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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불안한 평화
기숙사 공동 휴게실을 빠져나온 리들은 리브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로 발걸음을 휘적휘적 옮겼다. 그러다가 잠깐 발걸음을 멈춰보기도 했으나 멘티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정말이지 제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계집애였다. 뒤따라오는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이리도 짜증나게 하다니. 이쯤 되면 이것도 일종의 재주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리들이었다. 먼저 필요의 방에 들어가서 들어오면 갈궈 줄까 하던 리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계집애니 어쩌면 자신을 바람 맞출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렇게 리들은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저게 진짜…….”
리들은 크리스와 있는 리브를 보고 이를 부득 갈았다. 팔짱을 턱 끼고서 어디 네가 언제까지 그러고 있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서있던 리들은 크리스에 의해 복도 구석으로 들어가는 리브를 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이거 정말로 바람 맞을 뻔했다. 리들은 괘씸하게 생각하며 그 뒤를 밟았다. 둘은 무어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리브의 고운 얼굴에는 호의적인 미소가 서려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리들은 스멀스멀 불쾌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때 리들과 크리스의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발견한 크리스의 눈이 살짝 커진 것을 본 리들은 그러던가 말던가 적의를 담아 그를 살벌하게 응시했다. 네가 감히 내 것을 가로채? 하지만 크리스는 기가 죽기는커녕 리브의 어깨를 잡더니 자리를 조금 옮겼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자리는 겨우살이 밑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리들이 눈을 부릅떴다. 그 흑안에 이름 모를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그런 리들을 보며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약이 오를 정도로 해사하게 웃은 벨라 청년은 소녀의 귓가에 무어라 달콤하게 속삭였다. 리들은 직감적으로 그가 사랑고백 따위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얼굴만 번지르르한 녀석이 자신의 멘티에게 좋아한다는 둥 자신의 여자친구가 되어달라는 실없는 소리나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자 불안해졌다.
지금까지 다른 남학생들의 고백에는 한 조각의 불안함도 느끼지 못했던 리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받아주지 않을 테니까. 리들은 수도 없이 리브가 고백한 이를 거절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리고 그 때마다 리들은 유쾌함을 느끼며 누군가가 실연의 아픔을 삼키는 모습을 즐겨오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리들은 그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마음 한 켠에서 혹 저 녀석이라면 받아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처음으로 리브가 고백 받는 모습이 불안해졌다. 그 순간 리들은 불쾌해졌다.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했다.
어째서 내가 이토록 불안에 떨어야 하는 거지? 저 기생오라비 녀석이 감히 나에게 불안감을 준다고? 저 따위 녀석 때문에 내가 불안감을 느낀다고? 그리고 저 말 안 듣는 계집애가 뭐라고. 리들은 크리스 뿐만 아니라 리브에게도 마뜩찮은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정체를 추적하는 순간, 리들은 인정하기를 미뤄왔던 질문에 대답해야하게 생겼다. 리들은 그것을 외면했다. 사실 그보다는 거슬리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우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이 상황을 만들어낸 벨라 청년에게로 향했다.
“저 자식이…….”
리들은 가서 저 둘을 훼방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순간 둘이 입을 맞췄다. 그와 동시에 리들의 이성이 뚝 끊어졌다. 슬리데린 청년의 흑안이 크게 확장되더니 이윽고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어찌나 화가 났는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다가 소매 안으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티가 역력한 손을 집어넣었다. 누가 봐도 지팡이를 꺼내려는 동작이었다.
리들은 무척 이성적이고 앞뒤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예전에 병동에서 쓰러진 리브에게 도둑키스를 했을 때마저 주위를 살피고 자신의 욕구를 실현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뒷 상황이고 뭐고 이성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이 뒤집힌 상태였다. 평소 철의 이성을 유지하던 이가 그것을 포기하자 범인을 뛰어넘는 과격한 반응이 새어나왔다. 청년의 머릿속에는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주문이 떠올라 있었고 그는 분명히 그것을 쓸 요량이었다. 아브락사스나 오리온이 있었으면 경악하며 그를 힘껏 만류했겠지만 지금 그들은 이곳에 없었다. 리들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둘을 떼어놓고 먼저 입 맞춘 이를 응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가 감히 내 것에 손을 대? 가만두지 않겠어. 청년의 흑안에 위험한 붉은 빛이 번뜩였다.
