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89화 (8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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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돌이켜야 하는

“이제 당신을 믿지 않을 거 에요.”

그 말과 함께 청년과 소녀의 관계는 끊어졌다. 그 후로 리들은 리브를 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때 리브의 모습은 잔상처럼 남아서 리들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다시는 믿지 않겠다고 이별을 고하는 그 모습이 리들에게는 불안에 이어서 아픔으로 다가왔다.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인 얼굴로 자신에게 이별을 고하며 눈물을 떨구는 그 모습이 리들은 처연하게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갔지만 소녀는 한걸음 물러섰다. 그것은 명백한 거부였다.

[이제 당신을 믿지 않을 거 에요.]

그리고 이별선언이라니.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자신이 인연을 끊으면 끊었지. 결코 소녀가 자신을 끊어 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리들이었다.

어차피 너를 이리저리 흔드는 계집애 따위는 지금 떨치는 게 좋아.

마음 한 구석에서 차라리 지금 이 상황이 잘됐노라 청년에게 속살거리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예외를 두지 말라며 리브를 이대로 끊어내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를 이해해주는 건 그녀뿐이었어. 넌 그녀 없이 살 수 있어?

또 다른 마음 한켠에서 리들에게 리브를 이대로 놓아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전자의 마음이 승리했다. 리들은 강함을 최우선의 가치로 꼽았기 때문에.

겨우 그깟 계집애 하나에 휘둘려서 무얼 할 수 있겠어? 그런 나약함은 좋지 않아.

그래서 끊어내려 했다. 자신의 손을 떠난 것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그게 더욱 더 쉽게 휘두를 수 없는, 오히려 자신을 말리게 하는 그러한 것이라면 끊어버리는 것이 나았다. 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나도 더 이상 너 따위에게 매달리지 않겠어. 리들의 자존심은 누군가가 자신을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것을 허용하고 싶어 하지 않아했다. 너 따위 아무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 마음은 몹시도 약하디 약했다. 리들은 그녀에게 시선을 조금도 떼지 못했으니.

*

리들이 리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한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그와트 창립자들의 물건과 비밀의 방을 찾기 시작했다. 호그와트 창립자들의 물건에는 슬리데린의 로켓, 그리핀도르의 검, 후플푸프의 잔, 래번클로의 보관이 있었다. 로켓은 이미 리들이 소지하고 있었고 후플푸프의 것은 맥밀란 가문과 스미스 가문이 한창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행방이 묘연한 것은 그리핀도르의 검과 래번클로의 보관이었다.

진정한 그리핀도르만이 뽑아낼 수 있는 검이라……. 리들이 생각해도 자신은 진정한 그리핀도르와는 거리가 몹시 멀었다. 용감하고 정의로운 그리핀도르. 기사도 넘치는 그리핀도르. 자신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슬리데린이었다. 또한 이 몸 안에는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피가 흐르지 않던가.

리들은 그리핀도르의 검보다는 래번클로의 보관으로 초점을 맞췄다. 그것은 일종의 왕관으로 쓴 사람의 지혜를 향상시켜 주는 마법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이 있었다. 고서에서도 찬양한 로웨나 래번클로의 미모에 대한 글귀를 떠올리며 리들은 얼마나 왕관이 아름다울지 상상해보았다. 그 미모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겠지. 그것을 쓰는 이 역시 빛나게 해주겠구나. 순간 리들은 누군가가 떠올라서 쓴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또한 어째서 그 왕관을 쓰고 곱게 웃고 있는 리브를 생각했는지 리들은 도저히 자신의 머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미친 게 분명했다.

리들은 래번클로의 보관에 대한 행방을 찾기 위해 회색숙녀를 타깃으로 삼았다. 오랫동안 학교에 있었던 래번클로의 유령이라면 알고 있을 지도 몰랐다. 리들은 언젠가 필리우스 플리트윅이 회색숙녀에게 래번클로의 보관에 대한 정보를 빼내려다가 실패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분명 그녀는 무언가를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름다운 숙녀 분께 잠깐 대화를 청할 수 있을까요.”

회색숙녀는 자신에게 접근한 수려한 슬리데린의 미청년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필리우스 플리트윅에게 래번클로의 보관에 대해 뭐 아는 게 있냐며 탈탈 털리고 난 후라 그녀는 잔뜩 골이 나있었다. 리들은 타이밍을 잘못 맞췄다고 할 수 있겠다.

“너도 내가 왜 죽었냐는 따위의 질문을 하러 온 거니? 하여간 요즘 애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다니까!”

“오, 그럴 리가요.”

리들은 무안을 당했음에도 얼굴 한 점 붉히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럽게 웃으며 회색숙녀를 달래기까지 했다.

“교양 없이 그런 무례한 질문을 숙녀 분께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저는 단지 당신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에요.”

“오, 내가 아름답기는 하나 아주 옛날에 죽어서 너의 욕구를 달래줄 육체 따위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단다. 그러니 네 또래의 여학생들을 알아보렴.”

어찌 보면 도가 지나칠 지도 모르는 이죽거림이었으나 리들은 여전히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저는 당신에게 지혜를 배우고 싶을 뿐이에요. 저는 야망을 가진 슬리데린이 될 수 있을지언정 래번클로에 비견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니까요.”

“물론이지. 로웨나 래번클로의 지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어. 흠……. 그나저나 교활한 살라자르 슬리데린이라면 너를 마음에 들어 했겠구나. 참으로 너는 슬리데린다우니 말이야.”

