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67화 (67/115)

0067 / 0115 ----------------------------------------------

Chapter 12. 인지와 인정 사이

* 오늘은 후기를 읽어주세요.

리브는 리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노트를 돌려줬을 뿐이었다. 네 글씨체랑 똑같네. 그렇게 말하며 웃는 리들에게 리브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소녀의 고운 얼굴에서 깊은 수심(愁心)을 읽은 리들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리브는 아무 일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후로도 리들은 몇 번이나 캐묻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리브는 철저히 모른 척했다. 급기야 리들은 강제로라도 말하게 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하지만 실어증에 걸렸을 때 끝끝내 입을 열지 않던 리브가 떠올랐고 이번에도 소용없을 걸 알기에 관두었다. 사실 리브도 리브지만 현재 하고 있는 연구에 정신을 쏟느라 무척 바쁘기도 했다.

한편 리브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무슨 정신으로 호크룩스에 대해 봤다는 흔적을 지웠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다른 페이지에 적혀있던 어둠의 마법에 관한 내용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것들 전부 치명적이고 위험한 것들이었으나 이는 호크룩스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리브에게는 <가장 사악한 어둠의 마법의 비밀>에 적혀 있던 호크룩스 챕터를 모조리 필사해놓은 것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정독을 하고 곱씹었을까. 거기다가 호크룩스와 7이라는 숫자에 대해 자신의 가설을 써내려간 것은 리브에게 두려움을 줬다. 영혼을 일곱 개로 쪼갠다니. 하나만으로도 끔찍한데 어떻게……. 문제의 내용들을 담고 있는 글씨체는 그 주인답지 않게 몹시 휘갈겨있었는데 얼마나 흥분과 희열에 차있었을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리브는 이제 무서워졌다. 항상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그러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게 간신히 잠재워 놓았던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서 무서워졌다.

어떤 식으로든 원작대로 흘러가는 것일까? 하지만 필리우스 선배는 작아지지 않았는걸…! 난 원작을 바꿨어. 이번에도 바꿀 수 있어. 하지만 그 외침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자신이 없었다. 결국 원작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 생각만이 강하게 들 뿐이었다.

이제 리브는 절규하고 싶어진다. 어째서. 왜. 불사 따위를 대체 왜 갈망하는거야? 사람은 누구나 죽어. 영원한 것은 없다고!

이렇게 외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직접 말해. 직접 말하고 그를 설득해. 그리고 호크룩스가 얼마나 끔찍하고 의미 없는 것 없는건지 설득시켜. 어떻게든 네 의견을 관철시켜. 그만두게 해.

난 못해. 무서워. 리브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무력감이 온 몸을 휘감는다. 나는 왜 이리 어리석고 나약할까. 또 얼마나 오만했던가. 나는 톰 리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래도 올바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록 방관과 회피 밖에 한 것은 없었으나 은연중에 영향을 끼치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종종 쓴소리를 뱉으며 그와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으니까. 그리고 그는 석연치 않아 하면서도 수긍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변한 것은 톰 리들이 아니었다. 나와 그의 관계가 변했을 뿐이었다. 즉,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사악하고 볼드모트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이렇게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던가.

“리브, 얼굴 표정이 안 좋아.”

한편 리브와 호그스미드를 거닐던 크리스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리브는 약속대로 크리스에게 호그스미드 구경을 시켜주고 있었다. 자신과의 멘토링 핑계를 대라던 리들의 제안을 무시해버렸다. 어차피 리들은 요즘 기숙사에 처박혀서 그 연구라는 것을 하느라 바빴기에 리브는 그다지 마음 쓰지 않았다.

“혹시 어디 아픈거야?”

신기하게 호그스미드를 두리번거리던 크리스는 부쩍 말이 없고 어두워 보이는 리브에게 말을 건넸다. 사실 요즈음의 리브는 부쩍 기운이 없어보여서 크리스는 무척이나 걱정스러워 했다.

“그런거 아니야.”

리브는 고개를 젓고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역시 고운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거야? 혹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니야. 신경쓰지 마.”

리브의 목소리는 살짝 날이 서있었다. 무안할 법도 했으나 크리스는 해사하게 웃으며 알겠다며 상냥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리브는 순간 미안함이 들어 곧바로 사과의 말을 뱉어냈다.

