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64화 (6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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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12. 인지와 인정 사이

    기숙사 배정식 때, 마법의 모자는 크리스티안의 총명함과 성격을 엿보고 래번클로를 언급해 보았다. 그러나 청년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리핀도르를 선택했다. 그래서 모자는 흔쾌히 호그와트 최초의 편입생을 그리핀도르로 보냈다. ‘그래, 너는 역시 그곳이 낫겠지.’라고 중얼거리면서.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소속 학생들과도 상성이 곧잘 맞았고 그는 그리핀도르와 잘 어울리는 청년이었다. 정의롭고 용감했다. 호그와트의 절대 강자인 톰 리들에게 맞설 정도로.

    크리스는 리브에게 이날의 일을 작은 트러블이라고 살짝 언급했으나 사실 작지만은 않았다.

    “리들, 넌 반장이 아니던가? 어째서 제지하지 않는거야?”

    기숙사 공동 휴게실 한켠에서 머틀이 슬리데린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리들은 그 모습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번 힐끗 보다가 휴게실을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을 뿐이다. 이를 불의로 판단한 크리스는 망설임없이 다가서서 리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크리스가 자신을 붙잡아 세운 지금, 당사자는 빙그르르 몸을 돌려 수려한 얼굴을 드러낸다. 참으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기가 막힐 정도다. 어찌하여 신은 톰 리들에게 이런 외모를 내어 준걸까. 크리스는 속으로 잠깐 한탄을 해보았다.

    “무얼?”

    청년의 붉은 입술이 제법 상냥한 미성을 뱉어낸다.

    “머틀 말이야. 넌 슬리데린 반장이잖아.”

    그 못지않은 미성이 또다른 붉은 입술에서 새어나왔다. 남자치고는 살짝 높은 목소리. 그리고 그 미성의 주인 역시 기기 막힌 외모를 갖고 있었다. 흑발의 주인이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세기의 역작이라면 은발의 주인은 마치 신이 정성들여 탄생시킨 피조물 같았다. 그리고 그 해사한 미소는 미(美)의 절정이었다.

    “카르티에, 각 기숙사마다 반장 시스템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야. 직권 남용이라는 말이 있지.”

    크리스는 리들의 대꾸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하, 옳지 못한 일을 제지하는 것이 직권 남용이라고? 너는 지금 불의를 묵인하고 있어.”

    “언뜻 보기에는 불의로 보일지 모르지만, 저들에게는 저들 나름의 속사정이 있는 마련이야. 굳이 제 3자가 끼어들면 상황은 더욱더 악화될 뿐이지.”

    사근사근한 말투, 호의적인 옅은 미소. 하지만 상대방을 응시하는 청년의 흑안은 차디찼다. 리들은 눈앞의 편입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리들과 크리스는 리들과 리브가 그렇듯이, 아니 그 이상으로 철저한 상극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필요에 따라 사람을 가리는 리들과는 달리 크리스는 소외된 학생들에게도 상냥함을 내비치는 학생이었다. 그는 종종 머틀을 괴롭히는 학생들의 주의를 돌려서 그녀를 곤경에서 구해준 적도 있었다. 비단 머틀 뿐만이 아니었다. 2주에 한번 꼴로 말썽—샤를루스 포터와는 다른 종류의—을 일으키고 몸집만 큰 실수투성이인 루베우스 해그리드와도 무척 친하게 지냈다. 크리스는 사교성이 무척이나 좋아서 모든 학생과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나누었지만 그중에 리들은 없었다.