리들의 현란한 화술과 사려 깊은 태도는 회색숙녀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했다. 그리고 둘은 소소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분을 갖게 되었다. 리들은 절대로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본래 비밀을 캐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법이었다. 청년은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기로 했다. 아직 호그와트를 졸업하기 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남아 있었다.

*

리들은 학교 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살라자르 슬리데린에 대해 연구하며 기어이 비밀의 방을 찾아냈다. 기대하고 또 기대했던 비밀의 방이 화장실에, 그것도 여자 화장실에 있다는 것은 리들에게 무한한 의문을 가져왔다.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 얼마나 대단한 장소에 있을까 했는데……. 혹시 후계자를 여자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리들은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할 곳에 비밀의 방을 만들기 위해 이곳을 택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창립자들 그 누구도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여자 화장실의 수도관 속에 공간을 만들어 놓고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살라자르 슬리데린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슬리데린의 면모를 시험해 본 걸지도 모르겠다.

비밀의 방은 과연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만든 공간 같았다. 전체적인 내부는 슬리데린을 상징하는 초록빛을 띄고 있었으며 천장을 받치고 있는 높고 커다란 돌기둥에는 뱀들이 뒤엉켜 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리들의 가슴은 이내 흥분으로 가득 차올랐다. 아아, 그래. 여기였다. 자신은 기어이 비밀의 방을 찾아낸 것이다. 5년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기둥에 새겨진 뱀을 쓰다듬던 리들의 눈에 한 조각상이 들어왔다.

“살라자르 슬리데린. 과거의 대마법사라…….”

천장에 닿을 만큼 커다란 늙은 마법사의 조각상이 뒷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그것은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리들은 자신의 조상을 잠깐 응시하다가 돌아섰다. 죽은 사람에게는 관심 없었다. 리들이 수려하게 웃었다.

“당신이 역사 속의 전설이라면 나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드리죠.”

리들의 오만방자함은 하늘을 찔렀다. 슬리데린의 청년은 호그와트의 창립자 중의 한 명이며 대마법사인 자신의 외가 쪽 조상에게 한 점의 존경심도 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들의 능력은 출중했고 모든 것이 완벽해서 무결점에 가까웠다.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계자인 내가 청출어람이 뭔지 보여드리죠. 리들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매혹적인 미소를 만들어냈다.

비밀의 방에는 거대한 뱀이 살고 있었다. 뱀들의 왕. 고대생물 바실리스크.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위험하고 강한 생물체. 리들은 그것을 깨운 뒤 흥미를 감추지 못했다.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후계자를 위해 남긴 괴물은 몹시 강했고 위력 또한 엄청났다. 그리고 성정은 난폭하기 짝이 없었다.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계자라는 리들에게 굴복했지만 타고난 천성이 사악한지라 리들은 정신적으로 피로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사악함하면 리들도 빠지지는 않는 지라 바실리스크는 리들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렇게 리들은 별 어려움 없이 바실리스크를 발밑에 두었다. 하지만 늙은 바실리스크는 머리가 좋지 못했고 자신의 난폭한 성정을 자제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들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동물 따위가 똑똑하든 말든. 사실 이렇게 우위를 알려주고 나면 철저히 그 서열을 따르는 법이었다.

[이 곳은 너무 답답해. 나가게 해다오!]

바실리스크는 내내 이곳에서 잠만 잤다며 후계자가 자신을 깨우기를 기다려 왔다고 했다. 그리고 리들의 파셀통그와 강한 마법능력에 그를 주인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리들은 너그러움을 발휘해 자신이 순찰을 도는 시간이나 학생들이 연회장에 있는 저녁시간에 잠깐 바실리스크를 산책시키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리들은 강한 생물체가 제법 마음에 들었고 그저 바실리스크의 소망을 하나 들어줬을 뿐이었다. 리들은 함부로 바실리스크를 풀어놔서 학교를 혼란에 빠뜨릴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비밀의 방은 말 그대로 비밀로 남아 있을 테고, 자신은 그 존재를 알아내고 그 방을 열어낸 유일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됐다. 그것만으로도 리들의 우월감은 충분했다. 그리고 비밀의 방외에도 리들은 명성을 얻을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비밀의 방을 열었다는 것은 그저 리들의 스펙에 한 줄 추가 되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 때 이 소식이 알려지면 금상첨화이리라.

[후계자의 적이라면 가죽을 벗겨서 갈기갈기 찢어서 죽일 거야.]

슬리데린의 핏줄에 대한 바실리스크의 충성은 맹목적이었다. 하지만 리들은 그 충성에서 바실리스크의 난폭하고 잔혹한 성정을 엿보았다. 이래서 식인 동물이라 하는 건가. 그리고 리들은 바실리스크가 수탉의 울음소리를 진저리 친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리고 새벽녘에 수탉이 꼬끼오하고 우렁차게 우는 소리에 바실리스크는 질겁을 하며 거의 기절하려 하기도 했다.

[수탉! 저놈의 닭이 나는 싫다!]

[너처럼 강한 생물이 어째서 작은 수탉 따위를 두려워하는 거지?]

[저 울음소리는…… 으으, 싫다. 언젠가는 가죽을 벗겨서 갈기갈기 찢어서 죽일 거야.]

