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65화 (6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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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인지와 인정 사이

에밀리가 명랑하고 발랄한 성격인 반면 리브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에밀리 맥밀란이 대대로 후플푸프의 명맥을 이어온 유서깊은 순수혈통 집안의 고명딸이며 이례적으로 래번클로에 들어간 여학생이라는, 즉 집안 배경으로 인지도가 있었다면 올리비아 브릴리언트는 톰 리들의 멘토라는 것과 그녀 자체만으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 두 여학생은 신입생 시절부터 쭉 우정을 나눠온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 중 올리비아 브릴리언트는 눈에 띄게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는 여학생이었는데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찬란한 빛감의 골드 블론드와 사파이어 같은 푸른 벽안은 소녀의 상징과도 같았다. 착하고 따스한 성품은 물론이거와 소녀가 지닌 외모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깜찍해서 많은 남학생들이 남몰래 불면의 밤을 지새기도 했다.

외모 뿐 만일까. 전 과목 필기 만점에 만년 수석이라는 것은 말하기 입 아플 정도고 변신술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는데 이는 가히 천재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잘난 척 하거나 거만한 모습은 한 조각도 보여주지 않았다. 또한 이성적이고 침착한 성품으로도 정평이 나있어서 후배들의 동경을 한 몸에 받았고 자칫하면 이성관계로 여러 번 남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할 소지가 다분한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맺고 끊음과 자기관리가 철저해서 단 한 번도 추문에 휩싸인 적이 없었다. 물론 여러 번 멘토링 파트너인 ‘톰 리들’과 연인 사이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곤 했지만 이는 추문과는 거리가 머니 제하도록 하자.

리브를 사모하는 남학생들은 소녀가 그 어떤 남자도 받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물론 리브의 주위에 남학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친하게 지내는 남학생들이 래번클로와 후플푸프에 더러 있었으나 리브에게 흑심을 드러내자마자 철벽에 튕겨져 나가야만 했던 것이다. 리브는 냉정해 보일 정도로 이성관계에 있어서는 맺고 끊음이 확실했다. 그리고 소녀는 그 어떤 남학생과도 교제는 물론 외출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는 본의 아니게 ‘도도하다’는 평까지 더해주었다. 리들은 종종 저학년 생들이 자신의 멘티가 얼마나 도도한지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크리스 역시 그리핀도르 남학생들이 누가 리브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둥 하지만 정말 대수롭지 않게 떠들어 대는 것을 자주 들은 적이 있었다.

“인기가 많았구나.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는데.”

크리스의 말에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리핀도르의 반장인 아놀드 위즐리가 고개를 열성적으로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위즐리 가문 특유의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이 그 움직임에 맞춰서 가볍게 흔들거렸다.

“그럼. 원래도 암암리에 인기가 많았는데 여름방학 끝나고부터 인기가 치솟았어.”

“왜?”

“원래도 예뻤는데 거기서 더 예뻐졌거든. 눈으로 직접 보는게 낫겠다.”

아놀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어떤 사진을 척 꺼내들었다. 작년에 민달팽이 클럽에서 찍은 사진이야. 그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이며 친구에게 사진을 건네주었다. 크리스는 사진을 찬찬히 보다가 어렵지 않게 리브를 발견했다. 벌꿀이 흘러내리는 듯한 황금빛 머리칼과 바다 같은 벽안은 금세 눈에 들어왔다. 지금보다 더 작은 키에 상당히 앳되어 보이는 고운 얼굴. 물론 아직 리브는 열 네 살인지라 아직 여성이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까웠으나 사진 속과 지금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확실히 앳된 티를 벗고 성숙해졌다. 크리스는 무의식적으로 ‘이 나이 대 애들은 참 빨리 큰단 말이야.’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맞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너를 꼭 데려오라고 하셨어. 내가 중간에서 난감한데 너 그냥 나오면 안되냐?”

아놀드 위즐리 역시 반장에 우등생이었기에 올해부티 슬러그혼의 만찬에 초대 받고 있었다. 톰 리들이나 슬리데린의 순수혈통 집안 자제들처럼 귀빈까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놀드와 달리 크리스는 슬러그혼이 열성적으로 클럽에 출석해줄 것을 요구하는 귀빈에 속했다.