리들의 입술에서 주문이 새어나가고 마법 주문이 튀어나가려는 순간 리브가 크리스를 힘껏 밀쳐냈다. 그런 소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태파악을 했는지 리브의 얼굴이 파삭파삭 굳었다. 그리고 소녀는 작은 손을 들어 그리핀도르 청년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크리스의 고개가 휙 돌아감과 동시에 맞부딪히는 파공음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리들의 이성이 돌아왔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알게 된 청년은 꺼내놓은 지팡이를 다시 품으로 집어넣었다. 그는 자신이 하려던 행동에 잠깐 당황한 듯 했다. 리들은 주의 깊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리들은 목격자가 없음에 안도했다. 자신은 정말 큰일을 저지를 뻔했던 것이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혀가는 리들이었지만 흑안은 여전히 거칠게 일렁이고 있었다. 끊어진 이성이 돌아왔을 뿐 분노는 여전한지라 붉은 빛이 미세하게 감돌기도 했다.
리들은 저 둘을 면밀히 관찰했다. 크리스는 무어라 리브에게 말하고 있는 듯 했으나 소녀는 보기 드물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모양인지 답지 않게 빽 소리치기 까지 했다.
“……시끄러워!”
그 순간 리들과 크리스의 눈이 마주쳤다. 흑안과 자안이 치열하게 맞부딪혔다. 리들은 붉어진 크리스의 뺨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방금 무자비하게 뺨을 때린 리브가 생각난 탓이었다. 슬리데린의 청년은 안됐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찌 보면 동정의 행동 같았으나 그 잘생긴 얼굴에 자리한 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이제 크리스는 리들과 기싸움을 하는 것 보다 리브에게 무어라 해명하느라 바빠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리들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내가 못 갖는 건 너도 못 가져.”
그렇게 중얼거리는 리들의 미성은 차디찼다. 자신의 것을 누군가가 건드렸다는 분노와 함께 미세한 만족감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역시 불쾌했다. 리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와 키스하고 있는 리브의 모습이 떠오르자 다시 열이 받았다. 참고 참지 않았던가. 이는 리브를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관계가 깨어지는게 두려웠기 때문에 참았던 것이다. 그런데……. 리들은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크리스의 뺨을 내리친 리브가 떠오르면 그게 가라앉았다. 참 우스운 꼴이라 생각하며 리들은 감정을 다스리려 애썼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입술을 내어준 리브에게도 분노가 슬금슬금 향하고 있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지 않니?”
크리스는 해사한 얼굴 가득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랏빛 자안과 마주친 순간 리브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리브는 본능적으로 위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리브, 내 무례를 용서해줘.”
지금 눈앞에 있는 크리스는 몹시 매혹적이다 못해 위험했다. 이성은 이곳에서 벗어나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기분이 이상하고 묘했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머릿속이 텅 비었다. 이제 리브는 몽롱한 벽안으로 크리스의 자안을 응시할 뿐이었다. 벨라의 페로몬은 정신력 강한 소녀를 완벽하게 유혹했다.
“겨우살이 밑이니까 용서해줘야 해. 너한테 미움 받기 싫어.”
그리고 두 남녀의 입술이 맞닿았다. 벨라 청년에게로 리브 특유의 꽃향기가 훅 끼쳐왔다. 뒤편의 리들을 관찰하던 크리스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본래 리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저지른 짓이라 입술만 맞대려 하였으나 크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다음 단계로 진행하려 하고 있었다. 홀리려고 한 자가 도리어 홀리게 생겼다. 그렇게 벨라 청년의 정신이 흐트러지자 페로몬 방출이 줄어들었다.
미혹당한 이는 본래 정신력이 강한지라 페로몬이 끊어지자마자 곧바로 이성을 되찾았다. 그렇게 단순한 입맞춤이 진한 키스로 넘어가려는 순간 리브는 청년을 확 밀쳐냈다. 아까와는 달리 초점이 분명한 벽안이 크게 커진 채로 눈앞의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황도 잠시. 리브의 고운 얼굴에 불쾌함이 가득 찼다. 그리고 소녀는 그 불쾌함을 과격한 방법으로 표현했다. 무례한 짓을 한 이의 뺨을 내리친 것이다. 정말 온힘을 다해 때렸는지 어느새 크리스의 뺨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리브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크리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리브, 잠깐만. 미안해. 일단 사과할게. 하지만 아까 말했지만 여긴 겨우살이 밑이야.”
