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63화 (6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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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인지와 인정 사이

“일요일에 시간 비워놔. 해독제는 섬세하고 까다로워서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거든.”

멘토링을 하던 도중 리들이 리브에게 건넨 말이었다. 멘티는 손으로는 열심히 필기를 하며 알겠다고 대답을 하려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바꿨다.

“리들 선배, 그 날은 선약이 있어서 안돼요.”

“…선약이라고?”

“네, 이번 주말에 크리스한테 호그스미드 안내를 해주기로 했-”

“뭐?”

되묻는 리들의 목소리가 살짝 날이 서있는 것 같아서 리브는 움직이던 깃펜을 멈추고 리들을 응시했다. 음, 잘못 들었나? 그의 잘생긴 얼굴은 단정하고 잔잔했다. 리브는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줄줄 말을 내뱉는다.

“크리스는 길눈이 어둡다고 하더라고요. 호그스미드가 처음인데 길을 잃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제가 안내를 해주기로 했어요.”

“…….”

“그러니까 해독제 제조는 하루 당겨서 토요일에 하는 게 어떠-”

“그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이랑 외출(date)을 해야 해서 나와의 멘토링이 불가하다?”

청년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리브는 움직이던 깃펜을 멈추고 고개를 퍼뜩 들었다. 리들의 얼굴은 얼핏 보면 평소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청년을 봐온 리브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언짢음의 기색을. 그리고 방금 그 말은 분명한 빈정거림의 어조였다.

“리들 선배, 외출이라뇨. 저는 편입생에게 안내를 해주려는-”

“그건 네 생각이고.”

한 템포 쉰 리들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거라 생각해?”

리들은 리브의 고운 얼굴을 한 번 보다가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살짝 짜증스럽게 말을 뱉어냈다.

“그동안 남학생들의 외출 신청을 족족 거절한 네가, 편입생이랑 호그스미드에 가면 브릴리언트가 편입생에게 길안내를 해준다고 잘도 생각하겠어.”

“그럴걸요.”

“뭐?”

리들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리브의 반응에 의아함을 느껴야만 했다. 원래대로라면 약속을 깨야하나 전전긍긍하고 있어야하는데? 리들이 알기로 리브는 구설수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싫어했다.

“크리스는 저 말고도 친한 여학생들이 많거든요.”

리들과 크리스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남학생이었으나 여학생들에게 의미는 달랐다. 리들은 당사자가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와 엮이는 여학생에 대한 질투가 상당했으나 크리스는 아니었다. 그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들과는 다른 의미로 쉽지 않은 인물이었다. 리들이 ‘어떻게 나 따위가 감히 그의 여자친구가 될 수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어렵다면, 크리스는 ‘순진무구한 그에게 이런 마음을 품어서는 안 돼!’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 누구도 감히 리들과 크리스와 연애를 꿈꾸지 않는 것은 같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크리스는 리들보다 엮이는데 부담이 적은 남학생이었다.

“그는 리들 선배와는 달리 부담이 없는 상대죠.”

“……그 녀석이 너에게 딴마음을 갖고 있다면?”

리들의 물음에 리브는 까르르 웃었다.

“에이, 그럴리가요. 크리스랑 흑심이라니. 리들 선배랑 흑심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데.”

“하.”

리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살짝 헛웃음을 뱉더니 살짝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래서 올리비아 넌 내 약속보다 그 치와의 약속이 우선이다?”

“당연한걸 물어요?”

리브는 먼저 약속을 한게 크리스이기 때문에 그렇게 답한 것이었으나 리들의 얼굴은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뭐,뭐야. 내가 말 잘못한거 있나? 리브는 그 태도에 살짝 당황하며 덧붙였다.

“리,리들 선배가 먼저 멘토링 하자고 했으면 크리스의 부탁은 거절 했을거에요.”

“…….”

“그럼 리들 선배와의 멘토링이 선약이잖아요. 좀 입장 바꿔서 생각을-”

리들은 리브의 말을 끊고 툭 내뱉었다.

