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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돌이킬 수 없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래번클로 퀴디치 선수들이 기숙사로 들어왔다. 아직 연습 시간이 끝나지 않았을 시간인지라 휴게실에 있는 몇몇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막 들어온 선수들의 표정은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 중 한 명인 에밀리가 멍하니 벽난로의 불을 응시하는 리브에게 쪼르르 다가왔다. 하지만 눈가가 붉은 친구의 고운 얼굴을 보며 에밀리는 리브가 울었음을 깨달았다. 근처에 앉아있는 학생에게 왜 이러냐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는 제스처 뿐이었다. 그래서 에밀리는 수다를 푸는 대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것을 택했다. 의외로 리브는 쉽게 대답을 내주었다.
“……크리스랑 싸웠어. 내가… 내가 잘못한 거야. 그에게 심한 짓을 했어.”
“난 리브 네가 무슨 짓을 한 지 모르지만…….”
“그의 일을 망쳐놨어.”
“어…… 그래도 크리스라면 용서해 줄 거야.”
에밀리는 끊임없이 위로의 말을 쏟아내며 성격 좋은 크리스라면 리브를 용서해 줄 거라 단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브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아니, 절대 용서해주지 않을 거야. 풀이 죽다 못해 그늘이 가득한 리브를 보며 에밀리는 다른 소재를 꺼내 관심을 돌리기로 했다.
“연습 시작한지 얼마 안됐는데 갑자기 메리쏘우트 교수님이 오셔서 곧바로 기숙사로 돌아가라고 하시지 뭐야.”
“…뭐?”
리브의 반응에 에밀리는 본격적으로 아까 하려던 얘기를 속삭이기 시작했
“참 이상한 일인 게……. 메리쏘우트 교수님이 우릴 기숙사 입구까지 바래다주시기까지 한 거 있지.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야. 복도에 있는 모든 학생들을 기숙사로 돌아가게 했어. 아까 민달팽이 교수도 슬리데린 남자애 하나를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더라. 아, 그래. 샤를루스 포터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따로 데려가셨어. 대체 무슨 일이지? 포터가 사고친 것 치고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거든.”
그러고보니 지금 휴게실 안의 모든 학생들이 이 주제를 가지고 떠들고 있었다. 래번클로 학생들은 영리하게도 성안에 무슨 심각한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고 추측했다.
“성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해. 사고라도 난걸까? 아니면 무슨 괴물이라도 돌아다니나?”
리브는 그대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습격이 또 일어난 것이다. 미래에서 온 크리스가 말한 대로 아놀드 위즐리가 습격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리브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그녀는 아놀드 뿐만 아니라 크리스까지 습격을 당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곧바로 병동으로 간 리브는 뻣뻣한 얼굴로 죽은 듯이 누워있는 크리스를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덜덜 떨다가 비틀거리는 리브를 뒤늦게 도착한 에밀리가 붙잡았다. 거의 혼절할 기세인 리브를 보며 젤러 부인은 역시 문병을 금지해야겠다며 커튼을 쳤다. 그리고 친인이 둘이나 당했으니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며 소녀를 가엾이 여겼다. 그렇게 치료사는 진정물약을 가져오겠다며 창고로 들어갔다.
크리스의 모습을 멍하니 보던 리브는 발작적으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크리스 내가 잘못했어. 일어나. 서럽게 울어대는 리브를 보며 에밀리는 어젯밤 크리스와 싸웠다고 풀이 죽어있던 리브를 기억해냈다. 크리스는 리브와 싸운 직후 변을 당한 게 분명했다. 나 때문이야. 내가 크리스를 이렇게 만든 거야. 영문 모를 말을 뱉으며 우는 리브를 에밀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달래기 시작했다.
“리브, 네 잘못이 아니야. 단지 이건 재수가 없었을 뿐이야. 울지 마.”
내 잘못이야. 내가 그런 짓을 해서……. 크리스까지……. 리브는 더욱 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에밀리가 그녀를 달래려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리브의 등에 새하얀 빛이 명중했다. 소녀의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 축 늘어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깜짝 놀란 에밀리는 쓰러진 리브를 붙잡으며 마법이 날아온 곳을 돌아보았다.
“리들 선배?”
그림처럼 서 있는 리들의 단정한 모습이 에밀리의 눈에 들어왔다. 청년은 몹시 기분이 저조해보였다. 리브를 어찌하지 못해 끙끙거리는 에밀리를 도와준 것은 리들이었다. 청년은 축 늘어진 소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더니 번쩍 안아 들었다. 리들은 마치 이 상황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전에도 여러 번 겪은 것 마냥 익숙해보였다. 능숙하게 리브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리들은 그 앞의 의자에 털썩 앉아 소녀의 젖은 얼굴을 응시했다. 품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리브의 눈물을 꼼꼼히 닦아주는 모습은 참으로 사려 깊어 보였다.