“미안해. 너한테 이런다고 변하는건 없는데…….”

“아니, 괜찮아.”

크리스는 상냥하고 따스할 뿐만 아니라 배려심 있었다. 또한 그는 적당히 말수 있고 적당히 재치 있었다. 크리스는 그 완급을 조절할 줄 알았다. 말이 많은 남자는 가벼워 보이기 십상이었지만 크리스는 그렇지 않았다. 리브는 크리스의 섬세한 배려 덕분에 마음이 한 결 편해지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청년은 소녀가 마카롱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허니듀크에서 선물이라며 한 상자 안겨주었다. 상당한 가격에 리브는 거듭 사양했으나 크리스는 감사의 표시라며 끝내 안겨주었다.

“리브 너 덕분에 내 변신술 실력이 많이 늘었는걸.”

“하지만 나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야.”

“부담 갖지 마. 넌 파트너 제의를 거절 할 수 있었어. 하지만 수락하고 날 성심성의껏 도와줬잖아. 너 덕분에 그럭저럭 O.W.L.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덤블도어 교수님은 A(보통)만 받아도 N.E.W.T.수업을 듣게 해주시니까.”

크리스는 석연치 않은 리브의 표정을 보다가 정 부담스럽다면 스리브룸스틱스에서 버터맥주나 한 잔 사달라고 했다. 리브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마카롱 상자를 끌어안았다. 마카롱을 꺼내 사이좋게 오물오물 먹고 있는데 크리스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요즘 힘들어 하는 이유가 혹시…… 톰 리들 때문이야?”

크리스의 말에 마카롱을 씹던 리브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 하지만 이내 리브는 그것을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달디 단 초콜릿 마카롱이건만 갑자기 쓰게 느껴졌다.

“혹 싸운거라면… 난 네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 안 해. 리들의 잘못이겠지.”

쓰다. 너무 쓰다. 리브는 집착적으로 마카롱을 입에 넣어 씹고 또 씹었다.

“…나는 그를 알아. 머틀의 왕따를 그가 주도했다는 것도 알고. 그를 건드린 자들의 끝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알아.”

그 말에 리브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소녀의 깊은 벽안이 청년의 해사한 얼굴로 항했다.

“리브, 넌 알고 있겠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결코 변하지 않는 다는 것도 알겠지. 혹시 정말 변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변할거라고 생각해?”

그 물음에 리브의 손에 들린 금빛 마카롱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충격에 마카롱이 부서지며 안에 있던 푸른빛 크림이 부스스 흩어졌다. 크리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너에게 미움받게 되더라도 나는 말 해야겠어. 리브, 난 네가 너무 걱정 돼. 이렇게 마음 고생하면서 왜 그의 옆에 있는거야? 그는 실로 사악하고 무서운 자야.”

리브는 말없이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떨어진 마카롱 파편들을 하나하나 주워 빈 봉지에 담을 뿐이었다. 크리스는 같이 자세를 낮춰서 그것을 줍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입술을 움직인다.

“혹시 협박이라도 받은거야?”

“그런거-”

“아니면 톰 리들을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너 역시 그에게 푹 빠져 버린거야?”

“그만해.”

계속 말이 없던 리브의 입술에서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리스는 이제 멈춰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말하고 말았다.

“그가 결국 너까지 깊이 매료시키고 만거야?”

그 말에 리브는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집어던져 버렸다. 그 바람에 망가진 마카롱이 더욱더 잘게 부서졌다. 금빛과 푸른빛이 이리저리 엉켜 바닥에 흩어졌다. 그 모습은 참으로 처참해서 처음의 어여쁜 모양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게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아서 리브는 서글퍼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만 하면 안내는 충분하지? 난 가겠어.”

“리브!”

크리스는 돌아서는 이의 팔을 붙잡았으나 소녀는 힘껏 뿌리쳤다.

“이거 놔!”

“잠깐-”

“너랑 할 얘기 없어!”

그렇게 외치는 리브의 푸른 눈망울에는 눈물이 아른 거렸다. 소녀는 크리스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다가 휙 가버렸다. 크리스는 여기서 리브를 잡지 못하면 그녀와의 관계가 이대로 끊길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잡아야 했다.

