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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돌이킬 수 없는
래번클로 3학년 남학생이 2층 복도에 돌처럼 굳어서 쓰러져 있었더라. 어젯밤에 있었던 습격은 전교에 알음알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젤러 부인은 리브를 기어이 병동에 입원시켰다. 발목은 이미 낫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사는 그녀가 큰 충격을 받았으니 며칠간 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브는 젤러 부인과 싸울 힘도 없어서 그리하겠다고 대답하고 얌전히 입원했다. 소녀의 기운 없는 얼굴이 어느 한 지점을 향해있었다. 그곳에는 알렉스 애컬리가 두 눈을 흐리멍텅하게 뜨고 굳은 채로 누워있었다. 젤러 부인은 그 시선을 눈치 채고 알렉스가 있는 침대의 커튼을 쳐버렸다.
“리브!”
크리스는 리브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동으로 달려왔다. 리브는 정말로 많이 아파보였다. 소녀는 힘없이 웃으며 친구를 반겼다.
“크리스. 수업을 여러 개 듣느라 바쁠 텐데…….”
"아놀드한테 들었어. 어제 새벽에 병동에 갔다며. 그리고…….“
크리스는 아픈 리브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반장인 친구를 둔 덕분에 어젯밤에 있었던 습격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청년의 눈에 커튼이 쳐진 한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혹시… 어젯밤 일…… 알고 있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브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알렉스가…… 알렉스가…….”
알렉스 애컬리라면 크리스도 알고 있었다. 리브가 친하게 지내는 기숙사 후배였다. 톰 리들이 그를 습격 대상으로 삼았단 말인가? 어째서? 왜 내가 아니라 그를? 리브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하지만 분명 자신이 우선순위일 텐데…! 크리스는 혼란스러워졌다. 만약 습격을 받게 된다면 자신일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아니라…….
“그 애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리들 선배가 알렉스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아마 알렉스는 물에 비친 바실리스크의 눈을 보고 돌이 되었으리라. 피브스가 물장난을 쳐서 바닥에 물이 흥건했던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만약 물이 없었더라면…… 리브는 하마터면 알렉스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서늘해지다 못해 공포에 질렸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야. 왜!
“그때 알렉스는 징계를 받고 있었어. 약초학 숙제를 안 해와서 비어리 교수님이 직접 손수 물을 닦아내라는 벌을 줬나봐. 그런데 그 애가 그렇게 됐으니……. 비어리 교수님은 몹시 슬퍼하고 계셔. 그때 자신이 징계를 주지 않았더라면 알렉스가 그렇게 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좀 더 빨리 알았어야 했어……. 바실리스크의 소리를 전에도 들었는데……. 내가 그냥 넘겨버렸어. 환청이라고 치부해버렸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리브를 보며 크리스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아니야, 그건 리브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걸 알았다한들…… 그래도 그는 습격을 감행 했을 거야. 어쩌면 섣불리 막아섰다가 네가 그 희생자가 됐을지도 몰라. 잘못한 것은 네가 아니라 리들이야.”
“어째서……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걸까…! 알렉스가 무얼 잘못 했다고…! 이제 어떡하면 좋아…….”
리브는 그렇게 한참동안 울었다.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것 같았다. 예전과 같은 사이였다면 그를 막을 수 있었을까. 이 대답은 잔혹하지만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막지 못했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으므로.
*
“올리비아.”
처음이었다. 그날 슬러그혼 교수의 방 앞에서 당신을 믿지 않겠다고 일종의 관계를 끊는 선언을 한 이후로…… 그가 나를 부른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아니, 그가 내 이름을 부른 것 자체가 참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묘하게 설렌 것도……. 리브는 자신이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 느낌도 정말 간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어떤 얼굴을 하고 그를 마주 보았는지 조차 기억이……. 그냥 얼떨결에 그 시간이 지나갔던 것 같다. 나는 그 때에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거.”
그는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그가 내게 내밀어 보인 것은 내가 언젠가 어딘가에 흘려서 잃어버렸던 머리끈이었다. 에밀리에게 선물 받았던 핑크빛 새틴 소재의 끈이 돌돌 말려서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한동안 그것을 찾다가 포기 하고 잊어버렸었는데 왜 그가 갖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이 머리끈으로 나는 자주 머리를 묶었다. 그리고 서투른 내 솜씨를 보고 그는 핀잔을 주며 직접 내 머리를 묶어주곤 했다. 그랬었다. 그는 나에게 그리 했었다.
“돌려줄게.”
리들은 리브의 손에 그것을 억지로 쥐어주었다. 돌돌 말려있던 끈이 풀려 바닥에 흘러내렸다.
“그리고…….”
리들은 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하지만 없는 모양인지 이내 그것을 관두었다.
“아니야, 됐어.”
리브가 리들을 빤히 응시하자 청년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했다.
“그것뿐이야.”
리들이 돌아서려는 순간. 리브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랬어요?”
그 순간 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빙그르르 몸을 돌려 리브를 보았을 때, 그는 원망과 경멸이 가득한 소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항상 따스함이 가득했던 푸른 눈동자가 또다시 리들을 책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책망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이 무슨 짓을 한 지 알아요.”
“…….”
“왜…… 어째서…… 알렉스한테 대체 왜 그랬어요?”
순간 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리브의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이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를 힘껏 뿌리쳤다.
“놔요!”
“다른 데서 얘기 해. 따라…….”
“싫어! 나는…….”