    리들과 크리스는 지금까지 접점이 하나도 없었다. 둘 중에 누구도 굳이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크리스는 리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의 모친은 처녀 적에 프랑스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모델 ‘이사벨 마르소(Isabelle Marceau)'였고 현재는 순수혈통과 재력 가문들 사이에서 고급 장신구를 담당하기로 유명한 ‘카르티에 부인(Mrs. Cartier)’이었다. 친가 쪽이 비록 머글이라고는 하나 상당한 재력가였을 뿐만아니라 크리스티안 카르티에 자체만으로 봐도 그는 상당한 거물이었다. 하지만 리들은 그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속사정? 제 3자? 리들, 저 애가 왜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슬리데린의 청년은 본능적으로 편입생에게서 이질감을 느꼈다. 또한 리들에게 크리스는 왠지 모르게 거슬리는 존재였다. 이 기생오라비 녀석이 올리비아의 변신술 파트너라고 했던가. 정말이지 더욱더 마음에 안든다. 거부감이 가득했다.

    “머틀은 지독한 왕따를 당하고 있어. 너와 얽혔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설마 몰랐다고 하지는 않겠지.”

    리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옅은 대외용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거기에 살짝 곤란하다는 듯한 기색을 실었을 뿐이었다.

    “카르티에, 그건 내 의지 밖의 일이야. 학생들이 머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내가 가서 일일이 고쳐줄 수는 없어.”

    “리들 넌 머틀을-”

    “미안하지만 난 이만 바빠서 가볼게.”

    리들은 이 그리핀도르의 청년과 영양가 없는 말을 섞느니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끊어내는 것을 택했다. 이래서 그리핀도르는 곤란하다. 쓸데없이 정의롭고 쓸데없이 용감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리들은 휭 돌아섰다. 하지만 크리스는 대화를 끊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듣자하니 리브도 한때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너는 그때도 이런 식으로 굴었겠구나. 화를 자초한 것은 그녀를 멘티로 지목한 너였는데 그 화살은 전부 리브에게로 향했겠지.”

    돌아선 청년의 흑안에 슬며시 어떤 감정이 맺히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리브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그녀가 어떤 고초를 겪든 상관하지 않으면서 말이야. 사실 너 머틀이랑 정말 키스한거 맞지? 나는 머틀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아.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너는 머틀을 감싸줬어야 했어.”

    리들은 어느새 다시 돌아와 크리스와 마주보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 못들은 척 휭 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곱상한 녀석이 올리비아를 입에 올린 이상 상황은 달라진다.

    “네가 머틀과 정말로 키스를 했는지의 여부 따위는 상관없어.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너는 반장으로서 머틀의 왕따를 방관해서는 안되는 위치야. 하지만 너는 이를 전부 묵인하고 있지.”

    리들의 흑안과 크리스의 자안이 세차게 부딪혔다. 그리고 리들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하면서도 크리스는 여전히 해사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웃으면서 할말은 다하고 있다. 상대가 약이 오를 정도로.

    “리브는 항상 너와 깊은 관계라는 의심을 받을까봐 항상 전전긍긍하고 있어. 머틀을 보면 그럴 만도 해. 이래서 남녀가 얽히면 항상 여자가 손해라니까. 남자가 무슨 짓을 하든 화살은 전부 여자에게로 가거든.”

    “나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읊을 생각이라면-”

    “내가 페미니스트인건 맞지만 너랑 친한 척 수다 떨 생각은 없어.”

    용감무쌍하게도 청년은 그 리들의 말을 끊어내기 까지 했다. 더 이상 리들은 편입생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이미 리들의 가면은 벗겨진지 오래였다. 어떤 의미로는 이 편입생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크리스는 리들의 무섭도록 차가운 얼굴과 마주하고 살짝 움찔하는가 싶더니만 여전히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리들의 흑안에 서린 것은 틀림없는 적의(敵意)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은 머틀의 왕따. 전부 네가 의도한거 아니야?”

    크리스는 기름을 뿌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불씨까지 던져준다. 그리고 그 불길은 커다랗게 타올랐다. 불을 지른 이는 그 불을 크게 키우는 것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너와 리브의 관계가 믿기지 않아. 처음에는 리브가 너와 같은 동류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야. 그녀는 따스하고 정말 착해. 너와는 절대적으로 상극이지. 혹시 협박이라도 한거야? 너와의 시작은 자의가 아니었겠지? 뻔해.”

