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2 / 0115 ----------------------------------------------
Chapter 15. 돌이켜야 하는
“난 편지까지 보냈어. 그런데 그것을 무시한 건 그녀야. 난 할 만큼 했어.”
발부르가가 방문한 이후로 리들은 더욱 더 기분이 저조해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리브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리들은 온몸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우울해 보였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본 아브락사스는 친구에게 리브의 집을 방문하라 조언했다. 그러자 리들은 자신이 왜 그런 수고까지 해야 하냐며 과장되게 콧방귀를 뀌며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해왔다.
그는 여러 번 당한 거절로 자존심이 몹시 상한 상태였다. 답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블랙가 계집애와 매일 놀고 있다니 그건 절대 아니었다. 괘씸해졌다. 내가 편지까지 보냈는데 감히 내 편지를 씹어? 자신은 거절당한 수모를 꾹 참고 편지까지 보내는 수고를 보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오지 않는 답장. 대체 자신이 어디까지 굽혀야 한다는 말인가.
“리들, 네가 말했잖아. 그녀에게 큰 잘못을 했다고,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다고.”
“하지만!”
“잘못을 한 마당에 자존심까지 세우려는 거야?”
정곡을 찌른 아브락사스의 말에 리들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녀에게 거절당한 게 셀 수조차 없어. 자존심이라고 했어? 그걸 세웠다면 편지조차 보내지 않았을 거야!”
이러다가 자존심이 한 조각도 남아나지 않겠다싶은 리들이었다. 자신이 그 편지에 적은 말들을 생각하니 더욱 더 울화통이 터지는 청년이었다. 대체 내가 얼마나 더! 그 정도면 됐잖아!
“지금 세우고 있잖아. 이왕 버린 자존심이라면 집까지 쫓아갈 수도 있는 거잖아.”
아브락사스의 대꾸에 리들은 곧바로 날선 반응을 보여 왔다.
“누가 자존심을 버렸다는 거야?”
“어? 리들 그럼 안 버렸어?”
리들은 자신이 몹시 흥분했음을 깨닫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브락사스는 모든 일에 이성적이여서 속을 알 수 없는 리들이 유일하게 리브의 문제에 한해서는 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리들은 이런 감정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서투르기 짝이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자에게 감정적인 미숙함이라. 아브락사스는 그 역시 뭔가 리들답다는 생각을 하며 조언을 이어나갔다.
“자존심과 리브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봐.”
“그야 당연히…….”
“둘 다 가질 수는 없어.”
그 말에 청년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리들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전부 가져야 직성이 풀렸고 그럴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하나를 가지려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그건 능력 없고 나약한 인간들 얘기고. 하지만 리들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정말 무능력하고 나약한 인간이 된 것 같아졌다. 이 무력감. 올리비아 네가 뭔데 나한테 이딴 걸 느끼게 해.
“리브를 얻고 싶으면 자존심을 버려야 해. 하지만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면 리브를 잃게 되겠지.”
지금은 아브락사스의 말이 맞았다. 자존심이냐, 그녀냐.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제 리들은 지금 처한 이 상황 자체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아졌다. 그 계집애 따위가 뭐라고 자신을 이리 뒤흔든다는 말인가. 정말 너란 여자는 내 자존심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려야 원이 풀리겠어? 리들은 이제 리브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나약하게 만들어.
이래서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끊어내려 했다. 리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느껴지는 생소한 감정과 혼란. 리들은 그에 대해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기로 했고 그리 해왔다. 하지만 혼란은 이제 리들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리브는 리들의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는 존재였다. 자신을 뒤흔드는 예외의 존재 따위. 그래서 끊어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정말 네 앞에만 서면 나는 이상해져.
지금 리들은 리브 때문에 방학 동안 해야 할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온통 한 사람으로 꽉 차서 아무 것도,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무기력했고 의욕조차 없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 옆에 네가 없는데. 정말 마음이 혼돈 그 자체였다.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를 붙잡느냐. 하지만 이것 역시 가능성이 높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 그녀를 놓는다면 자존심은 지킬 수 있겠지. 하지만 내 마음은……. 그리고 영영 그녀를 잃게 되겠지.
한 번 결심하고 나니 행동은 빨랐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리들은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리들은 자신의 감정을 기꺼이 인정했다. 사실 이 숭고한 감정에 대한 인정은 리브에게 편지를 쓴 순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를 잡아야 했다. 돌이킬 수 없지만 돌이켜야 했다. 리들에게 리브는 그만큼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번만 더. 그래, 한 번만 더 굽혀주지.