“뭐야? 지금 이 무지막지한 행동과 겨우살이가 무슨 상관인데!”
“겨우살이 밑에 있는 소녀에게는 키스해도 된다는 관습이…….”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리브는 이를 부득 갈았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서 있는거야. 리브는 빽 소리쳤다.
“시끄러워!”
리브는 정말 화가 잔뜩 났는지 얼굴이 무척 상기되어 있었다. 소녀는 크리스의 눈길이 자신이 아닌 뒤편을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화가 더욱더 치솟는 듯 했다.
“너 대체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거니?”
“톰 리들.”
“뭐?”
크리스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이름에 리브의 얼굴이 굳었다. 청년이 여전히 뒤편을 응시한 채 작게 속삭였다.
“아까 말했잖아. 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실험을 하는 거라고.”
리브의 얼굴이 창백해짐과 동시에 당황한 표정이 담겼다. 아까 크리스가 키스를 한 직후보다 더 당황한 모습이었다. 리브는 휙 뒤를 돌아보았고 크리스의 말대로 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이곳을 보고 있어서…… 내가 리브 너한테 키스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거든. 그런데…….”
돌아서서 본 그는 웃고 있었다. 청년의 조각같은 얼굴에 박힌 붉은 입술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를 봐온 리브의 눈에 저 미소는 분명 비웃음이었다. 누구를 향한 것이지? 그의 시선을 따라가던 리브는 리들이 크리스를 응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뿐만 아니라 짙게 묻어나오는 태생적인 기품과 오만함. 어찌 남을 비웃고 있을 때도 품격이 느껴지는지 리브는 그 자태에 잠깐 마른침을 삼켰다.
리들은 품에 손을 넣더니 빠르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지팡이가 겨누어진 곳은 리브 쪽이었는데 대처하기도 전에 지팡이에서 빛이 쏘아졌다. 그리고 리들은 무언주문으로 소멸마법을 멋들어지게 성공시켜 겨우살이를 없애버렸다. 그런 청년의 시선이 향한 곳은 금발이 아닌 은발이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냉혹한 흑안이 크리스에게 말하고 있었다. 저 겨우살이처럼 너를 없애버릴 거야. 크리스는 그 위협 섞인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 리들의 시선이 잠시 리브에게로 머물렀다. 그냥 쳐다본다 하기에는 매서웠고 노려본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그런 애매한 눈빛이었다. 리브는 도저히 리들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나를 가벼운 여자로 보는 걸까? 리브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결국 소녀는 차마 리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리브는 몹시 떳떳하지 못한 심정이었다. 그런 모습을 리들에게 보이다니…… 리브는 차라리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었다.
리들은 리브에게 주는 눈길을 끊고 돌아서버렸다. 잔뜩 긴장한 채로 리들의 눈치를 보던 리브는 그 모습에 잠깐 허탈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불안감. 오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혹 나랑 크리스가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하는건……. 리브는 조급함에 걸음을 급히 해 리들을 붙잡았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리들 선배 잠깐만…… 제 말을…….”
리브가 리들의 옷자락을 붙잡고 무어라 말하려는데 리들은 그 손을 홱 뿌리쳤다. 그 거친 대접에 리브는 잠깐 당황했다. 하지만 리브는 당황보다 오해를 푸는 게 먼저라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오해하고 계시는 게 있는데 저는 크리스랑-”
“네가 저 자식이랑 키스를 하든 몸을 섞든…….”
리들은 자신이 뱉은 말에 더욱 더 열이 치솟았지만 리브는 이를 알지 못했다. 소녀는 그저 분노에 가득 찬 리들의 시선만 마주했을 뿐이다. 움찔하는 리브를 보며 리들이 살벌하게 말을 내뱉었다.
“내 알바 아니니까 꺼져.”
폭언을 뱉은 리들은 리브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에는 온기 한 점 없었다. 리브는 소름이 돋았다.
“이딴 게 어디가 도도하다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대고 리들은 자신의 무도한 언행에 정점을 찍었다.
“천박하긴.”
*
리브는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서있었다. 입술을 깨물며 부르르 떠는 모습이 울음을 참기 위한 행동이라는 깨닫는 것은 금방이었다. 크리스는 리들이 리브에게 무슨 소리를 지껄인 건가 궁금했지만 그걸 물을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심한 말을 한 게 분명했다. 누가 볼드모트 아니랄까봐……. 크리스는 이를 부득 갈았다.
