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5 / 0115 ----------------------------------------------
Chapter 14. 돌이킬 수 없는
그 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습격사건은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점점 알렉스가 습격을 당한 일을 불행한 사고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교수들은 맨드레이크 회복약이 어서 만들어져 알렉스가 깨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리브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아니야. 끝나지 않았어.”
크리스는 그 기대를 무참히 깨버리는 양 습격은 끝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더 이상 습격이 일어나지 않잖아. 멈춘 지도 꽤 됐어.”
내 모진 말에 그가 흔들리기라도 한 걸까. 리브는 자신의 생각에 실소를 뱉었다. 미련이란 참으로 무섭다. 또 다시 덧없는 기대를 하게 만드니까.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걸까. 어쩌면……. 리브는 그 생각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그는 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어.
“머틀. 그녀가 죽지 않았잖아.”
“…너 지금 그녀가 죽기를 바라는 거니?”
리브는 크리스를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빤히 응시하다가 날카롭게 말했다.
“크리스 넌 그놈의 원작을 맹신하는 태도를 버리도록 해.”
“하지만 모든 게 원작대로…….”
“지금 이렇게 습격이 멈춘 걸 보면 모르겠어?”
리브는 이제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달갑지 않아 보였다. 사실 이제 원작 이야기만 들어도 지긋지긋했다. 그놈의 원작이 뭐라고 이렇게 나를 힘들게 만들어. 아아, 차라리 몰랐더라면…! 이래서 아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리들이 습격을 관둘 리가 없잖아. 그는 나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그가 너를 죽이고 싶어 할 이유가…….”
리브는 말을 뚝 멈췄다. 그 말에 부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리들은 이미 독사가 된 나기니를 이용해서 크리스를 한 번 죽이려고 했었다. 리브가 막아내서 미수로 끝났지만 리들은 크리스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비밀의 방을 열었고, 그 안에 있는 바실리스크를 다루고 있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그것을 이용해 크리스를 죽이고도 남았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는 것일까. 그 순간 리브는 어떠한 가정에 당도했다. 어쩌면… 지금 자신이 이렇게 크리스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그를 자극할 지도 몰랐다.
“거봐, 리브 너도 부정 못 하겠지? 그는 나를 죽이고 싶어 한다구.”
가장 먼저 습격당한 알렉스는 리브와 친한 후배였다. 그리고 리들이 죽이려고 했던 크리스는 리브와 친한 친구였다.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였다. 왜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크리스. 당분간 우리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겠어.”
리브의 말은 너무 뜬금없어서 크리스는 곧바로 의문의 감정을 내비쳤다.
“어째서? 왜?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의 안전을 위해서야.”
“뭐?”
리브는 입술을 달싹 거리다가 간신히 내뱉었다.
“내가 너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그를 자극하고 말 테니까.”
크리스는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와 그녀는 관계를 끊었는데…!
“그러면 넌 위험에 처하지 않을 거야. 일단 내 말대로 해. 이번 학년이 끝날 때까지만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한다고 리들이…….”
“그리고 다음 학년에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냥 권유일 뿐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없어.”
이번에야말로 크리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표정이 되었다.
“왜 그렇게 리들을 신경 쓰는 거야?”
크리스의 말에 리브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너를 신경 쓰지 않아. 이건 단순한 나에 대한 적의 때문이라구.”
“그 적의는…….”
나로 인한 거란 말이야. 리브는 그 말을 뱉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굉장히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크리스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말했다.
“못 들은 걸로 할 게. 마음을 굳게 먹는 게 좋아, 리브.”
*
알렉스가 당한 일은 정말로 누군가가 질 나쁜 마법을 건 불행한 사고로 끝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사고가 잊혀질 즈음, 또 한 번의 습격이 일어났다. 아니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렇게 1시간 후의 미래에서 온 크리스가 그 말을 전하고 있었다. 그는 아놀드가 돌이 되어 굳어진 것을 본 첫 목격자였는데 그 자리에서 곧바로 시계를 한 바퀴 돌렸다고 했다. 리브는 혼란스러워졌다. 어째서 아놀드 위즐리가 표적이 된 거지? 리브는 리들이 희생자를 정한 그 기준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졌다. 내가 기준이 아니었던 건가. 리브는 혼란을 애써 잠재우고 크리스의 상황을 파악했다.