리들은 편지를 보낸 지 딱 1주일 되는 날에 라이트 저택으로 찾아갔다. 직접 가서 답장이든 뭐든 받아주겠어. 하지만 리들은 리브가 아닌 초상화들의 박대와 마주해야만 했다. 리들을 박대하는 것은 엘비스 라이트(리브의 외조부)의 초상화가 단연 으뜸이었다.
“리브가 없는 이상 손님은 받을 수 없네. 아무리 자네가 그 아이와 막역한 사이래도 말이야.”
“저는-”
“뭐 지금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야.”
리들은 차분한 음성으로 리브의 소재를 물었다.
“그 아이가 어디 있는 지는 알려줄 생각이 없네.”
“그럼 저는 이 집에 무단침입을 해서라도 뒤지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 순간 리들의 눈빛이 변했다. 엘비스 라이트는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저,저런 무도한 놈을 봤나! 눈 부라리는 것 좀 보십시오. 제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 청년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요!”
“저를 순순히 들여보내주시고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시면 그런 위험한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리들의 잘생긴 얼굴은 고요했고 목소리 역시 차분하기 그지 없었다.
“그 아이는 여기 없어! 떠났다고! 지금 보니 다 네 녀석 때문이로군!”
어떤 초상화의 외침에 순간 리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떠났다고 했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났어!”
리들에게 초상화들의 박대는 별거 아니었지만 리브가 떠났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사람이 보통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질 때는 불신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법이다. 그래서 리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제가 오거든 없다는 말을 하라고 하던가요?”
그딴 거짓말을 할 정도로 나를 만나기가 그렇게 싫어? 내가 그렇게 싫단 말이야? 리들은 간신히 화를 억눌렀다.
“그 아이는 네 놈이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눈치 빠르게도 초상화들은 리브가 떠난 이유를 눈앞의 미청년 때문이라 짐작했고 이제는 확신을 점치고 있었다. 그래서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지 않고 퉁명스럽게 굴었다. 엘비스 라이트(리브의 조부)는 또다시 앞장서서 리들을 박대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블랙가에서 귀빈 대접을 받고 잘 살던 놈이 여긴 무슨 낯짝으로 기어들어왔냐며 비아냥거리기 까지 했다.
“너는 그 아이를 다시는 보지 못 할 거다. 그 아이는 너를 피해 떠났거든.”
“다 네 녀석 때문이야. 그 아이는 내내 울었어!”
“대체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초상화들의 비난을 뒤로 하고 리들은 리브의 방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불안감으로 리들의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그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이 거짓이여야만 했다. 리들은 리브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잠겨 있을 거라 생각한 문은 예상을 빗나가 쉽게 열렸다. 그리고 리들의 불안감은 적중했다.
“…….”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느낌이 가득한 방의 모습에 리들은 이제 초조해졌다. 청년은 방으로 들어가 침대부터 시작해서 책상까지 방 곳곳을 둘러보았다. 여러 가지 소지품들이 사라져 있었다. 옷장을 열어보니 많은 옷가지들이 비어있었다. 리들은 리브가 정말로 떠났음을 깨닫자 허탈한 기분이 되었다.
“이 나쁜 계집애……. 떠났다고?”
하지만 이곳에 리들의 말에 대답할 리브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너를 이대로 놓아 줄 것 같아? 네가 나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냐는 말이야!”
리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마디가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떠난 지 꽤 됐는지 들어올 때마다 희미하게 배어있던 리브 특유의 향기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텅 비어 있었다. 리브가 챙겨가지 않은 소지품들이 그녀가 이곳에 한때나마 살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었다.
진작에 왔어야 했는데. 리들은 그제서야 지지부진하게 굴었던 것을 후회했다. 정말로 리브를 잡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리들은 덜컥 겁이 나기 까지 했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이럴수록 침착해야 했다. 리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굴려 리브가 있을 곳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발부르가 블랙과 어울린다고 했으니 런던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정확히 런던 어디에 있는 거지?
리들은 리브의 방을 나와 초상화들과 마주했다. 정보가 나올 곳은 여기뿐이었다.
“올리비아와는 그저 오해가 조금 있었을 뿐입니다.”