“너, 다른 남학생들한테는 눈길 한 번 안주면서 왜 그렇게 무르게 굴어?”

“갑자기 그게 무슨…….”

리브의 의미모를 시선이 리들에게로 향했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리들은 그 침묵을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냈다.

“그럴듯한 외모에 혹하는건 너도 어쩔 수 없구나. 이래서 계집애들이란.”

리들의 비꼼에 리브의 어여쁜 눈매가 일그러졌다. 이번에 헛웃음을 뱉은 것은 소녀였다,

“나랑 중요한 멘토링 있다고 해.”

“…?”

“내 핑계대면서 약속 취소하라고. 말귀 못 알아들어?”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버럭 성을 냈다. 리브도 이제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인간 계속 비꼬지를 않나, 고집을 부리지를 않나, 이제는 신경질까지 부리고 있다.

“그런 처신 하나도 제대로 못해?”

“…….”

“멍청한 계집애. 이런걸 내가…….”

참다못한 리브는 반격에 들어갔다.

“대체 지금 무슨 소릴 하시고 있는거에요?”

리브는 다다다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처신? 머틀이랑 스캔들에 휘말려 있는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선배나 똑바로 처신하세요. 머틀이 쓸데없는 억측을 늘어놓아서 볼썽사나운 치정극에 휘말릴 뻔한건 알아요?”

리들은 리브와 머틀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부 전해 들었음에도 뻔뻔하게 무슨 소리냐고 대꾸했다. 하지만 리브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얼굴을 팍 구길 뿐이었다.

“물론 내 선에서 적당히 끊어놓긴 했지만…….”

그렇게 혼잣말을 하던 리브는 머틀과의 일이 떠올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리들을 응시하는 푸른 눈망울에 무언가가 감돌았지만 리들이 그 정체를 추측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영롱한 벽안이 고요한 흑안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자 리들은 미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소녀는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쉬이 열리지 않았다. 답답함이 느껴지자 리들은 참지 못하고 툭 내뱉었다.

“할 말 있으면 해.”

그 후로도 리브는 몇 번 더 입술을 달싹 거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하지만 뜬금없는 주제가 흘러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최우선의 가치로 꼽아요.”

리들은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소녀를 타박하지도, 굳이 너도 그러냐는 멍청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후자의 대답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지도 몰라도 나는 모르겠어요. 영원하지 못하다면 사랑은 깊은 상처를 남길 뿐이죠. 그리고 그 상흔은 평생토록 갈테고요. 난 그게 싫어요.”

“…….”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죠. 그러니까 나는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겠어요.”

리브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을 싫어했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했고 그 밖의 것은 방관하고 회피하는 삶을 살아왔다. 눈앞에 있는 톰 리들 역시 그 대상 중 하나였다. 지금은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리브는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소속 학생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벽을 치고 있었다. 톰 리들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볼드모트가 될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톰 리들과 볼드모트, 엄연히 다른 존재였으나 그 둘을 분리할 수가 없었다. 톰 리들은 사악한 어둠의 마법사가 될 소질이 다분했다.

[그래, 죽일거야. 날 막는 자는 누구도 용서 안 해.]

리브는 결코 그 말을 잊지 못했다. 거슬리게 하면 자신도 죽일거냐는 소녀의 물음에 청년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노라 대답했다. 그 말에 리브는 마음 한켠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맛봐야만 했다. 톰 리들 따위에게 무얼 기대하고 있던 것일까. 왜 나는 그런 헛된 희망을 붙잡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다른 사람은 다 죽여도 너만은 못죽일 것 같아. 아까는 내가 실언했어. 미안해.]

이 말 때문이었다. 내가 끝내 그를 놓지 못하고 또다시 희망을 품고 만 것은. 아아, 나는 정말 나약하기 짝이 없구나. 순간 느껴지는 참담함에 리브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하지만 이내 고운 얼굴에서 푸른 눈망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들 선배는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알죠?”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지면서 소녀는 꽃처럼 어여쁘게 웃었다. 하지만 리들은 저 화사한 미소에서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마치 향기 없는 꽃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누군가와 연애하는 내가 상상이 돼요?”