    “닥쳐.”

    리들의 입술에서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욕설을 입에 담았음에도 더없이 우아하다. 그 자태는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크리스는 그 못지않게 유려한 자태를 뽐내며 계속해서 듣는 이의 화를 부채질할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사람은 반대되는 것에 끌린다고 하던데 혹시 그래서인가?”

    크리스는 리들에게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닌 듯 곧바로 자신이 대답을 내놓았다.

    “하하, 그럴 리가. 네가 그런 감정을 느낄 리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의 해사한 얼굴에 순간적으로 경멸의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녀를 이용해 먹기 위한 거겠지. 예쁘고 똑똑하고 착하기까지 한 그녀는 너에게 더없이 좋은 도구이며 장신구가 될테니까. 너에겐 보기 좋은 얼굴이며 쓸만한 도구겠지.”

    크리스의 말에 리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보며 크리스는 만족스러운 듯 더욱더 진하게 웃었다.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지금까지 접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크리스는 간혹 자신을 응시하는 리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크리스 역시 리들에게 유감이 많았으므로.

    “그렇다고 굳이 네 마음에 들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고.”

    “그거 참 잘됐군.”

    어느새 평소의 포커페이스로 돌아온 리들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카르티에,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나는 나를 거스르는 자를 좋아하지 않아.”

    “어련하시겠어.”

    서로를 응시하는 흑안과 자안이 적의라는 이름의 불꽃을 세차게 뿜어냈다. 지금까지 서로를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으로 생각하는 데에서 그쳤다면 이제는 아니었다.

    “너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고.”

    “리들 너도 마찬가지야.”

    하나하나 받아치는 모양새는 리들의 심기를 더욱더 불편하게 했다. 해사하게 웃고있는 저 예쁘장한 얼굴에 주문을 쏴주고 싶다는 충동이 가득 일었다. 머릿속에 온갖 치명적인 주문들이 가득 찼다. 만약 이곳이 호그와트 중에서도 몇 몇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복도가 아니었다면 리들은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실 공동 휴게실이 멀지않은 곳에 있다는 것은 크리스에게 있어서 신의 가호나 다름없었다.

    “카르티에, 나는 적에게 가차 없는 사람이야.”

    리들은 품에 손을 넣고 주목나무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 몸짓에 크리스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 역시 품에 손을 넣었으나 리들이 더 빨랐다. 하지만 리들이 자신의 가슴팍을 정확히 겨누고 있음에도 크리스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빠르게 판단한 리들은 더없이 우아한 몸짓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에서 빛이 번쩍하며 크리스의 손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지팡이를 날려버렸다.

    “이건 경고야.”

    무언마법이었으나 리들의 무장해제 마법의 위력은 상당했다. 지팡이를 멀리 날려버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지팡이를 쥐고 있던 주인까지 벽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크리스는 벽에 정통으로 부딪힌 어깨를 부여잡았다. 꽤 세게 부딪혔는지 청년의 해사한 얼굴은 고통으로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리들은 싱긋 웃었다. 저 곱상한 낯짝에 걸려있던 미소가 사라지자 리들은 더없이 흡족함을 느꼈다. 흑발의 청년의 얼굴에 떠오른 수려한 미소는 미(美)의 절정이었으나 크리스는 마치 악마의 미소와 목도한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앞으로는 조심해.”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말투는 제법 상냥했으나 눈빛은 차디찼다. 잠깐 동안 크리스를 내려다보던 리들은 휙 몸을 돌려서 자리를 떠버렸다. 크리스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끼며 숨을 훅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

    맨드레이크는 울음소리가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몹시 난폭한 식물이었다. 숱이 많고 보랏빛이 도는 초록색 식물이 열을 지어 있는 것을 보며 학생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약초학 수업시간에 또 저 빌어먹을 식물과 사투를 벌여야한다는 사실이 다가오자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오늘도 맨드레이크를 옮길거에요.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여줄테니 그걸 보고 바로 시행하도록 해요. 그럼 모두 귀가리개를 착용하세요.”

