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90화 (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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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돌이켜야 하는

저택을 나온 리브는 코츠월드 지방을 빠져나간 후 무작정 런던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던 리브는 리키 콜드런에 짐을 풀고 일단 장기 숙박을 끊었다. 근처의 다이애건 앨리를 돌아다니다가도 방에 틀어박혀서 책을 일거나 방학숙제를 끄적였다. 돌아가지도 않을 호그와트의 숙제를 왜 하고 있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리브는 그렇게 했다. 무언가에 열중해야만 이 우울하고 참담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오리온의 부엉이가 리브에게 편지를 배달해왔다. 오리온의 편지인가 싶어 나이프로 그것을 뜯던 리브는 봉투 위의 필체가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필체는 톰 리들, 그의 것이었다.

[To. Olivia]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내려던 리브의 손이 멈췄다. 이 안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 지는 뻔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과 합리화를 하며 현란한 화술을 동원해 나를 미혹하겠지. 뱀 같은 혀는 손으로 둔갑해서 편지라는 수단을 통해 그 솜씨를 뽐내고 있으리라. 리브의 시선이 편지를 벗어나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로 향해있었다. 읽지 않으리라. 이제는 무르게 틈을 주지 않을 것이다. 정말 끊어버리기로 마음먹고 집까지 나왔는데 더 이상은……. 그녀는 편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리브의 생활은 몹시 단조로웠다. 그리고 2주 정도 지나자 숙제는 퇴고와 수정까지 완벽히 끝마친 채로 동이 났다. 그 후에는 플러리쉬와 블러트 서점을 다니며 책을 읽었는데 그것도 슬슬 질려갔다. 심지어 리브는 그 유명한 글래드래그스 의상실 등에 가서 신상 카탈로그를 보고 마음에 드는 물품을 주문하는 등 사치를 부려보기도 했다. 라이트 가문은 재력이 상당했기에 리브가 사치를 조금 부린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리브는 부잣집 여성들이 보석이며 드레스 같은 사치품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치장하며 행복감에 젖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외로움이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겠지. 오래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반복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리브 역시 여자인지라 작고 반짝거리는 것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었다. 아름다우면 더욱 더 좋고.

리브는 의상실을 드나들면서 본의 아니게 귀부인들과 인맥을 쌓게 되었다. 자주 이곳을 드나드는 여성들은 무료한 얼굴로 신상 카탈로그를 넘기며 매니저의 설명을 듣는 미모의 소녀에게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다. 매니저가 극진히 대접하는 데다가 소녀가 성의 없이 넘기고 있는 카탈로그는 분명 브이아이피 전용이었다. 이제 그녀들은 리브의 미모는 물론이거와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흐른다며 어느 집안의 규수냐고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준 것은 순수혈통 가문의 영애인 발부르가 블랙이었다. 호그와트 내에서도 가십에 능통한 그녀는 줄줄줄 리브의 신상명세를 읊었다.

“풀네임은 올리비아 브릴리언트, 애칭은 리브. 나이는 열다섯. 호그와트 학생이고 기숙사는 래번클로. 하지만 마법의 모자가 슬리데린과 고민한 모자걸이에요.”

잠깐 ‘슬리데린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중얼거린 소녀는 더 말해보라는 귀부인들의 재촉에 말을 이어나갔다.

“전과목 필기 만점에 만년 수석, 그리고 변신술의 천재, 못하는 과목은 마법의 약이라던데 이젠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우리 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선배님이랑 멘토링을 했거든요. 그리고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해서 평판도 좋고요. 상냥하지만 그만큼 도도해서 그녀를 탐한 남자들은 전부 블러저 마냥 족족 차였죠.”

리브에 대해 읊는 발부르가의 은화안에는 동경의 빛이 가득했다. 톰 리들도 톰 리들이지만 리브 역시 만만치 않은 거물이었다. 그녀를 동경하는 여학생들은 래번클로 뿐만 아니라 타 기숙사에도 상당했다.

