 있었다.
“맙소사.”
“크리스?”
크리스는 리브를 급히 잡아끌더니 한 건물로 들어갔다. 다행히 흑발에 흑안을 가진 수려한 미청년은 둘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갑자기 왜…….”
“이 근처에 리들이 있어.”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플루 네트워크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마법사만이 볼 수 있는 건물인데 머글들은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는 곳이야. 딱 보았을 때 공사를 하는 것 같거나 폐허 같은 그런 낡은 건물을 찾아. 그리고 그걸로 어디로든 이동을 해. 플루 가루는 갖고 있어?”
크리스의 말에 리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여분의 플루 가루를 준비해놓은 리브였다.
“내가 너의 방패막이 되어줄게. 그 사이에 너는 어디로든 도망쳐.”
크리스는 리브가 리들을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든 둘은 끝을 봐야만 했다. 그 끝이 깔끔한 정리이든,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든, 전과 같은 관계의 연속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하지만 리브가 이토록 거부하는데 무작정 리들과 만나라 종용하라 할 수는 없었다. 크리스는 리브가 택한 길을 존중하기로 했다. 어쩌면 크리스 자신의 욕심일 지도 몰랐다.
“미안해, 크리스. 무사해야 해.”
“걱정 마. 이곳은 파리 한복판, 그것도 머글 천지야. 그도 섣부른 짓은 못해.”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 이 은혜 잊지 않을게.”
그 말을 남긴 채 리브는 모자를 눌러 쓰고 건물을 신속하게 빠져 나갔다. 리브는 발걸음을 서둘러 플루 네트워크가 설치된 건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모자가 벗겨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은 잊지 않았다. 건물을 찾다가 리브는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하고 헉소리를 낼 뻔했다. 다행히 눈이 마주치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스쳐가듯 본 옆모습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리브는 입술을 깨물다가 눈을 이리저리 굴려 플루 네트워크가 설치된 건물을 찾기 시작했다. 리들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어서 도망가야 했다. 그러다가 리브는 크리스가 말한 조건에 부합한 건물을 찾아냈다. 근처의 머글들은 시선을 조금도 주지 않고 있었다. 리브는 주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건물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벽난로, 벽난로가 어디에 있지?”
리브는 금방 벽난로를 찾아냈고 그 앞으로 다가가자 불이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에 리브는 플루 가루를 던지며 소리쳤다.
“영국 마법부!”
그 순간 리브는 뒤에서 누군가가 급히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그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리브는 무사히 프랑스 파리를 벗어났다.
============================ 작품 후기 ============================
NODAY님, 론디링님, 프레키님 예쁜 그림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선추코도 항상 감사드려요!
* 여러분이 예상하셨다시피 리들은 리브를 코앞에서 놓쳤음돠... 어떻게 놓쳤는지 그 상세한 과정은 다음편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크리스와의 기싸움은 덤이에요^0^
* 다음편이 이번 챕터의 마지막 편이 될 예정입니다.
* 됐고 리들리브 언제 만나요 엉엉 답답해요 엉엉 연애는 하는건가요 엉엉
물론이죠! 만나서 풀고 사귀고 달달한 연애도 하고 그럴거에요! 근데 지금은 리들한테 엿 좀만 더 먹이구여......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얘가 엿을 먹어보겠어요^0^...
그럼 저는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다들 좋은밤 되세요^^
+ 이튼스쿨은 남학교..! 하마터면 리브를 남장여자로 만들뻔했네욬ㅋㅋㅋ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