“너희 집안에는 누가 있길래 민달팽이 교수가 저렇게 열성적이야? 나한테도 꼭 너를 데려오라고 했어.”

“아아. 어머니.”

이사벨 카르티에. 처녀적 이름은 이사벨 마르소인 크리스의 모친은 마치 여신이 하강한 듯한 아름다운 미모로 프랑스 마법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전설적인 모델이었다. 한창 전성기에 이 은발 미녀는 갑자기 결혼을 이유로 돌연 은퇴를 선언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프랑스 마법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까지 했다. 그런 어머니의 외모를 그대로 물려받은 크리스는 이사벨의 남자 버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아있었다.

“안 그래도 어머니한테 클럽에 참석하라는 편지를 받았어.”

이사벨은 카르티에 부인이라 불리며 순수혈통과 재력 가문들 사이에서 고급 장신구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초기에 슬러그혼 교수가 인맥 부분에서 상당한 도움을 줬던 것이다. 프랑스인이라서 아는 영국인은 하나 없었고, 영국 문화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이에 빠삭한 크리스가 도움을 줬지만 인맥 관련해서는 크리스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때 슬러그혼 교수가 이사벨에게 과거 모델 시절에 팬이었다며 선뜻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고 이게 밑바탕이 되어 그녀의 장신구 사업은 자리를 잘 잡고 있었다. 최근에는 말포이 가문의 후계자와 맥밀란 가문의 고명딸의 약혼 예물을 의뢰 받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 상자는 뭐야?”

“어머니께서 슬러그혼 교수에게 갖다 주라는 선물이야. 아마 우리 가문에서 만든 장신구나 뭐 그런게 들어 있겠지.”

크리스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곱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서랍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편지가 여러 장 쌓여 있었는데 전부 머글 친척들이 보내온 것이었다. 아놀드는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프랑스어로 적힌 편지 봉투를 손에 쥐더니 부채질을 하듯 팔랑팔랑 흔들었다.

“머글 친척들이랑 친한가봐? 편지가 대체 몇 장이야.”

아놀드의 말에 크리스는 콧방귀를 뀌며 자신이 후계구도에 뛰어들까봐 전전긍긍 하는 어른들의 것이라 대꾸했다. 어쩐지 너무 성의 없이 책상에 널려 있다 싶었다. 이내 아놀드는 마법사인 네가 머글 사업에 관심이 있을 리 없지 않냐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어른들은 내가 마법사란걸 모르니까 말이야. 머글 학교 다닐 때 공부도 곧잘 했고… 특히 피에르 할아버지가 날 예뻐하시니까 불안한거지. 아마 머글 친척들은 내가 이튼 칼리지(Eton College, 영국 이튼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는 줄 알거야.”

크리스는 어렸을 때부터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명석했다. 프랑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유급률을 가진 나라였음에도 크리스는 단 한 번도 유급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몇 번 월반을 하기도 했다. 또한 한 때 천재가 아니냐며 학교가 술렁인 적도—결국 영재로 판명— 있었다. 천재이든 영재이든 크리스는 총명했고, 요정 같은 외모에 똑똑하기 까지 한 손자를 피에르 카르티에가 예뻐하지 않을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요정처럼 예쁜 남자 아이를 친척 어른들도 어화둥둥 예뻐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아이가 자라서 후계 경쟁의 낌새가 보이자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사벨 카르티에가 자신들은 후계 구도에는 관심 없으니 잘들 해보라며 덕담(?)을 하며 한발 물러나있었기에 심하지는 않았으나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었다. 특히 크리스는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묘한 기싸움에 눈치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서 가끔 피곤함을 느꼈다.

“사교계는 눈이 즐거워도 피곤해. 그래도 뭐…… 가끔 여자들끼리 기 싸움 하는거 보면 재밌기는 해.”

