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83화 (83/115)

0083 / 0115 ----------------------------------------------

Chapter 14. 돌이킬 수 없는

“수탉이 전부 비명횡사하고…… 거기다가 요즘은 거미들이 학교로부터 도망치고 있어.”

리브 역시 수십 마리의 거미들이 어디론가 바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얼마 전에 에밀리가 거미들의 대이동을 봤다고 진저리를 치던데 크리스도 봤다는 말인가? 이건 마치 학교 안에 있는 모든 거미들이 학교로부터 달아나는 것 같아 보였다.

“리들이야. 그가 움직인 게 틀림없어.”

크리스의 말에 리브의 고운 얼굴이 찌푸려졌다.

“너 내가 리들 선배 얘기는 하지 말라고…….”

“리브, 내가 너에게 말했었지. 리들은 이번 학년에 비밀의 방을 열고 머틀을 죽일 거라고.”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파삭파삭 굳었다.

“비밀의 방 안에는 바실리스크라는 고대 생물이 있어.”

“그 정도는 나도 기억해.”

“수탉의 울음소리는 바실리스크에게 가장 치명적이지.”

리브의 눈이 커졌다. 잠깐만…… 비밀의 방에 바실리스크가 있고. 그 바실리스크는 수탉의 울음소리에 치명적이라…… 그런데 바실리스크의 큰 천적인 수탉이 이상하게도 전부 하룻밤에 죽어버렸다…….

“그리고 거미들은 바실리스크를 무척이나 두려워하지. 왜 거미들이 학교를 빠져나가겠어? 학교 안에 바실리스크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리야.”

“…!!”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창백해졌다. 소녀의 머릿속에 무서운 가정과 추측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리들은 비밀의 방을 열었어.”

결국 당신은 원작대로 비밀의 방을 열고 말았나. 리브는 허탈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원작대로 흘러가는 구나.

“그리고 바실리스크는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그걸 감지한 거미들은 도망가기 시작한 거고! 아라고그가 그렇게 자신을 놔달라고 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어. 그 생물은 예리하게도 학교 안에 있는 바실리스크의 존재를 느낀 거야! 더 일찍 눈치 챘어야 했는데…….”

크리스의 해사한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리브, 조심해. 앞으로 거울을 꼭 갖고 다니고…….”

“크리스 너야말로…… 조심해. 너는 그의 큰 적이야.”

후계자의 적들이여 조심하라. 갑자기 원작에서 읽었던 문구가 떠올랐다.

“그는 너를 몹시 싫어하니까. 만약 습격이 일어난다면…….”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아, 이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가.

“네가 가장 위험해. 그리고 잘못하면 바로 즉사야.”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걸까. 리브의 눈에서 미련과 슬픔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예전과 같은 사이였다면 나는 당신을 막을 수 있었을까. 리브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답은 잔혹할 테니까.

*

리브는 식은땀을 흘린 채 잠에서 깨어났다. 또다. 또 악몽을 꿨다. 요즘 정신적으로 지쳐있어서 그런지 악몽을 꾸는 주기가 짧아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꿈은 기억나지 않았다. 악몽의 여운 탓인지 소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리브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악몽에 대해 기억이 나려는 낌새를 보이자 리브는 곧바로 그 생각을 차단했다. 악몽이 무엇인지 리브는 알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리브는 항상 그렇게 해왔다. 소망의 거울도 외면했던 정신력이었다. 호기심을 억누르는 것은 리브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으윽…….”

리브는 얼굴을 찡그렸다. 오늘 악몽은 질 나쁘게도 강한 두통까지 동반해왔다. 소녀는 오른 손을 들어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현기증에 살짝 비틀거리며 책상으로 다가갔다.

“루모스.”

지팡이에 환한 빛이 켜지며 리브의 책상을 비췄다. 두통약. 두통약이……. 리브는 서랍을 열어 약병을 꺼냈지만 안타깝게도 병은 비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다 먹고 병동에 가서 새로 받아온다는 것을 깜빡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참고 자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들 수가 없었다. 두통이 너무 심했다. 머리를 찌르는 듯한 고통에 리브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젤러 부인을 깨우는 실례를 저지르게 된다고 해도 병동에 가서 두통약을 받아와야할 것 같았다. 젤러 부인은 이걸 예상하고 새벽에라도 오라고 한 걸까. 그렇게 리브는 망토를 하나 들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리브?”

“아, 필리우스 선배.”

휴게실 벽난로 앞에 필리우스 플리트윅를 비롯한 몇 몇 고학년 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잠옷 차림의 소녀를 보고 귀여운지 작게 웃었다. 항상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던 소녀의 잠옷차림은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 리브가 비틀거리자 깜짝 놀란 듯 했다. 필리우스는 빠르게 소녀를 붙잡았다.

“어디 아픈 거니? 식은땀 흘리는 것 좀 봐…….”

“두통이 심해서……. 혹시 두통약 있으세요?”

필리우스는 친구들을 쳐다보았지만 그들도 약을 가지고 있지 않는 듯 했다.