“오해? 무슨 오해인지 우리는 알바 아니야. 너 때문에 그 아이가 집을 나갔어!”
“네 놈이 그 아이에게 무언가 잘못을 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지!”
이제 리들은 초상화들에게서 리브의 행선지를 캐내려 애쓰고 있었다.
“지니아가 남긴 딸이었는데, 우리 집안에서 가장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너 때문에…….”
“네가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거야! 어린게 집을 나가고 팍팍한 세상에서 얼마나 힘이 들꼬.”
“…어르신들의 짐작대로 저는 올리비아에게 큰 잘못을 했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쩔 수 없는 오해가 있었고 저는 그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리들의 정중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초상화들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우리가 네 놈에게 그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성 싶으냐?”
“어림없는 소리!”
“우리도 몰라! 그 아이가 행선지를 밝히고 떠날 리가 없잖아! 알아도 안 알려줘!”
리들은 초상화를 전부 불 질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을 꾹 참고 정중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에게서는 캐내야 할 정보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과격한 짓을 했다가는 리브와는 영영 돌이킬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지금 상황으로도 리들과 리브는 충분히 나빴다. 거기에 기름을 쏟아 부을 정도로 리들이 분간 못하고 날뛰는 성격은 아니었다.
“최소한 오해는 풀게 해주십시오. 저를 용서해줄지 말지는 그녀가 결정하겠죠.”
“그 아이가 어디 있을지는 네 능력껏 찾아 보거라.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다.”
리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존심을 굽히고 진심으로 호소라는 것을 해보았다. 하지만 초상화들은 녹록치 않아서 절대로 리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리브가 방안에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울어대던 소리를 전부 들었고 그게 전부 리들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분노가 샘솟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집을 나간 것 역시. 초상화들은 모든 일의 원흉인 눈앞의 번지르르한 청년에게 저주 마법이라도 날리고 싶어졌다.
“저는 올리비아에게 용서를 빌러 왔습니다. 큰 오해가 있었습니다. 부디 관대함을 베풀어 주시길.”
리들은 자신의 현란한 화술을 총동원하여 끊임없이 호소하고 오해가 있었을 뿐이라 설득했다. 톰 리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수려한 청년의 뱀 같은 혀에 꽉 막힌 초상화들이 점점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엘비스 라이트는 끝까지 버티고 있었으나 리차드 라이트(리브의 외증조부, 전 호그와트 교장)를 선두로 줄줄 넘어가고 말았다. 특히 리차드는 원래 리들에게 몹시 호의적인 인물이었다.
“우리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로 떠났으니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이다.”
“그런…!”
“그 아이는 이 상황을 예상한 모양이로구나. 똑똑하게도 자신이 떠났다는 것을 철저히 비밀로 붙이고 갔으니 말이야.”
“조금이라도 짐작이 가는 곳은 없습니까? 저는 그녀를 만나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리들의 정성어린 호소에 마음이 동한 리차드는 집요정을 하나 부르더니 리브의 소재를 알아오라 명했다. 그 모습을 보고 엘비스가 펄펄 뛰며 그 명령을 회수하려 했으나 집요정 반디에게는 항렬이 높은 리차드의 명이 우선이었다. 엘비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리차드 대신에 리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려 악담을 뱉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돌아오자마자 내내 울기만 했다! 그렇게 눈물을 쏙 빼놓더니 이제는 그 아이에게 무얼 할 셈인거야!”
“……말씀 드렸잖습니까. 저는 용서를 빌러…….”
“하, 용서라고! 지금까지는 그럼 무얼 하고 이제야 찾아온 게냐?”
엘비스는 계속해서 성을 냈다. 잘못을 저질렀고 오해가 있었으면 진작에 나타나서 용서를 빌고 오해를 풀 것이지. 왜 이제야? 리브의 외조부는 날카롭게 핵심을 집어내 쿡쿡 찔러왔다. 리들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본인도 이제야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편지 따위가 아니라 당장에 이곳에 올 것을 그랬다. 아니 그때 기차역에서 그렇게 보낼 것이 아니었다. 또다시 뺨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붙잡고 대화를 나눴어야만 했다. 자존심을 세우고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한 대가는 크디컸다. 그때 자신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참았어야 했다. 왜 나는 그리하지 못했는가.
“엘비스, 그만 하거라. 용서를 빌러 왔다고 하잖니.”