크리스의 머글 부친은 프랑스의 유명 보석 브랜드인 ‘카르티에(Cartier)'의 런던 지사장이었다. 카르티에 브랜드가 영국 왕실에 공식적으로 장신구를 납품하는 등 세계적인 브랜드로 위상이 높아지자 가문 내부의 후계경쟁은 더욱 더 치열해졌다.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던 신비주의 모델 크리스티안 카르티에의 돌연 은퇴 선언에 사실 이유는 학업이 아니라 후계 경쟁에 뛰어 드는게 아니냐고 한동안 프랑스 머글 세계가 술렁거리기도 했다. 또한 그의 친척들도 내심 크리스로 인해 후계구도가 바뀌는게 아닌지 상당한 경계를 할정도 였다. 이런 반응에 이사벨 카르티에는 특유의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후계 따위에는 관심 없다고 재차 말할 뿐이었다.

이는 사실이었다. 이사벨은 마녀였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도 상당한 재력을 거머쥐고 있었고 현재는 영국 마법세계에서 장신구 사업까지 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꽤 성공적이었는데 머글 장인들이 만든 카르티에 상품에 마법을 접목시켜 마법 상품으로 탄생시킨 것을 취급했다. 예를 들어 화이트 골드, 옐로 골드, 핑크 골드 등 세 가지 색상의 링이 서로 얽힌 형태를 이루는 트리니티링(Trinity Ring)에 영구 부착 마법이나 영구 클린 마법을 걸어 놓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재밌다고? 난 여자들 싸우는게 더 무서워. 말 나온 김에 하는데 그 착하고 순하기로 유명한 브릴리언트도 싸울 때는 장난 없더라.”

“리브가?”

크리스의 보랏빛 자안에 의문이 가득 맺혔다. 리브가 싸운다고? 도저히 상상이 되지를 않았다. 크리스가 본 리브는 이성적이고 침착했으며 순하기 그지없었다.

“음, 싸웠다고 해야하나 일방적으로 밟아줬다고 해야하나…….”

아놀드에게서 ‘파킨슨 머리채사건’을 전해들은 크리스는 입을 쩌억 벌렸다. 곧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청년의 해사한 얼굴에 떠올랐다. 그 불신이 가득한 그 눈빛에 아놀드가 진짜라고 재차 말해야만 했다.

“톰 리들 팬클럽이 왜 브릴리언트를 안 건드리는지 알아? 화나면 무섭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아, 그러고 보니까.”

그때 아놀드가 무언가가 떠오른 듯 뒹굴 거리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세웠다.

“브릴리언트는 모자걸이(hatstall)였어. 래번클로와 슬리데린 사이에서 고민했었지.”

“슬리데린이라고?”

아까 못지않은 불신의 기색이 크리스의 신비로운 보랏빛 자안에 가득 담겼다.

“응. 모자가 슬리데린으로 배정하려다가 번복했어.”

리브와 슬리데린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던 크리스는 그녀에게 친한 슬리데린 친구가 톰 리들의 지인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리온 블랙이나 아브락사스 말포이는 톰 리들의 최측근이었다.

“그런데 크리스, 너 브릴리언트에게 왜 이리 관심이 많아?”

아놀드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크리스를 응시했다. 하지만 은발의 미청년은 해사하게 웃으며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

남학생과 이성적으로 접점을 전혀 만들지 않는 리브의 철벽은 몹시 견고하기 그지없었다. 고백은 모조리 거절했으며 외출 또한 헛된 희망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냉정해보일 정도로 선을 긋고 끊어냈지만 잔인하게 굴지는 않았다. 리브는 착하고 따스한 여학생이었다. 그래서 거절을 당하면서도 남학생들은 소녀에 대한 마음을 쉬이 접기 힘들어했다. 조금 친해졌다고 괜한 고백을 해서 그나마 친했던 사이마저 멀어졌다며 자신의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리브가 앞으로도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여기서 만족해야만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런 소녀의 옆을 오랫동안 지켜온 남학생은 톰 리들 하나 뿐이었다. 멘토링으로 맺어진 둘 사이의 열애설은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리들은 리브를 여동생 같은 후배라 했으며 리브는 리들을 오빠 같은 선배라 지칭했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기에 다른 이들 보다 친밀한 것일 뿐이라며 열애설을 일축하는 모습은 둘 다 칼 같았다. 이 모습은 최근 리브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었다. 소녀는 자신과 리들에 관한 억측은 서로를 곤란하게 만들 뿐이라며 단호하게 끊어냈다. 소녀의 완강한 부인은 마치 집착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으나 이를 알아차린 사람은 그 상대방뿐이었다.