“너 타임터너(Time-Turner)를 썼단 말야? 하지만 그랬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아놀드가 습격을 당했는데 어떻게 내가 가만있겠어!”
항상 천진난만하던 크리스의 얼굴은 울분이 가득해보였다.
“잠깐만. 지금의 너는 뭘 하고 있어? 만약 미래의 그니까 너랑 마주치기라도 했다가는…….”
“마주칠 일 따위 없어.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한 번만 돌린 거고…… 혹 마주친다고 해도 나는 모든 상황을 알아차릴 거야.”
리브는 불현 듯 나타난 크리스에게서 비장함을 느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하려고? 리브는 그렇게 묻는 대신 청년을 오롯이 응시할 뿐이었다. 크리스가 울분을 삭히며 입을 열었다.
“리들은…….”
리들. 그래 톰 리들. 모두 그가 원흉이었다.
“나를 압박하고 있는 거야. 점점 나로 범위를 좁히고 있어 .그 자식은 아놀드를 통해서 다음은 내 차례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악질 같으니라고.”
크리스는 목소리에는 리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알렉스를 통해 바실리스크의 위력을 시험해보고…… 아놀드를 통해 나에게 경고를 한 거야.”
리브는 자신의 가정이 어긋났음을 깨달았다. 역시 내가 기준이 아니었던 건가. 그냥 애초에 크리스를 노리고……. 나기니로 실패하니 이제는 바실리스크를 이용할 심산인거야?
“그리고 다음은 내 차례야. 정말로. 그런 예감이 강하게 들어. 난 어쩌면 죽을 지도 몰라.”
아아……. 결국은 그리 되는 것이었나. 리브는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 하지만 리브 역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기니는 막을 수 있었지만 바실리스크는 막을 수가 없었다. 아니, 리들 자체를 막을 수가 없었다. 무력감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굳어진 아놀드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시간을 거스르는 게 무모한 짓이라는 건 알지만……. 어차피 이래나 저래나 죽을 지도 모르는데 발악이라도 해봐야하지 않겠어?”
크리스의 자안이 어떠한 광기로 번뜩였다. 그는 정말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았다.
“난 아놀드를 구해내고 리들의 악행을 여기서 끊어낼 거야. 이 모든 것들이 리들의 짓임을 널리 알리고 그를 퇴학시키겠어. 그렇게 볼드모트의 싹을 잘라 놓을 거야.”
“…!”
“비밀의 방을 까발리겠어. 2층 여자 화장실이 그 입구라고 모든 것을…….”
“크리스. 네 심정은 알지만…… 그 말을 누가 믿어주겠어.”
비밀의 방은 모호한 전설과도 같았다.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다른 창립자들 몰래 성안에 만든 숨겨진 방이라. 자신의 후계자 외에는 아무도 열지 못하도록 봉쇄해놓은 방. 그 후계자만이 비밀의 방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끔찍한 것을 풀어 호그와트에 있을 가치가 없는 학생들을 제거한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비밀의 방을 찾고자 수없이 노력해왔지만 성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군가는 이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취급하기도 했다. 비밀의 방은 그리핀도르의 검이나 래번클로의 보관처럼 베일에 싸인 것이었다. 그런 게 그게 학교 어딘가에, 그것도 여자 화장실에 있다니. 누가 그걸 믿는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쩌면 살라자르 슬리데린은 그걸 노렸을 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찾아내지 못하도록.
“리브 네가 있잖아.”
크리스는 리브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파셀통그를 쓸 줄 아는 네가 있으면 비밀의 방에 대한 증명이 가능하지.”
그 말은 즉.
“그리고 다른 교수들은 몰라도 덤블도어 교수 하나 쯤은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겠어? 그거면 돼.”
나에게 그를 밀고하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 호그와트 안에서 파셀통그를 쓸 줄 아는 사람은 나와 그 뿐이니까. 나라면 가능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덤블도어 교수님이라면 분명 허무맹랑할지 모르는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지도 몰랐다.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리브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도와줘. 나와 함께 가자.”
“나는…… 끼어들고 싶지 않아.”
그 순간 미세한 긴장감에 물들어있던 크리스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그리고 내가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잖아. 난 그런건 딱 질색이야. 싫어.”
“내가 변호해 줄게. 그러면 돼.”
리브는 크리스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가 그 정도로 궁지에 몰릴 것 같니? 넌 정말 리들 선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비밀의 방을 증명할 수 있는 네가 있잖아! 그리고…….”