리들은 바실리스크의 천적이 수탉이라는 것을 확인 하고 기꺼이 그것들을 처리했다. 나기니를 독사로 만드는 마법약은 크리스를 죽이기 위해 썼던—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한 병 이외에 또 한 병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기꺼이 나기니는 그 약을 먹고 독사가 되어 닭들을 전부 사냥했다. 하지만 나기니에게 죽은 것은 수탉들 뿐이었다. 사실 전부 죽였으면 깔끔하게 전부 죽였지, 암탉과 수탉을 구분하는 것은 리들 취향이 아니었다. 수탉만 죽은 것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었다.

[톰, 이것들 꼭 다 죽여야 해?]

[무슨 소리야, 나기니.]

[그러니까……. 리브가 죽이고 그러는 건 안 좋다고 했는데……. 무,물론 난 톰이 시킨다면 리브의 말 따위는 신경 안 쓸 거야! 근데 바실리스크가 싫어하는 게 수탉뿐이라면 암탉은 죽일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나기니는 리들의 눈치를 보다가 마구 난동을 부리며 달려드는 암탉 한 마리를 살짝 물었다. 리들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올리비아. 네가 이런 나를 알면 뭐라고 할까. 죄 없는 닭들을 죽였다고 나를 또 비난할까. 그래, 그러겠지. 너는 그런 여자니까. 더 이상 리브 따위 신경 쓰지 말라고 마음 한켠에서 속삭였지만 미련은 이를 밟아 버렸다.

[그러면 수탉만 없애도록 해. 아, 그리고 한 마리 정도는 남겨놔. 혹시 모르니까.]

그래서 암탉은 대부분이 살아남고 수탉 한 마리가 리들의 수중에 들어왔다.

*

그날은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 리들은 아놀드와 함께 저녁순찰을 돌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슬리데린 기숙사와 가까운 밑의 층을 돌기로 되어 있었다. 청년은 비밀에 방에만 갇혀 있는 것을 답답해하는 바실리스크를 아무도 없는 밤에 금지된 숲이나 비어있는 복도를 산책 시켰다. 리들은 철두철미하게도 바실리스크와 있을 때에는 완벽한 투명마법을 걸곤 했다. 혹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누군가와 마주칠 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날은 피브스가 물장난을 치는 바람에 2층 복도가 물바다가 되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리들은 알렉스가 그 물을 닦아내는 징계를 받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날 순찰 담당 교수인 비어리 교수가 깜빡하고 리들에게 이를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바실리스크는 사람 냄새를 맡자마자 난폭한 성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죽을 벗겨서, 갈기갈기 찢어서, 죽일 거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 리들은 투명마법을 걸고 있어서 알렉스가 그를 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바닥에 물이 흥건했기 때문에 알렉스가 물에 비친 바실리스크의 눈을 보고 돌이 될망정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리들은 그날 바실리스크의 위력을 새삼 느껴야만 했다. 저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면 정말 죽겠다는 것을 톡톡히 깨달았다. 저 눈 따위가 죽음을 선사한다니……. 강하고 위험했다.

[죽일 거야.]

[닥치고 가만히 있어.]

리들은 예상 밖의 상황에 눈썹을 치켜 올렸다. 바실리스크는 그저 리들에게 하나의 유희거리일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습격하면서 귀찮게 사건을 만들 생각은 없었던 청년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바실리스크는 비밀의 방에 내내 있으면서 눈치도 둔해진 것 같았다. 계속해서 죽일 거라고 쉭쉭거리며 리들의 짜증을 돋우고 있었다.

[나는 죽이고 싶어…….]

[허튼 짓 하면 너부터 죽여주지. 한 번만 더 내 귀에 쉭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혀를 잘라버리겠어.]

그렇게 속삭이는 리들의 흑안이 잔혹함으로 붉게 번뜩였다. 청년은 바실리스크에 비하면 작은 몸집에 시선 역시 몸통으로만 향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움츠려들지 않았다. 범인(凡人)이라면 바실리스크에게 떨 법도 하지만 리들은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로 오히려 뱀의 왕을 위압하고 있었다. 그렇게 리들은 자신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알렉스에게 달려드려는 바실리스크를 제압해 말 그대로 비밀의 방에 쳐 넣어 버렸다.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사고를 친 것에 대한 벌로 리들은 바실리스크에게 천적이나 다름없는 수탉을 선물해주었다. 리들은 수탉에게 강력한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어 쉴새없이 울어대도록 했다. 바실리스크는 수탉의 울음소리에 진저리를 치며 제발 저것을 치워 달라 애걸복걸 했지만 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거의 미쳐가는 바실리스크를 보고도 리들은 냉정하게도 수탉을 방관할 뿐이었다.

[네가 한 짓에 대한 벌이야. 잘 있어.]

리들은 수탉을 그대로 비밀의 방에 밀어 넣은 후 리들은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바실리스크는 마침내 수탉이 목이 쉬어서 더 이상 울지 못할 상황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울지 못하는 수탉은 바실리스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고 리들은 다음 방문 때 갈기갈기 찢겨져 있는 수탉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들은 예상햇던 상황인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남은 잔해를 소멸마법으로 없애 버렸다. 그리고 바실리스크는 한동안 리들의 말을 절대 거역하지 않았다.

*

“올리비아.”

리들은 언젠가 리브가 필요의 방에 흘리고 갔던 리본끈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그녀와 대화를 섞었다. 사실 이는 리들이 리브를 정리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했다. 리들은 리브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정적이라는 것은 강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리들은 이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미련은 컸다.