“너 손이 왜이래.”

리들은 리브를 만나자마자 오른손을 감은 붕대를 지적했다. 원래대로라면 붕대를 풀고 완쾌되었어야 했으나 맨드레이크의 성분에 독성이 있었는지 진물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리브는 다시 한 번 병동을 찾아야만 했다. 폼프리 부인은 어린 맨드레이크라서 독성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성장이 빠른 식물이었던 것 같다며 새로운 약을 발라주었다.

“너 1학년 때도 맨드레이크 수업에서 다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

리들의 지적에 리브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걸 어떻게 아냐며 반문했다.

“멘토링 대면식 때 네가 말해줬어.”

“그걸 지금까지 기억한단 말이에요?”

“내가 뭐 모르는 거 봤어?”

리들은 오만해 보일 법한 말을 대꾸하며 공동 휴게실 저편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아브락사스에게 손을 가볍게 한 번 들어주었다. 모습을 보니 에밀리와 멘토링 중인 모양인데 둘 다 얼굴이 상기된 것을 보니 아무래도 또 싸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옆 테이블에서는 에드가가 심드렁한 표정의 오리온에게 어떤 주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공동 휴게실은 몹시 시끄러웠다. 이들이 평소처럼 필요의 방에서 멘토링을 하지 않고 공동 휴게실에서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필요의 방이 어째서 우리에게 문을 안 열어줬을까요?”

“없어졌거나, 훼손되었거나.”

“그럴리가요!”

필요의 방이 없어져? 훼손돼? 그럴 리가 없었다.

“혹은 누군가가 그 안에 있다던가.”

리들의 예리한 추측에 리브가 눈꺼풀을 깜박였다. 누군가 그 안에 있다고? 그렇다면 문고리가 나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리브의 생각을 읽은 듯 리들이 다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안에 들어간 자가, 필요의 방의 쓰임새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누군가의 출입을 막아달라는 요구를 했을 수도 있지. 그럼 누구도 필요의 방에 침입할 수 없어. 그자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 공간을 나오기 전까지 말이야.”

실제로 리들과 리브도 그 방법을 쓰고 있었다. 리들은 필요의 방의 존재를 처음 알려준 리브보다도 더 필요의 방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혹시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었어요?”

“물론.”

리브는 어설프게 왼손으로 깃펜을 쥐고 있었다. 오른손 잡이인지라 왼손으로 쓴 글씨는 엉망진창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리브는 글씨를 쓰는 데에 끙끙거리며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꺼냈다. 학문적인 것이 아닌 개인적인 질문이 소녀의 입술에서 새어나왔다.

“리들 선배, 요즘 뭐가 그렇게 바빠요? 멘토링 시간까지 줄이고…….”

“그래서 아쉬워?”

책에서 눈을 뗀 멘토는 멘티의 고운 얼굴을 보며 싱긋 웃었다. 수려한 미소가 조각 같은 얼굴에 옅게 맺혔다. 간만에 만난 리들은 여전히 빼어난 미모와 태생적인 우아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살짝 피곤해 보이기는 했으나 그 미모가 전혀 빛바래지거나 퇴색되지는 않았다. 곱게 매어진 넥타이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교복의 맵시는 더없이 단정했다.

사실 누구도 리들이 살짝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년을 오랜 기간 동안 봐온 리브였기에 이 같은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아쉽다기 보다는…… 리들 선배 요즘 피곤한 것 같아서요.”

“…처음에도 그랬지만 난 네가 눈치가 빠르다는게 제일 마음에 들어. 그럼 오늘 멘토링이 일찍 끝날거라는 것 정도는 쉽게 눈치 챘을거라 믿어.”