“그가 내가 밀고하면 밀고하는 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것 같니? 곧바로 나한테 뒤집어씌울 사람이야! 정말 모르겠어?”
리브가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크리스는 그녀가 괴로운 이유가 범인으로 몰릴 위험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체 넌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묻고 싶어졌다.
“밀고한 나까지 바로 용의선상에 올려 버릴걸? 너도 나의 공범으로 함께 몰리겠지! 지금 네가 하는 짓은 너는 물론이고 나까지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거야.”
크리스의 간절한 얼굴을 보던 리브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겨우겨우 입술을 뗐으나 이내 달싹거리다가 다시 닫아버리기를 여러 번. 결국은 그 거절의 말을 뱉어내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난 너를 도와줄 수 없어.”
리브의 얼굴은 요연하게 굳어있었다. 내 손으로 그를 고발하라고……. 내가 어떻게 그를 배신해. 하지만 리브의 그러한 생각에는 심각한 어폐가 있었다. 배신,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는 것. 현재 리들과 리브에게 그러한 것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둘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적어도 리브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깨닫지 못한 게 있다면 ‘미련’이었다. 그것도 몹시 지독하고 극심한 미련.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리브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는 정말 리들한테 역으로 당할까봐 나의 부탁을 거절하는 거야? 다른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리브의 고요한 얼굴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만약 다른 이유가 있는 거라면 난 너를 정말…….”
“없어, 그런거. 그보다 시간이 얼마 없을 테니 다른 방법을 구상해보던가 해. 난 비밀의 방에 한 발자국도 가지 않을 거야. 말했지? 난 더 이상 원작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크리스는 리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기묘하게도 간절한 부탁을 거절당한 것 치고는 묘하게 느긋해보였다.
“그래, 난 네가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
크리스는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그래, 여전히 너는 리들을 놓지 못하는 구나. 크리스는 리브가 리들에게 지독한 미련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어쩌면 그 이상 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시계를 한 바퀴 돌린 거야. 역시 내 판단이 옳았구나.”
아놀드가 습격을 당하기까지는 앞으로 10분이 남아 있었다. 손목시계를 힐끗 본 크리스는 입술을 비틀었다.
“최악의 상황에는 네가 리들에게 모든 것을 알리고 나를 궁지로 몰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너를 지금 이 시간까지 붙잡고 있어야만 했어.”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기묘해졌다. 크리스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 있는 타임터너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앞으로 시계를 다시 한 번 돌리고 덤블도어 교수님을 찾아갈 거야.”
똑똑한 리브는 크리스가 앞으로 무얼 할지 곧바로 알아 차렸다. 일부러 그는 방해꾼이 될 지도 모를 내가 허튼짓 못하도록 이렇게 붙잡아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다시 한 시간 앞으로 돌아가서 덤블도어 교수님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가 어디서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지 경고한다면……. 잠복해서 현행범으로 잡을 수 있으리라. 아니 지금 어딘가에 또 다른 크리스가 덤블도어 교수님과 함께 이미 잠복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리브는 허탈한 듯 헛웃음을 뱉었다. 크리스는 그를 현행범으로 잡아서 퇴학시킬 생각인 것이다. 완벽하게 그를 궁지로 빠뜨리게 되리라. 이번에는 톰 리들이라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참으로 똑똑한 계획이었다. 아놀드가 습격을 당한 모습을 보고도 침착하게 머리를 굴려 이런 계책을 짜내다니……. 리브는 어째서 모자가 크리스를 래번클로에 넣을까 고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만 있으면 너는 현행범으로 잡혀 들어가는 리들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는 습격사건의 범인으로서 퇴학을 당하고 말겠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이미지가 무너짐은 물론이거와 최악의 상황에는 지팡이까지 부러뜨리고 쫓겨나리라. 그럼 그는 어떻게 되는 걸까? 크리스의 얼굴은 미세한 승리감이 물들어져 있었다. 그는 리브를 흘깃 보다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네 도움은 필요 없어.”
“…….”
“잘 지켜보도록 해. 내가 어떻게 원작을 바꿔놓는 지.”
크리스는 품 안에 있는 타임터너를 꺼내 쥐었다. 리브의 시선은 청년의 손에 들린 타임터너로 향해있었다. 아주 작은 모래시계가 매달려있는 저것이 바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시계라고……. 저게 없으면……. 순간 리브의 눈빛이 변했다.