리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리브의 손에 직접 끈을 쥐어주었다. 그 순간 리브의 손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그리고 리들은 저번에 리브가 슬러그혼의 사무실에 흘리고 갔던 새하얀 손수건을 돌려주기 위해 품에 손을 넣다가 멈칫했다. 이걸 돌려주면 정말로 너와는 말 섞을 일이 없어지겠지. 정말 관계가 끝나는 것 같아지자 리들은 망설여졌다. 싫었다. 그 다음부터는 정말로 리브에게 말을 걸 명분이 아무 것도 없었다. 미련은 리들에게 손수건을 돌려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것 뿐이야.”

사실 그렇지 않았다. 리들 역시 리브에 대한 미련이 극심했다.

“나는 당신이 무슨 짓을 한 지 알아요.”

리들은 헛웃음을 뱉을 뻔했다. 정말 너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뭐야? 그녀는 어제 일어난 의문의 습격 사건이 자신의 짓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대체 너는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너는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나에 대해 잘 알아. 하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알렉스한테 대체 왜 그랬어요?”

그 순간 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렸다. 어째서 내 얘기를 듣지도 않고 그렇게 단정 지을 수가 있는거지? 또 나를 멋대로 판단하고 있어. 리들은 리브의 손목을 붙잡고 다른 곳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리들답지 않게 감정이 휘몰아쳐서 홧김에 저지른 일이었다.

“싫어! 나는…….”

리들은 소녀의 입술에서 또 다시 새어나올 비난의 말이 두려웠다. 그래서 더욱 더 강하게 손목을 틀어쥐었다. 본래 리들은 이런 식의 강압으로 상대를 휘두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특히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는 더욱 더. 강압보다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말에 따르도록 유도해오는 것을 선호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리들은 리브가 반항하면 반항할수록 더더욱 그녀를 힘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이런 독단적인 행동은 소녀의 화를 불러 일으켰고 뺨을 얻어맞는 결말까지 도출해냈다.

“당신이 비밀의 방을 열고 습격을 시작한 순간…… 우리 사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거에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은 뺨은 정신을 멍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왼쪽 볼이 화끈거리고 아팠다. 하지만 리들은 뺨을 맞았다는 수모 보다는 리브의 저주 섞인 악담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내 입을 막고 싶어요? 그러면 날 습격하든가……. 아마 깔끔하게 죽여야 할 거에요. 하지만 나를 죽이고 호크룩스를 만든다면…… 나는 죽어서 원혼이 되어서라도 당신을 저주할거에요. 반드시 파멸하라고.”

내가 너를 어떻게 죽일 수 있겠어. 하지만 리들의 입술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달싹이기만 할 뿐이었다. 충격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내 말에 당신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도 알아요. 어차피 내가 저주 하지 않아도 당신은 언젠가 파멸하게 될 테니 상관없겠죠.”

“너는 지금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어. 애컬리가 그렇게 된 것은 사고였어. 내 얘기를 들어봐. 일단 내 얘기를 들으란 말이야!

“내가 말했죠. 이제 당신을 믿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리들은 말할 수가 없었다. 리브가 리들에게 쌓은 벽은 높고 높았다. 리들은 저렇게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자신을 잘라낸 리브에게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리들은 그날 이후로 바실리스크를 꺼내서 산책시키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정말 뺨을 맞고 정신이 번쩍 든 건지 리들은 그게 꽤 무모한 짓이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한 번은 사고로 끝날 수 있어도 두 번, 세 번은 그게 불가능 했다. 그리고 리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저지른 짓을 책임지려는 모습도 보였다. 자신이 징계를 주지 않았으면 알렉스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며 실의에 빠져있는 비어리 교수에게 맨드레이크 회복약에 대한 언질을 준 것도 리들이었다.

하지만 리들은 한 번만 산책을 하게 해달라며 학생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애걸복걸하는 바실리스크를 또다시 바깥으로 꺼내고 말았다. 이번에 리들은 지하 쪽으로 향했다. 다른 쪽의 복도보다 추운 편이었기에 지하에 기숙사가 위치한 슬리데린과 후플푸프 학생들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특히 이 시간에는 더욱 더. 그리고 리들은 정말 잠깐만 움직이게 한 뒤 비밀의 방으로 들여보낼 생각이었다. 만약 지하에 있는 주방에 아놀드 위즐리가 들락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리들은 절대로 바실리스크를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리들은 자신이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곳에는 물웅덩이도 거울도 그 무엇도 없어서 정말 아놀드는 죽을 수도 있었다. 붉은 머리의 남학생 근처에 반짝거리는 은그릇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번에도 바실리스크는 식인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아놀드에게 달려들려 하고 있었다. 리들이 이를 부득 갈며 소리쳤다.

[당장 물러서!]

[나는 죽이고 싶어……. 죽일 거야……. 갈기갈기 찢어서…….]

리들은 지팡이를 꺼내들어 바실리스크에게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사용했다.

“임페리오.”

[죽일 거야.]

“임페리오!”

리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바실리스크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었다. 몇 번 시도한 끝에 간신히 임페리우스 저주가 걸렸다. 마력을 많이 쏟아 부은 지라 리들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아낸 뒤 바실리스크를 원래 있던 곳으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히 고대생물이 아닌 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주가 풀리고 말았다.

“제기랄.”

