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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불안한 평화
“어릴 때는 매일매일 전생의 꿈을 꾸곤 했지.”
크리스의 목소리에는 역시 그리움이 짙게 묻어있었다. 리브는 크리스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이 참 기묘하게 생각되었다. 리브 자신은 전생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고 그러니 당연히 전생에 대한 그리움도 없었던 것이다.
“가끔 꿈속에 가족들이 나와. 그리고 친구들도. 언젠가는 나랑 사이가 안 좋았던 모델이 꿈에 나왔는데 어찌나 반가웠던지…….”
크리스는 그 말을 하며 헛웃음을 뱉었다. 그 계집애가 반가울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잘해줄걸.
크리스는 리브 앞에만 서면 말이 많아졌다. 이같이 마음속에 담아놓은, 오랫동안 묵은 감정들을 풀어놓을 데는 리브뿐이었다. 그는 리브가 전생의 소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인 이를 만났다는 기쁨 때문에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너무 외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전생에 대해 얘기했고 리브는 묵묵히 들어 줄 뿐이었다.
그리고 리브는 그 때마다 자신의 전생으로 향해 생각이 옮겨갔다. 내 전생이라. 리브는 전생을 그리워 한 적이 없었다. 전생은 전생일 뿐. 지금은 현재의 삶이 진행 중이었으므로. 현생에 충실할 뿐이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어.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거라고는……. 나는 세상에 다시없을 돌연변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 마법사들도 이런 풍문을 믿지 않지. 하, 환생이라니? 누가 믿겠어.”
리브는 크리스의 얘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전생에 대한 그의 감정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는 전생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신과는 달리 전생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많이 외로워했으리라.
“리브, 네가 있어서 너무 기뻐. 호그와트에 오길 정말 잘했어.”
크리스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리브의 이면의 슬픔을 읽지 못할 만큼.
*
크리스와 리브가 붙어있는 모습은 리들의 눈에도 자주 포착되었다. 그때마다 리들은 눈썹을 치켜 올리는 등 표정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거슬려했다. 그 모습에 아브락사스와 오리온만 불안한 듯 그의 눈치를 볼 뿐이었다.
“리들, 리브랑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면…….”
“그딴건 멘토링 중에도 하고 있어.”
조심스레 꺼낸 아브락사스의 말을 싹둑 잘라버린 리들은 기숙사로 휭 가버렸다. 리브과 크리스의 모습이 꼴도 보기 싫다는 뜻이렷다.
“그딴 사무적인 대화 말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해보라는 말인데, 참!”
뒤에서 아브락사스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리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말한다고…… 말하면…… 당신은 변할까요.]
그날, 리브의 말이 아직도 리들의 귓가를 맴돌았다. 리들은 지금까지 소녀의 그런 얼굴은 처음 보았다.
“변해야 할건 내가 아니라 너야.”
그때 하지 못한 대답을 나지막히 읊조려 보았다.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을래요.]
말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아냔 말이야. 그리고 또 나를 멋대로 판단해. 대체 왜!
그리고 어김없이 떠오르는, 방금도 보았던 리브와 크리스의 다정한 모습. 리들은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올랐다. 지금까지 그 어떤 남학생에게도 틈을 보이지 않던 리브였기에 그 분노는 상당했다. 그리고 가끔 크리스가 자신을 향해 비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 리들은 그대로 가서 둘을 떼어놓고 뒤집어놓고 싶을 정도였다.
어째서 리브가 저런 여우같은 녀석에게 홀려있는 건지 리들은 기가 찰 정도였다. 벨라의 페로몬이 이 정도였던건가. 기생오라비 같은 자식. 어떻게 올리비아를 구워 삶은지 몰라도 내가 이대로 널 두고 볼 줄 안다면 오산이야. 또다시 리들의 흑안에 붉은 빛이 감돌았다.
