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80화 (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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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돌이킬 수 없는

다음날, 리브는 리들을 외면했다. 마주치고 잠깐 눈동자가 흔들리는 듯 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리들 역시 그런 소녀를 애써 붙잡지 않았다. 둘은 더 이상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등 독설을 뱉으며 기싸움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의 멘토링도 없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공동 기숙사 휴게실에 발길을 끊었던 것이다. 현재 둘 사이의 유일한 접점을 지워버리려는 양 그렇게 멘토링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리브는 리들을 완전히 모른 척 했다. 그리고 리들 역시 리브에게 애써 다가가지 않았다. 정말 둘 사이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그런 둘을 보고 아브락사스와 오리온은 거의 펄쩍 뛰었다. 그 동안 살벌하게 기싸움을 하던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아예 관계를 끊다니? 정말 절교한 거야? 주변의 반응과 대조될 정도로 둘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리들은 리브와 관계가 그리 된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티를 내지 않았지만 친인들은 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거기다가 요즘의 리들은 답지 않게 짜증을 부리고 냉랭하게 굴어서 주변 사람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에밀리도 리브에게 리들 선배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며 캐물었지만 소녀는 답지 않게 냉정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그 사람에 대한 말을 하지 말라며 그 시도를 끊어놓았다. 그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에밀리는 둘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노라 판단하고 다시는 리들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리브 역시 리들과 관계가 이리 된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무척 가라앉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요즘의 리브는 좀처럼 웃지도 않았다.

물론 둘의 모습은 대외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조금의 흐트러짐조차 없었다. 둘의 속마음을 아는 사람이 보면 독하다고 혀를 내두를 만큼.

“혹시 리브한테 먼저 리들에게 화해를 청하라는 말 따위를 하려는 것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리들과 리브 화해시키기 방법 따위를 구상중인 아브락사스와 오리온에게 에밀리가 건넨 말이었다.

“나는 리들 선배가 뭔가를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해. 아니면 둘 사이에 오해가 생겼거나.”

“하지만 리브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둘은 화해할 수 없어.”

아브락사스가 단호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는 리들에게 리브와 대화를 해보라는 말을 했다가 싸늘한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녀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리브를 설득하려 했고 이를 위해 에밀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리브는 아브락사스와 오리온에게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셋은 리들과 리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어쩜 둘이 그렇게 똑같냐며 헛웃음을 뱉었다.

“리들 선배가 먼저 리브에게 다가가면 안 되는 거야?”

에밀리가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는 리들 선배가 우선 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리브가 우선이야. 그러니까 나는 너희를 도와줄 수 없어.”

에밀리는 리브를 설득해달라는 그들의 요청을 긴 시간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다.

“그리고 내가 볼 때는 리들 선배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의 리브는…… 좋지 않아. 크리스가 그나마 리브의 기분을 달래주고 있는 것 같지만 글쎄…….”

에밀리는 요즘의 리브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지 않아, 무척.”

*

언제부턴가 리들은 기숙사에 처박혀 있는 짓을 관두고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때로는 유령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래번클로의 유령인 회색숙녀도 그 중 하나였다. 바닥까지 길게 머리를 늘어뜨린 회색 숙녀는 살아생전에 아름다운 마녀였음이 분명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만큼 도도함과 오만함도 갖고 있었다. 그것을 두고 래번클로 학생들은 그녀가 순수혈통이었을 것 같다고 속닥거리곤 했다. 리들이 처음 접근했을 때 그녀는 너도 내가 왜 죽었냐는 무례한 질문을 하려는 거냐며 버럭 화를 내서 리들을 무안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대화를 조금씩 받아주곤 했다. 크리스는 그런 리들의 행보를 경계어린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호크룩스를 만들 준비를 하는 것이 분명해.”

크리스의 말에 리브가 움찔했다. 크리스가 지팡이를 휘둘러 머플리아토 주문을 걸었다. 그 모습에 리브가 살짝 눈썹을 치켜 올렸다. 크리스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주문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었다. 리브는 이 주문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만든 것이므로 누군가 먼저 쓰는 건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만들기 전까지 쓰여 져서는 안 되는 주문이었다. 리브의 생각은 그러했다.