바실리스크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공격한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겠다는 집념이 만든 결과였다.

“크루시오!”

리들의 크루시아투스 저주는 곧바로 바실리스크에게 먹혀들어갔지만 그건 순간이었다. 잠깐 몸을 멈추는 가 싶더니 거대한 뱀은 다시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 리들은 그 경험으로 크루시아투스 저주가 순간의 감정으로 큰 고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정말 진심으로 상대가 괴롭기를 바라고 즐기며 써야만 했다. 그녀가 항상 운운하던 진심이 여기서 절실히 필요했다. 아마 그녀가 이러한 진심의 활용법을 알면 까무러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시 돌아간 바실리스크는 기어이 또 한 명의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바실리스크가 그 학생을 짓밟기 직전에 리들은 강력한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명중시켰다. 그리고 습격 대상이 크리스라는 것을 깨달은 리들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래 이런 방법도 있었지.

사실 리들이 크리스를 바실리스크로 죽일 생각을 아예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독사야 불행한 사고로 처리하기가 쉬웠지만 지금 상황은 달랐다. 식물인간이 된 학생들에 이어서 사망자라. 일이 커지게 될 것이 뻔하므로 저지르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리브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절대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리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에게 크리스가 식물인간이 된 상황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겨우 식물인간이 된 것으로 끝났다는 게 아쉽기도 했다. 시끄러워 질지 몰라도 그냥 끝장을 났어야……. 그렇게 생각하던 리들은 크리스의 주변에 떨어져 있는 거울을 보고 실소를 머금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조심하라고 언질을 준 모양이지.

“넌 올리비아 때문에 그 목숨을 부지한 줄 알아.”

리들은 저 예쁘장한 얼굴을 한 번 걷어 차주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혹 증거가 남을까봐— 돌아섰다. 그리고 고통의 여운으로 떨고 있는 바실리스크에게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는 오늘 내 명령을 어긴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청년의 흑안이 잔인한 광기로 번뜩였다. 리들은 바실리스크를 비밀의 방에 처넣은 후 곧바로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기어이 바실리스크의 눈 한쪽을 멀게 만들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바실리스크를 보는 리들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잔잔했다. 흑요석 같은 흑안에서 잔혹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한 번만 더 내 명을 어긴다면 나머지 눈도 파버릴 줄 알아.]

*

“‘the chamber of secrets riddle monster is’라…….”

크리스가 남긴 다잉 메시지를 듣고 나서야 리들은 급박한 상황인지라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자신의 부주의를 깨달았다. 손에 양피지 조각을 꼭 쥐고 있었다고……. 다행히 아무도 그 다잉 메시지에서 톰 리들을 유추하지 못했고 당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에 그가 자신의 풀네임 따위를 썼다면 정말 일이 귀찮아질 뻔했다. 물론 그 시간대에 리들의 알리바이는 확실해서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긴 했다.

리들은 병동에서 세상이 떠나갈 것처럼 우는 리브를 보며 걱정과 함께 질투에 휩싸여야만 했다. 저 자식이 뭐라고 네가 대체 왜 울기까지 해. 하지만 역시 질투보다 걱정이 컸다. 본래 그녀는 우는 것 자체를 꺼리는 지라 한 번 울음을 터뜨리면 그야말로 끝장을 보곤 했다. 저러다가 탈진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서 리들은 리브가 그 끝장을 보기 전에 잠재우는 것을 택했다. 한 번 경험이 있는지라 잠에 빠진 리브를 침대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은 몹시 능숙했다. 하지만 리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 알면 진저리를 치며 싫어할 테니까.

“맥밀란, 그녀에게 내가 다녀갔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줘.”

습격사건으로 학교가 긴장감에 바짝 물들어 있는 상황에도 리들은 계속해서 비밀의 방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마력처럼 그를 끌어당겼다. 몸속에 흐르는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피 때문일까. 하지만 비밀의 방은 계륵(鷄肋)같았다. 버리자니 아깝고 완전히 갖자니 꺼려진다. 비밀의 방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꺼려지는 이유는 바실리스크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해서 습격사건을 크게 공론화 시킨 바실리스크의 멍청함과 난폭함은 이제 리들의 관대함으로도 감싸줄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리들은 바실리스크를 가치 없는 늙어빠진 생물로 판단을 바꿨다. 바실리스크는 리들에게 책임 질 수 없는 강함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교훈을 주었다.

리들이 자신의 명을 어기고 선을 넘어선 바실리스크를 없애지 않은 이유는 절대로 살라자르 슬리데린에 대한 예의 따위가 아니었다. 리들에게 이미 죽고 없는 자는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세상에 하나 남은 고대 생물을 그냥 없애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위력은 강력하니 언젠가는 유용하게 쓸 수 있겠지. 이 때문이었다.

리들은 일이 터지고 나서야 바실리스크를 없애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눈 한 쪽이 아니라 두 쪽 모두 없애버리는 것을. 그 멍청한 생물은 자신을 밖으로 꺼내주지 않는데다가 무관심해진 새로운 주인에게 반항을 하겠다는 건지 갑자기 돌발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리들이 비밀의 방에서 빠져나와 투명마법을 걸고 있는 사이에 수도관을 통해 거대한 뱀이 따라 나온 것이다. 주인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바닥만 보고 기어 나온 것은 기특한 일이었으나 리들은 그 공을 치하해 줄 만큼 관대한 성품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처한 상황도 나빴다.