리들은 또다시 기숙사의 방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했다. 지금 리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은 이 뿐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 때 학교를 비울 테니 그 전까지 완성하려면 어서 서둘러야만 했다. 그리고 비밀의 방 역시. 점점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
“크리스, 역시 여기 있었구나.”
리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크리스는 필요의 방에서 소망의 거울을 보고 있었다. 며칠에 한 번 씩 오던 것은 하루에 한 번으로 변했고, 그 다음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오는 것으로 주기가 좁혀졌다.
지금 크리스는 거울이 주는 환영에 빠져 리브의 존재를 눈치 채지도 못한 상태였다. 정확히는 거울 속에 있는 전생의 사람들이리라.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 안에 있겠지. 거울을 응시하는 청년의 눈빛은 멍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몹시 신비롭고 몽환적으로 보였다. 화가가 본다면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나 리브의 눈에는 몹시 아슬아슬해 보일 뿐이었다.
리브는 지금까지 크리스의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조금의 쓴소리도 하지 않았고 이해한다는 듯 묵묵히 들어줄 뿐이었다. 크리스의 그리움은 깊었다. 이제 리브는 그가 걱정스러웠다. 리브가 볼 때 크리스의 향수병은 심각할 정도였다.
혹 나라는 존재가 그 그리움을 부추긴 게 아닐까. 리브는 점점 크리스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생을 그리워하는 크리스에게 냉정하게 전생을 잊으라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부지게 마음을 먹어야할 때인 것 같았다.
“크리스. 곧 통금시간이야.”
리브가 자신의 몸을 흔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크리스였다.
“아, 리브. 왔어?”
“곧 통금시간이라서 알려주려고 왔어. 여기 푹 빠져있을게 뻔하니까.”
크리스는 아쉬운 듯 거울을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리브는 필요의 방을 소망의 거울이 없는 다른 공간으로 바꿔놓으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크리스의 욕망이 리브의 것보다 훨씬 강한 모양이었다. 그만큼 크리스의 그리움이 깊은 것이겠지.
“크리스, 가야 해. 일어나.”
“조금만 더…….”
“크리스!”
크리스의 해사한 얼굴에 순간 야속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리브는 마음먹은 듯 다부지게 입을 열었다.
“꿈에 집착해서 현실을 잃어버리면 안 돼.”
리브의 말에 크리스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그는 쉽게 동요의 감정을 드러냈다.
“꿈이 아니야.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야. 부모님, 친구들…… 전부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거울이 주는 헛된 환영 속에서 이제 벗어나야 해.”
헛된 환영. 그 말과 동시에 크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헛된 것이 아니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전부 나와 함께 했던, 내 소중한 사람들이란 말이야!”
“지금 함께 하는게 아니라 함께 ‘했던’, 과거의 사람들이지. 그것도 머나먼 전생의.”
그 말에 크리스는 잠깐 당황한 것 같았다.
“그,그렇다고 해서 그 소중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헛된 것이 아니라고!”
점점 크리스의 언성이 높아지는 것과 달리 리브의 목소리는 몹시 침착했다. 그리고 소녀의 고운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고 잔잔했다. 듣는 크리스가 약이 오를 정도로. 어떻게 나한테 네가 그런 말을? 크리스는 버럭 화를 냈다.
“넌 나를 이해하지 않아? 그런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네가!”
어떻게 나와 같은 처지인 네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크리스는 리브가 원망스러워졌다.
“……미안해, 사실은 마음 깊숙이 이해하지는 못 해. 나는 너랑 달리 전생을 그리워하지 않으니까.”
그 말에 크리스는 무척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어째서? 넌 전생의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아? 난 할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인데. 지금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 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돌아가고 싶은데……. 넌 아니야?”
크리스는 리브 역시 자신처럼 전생을 그리워 할거라 생각했다. 그것도 전생의 부모님에게 상당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현재의 부모님에게 집착하고 있어서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 번이라도 전생에 대한 그리움을 너에게 토로했던가?”
크리스는 자신의 예상이 철저히 빗나가자 당황스러운 심정이었다.