에밀리는 그런 리들을 보고 정말로 여동생을 걱정하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에밀리의 눈에 리들이 리브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 모습은 여실했다. 그런데 왜 둘의 사이가 그렇게 된 걸까?
진정 물약을 가지고 돌아온 치료사는 잠들어 있는 리브를 보며 기겁했다. 리들은 침착하게 입을 열어 상황을 설명했다.
“전에도 이러다가 탈진할 뻔한 적이 있어서 일단 마법으로 재웠습니다. 이렇게 울기 시작하면 쓰러질 때까지 끝이 없는지라…….”
“오, 그래. 잘했구나. 어린 것이 가엾게도…….”
리들은 전에 슬러그혼의 사무실에 리브가 놓고 갔던 그 새하얀 손수건을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품에 넣었다.
“그나저나 젤러 부인. 맨드레이크 회복약은 어떻게 되었나요?”
“오, 그래. 네가 비어리 교수에게 돌로 된 학생들을 구하는 방법이라 일러준 것을 들었단다.”
“아닙니다. 제가 아니었어도 비어리 교수님은 알고 계셨을 거에요.”
그렇게 답하는 리들은 무척 겸손해 보여서 젤러 부인은 흐뭇하게 웃었다.
“겸손하기도 하지. 그래도 너 덕분에 맨드레이크가 성장하는 것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잖니.”
“젤러 부인. 혹 성뭉고 병원에는 남은 물량이 없을까요?”
“안 그래도 문의를 해보았지만 희귀한 약이라 그쪽도 만들어야 한다는 구나. 그럴 바에야 우리가 더 빠르겠어.”
리들은 돌처럼 굳어있는 아놀드를 응시했다. 그 시선을 눈치 채고 치료사가 재빨리 커튼을 쳤다.
“너무 걱정하지 말렴. 맨드레이크가 잘 크고 있으니 깨어날 수 있을 거란다.”
“네.”
젤러 부인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에밀리가 치료사 몰래 커튼을 열고 크리스를 보고 있는 사이 리들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그마한 손거울을 리브의 망토 소매 속에 넣은 리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밀란. 그녀에게 내가 다녀갔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줘.”
청년의 흑안에 금빛이 오롯이 담겼다. 소녀의 파리한 얼굴을 응시하던 리들은 이내 병동을 빠져 나갔다.
*
돌이 된 크리스의 손아귀에서 ‘the chamber of secrets riddle monster is’이라는 문구가 적힌 양피지 조각이 발견되었다. 마치 쓰다만 것 같은 그 쪽지를 보고 교수들은 이것이 크리스가 남기려했던 다잉 메시지라고 추측했다.
“the chamber of secrets riddle monster is’라니. 비밀의 방에 있는 수수께끼의 괴물을 말하려고 한 걸까요?”
“아니, 그러면 비밀의 방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괴물이 습격을 한 거란 말입니까? 이건 말이 안 돼요!”
“맞아요. 그건 신화나 전설일 뿐이에요. 지금까지 그곳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잖아요. 이건 그냥 그 아이가 호기심에 뭔가를 적은 게 우연히 발견 된 게 분명해요.”
“하지만 카르티에 군은 그 조각을 꽉 쥐고 있었는걸요. 하마터면 발견하지 못할 뻔했잖아요. 이건 분명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요. 범인이 누군지 적으려다가 습격당한 게 틀림없어요.”
교수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들의 대다수가 비밀의 방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쪽이었다. 그리고 교수들은 학생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이를 쉬쉬했다. 하지만 비밀은 없는 법. 이 소식 역시 퍼져나가서 학생들은 비밀의 방이 열린 게 아니냐고 속닥거리며 안에 있는 수수께끼의 괴물이 무엇일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머글태생 학생들은 몸을 사리게 되었다.
“마법을 배울 가치가 없는 학생들을 제거한다니! 그럼 그건 우리 같은 머글태생을 말하는 거잖아.”
“하지만 습격당한 위즐리는 순수혈통인걸. 그리고 난 모자가 슬리데린은 엄청 상극이라고 했어. 그럼 나같은 학생일 지도 몰라.”
비밀의 방이 열렸다는 소문은 그저 소문으로만 무성했다. 습격을 당한 아놀드 위즐리가 순수혈통이기 때문이었다. 알렉스 애컬리와 크리스티안 카르티에 역시 머글태생이 아닌 혼혈이었다. 그러면 혈통은 상관없을 터. 대체 기준이 무엇일까.