“미안해! 난 단지 네가 걱정돼서…!”

“…….”

“리브, 정말 미안해. 다시는 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게.”

“…….”

“다시는 안 그럴게. 정말 미안해. 그러지 마…!”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았음에도 크리스는 리브의 뒤를 끊임없이 쫓아갔다. 하지만 리브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사과의 말을 뱉는 크리스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리브, 제발!”

리브는 끝끝내 크리스를 무시했다. 이대로 호그와트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누군가와 마주치고 말았다. 모든 일의 원흉인 자였다. 톰 리들. 그가 눈 앞에 있었다.

“올리비아?”

리브를 나지막하게 부르던 리들은 소녀의 얼굴을 보고 멈칫 했다. 눈물을 꾹꾹 참고 있는 듯 붉어진 리브의 푸른 눈망울을 본 리들은 뒤에 서있는 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눈길은 차디찼다. 크리스티안 카르티에.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다 못해 이제는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너, 올리비아한테-. 내가 분명히 경고 했을텐데.”

리들의 붉은 입술에서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미성이 새어나왔다. 슬리데린의 청년은 흉흉한 기세를 온 몸으로 드러냈으나 그리핀도르의 청년은 조금도 움찔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사한 미소를 얼굴에 담는다. 그 모습에 리들은 살심이 치솟을 지경이었다. 그를 잠시 노려보던 리들은 리브의 손을 잡아 자신에게로 잡아끌었으나 소녀는 그 손을 뿌리쳤다.

“올리비아?”

리브의 벽안이 리들을 지긋이 응시했다. 소녀는 리들이 원망스러웠다. 호크룩스를 생각하자 너무나도 화가 났다. 무력감과 절망, 그리고 분노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러다가 크리스의 말들로 인해 꾹꾹 참아 오던 것이 폭발해버렸다. 이대로 소리치고 싶다. 어째서 당신은 그 모양 그 꼴이냐고. 하지만 안된다. 그래서는 안된다. 리브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에게는 이러면 안 돼. 참아. 서럽고 또 서러웠지만 그 감정을 표출하기 보다는 이성적으로 행동해야만 했다. 크리스와 리들 선배가 자신으로 인해 갈등을 빚거나 하는 일은 없어야만 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크리스에게 손대지 말아요.”

정말로 리들 선배와 크리스가 호그스미드 거리 한 복판에서 주문을 쏘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가는 크리스가 위험해질 것이 뻔했다. 크리스가 톰 리들의 상대가 될 리 없지 않은가. 리브의 머릿속에 노트에서 보았던 치명적인 어둠의 주문들이 스쳐지나갔다. 그것만큼은 안된다. 그걸 썼다가는 크리스는 끝장이다.

“뭐?”

하지만 리브의 말을 들은 리들의 표정은 더욱더 서늘해질 뿐이었다. 뭐? 손대지 말라고? 크리스를 감싸는 듯한 리브의 발언에 리들은 머리끝까지 열이 치솟았다. 근본적인 이유는 알지 못한 채로 그렇게 리들은 그 역한 감정을 토해냈다.

“저 자식이 널 곤란하게 만들었잖아.”

“그런거 없어요. 나에게는 지금 당신이 더 곤란해요.”

그 말에 리들의 흑안이 더욱 더 싸늘해졌으나 리브는 눈앞의 청년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참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당신이 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어. 크리스 말처럼 나는 당신과 가까이 지내지 말아야 했어. 당신은 위험한 사람이야. 그리고 결코 변하지도 않아. 결국은 원작대로 흘러가겠지. 답은 나왔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했다. 나는 본래 이성적이었으나 이렇게 톰 리들에 관해서는 감정적으로 변하고 만다. 대체 왜. 나는 왜 당신을 외면하지 못하는 걸까. 방관과 회피를 택하면서도 어린 날처럼 당신을 철저하게 피하지 못하는 걸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 대답은 더욱더 잔혹했으므로.

나를 이렇게 만든 당신이 정말 원망스럽다. 그리고 그보다도 내 자신이 너무나도 싫다. 나는 어찌 이리도 나약한가.

“올리비아 너-”

“…미안해요.”

나는 이리도 나약하다.