“원작에 의하면 회색숙녀는 로웨나 래번클로의 딸로 이름은 헬레나 래번클로지.”

그 말에 리브의 눈이 놀라움을 담아 커졌다. 호그와트 네 창립자 중하나인 로웨나 래번클로의 딸이라고? 리브는 로웨나 래번클로가 상당한 미인이었다는 것과 함께 회색숙녀의 외모를 떠올리며 금방 수긍했다. 어머니가 미인이라더니 그 딸도 미인이구나. 그러고 보니 회색숙녀는 언젠가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위아래로 훑으면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바로 독수리가 인정했다는 미모를 가진 여학생? 너 몇 살이니?]

그녀는 리브가 독수리 문고리에게 ‘나는 예쁘니까.’라는 명언을 남겼던 그때의 일을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독수리는 리브의 외모를 두고 어린 날의 로웨나 래번클로 만큼 예쁘다고 했고 이는 회색숙녀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녀는 이날 리브의 외모를 눈으로 확인하며 이름까지 알아갔다. 그렇게 아름다운 유령은 리브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특유의 도도한 목소리로 ‘뭐…… 크면 굉장한 미인이 되겠구나. 그래도 래번클로 만큼이라니…… 흥.’이라는 뾰족한 말을 뱉고 휭 가버렸다. 아무래도 내가 자신의 어머니만큼 예쁘다고 하니 불퉁스러워진 모양이었다.

“헬레나 래번클로는 살아생전에 어머니인 로웨나 래번클로의 보관을 훔쳤지.”

“아…!”

“어렸던 그녀는 어머니보다 더 똑똑하고 유명해지고 싶었고…… 보관이 지혜를 줄 거라 생각한 나머지 그것을 들고 달아나서 알바니아 숲에 숨겨놓았지. 음, 그걸 어디다 숨겼다고 했더라. 무슨 나무라고 했는데…….”

크리스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 잠깐 얼굴을 찌푸리다가 포기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로웨나 래번클로는 딸의 배신을 다른 호그와트 설립자들에게 숨겼다고 해. 병에 걸리고 죽기 직전에 딸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보길 바라서 회색숙녀를 짝사랑해온 남자를 보냈지.”

“피투성이 바론…….”

“바로 그거야. 성격이 불같은 바론은 헬레나의 거절에 욱해서 그녀를 칼로 찔러 죽였지. 그리고 자결했어.”

리브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서렸다. 그러고 보니 피투성이 바론이 자기 몸에 쇠사슬을 감고 다니던데 아무래도 그 이유가 회색숙녀에 대한 회개의 뜻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래도 원작의 내용이 맞는 모양이야. 피투성이 바론과 회색숙녀가 대화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아예 둘은 마주치지도 않더라.”

리브는 언젠가 회색숙녀와 피투성이 바론이 정면으로 마주친 모습을 본 적 있었다. 답지 않게 바론은 회색숙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그녀는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아는 체도 하지 않고 휙 지나가버렸다. 다른 학생들은 둘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라고 쑥덕거릴 뿐이었으나 리브의 눈에 왠지 모르게 피투성이 바론의 모습은 슬퍼보였다.

“래번클로의 보관을 탐낸 학생은 지금까지 한 둘이 아닐 테고……. 그들은 분명 회색숙녀를 보챘을 거야. 덤블도어 교수도 그렇고 필리우스 플리트윅도 그녀에게 보관에 대해 말해 달라 부탁했겠지만 그녀는 결국 입을 열지 않지. 하지만 그 입을 열게 하여 보관을 가로챈 자가 한 명 있어.”

리브도 그게 누군 지 알고 있었다. 톰 리들.

“정말이지 난놈이라니까……. 대체 어떻게 그녀에게서 신임을 얻어낸 걸까. 덤블도어 교수님도 못했던 일을 대체 어떻게 한 거지?”

“……현란한 화술로 그녀를 홀렸겠지. 자신의 것이 아닌 엄청난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회색숙녀에게 이해한다고 속삭였을거야.”

그리고 그는 정말로 그 욕망을 이해하리라. 고아원에서도 아이들의 물건을 탐내고 빼앗았지.