멘토링 일찍 끝내겠다는 말을 참 새롭게 하네. 리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왼손에 쥐어진 깃펜을 내려놓았다. 리들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리브의 왼손에 쥐어주었다. 땀이 찬 손을 소맷자락에 대충 닦으려던 리브는 리들의 호의에 살짝 미소 짓는 것으로 화답했다.

“정말 뭐가 그렇게 바쁜거에요? 맨날 기숙사에 처박혀만 있구.”

리들은 O.W.L.학년이기 때문이라 대답했으나 리브는 콧방귀를 뀌었다. 톰 리들은 겨우 이런 시험에 이토록 관심을 쏟을 위인이 아니었다. 요즘 멘토링 시간까지 줄이면서 대체 무얼 하는거지?

사실 멘토링 시간이 줄었다는 것은 리브에게 딱히 싫은 일은 아니었다. 여유가 생겨서 애니마구스 마법을 익히는 데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조금씩 감이 잡히고 있었다. 잘하면 이번 학년에는 애니마구스 마법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어서 리브는 자신을 더 이상 슬리데린 기숙사 입구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온통 슬리데린 학생들 투성인 구역인데다가 머틀이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는 건 그다지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던 것이다. 리들은 한참 후에 대답을 내놓았다.

“그냥…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게 있어서.”

“무슨 연구인데요?”

리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의미모를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궁금증이 샘솟은 리브의 입술에서 불쑥 어떤 말이 튀어나왔다.

“플랜젠타인 가루가 거기 쓰이는 건가요?”

그 말에 스르륵 리들이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듯한 눈초리에 리브는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해서 대꾸했다.

“나기니가 그걸 훔쳐낼 때 마침 병동에 있었거든요. 이 손 때문에 말이죠.”

어쩐지 ‘훔쳐낼 때’라는 말에 묘하게 악센트가 들어간 듯 싶었다. 리들은 왜 나기니가 자신에게 도중에 만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나 잠깐 생각하다가 금방 결론을 내렸다. 그의 뱀은 피로함에 돌아오자마자 골아 떨어졌던 것이다. 깨어난 후에는 말한다는 것을 깜박 했겠지.

“플랜젠타인 가루. 어디에 쓰고 있는거에요?”

“…….”

“…….”

“…….”

“물어보면 안되는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말에는 살짝 섭섭함이 묻어있었다. 리들은 쓱쓱 무언가를 적고 있던 노트에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고는 탁 덮었다.

“별거 아니야.”

리브의 얼굴에 살짝 서운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대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물론 내가 연구하고 있는게 별거 아닐 리는 없지만 말이야.”

“…그럼 별거라도 돼요?”

“……나기니를 위한 연구야. 올리비아 너니까 여기까지만 말해주는거야. 더 이상은 아직 안 돼.”

소녀의 고운 얼굴에 스쳐간 서운함이 마음에 걸려 리들은 성공 전에는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조금이나마 털어 놓았다.

“플랜젠타인은 치료제로 주로 쓰이고… 시력 강화제의 재료인데다가, 맹독을 중화시킬 때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음, 더 있나?”

“가르친 보람이 있네. 거기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니.”

리브의 말에 리들은 흡족한 듯 싱긋 웃었다. 하지만 대답대신 다른 말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어서 리브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성공하면 알려주겠지.

“오른손 불편해보이는데 붕대 언제 풀어?”

“며칠은 더 하고 있어야 할거래요.”

리브는 왼손으로 글씨쓰기 너무 불편하다며 작게 투덜거렸다. 리들은 또다시 깃펜을 쥐고 끙끙대는 리브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운을 뗐다.

“내가 하나 좋은 마법을 알고 있는데.”

“물건을 저절로 움직이는 마법 말이죠? 저도 실용 마법책을 다 뒤져보았는데 상당히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안가요.”

“그따위 마법 말고.”

“그럼요?”