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리브도 딱히 그에게 대답을 바라고 뱉은 말도 아니었다.

사랑 따위 하지 않을테다.

그 다짐은 리브에게 마치 집착과도 같았다. 그 이유를 깨닫는데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또다시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그건 부모님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음 깊은 곳에 이런 고뇌와 슬픔들을 묻어둔 채, 리브는 최대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리들 선배는…….”

리브는 말끝을 흐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

“…….”

둘 사이에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리들은 ‘내가 뭐?’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리브는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깨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들이 소녀를 향해 손을 뻗자 리브가 순간 움찔했다. 그 반응에 청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소녀 역시 자신의 무의식적인 반응에 살짝 당황한 듯 했다.

“내가 너 때리기라도 해? 너는 왜 항상-”

그렇게 툭 말을 내뱉던 리들은 순간 말을 멈추었다. 그제서야 리들은 깨달았다. 리브가 자신이 손을 가져다 댈 때마다 매번 움찔하는 이유를.

예전과는 달리 리들과 리브의 사이는 가깝고 원만했다. 리들이 리브에게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었고 리브 역시 리들에게 대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뺨을 때리는 것 같은 손찌검 따위는 더욱더 없었다. 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1년도 더 넘은 일이 건만.

“그래, 나 때문이구나.”

리들은 그 한 마디만 뱉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년의 흑안과 소녀의 벽안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둘은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가깝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그런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다. 한 발자국 다가가면 물러나겠지. 그게 누가 되었든간에.

너무 다가가서 한 쪽이 뒷걸음질 치다가 혹 절벽이라도 있으면? 떨어져버리겠지. 영영 볼 수 없겠지.

너무 다가가서 한 쪽이 아예 뒤돌아서 가버리면? 더욱 더 멀어지겠지. 영영 볼 수 없겠지.

그러니까 이대로 있자. 이대로 있을래.

“…….”

“…….”

둘 사이의 기묘한 침묵과 끈질긴 시선을 깨뜨린 것은 쇼파에서 콜콜 잠들어 있던 나기니였다.

[아함, 잘잤다. 둘이 공부 끝났어?]

나기니를 꼬물꼬물 기어오더니 테이블로 올라왔다. 그리고 리들에게 잠깐 자신의 몸을 부비더니 이내 리브에게 쪼르르 다가가 자신을 쓰다듬어 달라는 듯 부비적 거린다. 그 모습을 보며 리브는 살짝 웃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소망대로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

리브와 크리스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변신술 파트너라는 접점이 생기자마자 크리스는 특유의 친화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리브를 자신의 친한 친구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리브가 크리스와 대화하다가 까르르 웃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크리스, 이건 에메릭 스위치가 쓴 <변신술 기초 이론>을 보면 잘 나와 있어.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에 한 번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아마 도움이 될거야.”

기숙사 공동 휴게실에서 둘은 사이좋게 변신술 공부를 하고 있었다. 리브는 상냥하게 웃으며 기초에 도움이 될 몇 가지 서적을 추천해 주는 등 성심성의껏 편입생의 학업을 도왔다.

“리브, 나는 실기가 안되는 건데 이론을 계속 보라구?”

“모든 실기는 이론부터 시작이야. 변신술 수업을 할 때 교수님께서 필기를 하고 설명을 해주시는 것은 그 때문이지. 이론을 잘 알지 못하면 원하는 대로 마법을 시전할 수 없어.”

지팡이를 휘둘러서 부엉이를 강아지로 변신시키려는 크리스의 시도는 실패했다. 그는 덤블도어 교수가 내준 작문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또한 4학년 과정인 이종(異種) 변신술뿐만 아니라 5학년 과정인 소멸 주문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리브가 쉽게 소멸마법을 행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재능을 한탄했다.

“리브, 난 변신술에 재능이 없나봐…!”

“꾸준히 노력하면 할 수 있어.”