“리들 선배는…… 원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매력적으로 보이는지도 잘 알아. 그는 그런 쪽에 도가 텄어.”

조곤조곤 리들에 대해 얘기하는 리브의 모습은 왠지 씁쓸해보였다.

“이제는 그가 무엇을 하던 놀랍지 않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걸까. 리브는 그 말을 애써 삼켰다. 관계를 정리했음에도 미련이라는 게 소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

리들의 행보는 심상치 않았다.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이들과 어울렸다. 리브는 리들에게 관심을 끊은 것처럼 굴었지만 은연중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크리스 못지않게 리브도 리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런 리브를 알아차린 것은 크리스 뿐이었다. 청년은 그런 친구를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또한 크리스는 리브에게 자신이 알아낸 리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언젠가 리브가 이런 얘기를 꺼냈다.

“저번에…… 네가 나한테 그러면서 그사람을 도발했을 때 말이야.”

리브는 키스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싫은 듯 했다. 크리스는 리브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금방 눈치 챘다. 자신이 실험을 한답치고 무례한 짓을 한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너는 그날 리들 선배에게서 무슨 반응을 봤던 거니? 그 실험결과라는 거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크리스는 리브에게 리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에 대해 경고했고 리브는 리들을 옹호했다. 그 바람에 둘은 언쟁을 벌이고 말았는데 그 때문에 그간 리브는 그 실험 결과에 대해 묻지 못했다. 크리스는 달갑지 않은 화제가 나온 듯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며 리브는 크리스가 정말로 리들을 싫어한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왜 그렇게 그를 싫어하는 걸까. 대답은 금방 나왔다.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리들과 크리스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톰 리들은 예민한 사람이니 본능적으로 크리스와 자신이 상극임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처음에 그는 나를 몹시 경계했었다. 그와 나는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상극이었으므로. 그래서 결국 이리 된 것이겠지.

리브는 크리스에게서 작은 트러블이 뭔지 듣고 리들이 가면을 벗고 그를 위협했음에 무척이나 놀랐다. 리들이 본모습을 보일 정도로 싫어 한다라……. 그럼에도 겁먹지 않고 리들과 대치하는 크리스는 정말 그리핀도르다웠다. 그는 이대로 졸업하고 시간이 지나 마법세계가 암흑으로 뒤덮이면 불사조 기사단원이 되겠구나. 그럼…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리브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찼다.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던 크리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지.”

리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무리수임을 알고도 리브에게 키스를 감행한 그 실험의 결과는…… 가설이 철저히 빗나갔다. 그런 격렬한 반응을 보일 줄이야.

“네 예상은 어땠는데?”

크리스는 리브를 지긋이 응시하다가 살짝 시선을 피했다.

“…말 안할래.”

“어째서?”

리브의 되물음에 크리스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대답했다.

“내가 말하면…… 너는 또다시 기대하게 될 테니까.”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굳었다. 크리스는 리브에게서 미련의 기색을 읽어냈다. 간혹 리브의 시선은 리들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았으니까. 아마 리들과 끊임없이 기싸움을 하던 것도 전부 그런 감정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언뜻 보면 서로를 정말 미워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미움이라는 감정 자체도 서로에게 관심이 있기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관심이 없다면 그런 갈등도 아예 없는 법이었다. 정말 리브가 리들을 끊어냈다면 그를 다른 학생과 똑같이 대했으리라. 그리고 서서히 거리를 두겠지. 리브는 애초에 누군가와 척을 지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그와 갈등을 빚고 이제는 아예 아는 척도 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관계를 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리라. 크리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리브 나는…… 어쩌면 너 자신보다 너에 대해 잘 알지도 몰라. 그러니까…… 최소한 네가 리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어렴풋이…….”

“그래, 그럼 말 하지 마.”

리브는 크리스의 말을 뚝 끊었다. 소녀는 살포시 웃고 있었는데 그 미소는 몹시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일까. 나는 너의 조언대로 그와 가까이 하지 않을 테고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든 상관없어.”

“…….”