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비밀의 방이 열렸다는 소문을 그게 말이 되냐며 신랄하게 비웃었다. 에밀리도 그 중 하나였다.
“살라자르 슬리데린 그 괴팍한 늙은이가 창립자들이랑 싸우고 삐져서 학교 어딘가에 비밀 빗자루 벽장 따위를 만들었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호들갑인지. 열어봤자 안에 낡은 빗자루 밖에 더 있겠냐구. 아니면 케케묵은 먼지?”
에밀리의 말에 그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만든 기숙사 소속인 아브락사스는 펄쩍 뛰었다.
“비밀 빗자루 벽장이라니! 무려 비밀의 방이라고! 그 안에는 후계자만이 다룰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어. 수수께끼의 괴물 말이야.”
“그냥 창립자들이랑 싸우다가 삐쳐서 칩거하려고 만든 거지 뭐. 학교를 떠난 척 하면서 실상으로는 비밀의 방에 틀어박혀서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나 보고 있던거 아냐? 안에 있는 괴물이라고 해봤자 지가 좋아하는 뱀밖에 더 되겠냐구. 아휴 생각해보니 진짜 찌질하고 좀스럽다.”
아브락사스는 에밀리에게 살라자르 슬리데린은 그런 인물이 아니라며 정정에 나섰지만 에밀리는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이제 아브락사스가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찬양에 나서자 에밀리는 반대로 헬가 후플푸프와 로웨나 래번클로를 띄우기 시작했다.
“슬리데린보다는 헬가 후플푸프나 로웨나 래번클로가 훨씬 낫지. 헬가는 무척이나 상냥하고 선한 마녀였다고 해. 그리고 요리도 엄청 잘하고……. 로웨나는 지혜로운 데다가 엄청난 미인이었다는 걸로 유명하지.”
“그럼 뭐해. 후플푸프는 멍청하잖아. 래번클로는 잘난 척이 심하고.”
“잘난 척이 심하다니! 그건 프라이드일 뿐이야! 그렇게 따지면 너희 슬리데린도 허세쟁이들이잖아. 그리고 후플푸프는 멍청한 게 아니라 착한 거라구!”
둘은 자기네 기숙사가 최고라며 떠들다가 이제는 상대방의 기숙사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슬리데린은 편협하고 꽉 막혔어. 그리고 대대로 애들이 싸가지 없단 말이야. 래번클로가 얼마나 영악하고 재수 없는지 알아? 수틀리면 꼭 자기들은 발을 뺀단 말이지. 사기꾼 중에 래번클로 비율이 높은 건 알아? 뭐, 사기꾼? 야, 재수 없는 걸로 따지면 슬리데린이 한 수 위거든?
옥신각신하는 둘과 달리 리브의 얼굴은 어둡고 파리했다. 그녀는 크리스가 무슨 메시지를 남기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the chamber of secrets riddle monster is]
‘비밀의 방이 열렸다. 범인은 리들이고 그 안에 있는 괴물은 바실리스크다.’ 이 말을 전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고 그는 핵심만 적은 게 분명 했다. 그리고 리들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꼭꼭 접어서 손에 꼭 쥔 상태로 돌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리브와 같은 해석을 하지 않았다. 다들 크리스는 프랑스인이어서 영어가 서투른 거라 여기며 급박한 상황이니 문법이 안 맞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비밀의 방에 있는 수수께끼의 괴물이라는 식으로 제멋대로 해석했다. 아무도 ‘riddle’이라는 단어로 톰 리들(Tom Riddle)을 연상하지 않았다. 수수께끼 혹은 불가사의 한으로 해석할 뿐이었다.
[어떻게든 원작대로 흘러 갈 거야.]
크리스의 말대로 였다. 크리스는 리들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어떻게든 원작대로 흘러갈 것이다. 원작대로라면…… 머틀이 죽을 것이다. 리브는 기억을 더듬어 크리스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원작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녀가 어디서 죽었더라. 자신이 할 일은 그것이었다. 머틀이 죽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크리스가 이 생각을 들었더라면 이미 리브와 리들은 돌이킬 수 없노라 말했을 것 이다. 하지만 리브는 리들을 완전히 놓지 못했다. 미련이란 게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무 것도 모른 채로 그냥 그렇게…… 마음 편하게 그에게 매료되었을 텐데.