크리스가 변신술에 재능이 없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 리브였다. 리브가 보기에도 크리스는 변신술에 재능이 지독하게 없어보였다.

“E(기대이상)는 바라지도 않아. 그냥 A(보통)만 받았으면 좋겠어. 이러다 난 낙제할거야.”

그 모습을 보며 리브는 작게 웃었다. 마치 마법약 과목에서 특출함은 바라지도 않으니 기대 이상이라도 받으면 좋겠다고 한탄하던 자신의 옛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리브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데 크리스와 소녀 사이에 어떤 생물체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소리를 친다.

“낙제래요~ 카르티에가 낙제한대요~ 변신술을 지독하게 못한대요~”

그 생물체는 소리의 요정, 피브스였다. 분명 저쪽에서 기숙사 공동 휴게실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머리카락에 불을 붙여야한다고 신입생들에게 엄포를 놓고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언제 들어 온거야!

“다들 들어봐! 호그와트 최초의 편입생 카르티에 군은 거액의 기부금으로 편입은 할 수 있었어도 변신술 성적은 못 챙겼나봐!”

그렇게 말하며 피브스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보통 학생같으면 노발대발 화를 낼 법도 했으나 크리스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 한기가 드는게 심상치 않았다. 청년은 그 무례한 요정에게 매혹적인 눈웃음까지 지어주었다. 그리고 피브스가 자신의 페로몬에 잠깐 멍 때리는 사이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 겨누었다. 그리고 단어같은 어떤 주문을 중얼거린다. 해사하게 웃으면서.

그러자 놀랍게도 피브스가 목을 움켜쥐더니 입을 딱 벌린 채 밑으로 뚝 떨어졌다. 피브스는 입을 뻐끔뻐끔 거리며 무어라 말하고 있었으나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피브스는 크리스를 향해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 주문 꼭 써보고 싶었는데……. 네가 바로 그 소리의 요정 피브스구나.”

크리스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피브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소리의 요정은 여전이 목을 부여잡은 채였고 화가 났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피브스가 크리스에게 보복을 감행하기 전에 관리인이 나타나 요정을 끌고 가버렸다.

“브라보!”

“저 편입생 제법인데? 피브스를 제압 시켰어!”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며 악동 요정을 물리친 크리스에게 한 마디씩 했다. 피브스에게 유감이 많아 보이는 한 고학년 생은 크리스의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다.

“리브?”

기숙사 공동 휴게실이 원래의 공기로 돌아가고 크리스는 리브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리브의 표정이 멍했던 것이다. 청년은 자신이 리브에게 페로몬을 썼던가 잠깐 고민해야만 했다. 아까 피브스한테만 썼는데 이상하네.

“아, 미안.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크리스가 외웠던 그 주문이 이상하게도 낯이 익었다.

*

기숙사 공동 휴게실을 나온 둘은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변신술 작문을 다 끝내지 못한 크리스는 오늘 잠은 다 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또다시 자신의 형편없는 변신술 재능에 대해 한탄하는 크리스에게 리브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크리스, 나도 너처럼 지독하게 재능이 없는 과목이 있었어.”

리브의 말에 크리스가 보랏빛 자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리브, 너한테 못하는 과목이 있다고? 특출함으로 도배된 성적표에 만년 수석인 네가?”

리브가 살며시 미소를 짓다가 말했다.

“난 마법약 제조에 재능이 없어. 항상 필기 점수로 점수를 떼우곤 했지. 간당간당하게 A(보통)를 받았어. 하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간신히 E(기대이상)를 받았지. 물론 그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이 있었지만 말이야.”

“타인이라면……. 너의 멘토인 ‘톰 리들’?”

톰 리들을 입에 담는 크리스의 말투가 제법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특유의 해사한 미소 덕분에 이는 묻혀졌다. 리브는 고운 얼굴에 어여쁜 미소를 담으며 말했다.

“응, 내 마법약 실력의 절반은 리들 선배 덕분이야. 그는 정말 훌륭한 멘토거든.”