“정이 좀 들어서 그래. 그는 정말 오빠 같았으니까……. 오, 물론 네가 말한 대로 그게 거짓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 거짓 위로에 위안 받았는걸. 아직도 그게 가식이라는 걸 믿기가 힘든걸. 나에게 만큼은 진심이라 했는데……. 정말 나에게 애정 하나 없이 나를 전리품으로만 생각하는 걸까? 리브는 끊임없이 리들에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무시무시한 독설과 상처뿐이었다.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살인을 저지르고 호크룩스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멀지 않을 미래에 그렇게 될 터였다. 이제는 리들이 자신에게 했던 것들이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원작대로 흘러가게 된다면 자신은 볼드모트가 된 그의 옆에 있을 수 없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리들의 행보를 리브는 더 이상 묵인할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소녀가 먼저 청년을 끊어냈다. 하지만 여전히 리브는 리들을 완전히 놓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눈이 가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그래, 흔들리고 있었다. 미련이라는 감정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크게 덮쳐왔다.

“리브, 흔들리지 마.”

크리스가 리브의 손을 꼭 잡았다.

“어린 날의 너는 톰 리들과 절대로 연관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했지. 그건 정말 잘한 행동이었어.”

그 말에 리브의 푸른 벽안이 흔들렸다. 그건 무참히 깨어진 어린 날의 결심이었다.

“하지만 어찌 세상 일이 그리 쉽겠어. 네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 알아. 너는 그의 구미를 자극했고 어쩔 수 없이 엮였겠지. 이해해.”

아니,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 너는 아무 것도 몰라.

“관계를 끊고 싶어도 끊기가 힘들었겠지. 관계라는 것은 한 번 연결 되면 끊기가 쉽지 않은 법이니까.”

서서히 멀어지던가, 아니면 적이 되던가. 리브는 후자의 것을 싫어했으므로 전자가 되어야 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 중 별로 관계되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적도 동지도 아닌 그저 그런 사이를 잘 유지하는 것. 리브와 리들은 그런 관계로 끝나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適期)였다. 이게 크리스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크리스가 모르는 게 있다면 리브가 리들에게 먼저 이별 비슷한 것을 고했다는 것이다. 소녀는 청년에게 다시는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건 일종의 절교 선언이었다.

“추종자가 되지 않겠다고 했지? 그러면 너는 지금처럼만 하면 돼.”

크리스는 절대로 리브를 리들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리브가 불사조기사단이 되지 않는 다면 데스이터가 되는 일 또한 없도록 해야만 했다. 그렇게 리브가 타락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고 리들에게 휘둘러지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리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리브와 리들을 떼어놓을 수만 있다면…… 크리스는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이해자이며 소중한 친구인 리브를 절대로 그런 위험한 자의 곁에 둘 수는 없었다. 상대가 볼드모트라면 더욱 더 그러했다.

*

루베우스 해그리드는 그리핀도르 소속의 3학년 학생으로 덩치 큰 몸집에 비해 얼굴은 아직 앳된 티가 묻어나는 편이었다. 크리스는 위협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순박한 성품의 해그리드를 몹시 좋아했다. 그래서 비밀의 방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고 지팡이 없이 퇴학당하게 될 그의 미래가 몹시 안타까웠다. 그래서 크리스는 다짐했다. 절대로 해그리드가 퇴학당하게 두지는 않을 거라고. 리브가 원작을 바꿔서 필리우스 플리트윅이 난쟁이가 되는 것을 막았다고 했던가. 그럼 자신은 이 비극을 없앨 것이다.

심정 같아서는 리들보다 먼저 비밀의 방에 들어가 바실리스크를 없애 버리고 싶었지만 크리스는 비밀의 방에 들어가라 수가 없었다. 장소와 방법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여는 파셀통그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리브를 앞 세워 들어가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했다.

“크리스.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주문 좀 그만 쓸 수 없어? 그것은 아직 세상의 빛을 보아서는 안 되는 주문이야. 모든 게 원작대로 흘러갈 것이라 했지? 그러면 그 원작을 지켜 줘야하지 않겠어?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것을 가로채다니. 그건 나중에 그가 만들어 내야만 해야 해. 내가 너에게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 주문을 쓰는 것은 그만 둬. 방음 마법이라면 내가 쓸 수 있어. 알려 줄게.”