“아버지! 제가 몇 번 말했지만 저놈은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벌써 리브에게서 눈물을 쏙 빼놨는데 앞으로 더한 짓을 못할 건 뭐랍니까? 리브는 더 참한 청년을 만나야 해요.”
“리들 군은 앞으로 마법세계에 이름을 남길 대마법사가 될 훌륭한 인재야."
“그럴 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입니다. 저 녀석은 그 아이를 망치고 말 거에요!”
이제 초상화들은 리들을 앞에 두고 지들끼리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지니아 그 어여쁜 아이가 남자 잘못 만나서 신세 망친 거 못 봤느냐? 리차드 너는 무슨 생각으로!”
“아니 다들 왜 그러신 답니까? 저 훌륭한 청년과 겨우 머글을 비교하다뇨.”
“그놈이나 저놈이나 우리 가문 아이들 눈물 빼놓고 해를 끼친 것은 맞잖아!”
“사랑싸움 좀 하면 그럴 수도 있지! 머글 따위랑 비교하는건 실롑니다!”
“사람이 훌륭하면 뭐하노. 정신이 썩었는데 쯧쯔.”
초상화들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내가 정말로 너를 망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나는 너를 내 옆에 두고 싶어. 리들이 리브에게 가진 애착은 깊고 또 깊었다. 마치 그것은 광기어린 집착 같기도 했다. 리들에게도 리브는 미련과 집착의 결정체였다.
“저는…….”
리들이 무언가를 말하려는데 펑하는 소리와 함께 명령을 받고 갔던 집요정이 나타났다. 청년은 하려던 말을 관두고 곧바로 집요정에게 다가가 물음을 던졌다.
“올리비아는- 그녀는 어디 있지?”
“아가씨께서는 리키 콜드런의 16호 방에 머물고 계세요.”
리들은 집요정이 일러준 대로 급히 리키 콜드런으로 향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리브가 아닌, 아무도 없는 깨끗하게 텅 비어있는 방과 마주해야만 했던 것이다. 미세하게 남은 꽃향기가 그녀가 이곳에 머물렀고, 떠난 지 얼마 안됐음을 시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 리브의 흔적은 아무 것도 없었다.
“빌어먹을.”
리들은 욕설을 뱉으며 근처에 있는 물건 하나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물건이 산산조각 났다.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리들은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 나쁜 계집애야. 내가 너를 이대로 놓아 줄 것 같아? 네가 나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냐는 말이야!”
아까 리브의 방에서 뱉었던 말을 또 외쳐보지만 이곳 역시 그 말에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리들은 허탈감에 이어 절망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벽에 몸을 기댔다. 정말 이대로 영영 보지 못할 것만 같아서 두려워졌다.
“올리비아…….”
이번에는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대한 불안감이 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정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때 리들의 시선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벽에서 몸을 떼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벽난로로 다가간 리들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해갔다.
“이 빌어먹을 계집애. 읽지도 않았다는 거지?”
그곳에는 무언가를 태운 잔해가 남아 있었다. 끝이 탄 고급소재의 종잇조각을 리들은 한 눈에 알아보았다. 리브는 리들의 편지를 받고 읽지도 않은 채 태워버린 게 분명했다. 리들은 리브가 괘씸해지다 못해 이제는 오기가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내고 말 것이다.
*
“걱정마, 리들. 넌 리브를 만날 수밖에 없어.”
리들은 점점 예민해 지고 있었다. 몹시 날카로운 친구의 태도에 아브락사스는 어서 리브를 대령하지 않으면 오리온이 신경쇠약으로 죽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는 리들이 이번 방학때 자신의 집이 아닌 블랙가에 머무르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곧 있을 내 약혼식을 잊은 건 아니지? 리브는 에밀리를 보러 올 거야.”
그제서야 내내 싸늘하게 굳어있던 리들의 얼굴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약혼식을 리브가 불참할 리는 없잖아. 잠깐 얼굴이라도 비추고 갈 테니 그 기회를 잡아.”
그 말에 리들의 입술이 절로 호선을 그리며 흡족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넌 절대로 나를 벗어날 수 없어. 어떻게든 너와 나는 만나게 되어 있다는 말이야. 넌 내 것이야.
“그래, 아브락사스. 네 말을 들어보니 그렇군.”
하지만 리들은 리브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약혼식에 불참의사를 알려왔다는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리브는 약혼식이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멘토링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은 아마 리브 시점이 될 예정입니다.
그럼 여러분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