    비어리 교수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이 귀가리개를 착용했다. 학생들이 전북 귀가리개를 착용한 것을 확인한 여교수는 망토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술이 많은 식물을 하나 단단히 잡고 세게 뽑아냈다. 그러자 땅에서는 뿌리 대신 진흙투성이의 아주 작고 못생긴 어린 아이가 하나 튀어나왔다. 몇 번 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생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모습을 한 맨드레이크)의 머리 바로 위에서는 잎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크기를 보니 첫 수업에 비해 잎의 크기가 훨씬 커져 있었다. 피부에 엷은 초록빛의 얼룩덜룩 반점이 있는 아이는 목청이 터져라 큰소리로 울어대고 있었다. 비어리 교수는 미리 꺼내놓은 커다란 화분에 맨드레이크를 던져 넣고는 축축한 퇴비 속에 묻어버렸다.

    학생들은 비어리 교수의 시범을 멍하니 보다가 하나 둘 씩 맨드레이크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표정이 가득했다. 비어리 교수는 매우 손쉽게 이를 처리했지만 지금까지 수업의 경험으로 이게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을 톡톡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젠장할. 빌어먹을 식물 같으니라고. 온실 안이 맨드레이크가 빽빽 울어대는 소리와 학생들의 욕설로 가득 찼다. 물론 귀가리개를 쓰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들을 수 없었다. 맨드레이크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듯 했다. 마구 몸부림치고 발길질을 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리브의 맨드레이크 역시 난폭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차 하는 사이에 그 식물은 날카로운 주먹을 휘둘러 소녀의 손등에 상처를 입히기 까지 했다. 리브는 악소리를 내며 고통을 호소하다가 순간 맨드레이크를 놓칠 뻔했으나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맨드레이크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화분으로 휙 던져버렸다. 맨드레이크는 이를 갈고 더욱더 우렁차게 울어댔다. 자신을 험하게 다룬다고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리브는 아랑곳하지 않고 퇴비를 가득 쏟아버렸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으니 겁날 것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씻기 위해 쏜살같이 성으로 돌아갔다. 모두들 흙과 땀투성이에 온몸이 성치 않았는데 하나같이 2학년 때 배운 맨드레이크를 왜 또 다뤄야하는 거냐며 불평을 내뱉었다. 여학생들은 자신의 맨드레이크가 얼마나 난폭했는지에 대해 입방아를 찧고 있었는데 마지막은 언젠가 저 맨드레이크를 걷어차고 말거라는 말로 끝이 났다.

    “제일 걷어차고 싶은 것은 나야. 내 맨드레이크는 나한테 주먹을 휘둘렀어.”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피투성이인 자신의 손등을 쓱 내밀었다. 임시방편으로 둘렀던 에밀리의 손수건은 피로 젖어있었다.

    “맙소사. 너 병동에 가봐야 하는거 아니니?”

    “리브, 덤블도어 교수님께는 내가 말씀드릴게. 상처가 너무 심한걸!”

    소녀들은 식겁하며 리브에게 병동에 갈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당사자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피도 그쳤고 이 정도는 괜찮아.”

    “안 돼, 너는 병동에 가야해.”

    리브는 결국 에밀리의 고집에 못 이겨 병동으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치료사인 젤러 부인은 손등의 피를 닦아내고 상처 위에 마법 약을 뿌려주고 있었다.

    “더 강한 약을 쓰면 한 번에 낫겠지만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말이다. 다친게 오른손이라 불편하겠지만 며칠만 참으렴.”

    젤러 부인은 리브의 손에 붕대를 돌돌 감기 시작했다. 소녀는 무료함에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가 억소리를 낼 뻔했다. 새하얀 뱀이 병동에 꼬물꼬물 기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뱀은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저 뱀은 나기니였다! 리브는 힐끗 젤러 부인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했다.

    “자, 됐단다. 밤에 좀 쑤실 수도 있지만…….”