“다른 칸을 쓰도록 해! 여긴 내 자리니까!”

이 근처 복도에서 알렉스가 습격을 받았고 그 때문에 여학생들은 2층 화장실 사용을 꺼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리들은 마음 놓고 비밀의 방을 들락거릴 수 있었던 것인데 하필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저 빌어먹을 계집애. 리들은 머틀에게 이를 부득 갈았다.

“다른 칸을 쓰라고…… 브릴리언트 뭐야!”

브릴릴언트라는 말에 리들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인가? 리들은 바실리스크를 어서 비밀의 방으로 들여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 냄새를 맡은 바실리스크는 또다시 날뛸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허튼 짓하면 나머지 눈을 파버리겠어. 당장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갈기갈기 찢어서…….]

[닥치고 당장…….]

리들은 투명마법을 거는 것을 관두고 바실리스크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 거울로 시야를 확인하는 게 좋을 거야. 이 근처에 무언가가…….”

“이 나쁜 계집애야! 내가 못 생겼다는 걸 이 거울로 직접 보라는 거야 뭐야!”

그때 머틀이 집어던진 거울이 바실리스크의 몸통에 부딪혔다. 무언가가 자신을 건들었다는 것을 깨달은 바실리스크가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날뛰기 시작했다.

[인간이 나를 공격했어!]

[멈 춰. 무시하고 바로 네가 있던 곳으로 들어가란 말이야!]

[죽여 버릴 거야. 나를 건드렸어.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버릴 거야.]

[명령이야, 당장 들어가!]

리들은 지팡이를 빼어들고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기 때문인지 마법이 좀처럼 먹히지를 않았다. 번번이 바실리스크의 육중한 비늘에 막혀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안 돼. 이대로라면 누군가가 죽어나갈 것이 뻔했다.

“머틀, 어서 이곳을 나가야만 해! 요즘 습격사건이 한창이잖아! 이런 외진 곳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시끄러워! 내가 네 말 따위를 들을 것 같아?”

리들에게 머틀 따위는 알바 아니었으나 절대로 리브는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뺨을 때리고 저주 섞인 악담까지 쏟아내며 자신을 짓밟은 괘씸한 계집이었음에도 리들은 절대로 그녀를 죽게 할 수 없었다. 만약 여기서 그녀가 죽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 때문이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됐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안됐다. 리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생명보다 다른 이의 생명을 우위선상에 두는 생각을 해보았다. 리들은 바실리스크에게 온갖 치명적인 주문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공격마법이든 어둠의 마법이든 가리지 않았다.

“머틀, 제발!”

지나친 마력운용 때문에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났으나 리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주문은 상당히 많이 빗나갔다. 명중한 주문도 꽤 있었으나 이것들은 바실리스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저 움찔할 정도였다. 오히려 리들이 쏜 치명적인 어둠의 마법 하나는 바실리스크의 비늘에 반사되어 리들의 왼팔을 살짝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 청년의 입술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시전자의 능력에 따라 마법의 위력이 결정된다는 법칙에 따라 그 주문은 단지 스쳐가기만 했음에도 강력했다. 마치 팔이 잘려나갈 것 같은 고통에 리들은 잠깐 아찔해졌으나 간신히 정신을 다잡았다.

여기서 자신이 바실리스크를 막지 못한다면 전부 죽는다. 리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이를 악물었다. 왼쪽 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음에도 리들은 개의치 않고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또다시 바실리스크에게 주문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제발 먹혀라. 리들의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져 바실리스크가 문제의 칸을 덮치기 전에 그 육중한 몸이 쓰러졌다. 리들은 쓰러진 바실리스크를 수도관으로 쳐 넣고 급히 비밀의 방의 문을 닫았다.

화장실 안에는 불안할 정도로 고요한 적막감이 흘렀다. 비명소리나 누군가가 움직이는 소리라도 들려야 할 것이 뻔했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몹시 조용했다. 숨을 헉헉거리던 리들은 불안감이 온몸을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마법을 난사한 덕분에 리들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피가 흐르는 왼팔 이외에는 멀쩡했으나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리들은 그녀가 무사한 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청년은 문제의 칸에 들어서자마자 두 여학생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여학생은 눈을 부릅뜬 상태로 숨이 멎어있었고 한 여학생은……. 이미 늦었다. 사실 하나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은 바실리스크가 저쪽 칸에 접근한 후로 예상햇던 일이었다. 하지만 리브는 문과 등을 지고 있으므로 재수 없으면 조금 다치기는 해도 거의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영리한 그녀라면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겠지. 그런데 어째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리들은 털썩 주저앉았다.

“오,올리비아……. 아, 안 돼…….”

청년의 흑안에 딱딱하게 굳은 금빛 블론드가 담겼다. 또한 항상 영롱하게 반짝이던 푸른 벽안은 초점이 없었다. 몸이 딱딱하고 차가웠다. 리들은 리브가 이대로 영영 눈을 뜨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청년에게 두려움을 선사했다.

“올리비아!”

하지만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어 나.”

“…….”

“올리비아! 올리비아! 아아……. 제발 눈을 뜨란 말이야!”