“전생은 전생일 뿐이야. 네가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돌아갈 수 있는게 아니라고. 헛된 희망에 매달리기 보다는 현생에 정을 붙이고 제대로 적응하도록 해. 이렇게 겉도는 것은 좋지 않아. 크리스 네 자신만 망가질 뿐이야.”
리브의 목소리에는 어렴풋이 걱정과 안타까움이 담겨있었다.
“전부터 말해주고 싶었어. 더 이상 전생에 매달리지 마. 지금 현생에 너와 얽혀있는 사람들이 알면 얼마나 섭섭해하겠어. 특히 네 부모님……. 넌 아직도 그분들을 ‘지금의’라는 수식어를 붙여져 한정시키잖아. 그 분들은 널 하나 뿐인 아들이라며 무척 사랑하실텐데.”
넌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있잖아. 화목하고 행복한, 정상적인 가정환경. 그런데 왜 전생에 매달리는거야? 순간 리브는 크리스에 대한 질투심이 일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추하게 그 마음을 보이는 것은 톰 리들한테 했던 것으로 족했다. 리브는 부모님만 얽히면 이리 감정적으로 나약해지는 자신이 또다시 불만스러워 졌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 물론 지금의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시고 사랑해주시는거 알아, 감사하게 생각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생에 부모님이 나를 낳고 사랑해주신 게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크리스는 전생에 모델로 성공하지는 못할지 언정 부모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모양이었다. 여느 가정의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그 생각에 미치자 리브는 울컥하는 심정이었다.
“리브 넌 전생의 부모님이 그립지 않아?”
전생의 부모님이 그립지 않냐고? 리브가 전생의 기억이 생생하지 않다고 해서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생은 전생일 뿐이니 생각을 안 하려고 했던 것일 뿐.
“넌 어떻게 그리 쉽게 전생의 부모님을 잊을 수가 있어?”
크리스가 덧붙인 말은 참고 참던 리브의 감정을 무너뜨렸다.
“그리움? 나한테 그따위 것이 있을 리 없잖아!”
리브의 푸른 벽안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마치 광기가 어린 것 같은 그 모습에 크리스는 움찔했다.
“난 전생에도 부모 없었어!”
마치 울음과도 같은 소리침이 소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말에 담긴 내용에 크리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런 나에게 전생의 부모님에 대한 향수 따위가 있을 것 같아?”
내가 이 말까지 하게 만들어야 했니. 리브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크리스에게 원망과 야속함을 담아 한껏 쳐다보던 소녀는 이내 필요의 방을 나가버렸다.
============================ 작품 후기 ============================
제가 쉬는 동안 성장 아이템 보내주신 'gmdld'님 감사합니다^^
예쁜 그림 그려주신 '천울'님도 감사합니다! 무려 리브가 리들에게 뽀뽀하는 모습을 그려주셨어요ㅠㅠㅠ우리 리들리브는 언제쯤 이런 날이 오련지..
* 크리스 미워하시는 거 보고 깜놀..! 아니 님들! 그렇게 애타게 서브를 데려와 달라고 하셨잖아여! 물론 크리스는 서브남 비스무리한 애지만...어... 다들 크리스가 언제 죽냐고 하셔섴ㅋㅋㅋㅋㅋㅋ글쎄요. 리들이 가만두지 않을 거긴해요.
* 리들에게 크리스는 기생오라비에 여우...
* 리브가 환생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생의 부모님에게 집착했던 이유는 전생에 부모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아원을 지긋지긋해 하는 리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도 전부 여기서 기인하죠. 리들이 겪은 것들을 리브는 전생에 겪었고.. 아마 새로 태어났을 때 리브는 어렴풋이 부모라는 존재를 기대했을거에요. 그런데 현실은...ㅜㅜ
* 오늘도 크리스는 왕창 까일 느낌^^! 이제 곧 넌씨눈 짓은 막을 내릴거에여... 원래 눈치 빠른 애임여ㅋㅋㅋㅋ
오늘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