리들의 잘생긴 얼굴에 아찔한 미소가 가득 담겼다. 리브가 마른 침을 삼킬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이 새어나왔다. 어째 크리스의 페로몬보다 더 매혹적인 것 같다. 리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순간 흑요석 같은 흑안이 이채를 발하며 반짝였다.

“너는 생각만 하면 돼. 그러면 깃펜이 알아서 움직여서 적어 줄거야. 상당한 마력이 소모되겠지만 그 정도 대가는 치를 가치가 있지.”

리들은 덮었던 노트를 펼쳤다. 그 사소한 행동도 우아하기 짝이 없다. 이어서 청년이 주목나무 지팡이를 휘둘러 주문을 무어라 외우자 깃펜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들의 글씨체 그대로를 흉내내어 빈 페이지에 수려한 필체를 뽐낸다. 리브는 그 광경에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이거 어떻게 한거에요? 원리가 뭐죠?”

리브의 관심에 리들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마법의 원리와 주문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깃펜에 제 정신을 불어넣는 건가요?”

“음, 비슷해.”

“…그거 어둠의 마법 아니에요?”

리브는 예리하게 이 기가 막힌 마법의 종류를 잡아냈다. 주문도 심상치 않았고 원리를 들으니 어둠의 마법의 일종이었다. 상당한 마력소모에 시전자에게 정신적인 피로감을 더해준다니 확실하다. 혹시 생명력을 갉아먹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아, 그건 아니겠다. 그가 방금 전에 그 마법을 시전 했으니 말이다. 본인의 생명력을 갉아 먹는 마법이라면 절대로 쓰지 않겠지.

“맞아.”

리들은 쉽게 수긍하며 어둠의 마법의 일종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리브는 슬리데린에 들어갈 뻔한 학생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둠의 마법이라고 하면 학을 떼는 그리핀도르와는 달랐다. 소녀는 어둠의 마법을 어느 정도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고 리들에게 관련 서적을 추천받기도 했다. 처음에 리들은 리브가 어둠의 마법에 배타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난 후로부터는 종종 소녀와 어둠의 마법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래서 이리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때? 흥미롭지?”

어둠의 마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리들의 흑안이 열의로 빛났다. 그 모습을 보며 리브는 리들이 어둠의 마법에 몹시 심취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야만 했다. 학문적인 호기심인 자신과는 확연히 달랐다. 눈앞의 청년은 어둠의 마법에 단단히 매료되어 있었다. 리브가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리들 선배, 봐줘요. 나 그 주문 써볼테니까.”

리브가 장미목 지팡이를 깃펜에 가져다 대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방금 전 리들의 동작을 떠올리며 휘둘러보지만 그 폼은 살짝 엉성했다. 깃펜은 꼿꼿하게 몸통을 세우고 잠깐 움직이다가 툭 쓰러져버렸다. 리브는 다시 한 번 시도해보았으나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올리비아, 이 마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신을 계속 집중해야 한다는 거야. 익숙해지면 다른 일을 하면서도 깃펜에게 명령을 내려서 원하는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어. 잘 봐. 내 깃펜은 너랑 얘기하고 있는데도 아까부터 계속 움직이고 있지? 물론 이는 상당한 정신력을 요구하긴 하지만…….”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여주던 리들은 자신의 지팡이를 내려놓고—여전히 리들의 깃펜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리브의 뒤로 살짝 다가갔다. 그리고 뒤에서 리브를 끌어안듯이 밀착하더니 한 손을 뻗어 소녀의 손을 잡았다.

지팡이를 쥐고 있는 리브의 손과 리들의 손이 가볍게 포개어졌다. 리브는 의외로 온기가 없었고 리들은 의외로 따뜻한 손을 갖고 있었다. 손에서 손으로 온기가 가득 전해졌다. 순간의 짜릿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리브는 살짝 눈꺼풀을 떨다가 마른 침을 삼켰고 리들의 명에 의해 움직이고 있던 깃펜은 툭 쓰러져버렸다. 기숙사 공동 휴게실인지라 주변은 소란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만큼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둘 사이는 무척이나 고요했다.

“리들 선…배…?”