“안되겠다. 리브, 너 얼굴이 창백해. 내가 병동에 데려다 줄게.”

“아뇨, 혼자 갈 수…….”

“가다가 쓰러질 지도 몰라.”

리브는 필리우스의 손에 이끌려 기숙사를 나왔다. 몇 번 씩 비틀거리는 리브를 붙잡아 준 필리우스는 이래도 혼자 가려 했냐며 그녀를 타박했다. 둘은 빠르게 병동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5층에서 순찰을 도는 그리핀도르 반장 아놀드 위즐리와 마주쳤다.

“아놀드, 오늘 순찰은 너야?”

“나랑 리들이야. 아마 그는 밑의 층을 돌고 있을걸.”

“그래, 그럼 수고해.”

둘은 마침내 2층에 도착했다. 리브는 거의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이상하게도 불안할 정도로 두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때 리브의 귀에 얼마 전에 들었던 차갑고 오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죽을 벗겨서, 갈기갈기 찢어서, 죽일 거야.]

리브는 소스라치게 놀라 헉소리를 냈다.

“피,필리우스 선배……. 바,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요?”

“응? 무슨 소리?”

필리우스는 정말 아무 것도 듣지 못한 사람 같았다. 내,내가 또 헛것을 들은 건가? 부르르 떨고 있는 리브를 보며 필리우스가 가엾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브, 어서 병동에 가야겠다. 너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리브의 귀는 그 섬뜩한 소리를 또다시 잡아냈다. 하지만 이제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죽일 거야.]

리브는 자신을 부축하는 필리우스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은 낯선 소리를 들었다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리브는 분명 들었다. 오싹한 그 소리를……. 저번에 헛것으로 치부했지만 헛것이 아니었다.

[나는 죽이고 싶어…….]

하지만 역시 필리우스 선배는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듣고 있었다.

병동에 도착한 필리우스는 젤러 부인을 불러 리브가 많이 아프다고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마침 그녀는 새벽까지 약을 정리하고 있어서 리브의 상태를 보고는 두통약을 가져다주었다. 리브는 멍하니 치료사가 주는 약을 마셨다. 두통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리브, 이번 여름방학에는 꼭 성뭉고 병원에 가 보거라. 알겠니?”

하지만 리브는 치료사의 말에 대꾸할 정신이 아니었다. 아까의 그 의문의 소리로 리브의 머릿속은 꽉 차있었다.

“리브가 많이 아픈가 봐요. 오늘은 여기서 재우는 게 어떨까요?”

“그래, 그게 좋겠구나.”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리브. 잘 자.”

필리우스와 젤러 부인이 나가고 리브는 눈을 감았다. 어째서 나만 듣는 거지? 왜 아무도 듣지 못하고 나만 듣는 거냔 말이야…! 그 순간 리브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크리스의 말이 있었다.

[혹시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하지는 않았어?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고 너만이 듣는 그런 것.]

지,지금이야……. 크리스 나 지금 듣고 있어……. 그리고 전에도 들었어……. 그 순간 소녀의 눈망울에 두려움이 가득 맺혔다.

[그건 파셀통그야. 너는 파셀마우스니까 들을 수 있겠지. 그 목소리가 들리면 당장 도망가. 바실리스크가 움직였다는 소리니까.]

그때 병동 바깥에서 젤러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리브는 덜덜 떨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믿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비밀의 방을 열고 바실리스크를 꺼냈단 말인가? 소녀는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다. 그가 그럴 리 없었다!

리브는 떨리는 몸을 이끌고 병동을 빠져나왔다. 손에 거울을 움켜쥔 채로. 리브가 병동에서 나왔을 때 바깥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그 소음은 복도 끝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저는 리브를 재우고 제 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글쎄 하,학생이…!”

“진정해요, 젤러 부인.”

덤블도어 교수가 목격자인 젤러 부인을 달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란…!!”

잠에서 막 깨서 뒤뚱뒤뚱 나온 슬러그혼이 무언가를 보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알버스! 이게 무슨 일인가! 서,설마 주,죽은 건가?”

“죽지는 않았네. 아직 살아있어.”

치료사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브는 간신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다가 리브는 바닥에 흥건한 물 때문에 미끄러져서 콰당 넘어졌다. 그 물은 오늘 저녁에 피브스가 잔뜩 물장난을 친 흔적이었다. 어찌나 세게 넘어졌는지 그 소리는 복도를 크게 울려 교수들에게 소녀의 존재를 알렸다. 리브는 작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심하게 넘어졌는지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거기 누구… 리브?”

“병동에 있었는데 바깥이 시끄러워서 무슨 일인가 하고……. 무,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리브는 아픈 발목 때문에 절뚝거리며 교직원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교직원들이 리브가 습격의 현장에 접근하는 것을 미처 막기도 전에 소녀는 보고 말았다. 리브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숨을 들이쉰 채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물이 흥건한 복도에 쓰러져 있는 이는 리브가 잘 아는 소년이었다.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아 안 돼…….”

그곳에는 알렉스가 눈을 부릅뜬 채로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