그리고 크리스는 크리스 대로 당황스러운 심정이었다. 예상이 빗나갔다. 크리스는 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서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크리스의 예상에는 없던 결과였다. 크리스는 리들이 리브를 신경 쓰고 있어도 별로 상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굳이 반응을 보여 봤자 잠깐 놀라는 정도? 그런데 그런 폭발적인 반응이라니……. 어째서?
자신의 감으로 보건대 그건 분명 질투였다. 질투도 보통 질투가 아니었다. 리브를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말도 안 돼. 하지만 그 반응은 정말 살벌했단 말이야. 그래, 꼭 좋아하는 감정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는 볼드모트야. 사랑이라니. 그런 질 나쁜 농담이 어디 있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크리스는 여전히 등골이 서늘했다. 사실 청년은 아까 리들이 자신에게 아바다 케다브라라도 날리는 것이 아닌지 잠깐 겁을 먹었다.
“너 때문이야…….”
그리고 리브의 울음 섞인 목소리는 더욱 더 자신의 예상 밖이었다.
“너 때문에 그가…… 오해하고 있잖아!”
리브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눈으로 크리스를 원망하는 시선을 보냈다. 너 때문에 내가 그런 소리나 듣고……. 리브는 리들이 자신에게 뱉은 폭언이 떠오르자 또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가벼운 여자라 오해하는 것도 모자라서…… 나를 멸시하는 그 태도는…… 리브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내가 너 때문에…….”
“리브, 리들이 왜 우리 사이를 오해하면 안 돼?”
크리스는 리브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 물음에 리브가 빽 소리치듯 대꾸했다.
“그야 당연히 너랑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크리스는 그 기세에 잠깐 움찔하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평정을 잃고 있는 리브인지라 크리스는 더욱 더 말을 골랐다.
“그야 그렇지만…… 이렇게 과민반응 보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너…….”
“누가 보면 리들이랑 네 사이를 오해하겠다. 그와의 오해는 나중에도 풀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리브는 정신이 번쩍 든 듯 했다. 아니 화들짝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이 심히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리브는 평정을 찾으려 애썼다. 심호흡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는 리브를 보며 크리스는 자신의 머릿속을 채우는 가정을 떨쳐내려 애썼다.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었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됐다.
“그래, 그렇지…….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네가 한 짓만큼은!”
방금의 것이 자신의 첫키스였음이 떠오르자 리브는 확 열이 받았다. 첫키스에 딱히 환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런 식은 좋지 않았다.
“리브 그건 정말 사과할게.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시끄러워! 네가 그렇게 무례한 사람일 줄이야. 아까 작정하고 나에게 페로몬을 썼지?”
지은 죄가 있는지라 이제는 크리스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안 그래도 리브는 평소에도 크리스가 분별없이 페로몬을 흩뿌리는 것을 지적하곤 했다. 소녀는 크리스의 유희거리인 그것을 가볍고 얕은 행동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이제 그런 유치하고 가벼운 짓은 그만둬. 그리고 뭐? 리들 선배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그래, 궁금했어.”
크리스의 담담한 태도에 리브의 화는 도저히 풀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아까의 당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리브는 차갑게 얼굴을 굳힌 채로 입을 열었다. 아까 평정을 잃던 이와 동일인물이 의심갈 만큼 차분한 모습이었다. 과연 이성적이라는 평을 받는 여학생다웠다.
“너와 그의 사이가 원만치 못하는 것은 나도 알아. 그런데 내가 왜 그를 도발하는 너의 행동에 동참해야 하는 거지? 그리고 왜 이따위 짓을? 그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
“그야 리들이…….”
“…?”
“너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뭐?”
크리스는 잠깐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목소리를 냈다. 말하고 싶지 않은 듯 했다.
“톰 리들이 리브 너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알아내야만 했어.”
“…왜?”
“그래야 그에게서 너를 떼어낼 수 있을 테니.”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굳었다. 크리스가 마음먹은 듯 입을 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는 실로 사악하고 무서운 자야.”
“…….”
“너도 알고 있잖아. 그래서 요즘 그와 거리를 두는 거 아니었어?”
리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는 요즘 리들과 리브의 사이가 소원한 것을 보고 리브가 이제 그를 떼어내려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태도는 무어란 말인가. 특히 방금의 그 모습은……. 크리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리브 난 원작을 꿰고 있어. 그가 학창시절에 무슨 짓을 하게 될 지도 알아.”