“하지만 걱정 안해도 돼요. 이건 나와 크리스의 일이고, 리들 선배까지 그러면 난 곤란해요.”

“하지만-”

“리들 선배가 날 여동생처럼 생각하고 나에게 훌륭한 멘토라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이건 내 사적인 영역이에요.”

“올리비아-”

“나는 리들 선배가 작년에 수많은 여학생들과 끊임없는 열애설을 내고 다녔을 때 단 한 번도 무어라 한 적 없어요.”

그 순간 리들의 수려한 얼굴에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너무 순간인지라 리브는 그 표정을 캐치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리들 선배 차례에요. 크리스, 이리 와. 얘기할 마음이 생겼어.”

리브는 그대로 리들을 지나쳤고 멘토는 결국 멘티를 잡지 못했다. 갈 곳 없는 리들의 감정은 분노가 되어 크리스에게로 내리 박혔다.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가만 안둘 줄 알아.”

“그건 내가 할 소리야.”

크리스는 여전히 해사한 미소를 짓고 상냥하게 말을 내뱉고 있었으나 보랏빛 자안은 서늘했다.

“리브가 저러는건 너 때문이야.”

“무슨-”

“최근 그녀가 하고 있는 걱정이며 근심은 전부 너 때문이라고 이 멍청아.”

크리스의 거친 말에 리들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인내심이 끊어졌는지 주목나무 지팡이를 들어 올리려는 청년에게 벨라 청년은 일침을 가했다.

“리브는 네가 이런 인간인거 알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없애려 하는 너의 이런 파괴적이며 사악한 성품을 알기나 해?”

“그녀는 나에 대해 잘 알아. 그리고 나 역시 누구보다도 그녀를 잘 알지.”

“과연 그럴까.”

자신을 향해 겨눠진 지팡이를 눈앞에 두고도 크리스는 여전히 해사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 보는 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들은 크리스를 끝장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까지의 대화는 거의 속삭이는 수준이었기에 주변인들에게 들리지 않았으나 마법을 쓰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리들은 저 곱상한 얼굴에 새겨진 미소를 지워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가득 일었다. 하지만 지팡이에서는 아무런 빛도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가 내뱉은 말이 리들의 전의를 상실시킨 것이다.

“네가 그녀를 망가뜨리고 있어. 이대로라면 언젠가 그렇게 될테지.”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의 해사한 얼굴에는 미소 한 점 없었다. 선한 보랏빛 눈동자에는 경멸이 서려있었고 남자치곤 살짝 높은 미성은 차디찼다. 크리스는 그대로 리들을 지나쳐 리브의 뒤를 따라갔다.

*

“아까는 갑자기 화내서 미안해. 조금 예민한 일이 있었어.”

리브는 곧바로 크리스에게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하자 자신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리브는 감정적으로 굴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크리스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는 톰 리들의 진면목을 알았고 그에 따라 충고를 해준 것뿐이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왜 화가난 것일까. 나는 왜 그리 된 것일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리브는 이번에도 회피하는 것을 택했다. 두려웠기 때문에.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리들 선배에 관해서는 그 어떤 얘기도 하지 말자.”

“……리브, 미안해.”

“더 이상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리브는 몹시 지쳐보였다. 친구의 고운 얼굴에 엉켜있는 복잡한 감정선을 보자 크리스는 마음이 아팠다. 지독한 슬픔이 순간 물씬 느껴졌다.

“크리스 너는 리들 선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잖아. 나는 그를 오랜 기간 동안 봐왔어. 너보다는 내가 더 그를 잘 알아. 더 이상 나와 그의 관계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게 마지막이야.”

마지막이라고 하는 리브의 말에는 살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는 관두지 않았다. 아까 전의 톰 리들을 보니 더욱 더 확실해졌다.

“리브, 나는 너만큼이나, 아니 너보다 더 리들에 대해서 알아. 그래서 이러는 거야. 그는 실로 사악하고 무서운 자야.”

리브의 얼굴에 순간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소녀는 청년에게 너 따위가 리들 선배에 대해 뭘 아냐고 바락바락 소리치고 싶었다. 사실은 그를 나쁘게 말하지 말라고 그리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그는 나쁜게 맞으니까. 리브의 입술이 부르르 떨려왔다. 리브의 표정을 읽은 크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은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더니 가볍게 휘둘렀다.