“혈통은 어떻게 되니? 순수혈통?”

“아깝게도 혼혈이에요. 하지만 외가가 유서 깊은 순수혈통 집안인 라이트 가문이죠.”

“그 가문은 대가 끊겼다던데……. 어머 혹시…….”

“맞아요, 라이트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죠. 외모만 딱 봐도 저 화려한 색감은 라이트의 것이잖아요.”

발부르가는 리브에 대한 부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뛰어난 두뇌나 마법능력도 그렇고 분명 라이트 가문의 피를 짙게 물려받은 게 틀림없어요. 사실 거의 순수혈통이나 다름없죠.”

이제 발부르가는 어떻게 하면 리브와 엮일 수 있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발부르가는 예전에 오리온에게 그녀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지만 그는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발부르가의 은회안이 목적을 담아 반짝 빛났다. 반드시 친해지고 말테다. 드레스나 장신구를 선물해줄까? 하지만 선배네 집안도 우리 집안 못지않게 돈이 많을 텐데 그런 걸로 환심을 살 수 있을까? 혹시 내 취향이랑 정반대면 역효과가 날 텐데!

그렇게 발부르가가 머리를 굴리는데 그 순간 무심코 시선을 돌리던 리브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얼굴로 발부르가를 빤히 보던 리브는 누군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소녀가 친구인 오리온과 닮았음을 깨달았다. 발부르가는 어머니께 배운 대로 우아하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목례를 했고 리브는 그에 대한 화답으로 예쁜 미소를 지어주었다.

‘어머, 나한테 웃어줬어!’

리브의 미소를 발부르가는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녀는 목표를 위해서 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슬리데린이었다. 꼭 친해지고 말겠어. 블랙가의 소녀는 전의를 불태우며 리브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발부르가 블랙이에요. 다음 학기에 호그와트 3학년이 돼요.”

“음, 오리온의 약혼녀?”

“저를 아시는 군요!”

리브는 잠깐 고민하다가 학교 바깥이니 말을 높이는 것을 택했다.

“오리온에게 종종 얘기 들었어요. 반가워요, 블랙 양.”

발부르가는 리브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칠 뻔했으나 가까스로 표정을 수습하고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박수를 칠 뻔한 손은 자연스럽게 교차해서 팔짱을 척 꼈다. 집안에서 못이 박히게 배운 우아한 귀족여성의 처세술이었다. 어머니께서 자신의 감정을 전부 드러내는 것은 경박한 짓이랬어. 발부르가는 동경하는 선배에게 자신이 경박하게 보이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았다.

“발부르가라고 부르셔도 괜찮아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럼 그렇게 할게, 발부르가.”

리브의 꽃같은 미소를 본 발부르가는 이제 도도한 표정은 어디 갔는지 잔뜩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약 이런 발부르가의 모습을 그녀의 지인들이나 오리온이 보았더라면 기겁했을 것이다. 발부르가는 도도하고 까다로운 성격으로 많은 이들이 혀를 내두르곤 했다. 오리온의 신랄한 표현을 빌리자면 발부르가 블랙은 거만하고 까칠한 계집애였다. 하지만 리브의 앞에서는 순한 양이나 다름없었고 한술 더 떠서 입안의 혀처럼 사근사근하게 굴고 있었다.

“브릴리언트 선배님…… 저…….”

“리브 선배라고 불러도 좋아.”

친구인 오리온과 닮은 외모 때문일까. 리브는 발부르가가 슬리데린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벽을 쌓지 않았다. 발부르가는 리브에게 이름을 허락받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자신이 동경하는 선배는 정말 마음씨도 천사 같았다! 신이 난 발부르가는 리브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발부르가는 계속해서 의상실에 드나들며 리브와 친분을 쌓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인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순혈가문 사이에서 그 까다로운 블랙가의 영애가 졸졸 쫓아다니는 여학생이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다.

*

“재미없어, 지루해.”