“…….”
“지금까지는 네가 달갑지 않아한 소재라 말하지 않았어. 하지만 말해야겠어.”
크리스는 지금까지 톰 리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리브가 불편해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불편한 감정이 위험한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말해야만 했다. 크리스의 눈에 리브가 리들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위험했다.
“그는 5학년에 비밀의 방을 열고 머틀을 죽여.”
“…!”
비밀의 방을 여는 게 이번 학년이라고? 리브의 얼굴에 충격이 가득 찼다.
“그리고 그녀의 희생을 제물삼아 자신의 일기장을 호크룩스를 만들지. 열 다섯에 살인을 저지르고 첫 호크룩스를 만들다니……. 그는 실로 무서운 자야.”
호크룩스라는 말에 리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그의 계획을 보았다. 그래서 그럴 리 없다고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게 끝인 줄 아니? 그는 5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에 자신의 아버지와 조부모도 죽여.”
“그럴 리 없어.”
리브가 알기로 리들은 자신의 머글 아버지에게 아무런 감정도 갖고 있지 않았다. 죽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갖고 있지 않아. 나에게도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라고 조언했던 그야! 그럴 리 없어. 원작이 그렇다 해도…….”
리브는 말끝을 흐렸다. 원작이 그렇다 해도 원작대로 흘러가겠지. 그 생각이 강하게 드는 탓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오, 리브. 모든 것은 원작대로 흘러가고 있어. 난 그가 미래에 어둠의 마왕이 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아. 왜냐고? 내가 지금까지 봐온 톰 리들은 실로 사악하고 볼드모트가 될 소지가 다분하니까!”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리들을 건드린 자는 후환이 좋지 못하지. 어떤 애들은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며? 덤블도어가 그를 경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그런데 리브 넌 대체 왜 그를 옹호하는 거야?”
“…!”
옹호……. 옹호라고……. 나는 그를 줄곧 옹호하고 있었나.
“톰 리들은 유년 시절부터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나서는 자신의 출생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을거야. 처음에는 친가부터 찾았겠지. 하지만 허탕치고 나약하게 죽은 지라 경멸했던 모친에 대해 찾기 시작 했을거야. 그리고 깨달았겠지. 어머니는 곤트가의 마녀이며 자신은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손이라는 것을. 이는 그의 오만함을 더욱 더 짙게 했을거야.”
크리스는 줄줄줄 리들에 대한 모든 것을 읊고 있었다. 그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리브가 봐온 그대로였다. 이래서 나 역시 원작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학창시절에 온갖 악행을 저질러. 지금 봐도 그러고 있잖아. 그에게 밉보인 자들은 후환이 좋지 않아. 고약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도 그게 리들이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해. 그 뿐인 줄 알아? 그는 학창시절부터 호크룩스를 일곱 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한 개도 모자라서 일곱 개라니……. 그리고 성인이 채 되기도 전에 그것을 만들지.”
그 순간 리브의 머릿속에 호크룩스에 대한 필사와 일곱 개에 대한 가설이 떠올랐다. 한동안 잊으려 애썼던 것들 이었다. 그런데 또 떠올라 버렸다. 그래, 그는 호크룩스를 만들 생각이었다. 리브는 그 계획을 엿보았다. 자신은 그를 말릴 용기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와 멀어질 것이 두려웠다. 나는 이토록 나약하다.
“지금의 그는 이미 호크룩스에 대해 알고 있을걸? 원작에 의하면 그는 6학년 때. 리들 가족을 몰살하고 마볼로의 반지를 끼고서 슬러그혼 교수에게 호크룩스 일곱 개에 대해 떠들어 대. 그리고 아마 지금 그는 비밀의 방에 대해서도 눈 빠지게 찾고 있을 거야. 어쩌면 요즘 그가 기숙사에 처박혀 있는 것은 이 때문일지 모르겠군.”
리브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을 딱하게 보던 크리스가 일침을 날렸다.
“모든 것이 이토록 확실한데 너는 이래도 리들을 옹호할거니?”
리브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소녀는 슬픔에 젖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울고 싶어졌다.
============================ 작품 후기 ============================
멘토링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
P.S. 리리플은 73편까지 업뎃 되었습니다. 작품설정에서 확인해주세요.
+ 아이코 올리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네요ㅠㅠ위에 몇줄은 잊어주세여.. 제가 플롯짜던게 딸려옴ㅠ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