    젤러 부인이 무어라 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리브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나기니가 여기서 뭘 하는거지? 살짝 눈을 돌려보니 뱀은 선반으로 올라가더니 어떤 봉투를 앙 물었다. 그리고 이제 바깥을 향해 꼬물꼬물 기어가고 있었다. 지금 저거 도둑질하는거 맞지? 나기니가 왜 도둑질을? 대답은 금방 나왔다. 주인인 톰 리들의 명령임이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젤러 부인. 전 이제 수업에 들어가 볼게요.”

    쏜살같이 병동을 나온 리브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얘가 어딜갔지? 그리고 소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디론가 꼬물꼬물 기어가는 새하얀 뱀을 발견했다. 리브는 빠르게 걸어가 뱀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기니는 리브를 보자 반가움에 쉭쉭 거렸다. 그 바람에 물고있던 새까만 봉투가 입에서 툭 떨어졌다. 리브는 무심코 새까만 봉투 위에 쓰여진 글귀를 읽었다.

    ‘플랜젠타인 가루’

    플랜젠타인이라면 겨울에 달빛을 받을 때 딸 수 있는 마법약 재료였다. 대부분이 식물의 형태로 되어있었고 가루 형태로 추출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이 귀한 재료는 주로 중상을 입었을 경우에 치료제로 쓰이는게 일반적이었다.

    [리들 선배가 어디 다친거니?]

    그렇게 묻는 리브의 목소리에는 살짝 다급함이 묻어있었다. 나기니를 통해 치료제를 운반시킬 정도면 대체 얼마나 다친거지? 못 움직이는 상황인건가? 무슨 짓을 했길래 다쳐서 병동에 오지 못할 정도 인거야!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니야. 톰은 무사해. 나는 톰의 심부름을 하고 있어!]

    나기니의 말에 리브의 벽안에 가득 맺혀있던 걱정의 감정이 싹 사라졌다. 리들 선배가 시킨거라고? 왜?

    [그러니까…… 리들 선배가 너한테 병동에서 플랜젠타인 가루를 훔쳐오라고 했다는 거야?]

    [플랜…뭐? 그게 뭐야? 난 그냥 톰이 까만 봉투에 든 것을 가져오라고 해서 갖고가는거야.]

    플랜젠타인 가루는 특성상 새까만 봉투에 보관하는 게 정석이었다. 리브는 리들이 다쳤다고 생각한 자신이 어리석었다 생각하며 헛웃음을 뱉었다. 그 인간이 다칠 리가 없지. 그리고 이내 몰려오는 것은 뱀의 주인에 대한 괘씸함이었다. 나기니한테 이런 나쁜 짓을 시키다니!

    [나기니, 도둑질은 나쁜 거야.]

    [그냥 나는 톰이 시키는 대로 하는거야.]

    리브는 새하얀 뱀에게 조곤조곤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기니, 나쁜 짓은 하면 안돼. 너는 착한 뱀이잖아. 네 주인이 시켰다고 해도 이런건 할 수 없다고 해.]

    [그럴 순 없어.]

    나기니는 단호하게 리브의 말에 부정을 표했다. 그 거침없는 말에 리브는 잠깐 당황해야만 했다. 나기니는 리브를 몹시 좋아했고 그녀가 싫어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리브가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나기니는 자신의 주인인 리들의 의지에 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만약 리들의 뜻과 리브의 뜻이 충돌한다면 나기니는 자신의 주인인 리들이 우선이었다.

    [톰이 착한 뱀은 주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어.]

    [나기니, 아무리 주인이 시켰다고 해도 나쁜 짓은 하면 안 돼.]

    나기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다시 쉭쉭거렸다.

    [리브, 나에게 그런 것은 의미가 없어. 톰은 위험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고 나는 톰을 거역할 수 없어.]

    [나기니-]

    [나는 톰이 좋아. 그래서 톰이 원하는 대로 하는거야.]