리브는 크리스가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주문을 쓰는 것을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얼마 전, 크리스는 리브에게 비밀의 방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운을 띄웠다가 리브에게 한소리 들어야만 했다. 리브는 마치 원작을 그대로 따르기로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오, 크리스. 그건 네 역할이 아니야. 모든 것이 원작대로 흘러가고 있어. 그러면 그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돼. 너와 내가 먼저 비밀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원작을 심하게 비틀어 놓을 거야. 그러면 이야기가 어디로 튈 지도 몰라. 비밀의 방은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손인…… 그가 여는 게 순리에 맞아.”

“하지만 그 놈의 바실리스크 때문에 나중에 그 사달이 난단 말이야.”

“바실리스크를 다룰 수 있는 것은 후계자 뿐이야. 우리는 그것을 다룰 수 없어. 그리고 난 섣불리 그곳에 들어갔다가 바실리스크에게 죽고 싶지 않아.”

리브의 말에 크리스는 어느 정도 동의 했다. 크리스는 바실리스크를 맨몸으로 상대할 만큼 무모하지는 않았다. 그는 모자가 잠깐 그리핀도르와 래번클로 사이에서 고민했을 만큼 용기와 총명함의 소유자였다. 용기에 상황을 판단하는 총명함이 더해지면 무모함은 사그라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원작에 되도록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야. 리들 선배와 관계를 끊은 것도 그 때문이고.”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특히 톰 리들을 입에 담을 때만큼은 그러했다. 그리고 리브는 종종 톰 리들을 ‘리들 선배’라 칭하고 있었다. 대명사로 그를 지칭하곤 했지만 여전히 그 ‘선배’라는 호칭은 은연중에 습관처럼 남아 있었다. 크리스는 이를 미련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그 미련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네가 원작을 바꾸려 하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거기에 나를 끼워 넣지는 말아줘.”

*

리브는 리들에게 관심을 끊지 못하는 자신이 정말 싫었다. 크리스에게는 원작에 관여하지 않을 거라고, 방관자가 되겠노라 선언했지만 이 외침은 정말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리브가 방관자였다면 리들에게 관심 자체를 끊었으리라. 하지만 은연중에 시선은 리들에게로 가있었다. 리브는 리들에게로 향하는 주의와 관심을 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자신은 여전히 그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지긋지긋한 미련이었다.

“루베우스가 리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있어. 어떡하지?”

크리스의 말대로 요즘 리들은 해그리드와 친분을 나누고 있었다. 리브는 리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리브가 판단컨대, 해그리드는 리들에게 조금의 가치가 되지도 못했다. 거인혈통에—리브는 리들이 이를 눈치 챘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크리스가 벨라 혈통이라는 것도 맞춘 사람이었다— 2주에 한 번 꼴로 말썽을 일으키는 실수투성이인 루베우스 해그리드는 착할지 언정 똑똑한 학생은 아닌지라 리들에게 좋은 패가 되지 못했다. 리브의 눈에 리들과 해그리드의 친분은 정말 기묘했다. 해그리드가 가진 무언가가 리들의 흥미를 끈 것이 분명했다.

“친해진 이유가 있을 거야. 그 핵심을 끊어내면…… 둘을 멀어지게 할 수 있어.”

“핵심?”

“그래, 해그리드의 무언가가 리들의 흥미를 자극 했을 거야.”

내가 그의 흥미를 자극해서 멘티가 되었듯이. 리브는 간신히 그 뒷말을 삼켰다.

“루베우스, 리들이랑 친하다니 놀랐어. 어떻게 친해진 거야?”

크리스는 해그리드에게 어떻게 리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느냐 캐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진한 해그리드는 크리스의 속을 알지도 못한 채 줄줄줄 그와의 인연을 읊었다.

“사실 리들이 예전부터 여러 번 도움을 주었어. 저번에 내가 금지된 숲에서 나오는 걸 보고도 모른 척 해주기도 했지. 그는 정말 좋은 학생이야. 내가 그리핀도르에 이런 데도 친절하게 대해 줘. 거기다가 그는 나와 취향이 비슷해. 리들이 나처럼 동물을 좋아할 줄은 몰랐지 뭐야.”