몇 번씩 드레스며 원피스를 갈아입고 장인들의 장신구를 걸쳐보던 리브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많은 디자이너들의 손길을 거친 리브에게 처음 의상실을 방문했을 때의 수수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발부르가를 기점으로 귀족 여성들과 인맥을 쌓게 되면서 유명 샵을 안내받았고 자연스레 디자이너들의 손길을 거치게 되었다. 관리를 받고 나니 리브에게는 순수혈통 특유의 귀티와 함께 이젠 자연스러운 세련됨이 묻어났다. 그리고 이런 류에는 무지(無知)했던 처음과는 달리 어느 정도의 안목과 식견을 갖게 되었다.

눈치 빠르고 머리도 좋은 리브에게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어려웠으면 고군분투 했을 텐데 금방 무료해졌다. 그렇게 리브는 여전히 무기력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짝거리고 화려한 사치품들이 자신의 관심을 돌려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는 적격일지 몰라도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리들을 잊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그는 마치 자신에게 있어 집착과 미련의 결정체 같았다. 그의 존재는 참으로 끈질겨서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놓지 못하는 것은 나일까, 당신일까. 리브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상이 나오면 흥미가 좀 생길 거에요. 리브 선배, 이것 봐요. 흑요석으로 만든 브로치인데 카르티에 부인의 것이에요. 생각 있으시면 연결시켜 드릴게요.”

이렇게 흑요석만 봐도 그의 차분한 흑안이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흑단같은 머리칼과 그 섬세하고 수려한 이목구비까지. 조금도 잊혀 지지 않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도 멀어진다고 했는데…….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한참 필요하리라. 리브는 서글퍼졌다.

“아니면 여행이라도 가보시는 건 어때요?”

“……여행?”

“네. 혹시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 없으세요? 프랑스도 괜찮은데. 보바통 다니는 친척이 있어서 덕분에 가본 적이 있는데…….”

발부르가는 프랑스에 갔던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리브 선배는 카르티에 군이랑 친하니까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네요.”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날 리브가 타임터너를 깨버린 이후로 둘은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리브는 크리스를 감히 쳐다볼 수조차도 없었고, 크리스 역시 리브에게 다가와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관계가 끊어져버렸다. 내 잘못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정말 미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그런 짓을 하겠지. 리브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떠나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더 심한 짓을 할지도 모르는 내 자신이 무서웠기에.

“제,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요? 아, 혹시 프랑스는 별로 안 좋아하세요? 제가 좀 주제 넘었죠……. 죄송해요.”

어두워진 리브의 안색에 발부르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까지 내뱉었다. 그 모습에 리브는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리브는 자신 때문에 풀이 죽은 발부르가에게 애써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쓰디 썼다.

“나도 평소에 프랑스 한 번 가보고 싶었어. 언젠가 가는 것도 괜찮겠다.”

그 말에 발부르가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소녀는 리브의 눈치를 보다가 화제를 전환했다.

“맞다, 리브 선배도 아브락사스 약혼식 가실 거죠? 저도 참석해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이구나.”

리브는 입고 있는 원피스를 만지작거리며 얼마 전에 에밀리에게서 받은 편지를 떠올렸다. 그녀는 결국 약혼 예물을 빼돌리지 못했다며 꼼짝없이 약혼식을 하게 생겼다고 투덜거렸다.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건지 어느 정도는 체념이 섞여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아브락사스 말포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본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리브에게 초대장을 보내기는 했으나 별로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약혼 따위 축복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적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리들 선배도 오실 거에요. 지금 블랙가에 머무르고 계시거든요.”

발부르가의 말에 리브의 얼굴이 파삭파삭 굳었다. 정확히는 ‘리들’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발부르가는 점원이 가져온 신상 구두를 신어 보느라 그 얼굴을 보지 못했다.

“정확히는 당숙(오리온의 아버지)네 댁이지만요. 그리몰드 광장이요.”

“…그도 오겠구나.”

“네, 그러시겠죠. 리들 선배는 아브락사스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요.”