“머플리아토.”

리브의 떨림이 멈췄다. 그 주문을 정확히 들은 리브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머플리아토…? 그건 분명…… 리브의 벽안이 순간 커졌다. 놀라움을 담은 채로. 말도 안 돼, 그럴리 없어. 처음 소녀가 떠올린 것은 부정이었다. 그런 리브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크리스는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나한테 마음껏 소리 질러도 좋아. 네 분노든 원망이든 전부 들을게. 네가 무어라 소리 질러도 아무도 듣지 못할거야. 귓가에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지. 그들은 그저 날파리나 뭐가 있다고 생각을-”

그 주문이… 맞았다…! 하지만 어떻게? 리브는 복잡한 의문을 그대로 말로 뱉어냈다.

“네가 어떻게 그 주문을…?”

이제 리브의 얼굴은 충격으로 가득 차있었다. 지금 소녀의 고운 얼굴에 분노나 슬픔은 어디에도 없었다. 리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그건 분명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그 주문을 어떻게 크리스 네가?”

리브의 말에 크리스의 자안 역시 확장되었다. 이어서 청년의 해사한 얼굴 역시 충격과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정확히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는 두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 주문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 아니,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대체 누가 믿는단 말인가. 마법사들에게도 그것은 말도 안되는 풍문이었다. 자신은 이 세상에 다시는 없을 그런 돌연변이 같은 존재라 그리 생각했다. 크리스는 감격과 희열에 찬 듯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떤… 책이 있었는데…….”

너무 가슴이 벅찬 나머지 크리스는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리브는 크리스의 '책'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책, 책이라고…? 리브가 원작이라 칭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소녀는 머릿 속 깊이 잠들어있던, 희미해져가는 전생의 기억 속에서 간신히 끄집어낸 그 이름을 말로 뱉어본다.

“책…… 해리 포터(Harry Potter)…….”

리브의 중얼거림을 들은 크리스의 해사한 얼굴에 웃음이 가득 번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해사한 미소가 가득 흘러나왔다. 신비로운 보랏빛 자안에 기쁨이 가득 맺혔다. 크리스는 절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말을 뱉어본다.

“나는 그 책을 현생이 아닌 전생에 읽었지.”

<인지(認知)와 인정(認定) 사이> 마침.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정말 빨리왔죠?ㅎㅎ

멘토링을 애독해주시는 분들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 이로써 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그런 동질감을 리브와 크리스는 공유하게 됩니다^0^ 그나저나 독자님들 참 예리하십니다..... 크리스가 환생자라는 것을 그렇게 빨리 알아차리실 줄이얔ㅋㅋㅋㅋㅋㅋㅋ하긴 좀 티가 나긴했죠?ㅋㅋㅋㅋ런던의 공습이 더 이상 있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것은 전생을 알기 때문이었음돠.

* 조금만 더 말씀드리자면 크리스는 리브와는 다른 케이스의 환생자입니다. 그니까 전생의 기억의 희미한 리브와는 달리 크리스는 전생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며 잊지 못하고 있죠.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것은 무서운것이다.] 이 말들이 크리스와 리브의 차이점을 확 드러낸다고 봅니다. 일단은 여기까지!ㅎㅎ 이것들에 관해서는 다음 챕터부터 차차 다뤄질 예정이니 기다려주세여.

* 환생자가 두명이라고 막장 이딴거 없습니다. 크리스를 환생자로 설정한 이유는.. 리들이 너무 먼치킨적인 캐릭터라서요^_ㅜ... 크리스가 비록 서브남비스무리한 인물이기는 하나 리들과 동등해지길 바랍니다ㅎㅎ

* 또한 환생자 설정인 리브에게 살짝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고 몇 번 지적도 있었습니다. 스포가 되기 때문에 그게 어떤 부분인지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매끄럽게 쫙 풀어질 예정입니다.

* 저는 좀 쉬고 올게여! 하지만 그 전에 말씀드렸던대로 킨블랙 연재중이신 '롱템플와르'님께서 선물해주신 외전까지 올릴게요. 외전이 쩌니까 그거로라마 독자님들을 달래봄미다...... 외전도 빨리 들고 올게요^0^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