“너는 아무 것도 하지 못 할 거야.”
크리스는 자신의 계획이 참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리브는 결국 리들을 고발하지 못했고 최악에는 자신을 막아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너는 그냥 이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돼. 네가 원하던 대로 계속 방관하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렇게 크리스가 여유로운 태도로 모래시계를 한 바퀴 돌리려고 할 때였다.
리브가 크리스의 손에 들린 타임터너를 낚아챈 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 소녀의 얼굴은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울 것 같은 그런 표정으로 리브는 시계를 돌리려는 크리스의 시도를 막아버렸다. 크리스는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잠깐 멍 때리더니 소녀의 손에 들린 모래시계를 보고서야 사태파악이 된 듯 했다. 청년은 방금의 친절한 태도는 싹 지우고 돌변하여 빽 소리쳤다.
“리브!!”
리브 역시 자신의 행동에 깜짝 놀란 듯 했다. 소녀는 손에 들린 모래시계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정말 미친게 틀림없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크리스가 한걸음 다가왔지만 리브는 한걸음 물러섰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인 결과였다. 리브의 얼굴은 몹시 괴로워보였다. 크리스가 얼마나 원망할지. 얼마나 많이 미워하게 될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나를 맹렬하게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장…… 그거 이리 내!”
그가 퇴학당하고 밑바닥까지 망가지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미련이라는 것은 참 무섭게 작용해 리브를 이 상황까지 몰아버렸다. 결국 리브는 리들을 놓겠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한 것이다. 크리스가 지금까지 두려워했던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너 정말 미쳤구나?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크리스는 무력을 행사하려는 듯 다시 리브에게 성큼성큼 다가왔으나 소녀는 곧바로 뒷걸음질 쳤다. 정말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리브 역시 어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크리스가 지팡이를 빼어들고 소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씨…….”
크리스가 소환 주문을 외우려는 순간 리브는 모래시계를 바닥으로 세게 집어 던졌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모래시계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는 분명 빼앗기느니 아예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리고자 한 뜻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물론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으나 그 판단은 똑똑하다 못해 영악했다.
“아,안 돼…….”
크리스의 해사한 얼굴에 절망감이 가득 맺혔다. 당연히 그는 펄펄 뛰었다. 항상 천진난만하던 보랏빛 눈동자는 맹렬한 분노를 뿜어내고 있었다. 크리스는 격노하다 못해 이 상황이 기가 막힌 듯 했다. 청년은 소녀에게 무시무시한 독설을 뱉기 시작했다.
“이 미친 계집애야. 네가 지금 얼마나 어마어마한 짓을 저지른 지 알기나 해?”
크리스는 리브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소녀 역시 자신이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새록새록 현실감이 생기고 있었다. 정말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이다.
“네가 모든 것을 망쳐놨어! 이래놓고 뭐? 원작에 관여하지 않아? 리들을 완전히 놓았다고?”
리브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저 산산조각 난 모래시계를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짓을 저지른 자신의 손도 함께. 크리스는 리들을 앞에 둔 양 찢어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리브의 손을 응시했다.
“아니! 거짓말이야. 너는 리들을 놓지 못했어! 항상 너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지.”
“…!!”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어?”
“…미안해.”
리브의 벽안이 촉촉해졌으나 끝끝내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리브는 자신이 눈물을 흘릴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리고 크리스는 거의 울 듯한 리브에게서 조금의 동점심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화는 더욱 더 치솟는 듯 했다. 청년은 소녀의 어깨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청년의 얼굴에는 배신감과 원망이 가득했다.
“관계를 끊겠다며! 이제 절대로 상관하지 않을 거라며!! 엮이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네 입으로 그렇게 말해놓고 지금 이게 뭐냔 말이야!!!!”
“…….”
“그러면 최소한 나를 방해하지는 말아야 하는 거잖아!!!!”
크리스는 고래고래 악을 쓰듯 소리를 질러댔다. 반쯤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으므로. 그리고 앞으로 5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청년은 탁 리브를 밀어내더니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쏘아보았다. 씩씩거리던 청년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추종자가 되지 않을 거라고?”
리브는 눈물을 꾹 참아내려 애썼다.
“너는 이로서 추종자로서의 한 걸음을 내딛은거야.”
하지만 계속해서 눈앞이 흐려졌다.
“리들을 놓겠다고? 이대로라면 너는 절대로 리들을 놓지 못 할 거야! 네가 부숴버린 이 타임터너가 바로 그 증거야.”