리브의 거부에 리들은 리브의 왼쪽 손목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리브는 그 악력에 얼굴을 찌푸리며 뿌리치려 애썼지만 남자의 힘을 이기는 것은 무리였다. 리브가 힘을 쥐면 쥘수록 리들은 더욱 더 악력을 높였다.
“이거 놓으란 말이야!”
리브는 리들을 떨쳐내려 했지만 리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그 반항을 제압했다. 결국 리브는 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리들은 외진 복도에 도착하고 나서야 리브를 놔주었다. 리브는 리들의 독단적인 행동에 몹시 화가 난 듯 했다. 소녀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리들이 그런 소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차갑게 얼굴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거기서 얘기할 사안이 아닌 것 정도는 알지 않…….”
하지만 리들을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리브의 작은 손이 리들의 뺨을 세게 내리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리들의 고개가 휙 돌아가며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리브가 크리스를 때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파공음이 복도를 가득 울렸다. 정말 온 힘을 다해 내리쳤는지 소녀는 살짝 비틀거리기 까지 했다.
곧바로 역정을 낼거라 생각했던 리들의 반응은 몹시 고요했다. 그런 청년의 잘생긴 얼굴에는 분노도 노여움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이 멍했다. 흡사 넋이 나간 것 같기도 했다. 마치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리브는 벽안을 깜박이며 리들의 뺨을 때린 자신의 손을 응시했다. 자신이 저지른 짓에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브는 잠깐 입술을 깨물다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당신과 얘기를 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요. 더 이상 내게 무례하게 굴면 뺨 한 대로 끝나지는 않을 거에요.”
리브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리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 순간 리들이 멍하니 흑안을 깜박였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감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리브는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을 뱉기 시작했다.
“당신이 비밀의 방을 열고 습격을 시작한 순간…….”
리들의 귀에 리브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우리 사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거에요.”
리브의 벽안에 잠깐 슬픔이 잠겼다가 사라졌다.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어요. 우리 사이에 남은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마치 그 것은 자신에게 다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려던 리브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비밀의 방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요?”
리브는 솟아오르는 무모한 패기를 애써 억누르지 않았다.
“2층 여자 화장실, 뱀이 새겨진 수도꼭지를 파셀통그로 열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 안에 바실리스크가 있다는 것도. 그걸 당신이 조종해서 습격을 행했다는 것도.”
나중에 기숙사로 돌아가서 리브는 무슨 용기로 뺨을 올려붙이고 그런 말까지 지껄인 건지 헛웃음을 뱉어야만 했다.
“내 입을 막고 싶어요? 그러면 날 습격하던가……. 아마 깔끔하게 죽여야 할 거에요. 하지만 나를 죽이고 호크룩스를 만든다면…….”
“…….”
“나는 죽어서 원혼이 되어서라도 당신을 저주할거에요. 반드시 파멸하라고.”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목소리는 증오와 미움이 가득 차있는 것 같았다. 항상 예쁜 말만 하던 소녀에게서 이 같은 무시무시한 악담이 나올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리들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내 말에 당신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도 알아요. 어차피 내가 저주 하지 않아도 당신은 언젠가 파멸하게 될 테니 상관없겠죠.”
“너는 지금 무언가를…….”
리들이 간신히 입술을 움직여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리브는 매몰차게 그 시도를 끊어놓았다.
“내가 말했죠. 이제 당신을 믿지 않을 거라고.”
그 말은 리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 상흔을 만들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듯 욱씬거림을 느끼며 리들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리브는 잠깐 리들을 원망 섞인 눈으로 쳐다보다가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리들이 그렇게 무방비하게 당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이런 무시무시한 악담을 들은 것은 리들에게 현실감마저 앗아갔다. 무엇보다도 그런 짓을 한 상대가 리브라는 것이 리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할 뿐이었다.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리브는 아예 리들의 생각을 들어줄 생각도 없어보였다. 설사 들었다고 해도 믿지 않았으리라. 리들은 문득 맞은 뺨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 거울을 보면 볼썽사납게 부어올라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보다 리브의 저주 섞인 악담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너무 아팠다. 많이. 마음이 아려왔다. 너무 많이 아팠다. 그런 심한 고통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리고 리들은 육체적 고통과 함께 정신적 고통을 선사한 이를 쫓아가 응징 할 수조차 없었다. 이것 또한 난생 처음이었다.
*
기숙사로 돌아가는 내내 리브는 손바닥의 화끈거림에 손을 계속해서 쥐었다가 폈다. 맞은 것은 그인데 어찌 내가 이리 아픈 건지. 손이 아픈 건지 아니면 다른 데가 아픈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을 때린 손바닥이 몹시 붉었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가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눈가도 몹시 붉어졌다. 손이 젖기 시작했다. 얼굴이 몹시 축축했다. 교복치마가 젖어있었다. 그리고 계속 젖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그렇게. 리브는 붉은색에 젖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성장아이템 선물해주신 르타타님 감사드립니다!
* 알렉스 애컬리. 예전에 리브가 나기니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 파셀마우스임을 알아차린 후 영악하게 호그스미드를 구경시켜달라는 핑계로 데이트 신청을 했다가 리들에게 오블리비아테를 먹었던 아이입니당. 리브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전적이 있지만 주제파악 할 줄 알고 영리한지라.. 리브와 친하고 나름 아끼는 후배이기도 하지요. 동글동글한 귀염상 외모가 특징! 이제 기억 나시죠??
* 여러분 내가 본게 뭔가 하고 눈을 의심하실 필요 없으세요. 리브가 리들 뺨 때린거 맞음여ㅋㅋㅋㅋㅋㅋ....
독자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