자신의 생각이 리브는 역겨울 정도였다. 크리스에게 무시무시한 저주 같은 악담을 들었음에도 리브는 그에게 아무런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리브는 인정해야만 했다. 크리스의 말 그대로 일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는 리브의 신념을 깨는 것과 같았다. 만약 크리스가 리브의 마음에 깊이 상처를 입히기 위해 그런 말을 뱉은 거라면 이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크리스 네가 틀린 게 있다면…… 나는 절대로 그의 추종자가 되지는 않을 거야. 그러면 넌 이미 난 추종자로서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하겠지. 그래, 나는 너의 일을 망쳐놓았으니까.
[이대로라면 너는 절대로 리들을 놓지 못 할 거야! 네가 부숴버린 이 타임터너가 바로 그 증거야.]
크리스의 말이 옳았다. 이대로라면 나는 리들을 절대 놓지 못할 것이다. 미련은…… 아니 미련이라 치부하기에는 그의 대한 감정이 너무나도 클지도 모르니까. 사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그와 나의 관계가 아니라 바로 나일지도.
하지만 내 마음을 돌이키지는 못할지 언정, 크리스 네가 말한 대로 데스이터가 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나는 절대로 그의 추종자가 되지 않을 거야. 그와 얽히지 않겠다는 어린 날의 결심이 깨진 것만으로도 충분해.
처음 그에게 받은 멘티 제안을 거절하면서 말한 그대로였다. 나는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 원작을 완전히 바꿀 수 없다면 틀어 놓으리라. 머틀을 절대로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리브는 처음으로 원작을 바꾸겠다는 결심을 해보았다. 크리스가 애썼듯이 이제는 내가 그 일을 해야만 했다. 발악은 해봐야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사실은 그가 정말로 살인을 저지르고 누군가를 죽게 만들면…… 정말로 놓아버려야 할 것 같아서 그게 두려웠다. 그때는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덮을 수조차 없었다. 이제는 아무런 명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로 끝을 봐야만 했다. 더 이상의 변명조차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온 결론이 머틀이었다. 그녀가 죽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만 했다. 그래야 돌이킬 수 있으리라.
리브는 조금이나마 돌이키고 싶어졌다.
*
“머틀.”
리브의 부름에 머틀은 표독스럽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머틀은 여전히 슬리데린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놀리면 화를 내다가 제 성질을 못 이기고 엉엉 울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그 우는 것 마저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니 남몰래 울곤 했다.
“브릴리언트, 착한 척하지 말고 저리 꺼져!”
머틀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리브를 팍 밀쳤다. 갑작스러운 밀침에 살짝 휘청거리는 소녀를 보며 주변 학생들이 머틀 쟤는 성질도 악독하기 짝이 없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주변의 여론이 좋지 않자 머틀은 얼굴을 구기며 리브에게 울음 섞인 목소리로 빽 소리쳤다.
“다 너 때문이야! 이 가증스러운 계집애!”
그리고 머틀은 씩씩거리며 리브를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어떤 슬리데린 남학생이 또 울러 가는 거냐며 그녀를 놀리기 시작했다.
“울보 머틀. 짜증부리는 머틀. 못생긴 머틀. 그리고 그녀의 새 이름은 모우닝 머틀이라네.”
“혼비, 비켜!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둬! 이 나쁜 자식!”
하지만 혼비라 불린 남학생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제는 그녀의 안경에 대해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남학생들이 깔깔 웃기 시작했고 머틀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눈물을 흘리며 어디론가 도망치듯 가버렸다.
[올리브 혼비는 머틀이 죽고 나서 그녀를 놀린 것을 후회하게 됐지. 왜냐면 그 직후에 죽었는데 유령이 돼서 그를 졸졸 쫓아다니며 괴롭혔거든.]
리브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늦기 전에 어서 머틀에게 경고를 해야만 했다. 특히 2층 여자 화장실에는 되도록 가지 말라는 주의를 줘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그곳에 가고 있다면? 만약 그곳에 그가 바실리스크를 데리고 있다면…….
“맙소사.”
리브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머틀이 가버린 곳을 뒤쫓아 가기 시작했다. 머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브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2층 여자 화장실. 그녀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리브는 숨을 가쁘게 쉬며 2층 여자 화장실에 도착했다. 안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역시 리브의 예상대로 그녀는 이 안에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비밀의 방의 입구였다. 당장 그녀를 빼내야만 했다. 잠깐 거울. 거울이 어디 있지?
리브는 품을 뒤지다가 아까 거울을 닦느라 책상 위에 올려 놓았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품 안에서 무언가 매끈한 게 잡혔다. 리브는 자신의 손에 들린 새까만 거울을 보고 눈을 깜박였다. 이건 자신의 거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하니 리브는 일단 그 거울을 쓰기로 했다.