위험한 생물을 좋아하는 해그리드의 취향을 아는 크리스는 입을 쩌억 벌렸다. 톰 리들이 위험한 생물을 좋아한단 말이야? 해그리드에게서 리들의 이야기를 들은 크리스는 곧바로 리브에게 자문을 구했다.

“상냥함에 넘어간 거겠지. 해그리드는 순진하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네가 그때 루베우스의 눈이 얼마나 반짝였는지 봐야 해. 그건 실로 동반자를 만난 듯한 표정이었어.”

“나기니를 키우는 걸 보면…… 위험한 생물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

리브의 말에 크리스가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리들이 용을 키우고 싶어 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루베우스는 늑대인간 새끼를 침대 밑에다가 키우기까지 한 애야……. 전에는 눈두를 실제로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 어쩌면 이번 방학에 아프리카로 쳐들어 갈 지도 몰라. 그리고 그 뿐인 줄 알아? 지금은 애크로맨투라를 키우고 있어.”

크리스는 호흡이 가쁜지 잠깐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글쎄 그 애크로맨투라 이름이 뭔지 알아? 아라고그래 아라고그! 하지만 그 아라고그를 당장 갖다 버리지 않으면 루베우스는 비밀의 방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서 퇴학당하고 말거야! 그거 빨리 놔줘야 하는데…….”

크리스는 또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게 훗날의 화근이 되는 것을 알고 있는 그이기에 몹시 답답했다. 수틀리면 자신이 해그리드 몰래 그 애크로맨투라를 금지된 숲에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였다. 멍하니 생각에 빠져있던 리브가 입술을 열었다.

“그가 위험한 생물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아마 그것은 ‘강함’ 때문일 거야. 위험한 생물은 위력이 강한 법이지. 그는 강한 것을 최우선의 가치라 여기고 있어.”

리브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리들 선배와 해그리드의 친분이라……. 둘이 같이 있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리브였다. 여전히 리들과 리브는 아는 척도 안하고 있었다. 아브락사스와 오리온은 이제 둘을 화해시키겠다는 것을 포기한 것 같기도 했다. 종종 오리온은 리브에게 리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볼 것을 조심스럽게 권하곤 했지만 리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들의 얘기를 꺼낸다면 너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극언도 하지 않았다.

오리온은 이 같은 모습을 청신호로 여기고 리브에게 리들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꺼내곤 했다. 그러면 리브는 그저 듣기만 했다.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오리온은 리브가 리들에 대한 소재를 싫어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눈치 챘다. 왠지 그녀는 리들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오늘은 좀 일찍 왔습니당

선추코 항상 감사드립니다♡

* 어떤 분께서 리브가 라이트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 받았다면 성이 바뀌어야 하지 않냐고 하셨는데요. 요즘 리리플을 안 하고 있어서 후기에 넣어야지 넣어야지 하면서 여러가지 일 때문에 계속 잊고 있었네요ㅜㅜ 지금 대답해 드리자면 그것은 리브가 그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택내 조상 초상화들은 가문이 끊어지도록 가만히 두느냐. 그래서 그들은 나중에 리브가 결혼해서 낳을 아들 중에 금발벽안 가진 아이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 아이로 하여금 라이트 가문을 잇도록 하려는 심산이죠.

그리고 따지고 보면 여자아이인 리브는 라이트 가문을 이을 수 없습니다. 물론 리브가 성을 바꾸고 데릴사위를 하면 되겠지만 리브는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할 정도로 외가에 정을 갖고 있지 않답니다. 한 마디로 리브는 굳이 지금의 성을 버리고 외가의 성을 가질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고요. 이 정도면 대답이 될까요?^^

* 이번 챕터는 리브가 미련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드릴 것 같습니다. 미련과 함께 혼란과 슬픔은 덤... 그리고.. 이건 스포니까 쉿^0^ 리브가 아무리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고 해도 둘 사이에 오간 그 수많은 감정들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번 챕터도 쭉쭉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당!

그럼 독자님들 좋은 저녁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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