    자신을 도와준 주인의 뜻을 따르며 그런 주인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나기니의 말에서 순수함이 가득 느껴졌다. 그런 뱀은 잔망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리브가 이런거 싫어해도 난 톰이 더 좋으니까 어쩔 수 없어. 그럼 안녕.]

    그리고 다시 까만 봉투를 입에 물더니 꼬물꼬물 가버리는 것이었다. 리브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나기니에게 리들 선배는 보통 주인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나기니는 항상 자신의 주인은 강한 마법사라며 찬양했다. 뱀은 자신을 구해주고 강력하기 까지 한 주인을 몹시 좋아했다. 방금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톰이 좋아.’라고. 도둑질을 하던 뱀은 훗날에는 살인을 하게 되겠지.

    그 생각에 미치자 리브는 화들짝 놀라야만 했다. 안 돼. 불안감 그리고 또다시 밀려오는 리들에 대한 괘씸함. 나기니를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했는데……. 애완동물에게 그런 나쁜 짓을 시키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리브는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리들을 찾아가 한소리 늘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바뀌었다. 남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겨우 플랜젠타인 가루를 슬쩍 한 것뿐이잖아? 비싸고 귀한 재료이기는 하나 그 정도는 젤러 부인의 창고에 또 있을 것이다. 겨우 이런 일로 리들과 갈등을 빚을 필요는 없었다. 플랜젠타인 가루를 어디에 쓰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치료제로 사용되는 것이니 남용될 일은 없을터. 괜히 과민 반응을 해서 화를 자초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그럴 필요는 없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리브는 리들에게 왜 나기니에게 나쁜 짓을 시켰냐고 따질 수 없었다.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은 두려웠다. 리들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 그가 나를 차가운 눈초리로 응시하는 것이. 나를 혹독하게 대할 것이. 무서웠다. 너무나도 싫었다. 그렇게 되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정말 나약하기 짝이 없구나. 무력감이 몰려오다 못해 허탈해졌으나 리브는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소녀에게는 최선이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여러분 항상 감사드립니당♡

    시험기간이신 분들 다들 화이팅이염

    * 크리스가 리브에게 말했던 작은 트러블이 밝혀졌습니다! 크리스는 사람을 거의 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냅니다. 괴짜인 해그리드랑도 친하고 머틀한테도 선의를 베풀죠. 보셔서 알겠지만 크리스는 웃으면서 막말이나 독설 내뱉는 빙그레썅놈이에요. 일명 빙썅캐릭터ㅋ 하지만 우리의 마왕님은 만만치 않습니다. 바로 경고의 응ㅋ징ㅋ

    * 나기니는 리브를 매우매우 좋아하지만 리들이 가장 우선이에요ㅋㅋㅋ애완동물은 주인을 가장 잘 따르는 법! 근데 리들이 저 플랜젠타인 가루를 어따 쓰냐고여? 그건 비~밀! 조금 힌트를 드리자면 리들이 항상 기숙사에 처박혀있다고 했던거 기억하세여? 그거랑 관련이 있음돠!

    * 저 또 비축분이 똑 떨어졌어여.. 으앙

    * 제가 요즘 학원을 다니느라 좀 많이 바빠요ㅠㅠ 세륜숙제.. 이 세상에서 사라져주세요... 그래서 퇴고를 전처럼 여러번 할 수가 없어요... 이 점 양해해주시고 지적은 둥글게 부탁드릴게요^^ 하지만 제가 맞는데 틀렸다고 하시면 앙대여;; 그럼 저 속상함ㅜㅜ

    오늘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 작품설정 업뎃은 현재 62편까지 되어있습니다. 제가 착각했어요 본의아니게 낚아서 죄송해여ㅠㅠㅠㅠㅠ

    + 나기니가 원작의 1권에서 해리가 풀어준 뱀이라는 설은 루머입니다. 영화 속 뱀이 같다는 것인데 와전되어 그렇게 알려진 거죠. 실제로 나기니는 볼드모트가 몰락한 후 알바니아에서 만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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