그를 보지 못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도 리브는 리들의 얼굴이 생생했다. 그의 목소리도, 그와 나누던 대화들도, 그가 자신을 얼마나 아꼈는지도……. 그와의 기억이 전부 생생했다. 한 조각도 버려지지 않았다. 그래, 한 달 밖에 안 지났잖아.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런데 리브 선배는 리들 선배랑 어떻게 그리 가까운 사이가 된 거에요? 정말 대단해요!”

리들과 리브의 사이가 전보다 못하다는 것은 오리온이나 아브락사스 같은 가까운 친인들만 아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가십에 능통하다고 해도 저학년인 발부르가가 이것까지 속속히 알리는 만무했다.

“그와 나는…… 유년 시절을 함께 보냈지. 그래서 그래.”

리브는 리들과의 친분을 묻는 이들에게 항상 해왔던 레파토리를 읊었다. 리들을 입에 올리는 리브에게서는 지독한 슬픔이 묻어났다. 발부르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리브가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음에도 그 궁금증을 넣어두기로 했다. 왠지 물어봐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약혼식 꼭 같이 가요!”

“음…… 어쩌면 못 갈 수도 있어.”

리브의 말에 발부르가는 잔뜩 풀이 죽었다.

“왜요? 맥밀란이 섭섭해 할 텐데……. 리브 선배의 가장 친한 친구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미안해.”

리브의 사과에 발부르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더듬거렸다. 까칠하기 그지없는—어떤 이들은 싸가지 없다고 하는— 블랙가의 아가씨는 리브의 말에 껌뻑 죽을 기세였다. 누군가에게 추종에 가까운 이런 무한적인 동경을 받는 기분은 부담스럽기는 했으나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추종자를 거느리는 걸까.

“리브 선배가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집안 사정이라면 어쩔 수 없죠……. 약혼 선물은 따로 보내실 거죠?”

“그래야지. 그래서 그러는데 발부르가의 안목을 빌릴 수 있을까? 내 안목은 아직 서툴러서 말이야.”

“안목이 서투르시다뇨! 리브 선배 안목은 훌륭해요.”

“하지만 항상 보고 자란 발부르가가 훨씬 뛰어나지.”

리브의 칭찬에 발부르가는 발그스레하게 볼을 붉혔다.

“같이 골라 드릴게요. 리브 선배의 이름으로 보내는 건데 최고의 선물이 되도록 하겠어요. 저만 믿으세요.”

*

[미안해, 에밀리. 사정이 생겨서 약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너는 약혼식을 축하받기를 원치 않겠지만 그래도 선물을 준비했어. 발부르가 블랙이라고 알지? 오리온의 약혼녀 말이야. 정말 참한 아가씨더라구. 역시 귀족 아가씨는 다른 모양인지 안목이 뛰어나서 그 아이의 도움을 받았는데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그나저나 네가 드레스 입은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아브락사스 선배와의 약혼은 마음에 들지 않아 해도 드레스는 마음에 들어 했잖아. 그의 집안에서 보내온 거라고 했지? 어찌어찌 하다가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예쁘더라. 너한테 정말 잘 어울릴 거야. …………… 참석 못 해서 미안해. 그럼. -진심을 담아, 리브.]

리브는 에밀리에게 불참의 뜻을 담은 장문의 사과 편지와 공들여 고른 팔찌를 함께 부엉이를 통해 날려 보냈다. 그리고 똑같은 일상이 반복 되었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발부르가와 시간을 보내는 등 정적인 나날들이 계속 되었다. 너무 무료하고 지루한 나머지 한 번은 발부르가를 데리고 머글 세계에 간 적도 있었다.