잔뜩 경계어린 표정으로 화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여닫은 리브는 충격에 손에 들린 거울을 떨어뜨릴 뻔했다. 세면대가 있어야할 곳에는 사람 하나가 내려갈 수 있을 만큼 굵고 커다란 수도관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곳이 바로 비밀의 방의 입구이리라. 그 순간 작은 칸에서 나는 울음소리가 리브의 정신을 일깨웠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바실리스크가 나오기 전에 어서 이곳을 나가야 해.
“머틀!”
리브는 머틀이 있는 칸을 똑똑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흐느끼는 소리가 멈추고 앙칼진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칸을 쓰도록 해! 여긴 내 자리니까!”
리브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쾅쾅 두드렸다. 머틀은 그 소음에 화가 났는지 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다른 칸을 쓰라고…… 브릴리언트 뭐야!”
머틀은 얼굴을 구기며 문을 닫으려 했지만 리브가 그것을 제지했다. 이 작은 몸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머틀은 문을 못 닫고 끙끙거려야만 했다. 결국 문은 활짝 열리고 말았다.
“너 이거 안 놔?”
“여기서 나가야 해. 당장…….”
“시끄러워!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내가 우는 것을 보고 너도 날 놀리고 싶었어?”
리브는 머틀의 손에 거울을 쥐어주었다.
“이 거울로 시야를 확인하는 게 좋을 거야. 이 근처에 무언가가…….”
“이 나쁜 계집애야! 내가 못생겼다는 걸 이 거울로 직접 보라는 거야 뭐야!”
머틀은 리브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은 채 쥐어준 거울을 확 집어 던졌다. 하지만 두 소녀 모두 거울이 바닥에 떨어져서 깨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머틀! 여기는 위험해. 일단 여기를 나가자. 응?”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 뻔뻔한 계집애!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찾아와?"
머틀은 앙칼진 목소리로 리브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리브는 발을 동동 굴리며 머틀을 일단 화장실에서 끌어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조곤조곤 습격 사건을 일깨워주며 요즘 괜히 이곳이 제한구역이 된게 아니라고 알렉스가 습격당한 장소 근처라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설득력 있는 말을 해보았지만 머틀은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머틀의 하도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리브는 뒤 쪽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듣지 못했다.
[……말이야!]
[죽여 버릴 거야. 나를 건드렸어.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버릴 거야.]
[……당장…….]
두 여학생의 뒤편에서 쉭쉭거리는 소리가 화장실을 가득 울리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리브는 아무 것도 듣지 못한 채 여전히 머틀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머틀, 어서 이곳을 나가야만 해! 요즘 습격사건이 한창이잖아! 이런 외진 곳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시끄러워! 내가 네 말 따위를 들을 것 같아?”
“머틀, 제발!”
리브는 난감한 상황에 발을 동동 굴렸다. 그가 벌써 바실리스크를 꺼내지는 않았겠지? 오, 안 돼. 머틀은 리브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고까운 듯 이제는 화장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다고 패악을 부리고 있었다. 리브가 그녀를 기절시켜서라도 끌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품속의 지팡이를 꺼내는 순간. 내내 리브에게 소리를 지르던 머틀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리브는 지팡이를 툭 떨군 채 멍하니 눈앞의 여학생을 응시했다. 머틀은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몸이 뻣뻣하게 굳는 듯 싶더니 이제 축 늘어져 스르르 자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리브는 지팡이를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일으켜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머틀? 머틀!!”
“…….”
“머틀! 오, 제발……. 아아, 안 돼!!”
눈을 부릅뜬 채로 축 늘어진 머틀을 보며 리브는 공포를 느꼈다. 설마 죽은 거야? 그때 초점 없는 머틀의 눈동자 속에 무언가 비치고 있었다. 바실리스크의 것인 굉장히 큰 노란 눈 하나였다. 왜 다른 한 쪽 눈은 감고 있는 걸까 의문을 갖기도 전에 리브의 의식이 끊겼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설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쁜 리브 그려주신 예은하랑님, 낭랑낭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추코도 감사해요!
* 많은 분들이 답답해하시는 것 같은데 우선 저는 질질 끌고 있지 않습니당! 꼭 필요한 과정이고 짚고 넘어가야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이 둘을 한계까지 몰고갈 겁니다 헿
* 다음 편이 이번 챕터의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다음편을 쓰기위해 지금까지 달려왔을지도 모르겠네요^.^
독자님들 남은 연휴 잘 보내시고 좋은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