크리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톰 리들이 너를 멘티로 지목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이야?”

해사한 얼굴에는 살짝 미심쩍다는 기색이 엿보였다. 리브는 정말이라며 망설임 없이 긍정의 대답을 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톰 리들이 날 멘티로 지목해서 한동안 곤욕을 치렀지. 벌써 그로부터 1년이 지났구나.

“둘이 어떤 사이야? 혹시 사귀는 사이?”

크리스의 말에 리브는 펄쩍 뛸 뻔했다. 자신과 톰 리들의 사이가 호그와트를 다닌지 얼마 안 된 편입생에게 의심받을 만큼 그런 관계로 보이는 건가? 대체 왜? 리브는 곧바로 부정과 변명의 말을 내뱉었다.

“연인이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 리들 선배와 나는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고 그 때문에 가까운거야.”

크리스의 보랏빛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는 나를 여동생으로 생각하고 나는 그를 친오빠처럼 생각-”

그 순간 크리스의 입술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치 비웃음 같기도 한 그 소리에 리브는 말을 뚝 멈추고 웃는 이를 응시했다. 그 시선에 크리스는 곧바로 사과의 말을 꺼냈다. 하지만 여전히 해사한 얼굴에는 의미 모를 웃음이 띄워져 있었다.

“미안. 의외여서 말이야.”

“뭐가?”

“톰 리들이 너를 여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게.”

리브는 처음 맞닥뜨리는 반문에 마찬가지로 의아함을 느껴야만 했다. 리들 선배가 나를 여동생처럼 생각하고 있다는게 왜 의외라는 거지? 리브의 벽안에 궁금증과 의문이 가득 맺혔다.

“리브, 내가 감이 상당히 좋거든.”

“……?”

“내 눈에, 톰 리들은 누군가를 각별하게 생각할 성정(性情)이 아닌 것 같아 보여서 말이야.”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다라……. 그래도 사람이 변하는건 쉽지 않은데. 그렇게 잠깐 혼잣말을 한 크리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투는 제법 진중하다.

“리브, 톰 리들을 믿어?”

“……크리스, 그게 무슨 소리야?”

“믿지 않는게 좋아. 저렇게 철저한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은.”

“……!”

리브는 발걸음을 멈추고 크리스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리브가 알기로 지금까지, 톰 리들의 가면을 알아차린 학생은 그 누구도 없었다. 벨라의 피에 페로몬뿐만 아니라 진실을 꿰뚫어 보는 능력도 있던가?

“처음에는 유유상종이라고, 끼리끼리 어울리려니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

“리브, 넌 착하고 선해. 분별도 있고. 뭐가 옳고 그른지도 알지. 이제 내 페르몬에도 끄떡없는 걸 보면 정신력이나 의지도 강한 것 같고.”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는 해사한 얼굴에 매력적인 미소를 가득 담았다. 크리스가 벨라 특유의 페로몬을 흩뿌렸음에도 리브의 표정은 거의 미동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크리스의 페로몬은 리브에게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않게 되었다. 물론 크리스가 작당하고 페로몬을 뿜어낸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크리스는 순수 벨라가 아닌 쿼터 혼혈인지라 그 페로몬의 위력은 순수의 것보다 옅었다. 그 때문에 충분히 극복 가능한 수준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아.”

“…….”

“그런데 너처럼 좋은 애가 왜 톰 리들과 어울리는 걸까. 혹 사귀고 있는 사이면 어쩔까 싶었는데 그런 사이는 아니라니 다행이야. 네가 그 녀석에게 푹 빠져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웠거든.”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의 말투에는 리브에 대한 호의와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

“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그와 가까이 지내지 않는게 좋아.”

“어째서-”

“톰 리들은 무서운 사람이니까.”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말하려는 리브의 물음을 채 듣기도 전에 크리스는 단칼에 답을 내놓았다.

“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크리스.”

제지의 의미를 담아 리브는 아름다운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미모의 청년은 멈추지 않는다.