간신히 정신을 차린 리브가 작게 자신의 손을 잡은 이를 불렀고 그제서야 리들은 자신이 하려던 일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충동이 올라왔으나 청년은 자제력을 발휘해 이를 눌러버렸다. 그리고 리브의 손을 다시 다잡고 손수 휘두르는 법을 사사해준다. 그 손길은 제법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충동의 여운 때문에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친절한 설명을 늘어놓더니 몇 번 동작을 반복해주었다. 그리고 리들은 리브의 손에서 황급히 자신의 손을 뗐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두 남녀의 몸을 휘감았다.

아쉽게도 리브는 그 마법을 리들처럼 완벽하게 시전하지 못했다. 리들은 동작이 정확한데 왜 서투른걸까 잠깐 고민하다가 리브가 완벽하게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리브는 리들의 예리한 판단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아까 젖어있던 감정의 여운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리브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정신을 집중하려 노력했으나 이는 역부족이었다.

“올리비아, 정신을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네 의도와는 달리 생각이나 감정이 쓰여질 수 있으니까 주의하도록 해.”

리브의 깃펜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알아보기 힘든 글씨를 수놓고 있었다. 평소의 또박또박 정갈한 글씨와는 달리 마음껏 휘갈겨져 있다. 의도대로 잘 쓰여졌나 흘깃 본 리브는 눈을 부릅떴다.

[떨려. 기분이 이상해. 두근거려. 미쳤나봐. 그는 손이 따뜻해. 좋아. 아쉬워.]

리브는 숨을 훅 들이마시고는 허둥지둥 노트를 확 덮어버렸다. 그 글귀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소녀는 들이마셨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런 리브의 고운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본 리들이 불쑥 입을 열었다.

“대체 뭘 썼길래 그래?”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기는. 이리 줘.”

그러고 보니 계속 깃펜마법을 시전한 공간은 리들의 노트였다. 리브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새까만 노트를 끌어안았다. 절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의지의 표시. 리들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리브를 응시했다.

“올리비아, 그거 내 거야, 이리 내.”

“…….”

“어서.”

리브는 어떻게 해야 리들에게 그 글귀를 보여주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하지? 여기서 노트를 펼치고 뜯어버릴까? 근데 안 뜯기면? 그 전에 그가 뺏어버리면? 그럼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끙끙거리는 리브의 고운 얼굴을 보며 리들이 빈정거리듯 툭 내뱉었다.

“올리비아 너 머리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리들의 표정을 흘깃 본 리브는 이 상황에 그가 그다지 불쾌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생긴 얼굴에 보기 드물게 장난기가 드글드글 맺혀있다. 지금 톰 리들은 내가 난감해 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사악한 인간!

그때 리브의 눈에 노트 뒷면에 희미하게 적혀있는 리들의 이니셜이 눈에 들어왔다.

[T. M. Riddle]

적은지 꽤 됐는지 지워지기 직전이다. 리브의 벽안이 반짝 빛났다. 이 노트를 가져갈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다. 상당한 억지였으나 소녀는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이 노트! 이니셜이 지워지려고 하네요. 제가 제대로 다시 새겨드릴게요!”

“뭐?”

“제가 이니셜 새기는 좋은 마법을 알고 있거든요. 그럼 제가 잘 새겨서 돌려드릴게요! 걱정은 마시고요.”

리브는 리들이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가방에 노트를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그리고 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도망치듯 자리를 떠버린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리들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골드 블론드가 공동 휴게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응시하다가 결국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늦었죠ㅜㅜ  죄송해여ㅜㅜㅜ

사실 어제는 어떻게든 올리려고 했는데 퇴고도 덜 되고 너무 엉성해서 도저히 못올리겠더라구요ㅜㅜ

지금 사정상 스맛폰으로 마지막 퇴고하고 업뎃해요.. 역시 컴터가 최고임돠ㅜㅜ

* 이번 챕터가 유독 길죠..! 사실 반으로 나눴어야 했나 후회중임돠ㅜㅜ

아마 다음편에서 챕터가 끝날것 같아요..!ㅎㅎ

오늘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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