그녀는 천한 머글들이 사는 곳은 무슨 일로 가냐며 진저리를 쳤지만 정말 맛있는 마카롱을 만드는 장인의 샵이 있어서 꼭 가보고 싶다는 리브의 말에 마지못해 따라갔다. 그녀는 진저리를 치던 모습과는 다르게 내심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머글 세계를 구경했다. 비록 샵에 들어와서는 다시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마카롱을 맛 본 순간 환하게 미소 지었다. 머글 주제에 이런 맛을 낼 줄은 몰랐다며 발부르가는 감탄사를 뱉었고 리브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마카롱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발부르가에게 리브는 헤어지면서 그것을 한 아름 선물해주었다. 그 후로 리브는 몇 번씩 발부르가를 데리고 그녀의 취향에 맞는 머글 세계의 유명 맛집을 찾아가곤 했다. 한 번 데려가니 그 이후는 더 쉽게 데려갈 수 있었다.

“리브 아가씨!”

리브가 핫초코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데 펑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트 가문의 집요정이 나타났다.

“반디?”

“반디는…… 명령을 받았어요. 리차드(리브의 외증조부, 전 호그와트 교장) 주인님께서 아가씨의 소재를 알아오라고 하셨어요.”

“외증조부님이 나를 어째서? 설마 다른 가문에 내 소식을 흘리기라도 한 거야?”

반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가씨의 소식은 전부 듣고 계세요. 주인님들은 리브 아가씨가 블랙가의 아가씨와 어울리시며 교양을 쌓고 있다는 것을 흡족해하세요. 물론 이곳에 계시는 것까지는 모르세요. 블랙가의 아가씨께서 그런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나르시지는 않았거든요.”

리브는 자신이 사치를 부리는 일이 그들에게 교양을 쌓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왜 내 소재를 궁금해 하시는 거지? 대답해.”

“그게…… 그분이 오셨어요.”

대명사로 지칭했음에도 불구하고 리브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러니까…… 톰 리들이라는 아가씨의 지인 분 말이에요.”

“그가…… 저택에 왔단 말이야?”

리브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네, 오시자 마자 아가씨를 찾으셨어요. 그래서 조상님들은 아가씨가 마지막에 남기신 말을 그대로 전해드렸어요.”

[그럴 리 없지만 혹시 오거나 저에 대해 묻는 다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말해주세요.]

“그분은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어요. 화가 나신 것 같기도 했어요. 물론 주인님들에게 온갖 소리를 들었으니 그럴 만도 해요. 어쨌든 그분은 아가씨를 몹시 찾고 계셨어요. 되게 간절해 보이셨어요.”

“그 사람 말 하나에 조상님들이 곧바로 나에 대해 알아오라고 했단 말이야?”

리브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톰 리들이 뭐라고 핏줄인 나보다 그의 말을 따른단 말인가!

“곧바로는 아니에요! 주인님들은 아가씨가 떠났다고 했어요. 자신들도 모른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좀 설전이 오갔어요. 조상님들은 더 이상 그분을 좋아하지 않으시거든요.”

“뭐?”

“주인님들은 아가씨가 떠난 이유를 그분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정곡에 찔린 듯한 표정이 되었다.

“주인님들은 몹시 탐탁지 않아하며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내셨어요. 그래서 그분이 좀 고초를 겪으셨죠. 하지만 아가씨와 오해가 있었을 뿐이라며 끊임없이 설득을 하셨어요.”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그는 현란한 화술을 동원해서 초상화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그 뱀같은 혀가 이제는 자신을 향하리라.

“조상님들 사이에서 정말 말이 많았어요. 엘비스(리브의 외조부) 주인님께서 특히 그분을 싫어하세요. 원래 탐탁지 않게 여기시긴 하셨죠.”

“…외조부님께서?”

초상화들이 전부 리들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리브에게는 의외의 사실이었다.

“네. 엘비스 주인님은 종종 그분을 위험한 인물이라고 하셨어요. 그분을 특히 박대하셨죠. 아가씨가 안 계시는 이상 손님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아가씨의 소재도 알려 줄 생각 또한 없다고요.”

“하지만 외증조부님은 그를 좋아하지.”