크리스는 지금까지 리브에게 절대 말하지 않으려 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만큼 배신감이 컸다는 뜻이리라. 더 이상 그녀를 배려하고 이해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 그 범위를 넘어섰다. 정말 치가 떨렸다.
“네가 아직 자각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알려주는데……. 너는 리들에게 매료되다 못해 푹 빠져 있어.”
크리스의 말투는 몹시 신랄하고 모질었다. 그는 리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기로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사랑에 눈이 멀었으니 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 뭐가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항상 리들에게 향해있던 그 경멸의 눈빛은 이제 리브를 향해있었다.
“하지만 너는 결코 그 감정에 보답 받지 못 할 거야. 너는 리들에게 전리품일 뿐이니까. 그래, 평생 그렇게 전리품이며 추종자로 잘 살아봐.”
크리스는 마지막으로 리브에게 촌철살인을 날렸다.
“그리고 리들이 너에게 이 이상의 뭔가를 느껴봤자 그건 성욕일 뿐이야. 어쨌든 그도 남자니까. 그래, 그렇게 리들에게 농락당하다가 질리게 되면 버려질 테지. 최악에는 그의 손에 죽을 거야. 그럼 더 이상의 원은 없겠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내어주다니. 이 얼마나 눈물겨운 충성이고 헌신인지.”
리브의 미세하게 떨리는 작은 몸과 파리한 안색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 모습을 보고도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전에는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곤 했던 청년이었으나 이제는 조금의 연민조차 일지 않았다. 이 순간 크리스에게 눈앞의 소녀는 천사의 탈을 뒤집어쓴 악마와도 같았다.
“그게 너의 미래야. 비참하고 끔찍하기 그지없는.”
크리스의 말들은 리브의 마음을 깊숙하게 할퀴다 못해 파고들어 깊은 상흔을 만들어냈다.
*
크리스는 주방이 있는 지하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아놀드는 퀴디치 연습이 끝나고 다른 선수들을 먼저 보낸 뒤 주방에 들렸다. 거기서 음식을 가득 받아서 나온 후 지하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습격을 당하고 말았다. 리들을 막을 수 없다면 아놀드가 돌이 되는 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하에 도착한 크리스는 자신이 한 발 늦었음을 깨달았다. 이미 붉은 머리칼의 인영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저건…… 나…?”
아놀드의 근처에 서 있던 은발의 남학생이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남학생은 자취를 감추었다. 잠깐 멍 때리던 크리스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웃기 시작했다. 마치 실성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아놀드가 돌이 된 모습을 보았구나. 시간을 돌린다고 해서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는 거였어.”
만약에 시간을 돌려서 막아냈다면 애초에 아놀드가 돌이 된 모습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는 시간을 돌렸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시간을 돌리든 말든, 아놀드가 습격을 당하는 일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시간을 돌려서 막을 수 있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는 거였다. 지금 또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자신은 또 무언가에 방해받고 똑같이 이 상황을 조우하게 될 것이다. 아아, 이게 바로 시간의 신비함과 오묘함이로구나. 온몸으로 무력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원작대로 흘러가는 것이었나.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리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정해진 것이었다.
“…!”
그때 크리스는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등골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싸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크리스는 심호흡을 하며 품안에서 거울을 꺼내들었다. 청년은 바실리스크가 오고 있다는 것을 벨라의 예리한 감각으로 깨달았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는 거울로 시선을 고정했다. 눈을 잘못 두었다가는 바로 골로 가리라.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내딛던 크리스는 거울로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다. 어서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야 해. 하지만 크리스는 자신이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러나 이대로 당하고만은 있지 않을 것이다.
청년은 품에서 양피지 조각과 깃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급박하게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실리스크로 추정되는 무언가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쉭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는 완전한 문장을 적는 것을 포기하고 핵심만 적은 후 깃펜을 품에 넣고 양피지 조각을 조그맣게 접어 손에 꽉 쥐었다. 그리고 청년은 자신의 예감대로 지하를 벗어나지 못했다.
[the chamber of secrets riddle monster is]
============================ 작품 후기 ============================
저 글귀에서 문법을 따질 필요는 없어요. 크리스가 급박하게 적었기 때문에 하나도 안 맞음. 그리고 저걸 어찌 해석할 지는 다음 편에서..!
그럼 독자님들 설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