“리브, 너는 모르는거니? 그의 본성을?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으면서도?”

리브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다. 듣기 싫다.

“혹 그가 유년 시절과는 다르게 변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눈치 없어 보이지는 않는-”

“나는 뒷담을 좋아하지 않아. 남에 대해 험담하는 것도.”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건조해졌다. 얼굴 역시 파삭파삭 굳어 있었다. 크리스는 순간 아차한 표정을 지었지만 쏟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네가 리들 선배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하지 않겠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나는 모르니까. 하지만 그와 친분이 있는 나에게 네 사적인 감정을 동조해달라고 하면 곤란해.”

리브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곤조곤 했지만 얼굴은 제법 매서웠다.

“…리브, 미안해. 내가 경솔했어. 하지만 나는 네가 걱정스러워서 한 말이었어.”

크리스는 곧바로 사과의 말을 늘어놓았다. 이미 쏟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겠지만 수습은 해야만 했다. 리브와 친해지기 위해 얼마나 갖은 노력을 했던가. 이제 겨우 친해졌는데 사이를 벌릴 수는 없었다. 크리스는 리브가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눈에 띄게 예쁜 외모와 톰 리들의 멘티라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 소녀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예뻤다. 또한 어떻게 그 톰 리들과 어울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둘은 철저한 상극이었다.

“리들 선배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작은 트러블이 있었을 뿐이야.”

크리스의 대꾸에 리브의 벽안에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맺혔다. 같은 학년이기는 하나 기숙사도 전혀 다르고 접점 하나 없을 것 같은 두 인물이 대체 언제 갈등까지 빚었단 말인가. 둘의 공통점은 빼어난 외모와 유명인사라는 것뿐이었다.

“리브 네가 걱정할 수준의 것은 아니야. 걱정 마.”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는 또다시 해사하게 웃었다. 하지만 리브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톰 리들에게 직접적으로 악감정을 드러냈다가는 매장되기 십상이었다. 크리스는 그리핀도르 소속이니 톰 리들의 영향력이 덜할지는 몰라도 나쁘면 나빴지 결코 좋지는 않을 것이다. 부디 리들 선배에 대한 너의 생각이 악감정은 아니기를. 리브는 진심으로 둘 사이에 있었다는 트러블이 매우 보잘 것 없는 것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전부 감사드려요! 특히 코멘트 사랑함여 헿 그렇다고 추천을 누르지 말라는건 아님여ㅎㅎ

'라임색색연필'님, '_지아'님 예쁜 그림 정말감사합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구요? 여러분 시험기간이시잖아요..! 공부하셔야져!ㅎㅎ 여러분의 공부를 돕기 위해......는 개뿔

사실은요. 제가 이번 달부터 학원을 다니는데요... 세륜숙제... 이놈의 숙제 때문에 소설 쓸 시간이 으앙 쥬금! 그래도 제가 엊그제 어떻게든 업뎃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자판을 두드리는데.. 졸리니까 글이 산으로 가는거에욬ㅋㅋㅋㅋㅋㅋ감정선을 살려야되는데 감정이고 나발이고 제가 졸려서 돌아가시겠음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걍 끄고 콜콜 잤음돠.. 어제는 학원숙제하느라 오늘은 학원에 가느라... 그대신 학원끝나고 와서 이렇게 소설 쭉쭉 내려써서 업뎃합니당!

* 리들이랑 크리스랑 어떤 트러블이 있었는지는 다음편에서 확인해주세염ㅋ.ㅋ

* 아 리들이랑 리브가 대체 무슨 생각하고 있냐고요?ㅎㅎ 글쎄요..! 그냥 둘다 복잡복잡열매를 한바가지씩 먹었어요. 너희 그거 빨리 뱉어내고 어서 연애연애열매 먹지 않을래?

* 퇴고가 좀 덜 돼서 오타나 뭐 그런게 있을지도 몰라요 안하시면 배려에 감사드리고 나는 글이 어색하면 참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싶은 분들은 둥글게 지적 부탁드려여!

오늘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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