리들은 왼팔의 고통을 잊은 채 리브를 붙잡고 절규했다. 이미 죽거나 쓰러져 있는 자에게 눈을 뜨라고 깨어나라고 해서 뭐하냐고 비꼬았던 청년은 지금 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 본인을 자각하지 못한 채로 리들은 애타게 일어나라고 거의 부르짖다 시피 했다. 내가 정말로 너를 망치고 있어. 리들의 왼팔에서 피가 흘러내려 리브의 새하얀 블라우스를 적시고 있었다. 그러자 정말 리브가 죽은 것 같아서 리들은 이제 겁까지 났다.

그도 그럴것이 소녀의 몸은 너무 차가웠다. 그리고 숨을 쉬고 있지도 않았다. 리들은 미약하게나마 뛰는 심장 소리로 마음을 진정 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침착하게 맥박을 잡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너무 몸이 약해서 정말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고 이는 리들에게 공포감을 선사했다.

“안 돼. 죽으면 안 돼. 죽지 마. 안 돼…….”

실성한 사람처럼 죽지 말라고 중얼거리던 리들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다. 리들은 몇 번을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리브도 리브였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을 수습해야만 했다. 그녀는 맨드레이크 회복약이 있으면 깨어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그럴 것이다. 그제서야 침착함을 되찾은 리들은 리브의 맥박을 확인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리들은 미약하게 뛰는 맥박을 느꼈다. 그녀는 살아 있었다.

“테르지오.”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들어 리브의 옷은 물론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을 깨끗하게 지웠다. 품에서 리브의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 상처 입은 왼팔을 꽉 묶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여기서 쓰러져서는 절대로 안 됐다.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전부 지우고 리들은 급히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청년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금빛 머리칼로 향해 있었다.

*

2층 여자 화장실에서 여학생 두 명이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 되었다. 슬리데린 소속의 여학생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고 다른 한명은 돌처럼 굳어서 식물인간 상태였다. 연이어진 습격, 무엇보다도 한 여학생의 사망 소식에 학교가 뒤집어졌다. 이제 습격은 불행한 사고로 덮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사망자가 나온 이상 당연한 결과였다. 호그와트 교장실과 영국 마법부에 어서 범인을 색출하라는 호울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상황은 급전개로 흘러가 이제 학교를 폐교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벌써 슬리데린의 고위 공직자 자녀들은 이대로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 덤스트랭으로 편입을 할 거라며 속닥거리고 있었다.

“여름방학 때 널 학교에 머무르게 할 수가 없구나. 방학이 되면 집에 돌아가고 싶을 텐데 왜 가지 않으려는 거니?”

리들은 리브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라이트 저택을 나와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교장인 디펫 교수에게 방학 때 학교에 남을 수 없겠냐는 편지를 보냈고 그의 부름을 받았다.

“저는 돌아가는 것보다 호그와트에 머무르는 게 훨씬 좋아요.”

“방학동안 머글 고아원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니?”

디펫 교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리들은 쓰디쓴 얼굴로 대꾸했다.

“저는 예전에 그곳을 나왔습니다. 그 후로 올리비아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말입니다.”

“저런…….”

디펫 교수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중요한건 톰, 너를 위해 특별한 배려를 해야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요즘에 일어난 습격사건 때문인가요?”

“그렇단다.”

디펫 교수의 얼굴에는 수심이 깊어보였다.

“미안하지만 얘야, 학기가 끝났는데도 널 성에 남아 있도록 할 수는 없단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비극에 비추어 볼 때……. 그 가엾은 어린 소녀의 죽음은…… 너도 호그와트에 있는 것 보다는 다른 곳에 있는 게 훨씬 더 안전할 테지. 사실 마법부는 학교 폐쇄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학교 측은……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들의 원인을 전혀 알아내고 있지를 못하니…….”

리들은 마법부 고위직의 자녀들이 속닥거리던 호그와트 폐쇄 문제가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디펫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심각한 수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교수님, 만약 범인이 잡힌다면…… 만약 모든 습격이 중단된다면…….”

“그게 무슨 말이니?”

리들의 말에 디펫 교수는 갑자기 자세를 바로 잡고 청년을 주목했다.

“리들, 그 말은 네가 지금의 습격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거니?”

“아닙니다. 교수님.”

디펫 교수의 방에 나온 리들은 자신이 비밀의 방을 열고 괴물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던 게 어떤 참사를 불러일으켰는지 분명히 깨달았다. 폐교라니. 호그와트는 리들에게 몹시 특별했다. 지긋지긋한 머글 고아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곳이었으며…… 그녀의 존재를 알게 해준 곳이었다. 절대 폐교 되어서는 안 됐다.

리들은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분노를 머금치 못했다. 자신의 무모함으로 생겨난 일이었다. 바실리스크 따위를 꺼내는 게 아니었다. 리들의 분노는 바실리스크로 향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들고 상황을 이렇게 만든 그 괴물을 용서치 않을 생각이었다.

“크루시오.”

리들은 오늘 자신의 체력이 전부 바닥나는 한이 있더라도 바실리스크에게 극심한 고통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청년은 잔인하게도 바실리스크의 마지막 남은 한 쪽 눈마저 앗아갔다. 그리고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비롯한 온갖 주문으로 바실리스크를 고문하고 또 고문했다. 비명을 지르고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는 덩치 큰 뱀의 모습에 주인을 따라온 나기니는 옆에서 벌벌 떨었다. 톰이 화났어. 어떡해. 어리고 작은 암컷 뱀은 그저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바실리스크는 불쌍할 정도로 싹싹 빌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 했어. 제발 나를 용서…….]

“크루시오.”