“네, 저는 그분의 명으로 아가씨를 찾으러 왔어요. 아마 아가씨의 소식이 그분께 들어갔을 거에요.”

그 말에 리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은 요 근래에 순혈 가문의 여식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본격적인 사교계에 진출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이것 또한 작은 사교계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발부르가는 자신을 몹시 좋아했다. 블랙가의 여식인 그녀가 자신에 대한 말을 흘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당장 오리온에게 나에 대해 말을 하기만 해도 곧바로 그의 귀에 들어간다. 내가 저택에서 나온 후 런던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금방 추측이 가능하리라. 이곳을 알게 된 그가 당장 여기 쳐들어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특히 자신을 찾고 있다면 더욱더.

“반디, 나와 조상님의 명령 중 어느 것이 우선이지?”

“아가씨에요. 반디는 아가씨의 명령을 우선적으로 따라요.”

가계도에 이름이 빛나고 있는 것은 생존자인 리브뿐이었다. 그 때문에 아무리 그들의 항렬이 높아도 살아있는 그녀의 명령이 최우선이었다.

“외증조부님의 명령은 잊어버려. 나는 네가 돌아가서 정확한 내 소재를 알리는 것을 원치 않아.”

그렇게 말한 리브는 순간 리들이 눈앞의 집요정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문하거나 그러면 어떡하지. 최악의 경우에는 죽을 지도 몰라. 집요정은 주인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고문을 해도 죽으면 죽을지언정 털어놓지 않을 것이 뻔했다. 혹시 제 성질을 못 이기고 초상화들을 불살라버리거나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야, 반디. 가서…….”

리브는 조곤조곤 집요정에게 여러 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리브는 지팡이를 휘둘러 빠르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리키 콜드런에는 성인 마법사가 다수 있었기에 미성년자인 리브가 마법을 쓴다고 해도 마법부에서 그것을 구분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러한 법령의 허점은 발부르가가 그녀에게 일러준 것이었다.

순식간에 리브가 머물던 방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상당한 짐이 나왔다. 이곳에 머무르며 드레스며 이것저것을 사다 모은 탓이었다. 리브는 사치의 흔적을 힐끗 보다가 그것들의 대부분을 반디에게 가져가도록 했다.

“저택의 내 방에 가져다 놓도록 해.”

“아가씨, 그럼 돌아오시는 거에요?”

반디의 얼굴이 밝아졌으나 리브의 대답에 다시 풀이 죽었다.

“…아니, 돌아가지 않아. 이것들은 짐만 될 뿐 필요가 없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리브의 명령이며 당부를 들은 반디가 펑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리브는 망설임 없이 짐가방을 들고 리키 콜드런을 떠났다. 술집 주인인 톰은 아쉬워하며 새 학기 준비물을 사러 올 때 보자고 말을 건넸지만 리브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오지 않을 거에요. 이제 정말로 떠나야 해요. 사실 바로 영국을 떠나지 않고 이곳에 온 것 자체가 미련의 일부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리브는 리키 콜드런, 아니 영국을 자체를 떠나기로 했다. 리브는 톰 리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는 아마 에밀리의 약혼식 때 자신을 보기를 고대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라이트 가문에 쳐들어갔다니 곧바로 이곳을 쳐들어오겠지. 왜 그리 조급하게 구는 건가요. 정말 그는 그답지 않게 굴고 있었다. 어쨌든 또 다시 나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겠지. 리브는 아직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멀리 멀리 떠나야만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다. 더 멀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리들은 간발의 차이로 리브를 놓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항상 선추코 감사드립니다!

* 뭔가 챕터명을 [도망가야 하는]으로 바꿔야할 것 같은 느낌^^!

* 오리온이 리들빠돌이이듯이 발부르가에게는 리브빠순이의 기질이... 리들이 너무 대단해서 그렇지 리브도 만만치 않은 유명학생이랍니다!

* 다음편은 리들 시점이 펼쳐질 예정입니다^0^

그럼 독자님들 좋은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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