냉정한 얼굴로 바실리스크를 고문하는 리들의 모습은 공포의 전율과 함께 섬뜩하기까지 했다. 바실리스크가 다시는 명령을 어기지 않겠다고 비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더 심한 고통을 줄 뿐이었다. 하얀 뱀은 리브가 당했으니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바실리스크를 동정의 눈길로 보며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바실리스트에게 그야말로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주던 리들은 어느 순간 이게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지팡이를 든 리들의 손이 아래로 추락했다.

그렇다. 바실리스크에게 고통을 준다고 해서 리브가 깨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맨드레이크 회복약이었다. 리들은 바실리스크를 고문하는 것을 멈췄다. 피를 흘리며 꿈틀거리는 바실리스크의 육중한 몸을 보며 리들이 다시 지팡이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너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으니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품으로 보내주지.]

[내가…… 무슨 잘못을…….]

원통한 듯 거의 울다 시피 쉭쉭거리는 바실리스크에게 리들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 명령을 몇 번이나 어겼지. 분명 나는 여러 번 경고를 했어.]

[우우…….]

[너는 그녀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 말뜻을 파악한 바실리스크가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무기인 눈을 잃고 고문으로 쇠약해진 늙은 뱀에게 남은 것은 육중한 몸뿐이었다. 지금은 운신하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아바다 케다브라.”

비밀의 방안에 초록빛 섬광이 번쩍했다. 그리고 더 이상 바실리스크는 움직이지 않았다. 리들의 생애 첫 살인 주문은 리들에게 아무 느낌도 주지 못했다. 생명을 앗아감으로서 자신의 강함을 확인했다는 성취감과 우월감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허탈감과 상실감뿐이었다. 이건 단지 감당이 안 되는 분노를 풀기 위한 행동일 뿐이었다. 사실 궁극적인 원인은 리들 자신에게 있었다. 자신은 비밀의 방을 연 것만으로 끝내야 했다. 바실리스크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리들 선배, 살인은 옳지 못한 행동이에요. 살인뿐만이 아니에요. 보통 사람들은 싫다는 이유로 무조건 없애려하지 않아요. 그랬다면 이 세상은 난장판이 되었을 거에요.]

그런 거 알게 뭐야. 네가 그렇게 되고 내 마음은 난장판이 되었어. 이번만 용서해줘. 이러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는걸. 리들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을 하며 리브에게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에 없다. 깨어나지 조차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듯이 다른 이의 생명도 소중한 거에요. 왜 그걸 몰라요?]

너를 그렇게 만든 바실리스크를 죽였어. 나 이외의 생명은 무가치하지만 너만은 예외야. 올리비아 너는…….

[저를 위해서라고요? 고마워하라고요? 제가 선배한테 그들을 퇴학시켜 달라고 했던가요?]

언젠가 존슨 무리를 퇴학시켰을 때, 그녀가 한 말이었다. 이번에도 너는 그렇게 말할 거니. 이런 나를 알면 너는 나를 더 미워하게 될까. 머틀이 죽은 이상 자신은 용서받을 수 없었다.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되돌릴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라면 잘못은 당신이 했는데 왜 바실리스크에게 분풀이를 했냐며 화를 낼 것이 뻔했다. 리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청년은 그렇게 한참동안 괴로워했다. 이제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었다.

*

리들은 해그리드를 범인으로 몰아 퇴학시켜버림으로써 사건을 수습했다. 그리고 슬리데린의 청년은 그 공으로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 크리스티안 카르티에가 해그리드의 퇴학 처분에 대해 몹시 반발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뒤집을 힘이 없었다. 또한 덤블도어가 힘을 써서 해그리드의 퇴학을 지팡이를 보존하는 선에서 끝내 놓았으나 이 역시 리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리들은 점점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리들과 리브의 사이는 그렇지 못했다. 바닥으로 치닫다 못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을 거에요.”

리들은 다른 모든 것을 수습했지만 리브와의 관계는 도저히 수습할 수가 없었다.

“올리비-”

“내 이름 부르지 말아요! 당신이 하는 말은 아무 것도 믿지 않아요.”

리브는 지독한 슬픔으로 리들을 대했다.

“날 이번에도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네가 한 번이라도 내 마음대로 움직인 적이 있기는 해? 너야 말로 나를 마음대로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잖아! 리들은 불만스러워졌다. 리브의 말 하나하나가 견디기 힘들었다.

“난 고아원에서 어린 날의 당신이 애들한테 빼앗던 전리품 같은 게 아니야-”

그 말에 리들은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정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전리품? 전리품이라고? 리들은 리브의 말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다시는 마주치지 말아요. 저택에서도 나가줬으면 좋겠어요. 짐은 집요정을 통해 보내도록 하죠.”

리브의 축객령에 리들의 이성이 끊어졌다.

“내가…… 너 하나 없다고 흔들리기라도 할 것 같아? 그러라고 이렇게 시위하는거야?”

리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다다다 뱉어내기 시작했다.

“하,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자신만의 호칭이라 내심 우쭐하기도 했던 그 이름마저 집어 던져버렸다.

“올리- 아니! 브릴리언트 너 따위는 내게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리들은 훗날 이런 식으로 리브와 마지막을 장식한 것을 후회해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새로운 챕터 시작!

지난 챕터에서 리들에게는 이런 사정이 있었습니다ㅎㅎ...

리브는 어떻게 됐냐구여? 그건 다음편에서^^!

그럼 여러분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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